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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치슨 운석은 탄소질質 콘드라이트chondrite에 속한다. 이 운석이 풍긴 냄새는 지구보다 나이가 많은 유기화합물에서 난 것이다. 유기화합물들은 우리 태양계를 낳았던 성간星間먼지와 성간 구름의 드넓은 분자 구름에 있던 것들이다. 유기물은 대부분 타르 같은 중합체였다. 사슬형 탄화수소와 고리형 탄화수소 외에 지방산·알코올·요소·당·아인산염·술폰산염 등도 포함돼 있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들은 이 운석에서 74종種의 아미노산을 발견했다. 그 가운데 6종은 지구 생명체의 단백질에 들어 있는 아미노산이었다.
2005년 7월 3일 미국의 우주탐사선 딥 임팩트 호는 세탁기 크기의 충돌체를 발사했다. 이 충돌체는 거의 24시간 동안 4억 3100만㎞를 날아가서 7월 4일 혜성 템펠 1과 충돌했다. 시속 3만 7100㎞ 속도로 날아오는 372㎏짜리 물체에 얻어맞은 혜성은 수 톤의 혜성 물질을 우주공간에 흩뿌렸다. 지구의 NASA 과학자들은 그 증기 구름을 분석해 유기분자를 발견했다.
이 물질들은 모두 어디서 왔을까? 태양계를 만들었던 분자 구름에서 합성됐다고 보는 게 가장 상식적이다. 그 분자 구름이 뭉쳐져 소행성과 혜성이 된다. 운석과 혜성에서 발견되는 유기화합물이 알려주는 것은 무엇일까? 유기화합물이 운석에 있다면 초기 지구라고 없을 이유가 없다. 생명 탄생 이전이라도 지구에 아미노산이 충분히 있었을 것이란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생명의 기원에 필요했던 유기화합물 모두가 먼지 입자와 운석·혜성에 실려 지구에 전해진 것은 아니다. 지구의 대기권과 바다 그리고 화산 조건에서 합성된 화합물도 있었을 것이다.
최초의 생명체
생물학에는 ‘DNA→RNA→단백질’이라는 중심원리가 있다. 생명 현상이란 결국 단백질 효소의 화학 작용이다. 단백질로 이루어진 효소가 없으면 생명이 아니다. 그리고 단백질의 설계도는 DNA에 있다. 단백질을 만들려면 DNA가 복제되고, RNA로 전사되어 단백질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단백질이 담당한다. 그렇다면 DNA가 먼저인가 단백질이 먼저인가? 이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비슷한 문제다. 도대체 첫 번째 생명체에는 DNA가 들어 있었는가, 아니면 단백질이 들어 있었는가?
최초의 생명체도 어리바리했다. 초기 생명체는 효소 작용을 하는 단백질과 생명의 설계도 역할을 하는 핵산을 모두 갖지 못했다. 대신 두 역할을 다 하는 작은 RNA 조각, 즉 라이보자임ribozyme이 있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간단한 유기화합물로부터 RNA를 구성하는 네 가지 염기, 즉 아데닌(A)·구아닌(G)·시토신(C)·우라실(U)이 제조되는 방법을 찾는 데 몰두했다.
최근 과학자들은 초기 지구에 풍부했던 시안화수소가 물과 반응할 때 생기는 포름아미드란 간단한 화합물에서 아데닌 같은 염기가 생겼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며, 이미 많은 연구팀이 실험실에서 포름아미드를 이용해 개별 핵염기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과연 초기 지구 조건에서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지금부터 40억 년 전부터 1억 5000만 년 동안의 시간을 ‘후기 운석 대충돌기LHB, Late Heavy Bombardment’라 한다. 커다란 물체들이 수성·금성·화성은 물론 지구와 달을 지속적으로 강타했다. 이런 조건에서도 핵염기가 생겨날 수 있었을까? 많은 과학자들은 이 충돌이 지구 표면의 생명체들을 몰살시키거나 이미 탄생한 생명체의 싹을 잘라버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궁금하면 해 보는 것이 과학이다.
체코 헤이로프스키 물리화학연구소 스바토풀르크 치비시 박사팀은 초기 지구에 풍부하게 존재했던 것이 확실한 포름아미드에 고출력 레이저를 쏴서 4200도의 고온과 엄청난 압력, 그리고 자외선과 X선을 비롯한 여러 방사선을 만들었다. 마치 소행성이나 혜성이 지구를 강타한 듯한 ‘지옥 같은’ 환경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조건에서 RNA의 네 가지 핵염기를 모두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2014년 12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했다. 체코 팀의 연구는 LHB 시기에 빈발한 천체의 충돌은 지구 생명체의 싹을 잘라버린 게 아니라 반대로 생명 탄생에 필요한 씨앗을 뿌린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우주생물학과 열수분출구
그렇다면 초기 지구에 등장한 RNA는 기름 막 안에 갇힌 채 생명으로 순조롭게 발전했을까? RNA를 복제하는 데 필요한 물질이 부족했다. 하지만 기다란 RNA는 생명 탄생의 기본 조건이다. 초기 생명체들은 이런 유전적 역설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이런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을 우주생물학이라고 한다. 우주생물학이라고 해서 지구 밖에서만 연구하는 게 아니다. 우주와 같은 가혹한 공간이 지구에도 얼마든지 있다.
건조 상태의 아미노산 혼합물을 90도 정도로 가열하면 수분을 잃은 아미노산들이 서로 이어져 아미노산 중합체가 형성된다. 이것이 바로 단백질이다. 화학반응은 양兩방향으로 일어난다. 생명의 기원을 위해선 단백질의 분해 속도보다 합성 속도가 빨라야 한다. 복잡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화학반응을 이끌었던 초기 지구 조건은 무엇일까?
1980년 미국 워싱턴 대학의 존 버로스 교수팀은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온도를 찾아 나섰다. 이들은 잠수정을 타고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열수분출구熱水噴出口를 탐사했다. 열수분출구는 깊은 바다의 지각을 떠받치는 구조판에 균열이 생긴 곳에 존재한다. 여기선 300도까지 가열되고 황화철을 비롯한 광물을 많이 함유한 극히 뜨거운 물이 금간 암석에 스며든다. 이 틈을 타고 올라온 열수가 4도의 차가운 바닷물과 만나게 된다. (섭씨 4도의 물이 밀도가 가장 높다.) 300도의 바닷물을 순간적으로 수면으로 가져가면 폭발하듯 증발해 버릴 것이다. 하지만 깊은 바다는 워낙 수압이 세서 물이 끓지 않는다. 열수분출구 주변에서 찬물을 만난 광물은 더 이상 물에 녹지 못하고 석출((析出. 결정형 고체가 녹은 용액에서 결정이 만들어지는 것)돼 굴뚝같은 구조가 만들어진다. 굴뚝 속으론 뜨거운 물이 쉼 없이 흐른다. 존 버로스 교수팀은 광물 기둥을 끊어서 세균이 있는지 확인했다. 굴뚝 어디에서나 세균을 찾을 수 있었다. 현재까진 121도의 온도 범위에서도 생명이 살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생명의 생존 가능 범위는 이보다 더 넓을 것이다. 1983년 버로스 교수팀은 열수분출구 환경에서 생명이 처음 시작됐을 것이란 논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