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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반도체 특허침해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4억달러(약 4400억원)을 물어줘야 한다는 미국 배심원 평결이 나왔다. 1심 판결이 아닌 배심원 평결이지만 통상적으로 배심원 평결을 판사가 뒤집는 사례가 적었다는 점에서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1심 판결에서 패소하더라도 항소하겠다는 방침이다. 최종 결과가 나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15일 미국 텍사스 동부지법 1심 배심원단이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문제가 된 기술은 핀펫(FinFET)이다. 반도체 칩을 소형화하기 위한 3차원(D) 트랜지스터 설계 구조를 의미한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원광대 교수로 재직하던 2001년 KAIST와 공동 발명했다.
KAIST의 지식재산 관리 회사인 KAIST IP 미국지사는 이 교수에게 권한을 위임 받아 지난 2016년 텍사스 동부지법에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등에 사용해 온 반도체 관련 특허 기술인 핀펫에 대한 사용료를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6 등에 사용된 반도체 핀펫 기술은 삼성전자 임직원의 연구로 개발한 자체 기술이며 KAIST IP의 기술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배심원단 평결대로 1심 판결이 나올 경우 판사가 배상금을 3배까지 늘릴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반도체 업계는 이 소송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핀펫은 시스템반도체 회로 선폭이 10나노대로 내려오면서 업계 전반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기술이다. 삼성전자 뿐 아니라 글로벌파운드리와 TSMC 같은 파운드리 업체도 해당 공정으로 핀펫 소자를 생산한다. 퀄컴, AMD, 엔비디아를 포함한 고성능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팹리스 회사도 이 소자 기술로 주력 제품을 설계했다. 22나노 PC용 중앙처리장치(CPU)부터 핀펫 기술을 활용한 인텔은 지난 2012년 일찌감치 이종호 교수 측에 핀펫 기술 사용료 100억원을 지급했다. 이 같은 사실이 배심원 평결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종호 교수 측이 최종 판결에서 승리한다면 반도체 업계는 핀펫의 다음 버전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가 상용화되기 전까지 기술 사용료를 지급해야 할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핀펫은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생긴 3D 게이트 소자 구조로 3개 면에서 전류가 흘렀지만, GAA는 원통형으로 모든 면으로 전류를 흘릴 수 있다. 반도체 업계는 5나노 이하 공정 노드에서 GAA 기술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둔 상태다.
삼성전자는 “1심 최종 판결이 아니라 배심원 평결이 나온 것”이라며 “항소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정부의 연구개발(R&D) 특허 전략도 손질을 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올 공산이 높다. 당초 정부로부터 자금을 받아 공동 연구를 진행했던 KAIST는 해당 기술의 국내 특허는 냈지만 국외 특허는 예산을 받을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출원을 거부했다. 이 교수는 경북대로 옮긴 후 2003년 미국에서 개인 자격으로 특허를 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국민 세금이 들어간 R&D 결과물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이종호 교수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마이크로시스템기술연구소를 거쳐 원광대와 경북대 교수를 역임했다. 2009년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로 부임해 전기정보공학부 연구부학부장, 공과대학기획부학장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으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