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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는 길도 척척 찾아주고, 산에서 방향을 잃어도 위치를 알려준다. 매일 쓴다 해도 과언이 아닌 GPS 위치 정보 얘기다. 이렇게 유용한 정보를 우리는 ‘공짜’로 쓰고 있다, 정보가 곧 돈인 시대에 누가 이런 정보를 공짜로 뿌리는 걸까?
GPS 정보는 누가, 왜 무료로 제공할까?
‘GPS‘라는 단어가 워낙 익숙하다 보니 일반 명사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GPS는 위성을 이용해 위치를 찾는 ‘위성항법 시스템’의 한 종류다. 정확히는 미국의 위치 정보 시스템(US Global Positioning System)이다. 즉, 위치 정보를 뿌린 주체는 미국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GPS 정보를 전 세계에 공짜로 제공할까?
1983년 9월 1일 뉴욕에서 출발해 앵커리지를 경유, 서울로 향하던 KAL 007편 보잉 747 여객기는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등 탑승객 269명이 모두 숨졌다. 당시 항로 이탈 원인은 항법 장치 문제로 분석됐다.
여기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GPS는 원래 군사용으로 개발됐다. 1970년대 냉전 시대 미사일과 항공기의 위치 파악을 위해 미국 국방성이 위성을 띄운 것이다. 그런데 1983년 대한항공 007편이 옛 소련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격추됐다.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했다. 원인은 당시 항공기에 쓰이는 항법 장치(INS)에 문제가 생겨 항공기가 항로를 이탈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군용으로만 쓰던 GPS를 민간에 개방하도록 결정했다.
GPS가 본격적으로 생활 속에 들어온 것은 2000년 이후다. 미국이 GPS를 민간에 개방하기는 했지만, 2000년 전까지는 다른 나라가 군사용으로 쓰는 것을 막기 위해 고의로 잡음을 포함했다. 위치 오차는 100m에 달했다. 그러나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2000년 고의 오차를 없애면서 차량용 내비게이션 등 민간 활용이 급성장하게 된 것이다.
GPS는 어떻게 위치를 알아낼까?
GPS는 지구 주위를 도는 24개 위성으로부터 위치 정보를 얻어낸다. 그렇다고 24개 위성의 신호가 모두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한 지점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면 3개의 위성이 필요하다. 삼각측량법을 이용한 것이다. 여기에 시간 오차를 확인하기 위한 위성 1기가 더 이용된다.
위성 3개에서 측정한 거리 정보를 바탕으로 삼각측량법을 활용해 사용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얻은 위치 정보가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다. 위성 자체 오차에 신호가 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차, 그리고 사용자의 수신기에서도 오차가 발생한다. 세찬 비가 오는 날 유독 위치 정보 수신이 느리고 잘 맞지도 않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위성 신호가 구름 속 물방울 등에 간섭을 받아 발생한 오차다. GPS가 95%의 신뢰도로 보장하는 거리 오차는 17~37m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GPS 신호가 대기 중을 이동할 때 지연되는 현상이 기상 예측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호가 지연되는 시간이 길수록 구름 속의 물방울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상학계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GPS를 강수량 예측에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오차 줄이고 신뢰도 높이는 위성항법 보강시스템
오차를 줄이기 위해 GPS는 진화하고 있다. 위성항법 보강시스템(SBAS, SatelliteBased Augmentation Ssystem)이 그 결과물이다. 원리는 다음과 같다.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는 기준국을 지상에 세운다. 만약 GPS가 가리킨 기준국의 위치가 실제 위치에서 10m만큼 차이가 난다면, 오차가 10m임을 알 수 있다. 기준국이 GPS의 오차를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오차 정보를 중앙처리국에서 처리한 뒤 정지궤도위성으로 전송한다. 그리고 오차를 바로잡은 정보를 위성에서 다시 사용자에게 전송함으로써 오차를 줄여주는 방식이다. 위성항법 보강시스템을 거친 위치 정보는 오차가 1~3m로 줄어든다. GPS 단일 위치 정보의 오차(17~37m)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유럽에서는 위성항법 보강시스템이 이미 널리 이용되고 있다. 에그노스(EGNOS, European Geostationary Navigation Overlay Service)가 그 주인공이다. 에그노스를 운영하는 ESSP(European Satellite Service Provider) 본사 곳곳에는 ‘We certify you arethere.(우리는 당신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문구가 붙어있다. 에그노스를 이용하는 누구나 정확한 위치 정보를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2016년 ESSP의 후원으로 열린 칼스카이스컵 요트 대회에서는 에그노스의 위치 정보가 활용됐다.
