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MIT 맥스 슐레이커 교수팀이 개발한 ‘RV16x나노’.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16비트 프로세서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실리콘 반도체를 사용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어설픈 장비’라고 회상할지 모른다.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탄소나노튜브(CNT)가 기존 반도체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기 때문이다. 탄소나노튜브로 만든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탄소나노튜브로 전자소자(트랜지스터)를 만들고, 이를 실제 컴퓨터에 적용해 작동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MIT팀, CNT 이용 16비트 프로세서 개발

지난 8월 28일 맥스 슐레이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팀은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16비트 프로세서 ‘RV16x나노’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트랜지스터 1만4000개가 들어간 마이크로프로세서다. 특히 연구팀은 이 프로세서를 통해 ‘헬로 월드! 저는 CNT로 만들어진 RV16x나노입니다’라는 문장을 출력해냈다.

16비트 프로세서는 0 또는 1의 값을 갖는 디지털 데이터 16개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0과 1은 컴퓨터의 작동 원리를 담은 숫자다.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기기는 전류가 흐르는 것을 1로, 차단된 것을 0으로 환산한 2진법 시스템으로 정보를 처리한다.

물론 연구팀이 개발한 16비트 프로세서는 요즘의 64비트 컴퓨터에 비해 성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문자를 출력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에, 한동안 정체를 보였던 탄소나노튜브 기반 컴퓨터 제작이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는 평가다.

탄소나노튜브는 한때 나노과학기술을 상징하는 물질이었다. 1991년 일본의 수미오 이지마 박사가 전자현미경으로 가늘고 긴 대롱 모양의 다중벽 구조로 된 물질인 탄소나노튜브를 처음으로 발견한 이후 그래핀이 보고된 2004년 무렵까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탄소나노튜브로 만든 트랜지스터는 1998년 처음 선보였다. IBM이 ‘탄소나노튜브 전계효과트랜지스터(CNTFET)’를 시연하는 데 성공한 것. 하지만 이를 집적회로로 만드는 기술에는 실패했다. 그러다 2013년 미국의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수만 개의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해 트랜지스터를 지닌 칩을 만들고, 이런 개별 칩을 모아 탄소나노튜브 트랜지스터 178개로 만든 1비트 프로세서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3년 뒤인 2016년에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학 연구팀이 실리콘 칩 속도를 능가하는 탄소나노튜브 트랜지스터를 개발하면서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마이크로칩 생산이 이론이 아닌 현실로 성큼 다가왔음을 알렸다. 또 중국 베이징대 연구팀은 2년 전 선폭 5㎚(나노미터·10억분의 1m)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데 성공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럼에도 막상 탄소나노튜브를 상용화하기엔 극복해야 할 기술적 난제가 많았다. 탄소나노튜브는 탄소 6개가 속 빈 관(튜브·tube) 모양으로 연결된 구조다. 굵기는 머리카락의 1만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강도는 강철보다 100배나 단단하다. 전기전도율(전기가 통하는 성질) 또한 자연계에서 가장 뛰어난 구리보다 잘 통하고, 열전도율도 다이아몬드와 비슷해 빨리 분산시킨다. 전도율이 높다는 것은 낮은 전력으로도 구동이 가능해 전력 소모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의미이다. 연구팀은 전력 소모가 10분의 1로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이렇듯 하나만 놓고 보면 탄소나노튜브 트랜지스터는 실리콘 반도체 트랜지스터보다 효율이 높고 전기적 특성이 좋다. 하지만 손톱만 한 면적에 트랜지스터 수십억 개가 배치돼야 하는 반도체 칩은 다른 차원의 얘기다. 전자소자로 쓰려면 일정한 크기로 만들어야 할 뿐 아니라 나노 수준의 정교한 패턴대로 칩에 배치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탄소나노튜브는 그렇게 할 방법이 없었다. 크기가 문제였다. 탄소나노튜브의 경우 두께가 나노미터(㎚) 단위로 워낙 얇아서 미세 공정이 필요하다. 더구나 집적회로 안에 들어 있는 약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일일이 정밀하게 배치해야 하는데, 아주 작은 탄소나노튜브들을 하나하나 원하는 패턴으로 쌓기는 정말 어렵다. 탄소나노튜브로 마이크로칩을 제조하는 것은 아주 작은 벽돌을 쌓아 거대한 자유의 여신상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작업이다. 탄소나노튜브가 이론적으로는 좋은 소자이지만 이를 회로로 만들고 칩에 집적하는 기술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컴퓨터 개발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슐레이커 연구팀이 탄소나노튜브 트랜지스터를 이용해 극도로 얇은 두께의 폭에서도 높은 전류 밀도를 갖는 프로세서를 개발해낸 것이다. 슐레이커 교수에 따르면 탄소나노튜브 프로세서 ‘RV16x나노’는 이론적으로 실리콘보다 효율이 10배 높고 동작 속도도 3배 더 빠르다. 이러한 결과는 실리콘칩을 대체할 탄소나노튜브 컴퓨터의 가능성이 밝아졌음을 의미한다.

 

실리콘보다 효율 10배, 속도 3배

현재 반도체 칩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의 주재료는 실리콘이다. 실리콘 기반 반도체에는 20억개 안팎의 트랜지스터를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실리콘은 집적도가 10㎚ 이하로 내려갈 경우 누설 전류가 발생하는 등 한계가 있다. 그동안 실리콘 반도체를 쓴 집적회로는 작은 크기의 회로로 많은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점점 밀도를 높여왔지만 물리적인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회로의 선폭을 나노미터 수준으로 좁힌 상황이라 더 줄이기 어려울 뿐더러 발열 때문에 회로 안정성이 떨어진다.

반면 탄소나노튜브는 소재 자체가 수㎚에 머물기 때문에 트랜지스터 숫자를 1조 단위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트랜지스터 수가 많으면 그만큼 성능이 높아져 탄소나노튜브 반도체의 경우 처리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진다. 탄소나노튜브가 실리콘을 대체할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손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탄소나노튜브 트랜지스터를 양산하려면 걸림돌들을 제거해야 한다. 탄소나노튜브는 반도체성과 금속성의 성질을 갖는다. 둘 다 순수한 상태인 경우 훌륭한 재료이지만 섞이면 금속 탄소나노튜브가 단락을 일으켜서 반도체 탄소나노튜브의 특징을 파괴한다. 따라서 금속성을 걸러낸 후 반도체성을 분리해내야 한다. 또 탄소나노튜브는 밀도뿐만 아니라 순도도 낮다. 순도가 떨어질 경우 회로에서 잡신호(노이즈)가 발생한다.

슐레이커 교수팀은 이런 기존의 몇 가지 기술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엄청난 업적을 달성했다. 반도체성을 분리해내는 문제는 중합체 분산제를 이용해 금속성을 0.01% 이하로 낮추었다. 현재 금속성을 99.99%까지 뽑아낼 수 있지만 100%까지 그 수치를 높이는 게 관건이다. 또 노이즈 문제는 논리회로 설계를 최적화해 해결했다. 아직 모든 문제가 100% 해결된 건 아니지만 탄소나노튜브의 반도체 상용화는 임박한 현실이다.

 

 

 

(원문: 여기를 클릭하세요~)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