2016년 10월에 포르투갈에서 벌어진 칼스카이스컵 요트 대회(ESSP 후원)가 에그노스를 활용한 대표적인 예다. 요트 대회는 정지한 상태에서 출발하는 육상 경기와 달리 운항하는 상태로 정해진 시간에 출발선을 통과하며 시작된다. 이 때문에 출발선을 통과할 때 최고 속도를 내는 것이 기록에 매우 중요하다. 바다 위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출발선이 없다. 운항 코스도 선으로 구분돼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요트의 정확한 위치와 속도 정보가 필수적인데, 여기에 에그노스의 위치 정보가 활용된 것이다. ESSP의 CEO티에리 하코드는 “이러한 계기를 통해 에그노스가 민간에서 더욱 널리 이용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정확한 위치 정보는 자율주행차 운행에 필수적이고 재난 구조, 미아 찾기 등에도 활용될 수 있다.
위성항법 보강시스템의 더 중요한 역할은 항공기의 안전 운항에 있다. 기존의 GPS는 위치 오차도 문제지만, 그 정보의 신뢰도가 낮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오차와 관계없이 GPS에서 위치 정보가 제대로 들어오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성항법 보강시스템을 거치고 나면 오류 발생 가능성이 500만 분의 1 수준까지 줄어든다. 18년에 한 번 오류가 날 정도로 신뢰도가 높아져 안전 운항에 기여할 수 있다.
현재 항공기는 공항 활주로에 설치된 항행안전시설을 통과해야만 해 단일 착륙 경로만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위성항법 보강시스템을 적용하면 다양한 항로를 이용할 수 있어 항공기 지연과 결항이 줄어들고, 연료와 탄소 배출 저감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에서도 유럽과 협력을 통해 위성항법 보강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은 2014년부터 한국 위성항법 보강시스템(KASS) 개발에 착수했다. 현재 항우연 소속 연구원들이 프랑스 툴루즈에 위치한 ESSP에서 KASS 구축과 운영을 위한 협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이은성 항우연 SBSA기술팀장은 “국내에서도 2020년이면 국민들이 오차가 1~3m로 줄어든 더 정확한 위치 정보를 사용할 수 있고, 2022년에는 항공 서비스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음 목표는 독자 위성항법 시스템 개발
그러나 선진국들은 위성항법 보강시스템에서 멈추지 않는다. 보강시스템은 말 그대로 기존의 위성항법 시스템을 보강해주는 역할이다. GPS 등 기반 시스템이 작동을 중단하면 보강 시스템도 동작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옛 소련은 이미 1980년대 자체 위성항법 시스템인 글로네스(GLONASS)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유럽과 중국도 각각 전지구 위성항법 시스템(GNSS)인 갈릴레오(Galileo)와 베이더우 2/3(Beidou 2/3)을 개발했다. 일본과 인도는 2000년대 들어 각기 해당 지역에 위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지역 위성항법 시스템(RNSS) 구축에 나섰다. 위성항법 시스템이 이미 사회 각 시설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은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과거 군사적인 목적으로 위성항법 시스템에 고의로 장애를 발생시킨 사례도 있다.
한국의 위성항법 시스템 개발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제3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에서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 구축 계획이 확정되며 최근 예비추진단이 꾸려졌다. 예정대로 진행되면 2034년 지역 위성항법시스템(RNSS) 구축이 완료돼 2035년쯤 서비스가 시작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