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에서 이로운 균만 정제해 환자 장 속에 이식
미국 대변은행 ‘오픈바이옴’에서 저장 중인 대변이식술 용 대변 샘플들. 오픈바이옴 제공
대변이식술은 장이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정제해 장 질환 등을 앓고 있는 환자의 장에 이식하는 치료법이다.
장에는 유산균처럼 이로운 균과 살모넬라균처럼 해로운 균이 생태계를 이루며 살고 있는데, 학계에서는 이로운 균이 85% 정도를 차지하고 있을 때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건강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만약 이 생태계 균형이 무너져버리면 해로운 균이 과다증식하고 그만큼 독소를 분비해 장내질환을 유발시킨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것은 평소 잠복하고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면 과다증식해 독소를 내뿜는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Clostridium difficile)’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는 65세 이상 고령층이 이 균에 감염될 경우 약 10%가 한 달 안에 사망한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이 세균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갖고 있어 치료제가 없다는 점이다.
2012년 2월 호주와 미국 과학자들이 위막성대장염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최초로 발견했다. 토마스 보로디 호주 소화기질환센터 센터장과 알렉산더 코럿 미국 미네소타대 의대 교수 공동연구팀은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정제해 위막성대장염 환자의 장에 넣었더니 증상이 사라지고 결국 90%가 완치했다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리뷰 소화기내과학및간장학’에 냈다. 그동안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에 눌려 증식하지 못했던 이로운 균이 다시 우세하도록 도와 장내 면역력을 키우는 원리다.
이후 미국, 캐나다, 영국, 네덜란드 등 여러 국가에서 위막성대장염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대변이식술을 연구, 관련 기술을 개발해왔다.
국내에서는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내과 연구팀이 2013년 3월 국내 최초로 위막성대장염 환자 두 명에게 대변이식술을 시행해 약 이틀 만에 대장 내 염증과 설사가 사라지고 별다른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연구결과를 ‘대한내과학회지’에 발표했다. 이후 서울성모병원과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대변이식술을 시행하고 있다. 비급여 의료시술로 진행되고 있어 아직 건강보험이 되지 않는다. 정확한 국내 전체 통계자료는 아직 없고, 서울성모병원의 경우 대변이식술을 시행한 건수가 지난해 기준 30건, 2013년 이후 총 70여 건이다.
대변 이식 가능한 ‘건강한 똥’ 찾기 쉽지 않아
건강한 장은 선홍색이지만(왼쪽),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에 감염되 위막성대장염이 발생한 장은 누런 고름이 잔뜩 생긴다. 네이처 마이크로바이올로지 제공
대변이식술을 하기 앞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건강한 똥’을 찾는 일이다. 건강하지 않은 똥을 이식했다가는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변이식술용으로 대변을 제공하고자 원하는 사람 100명 가운데 실제로 대변을 기증할 수 있는 사람은 고작 4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미국과 캐나다, 영국, 네덜란드 등에서는 대변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장염이나 설사병, 변비 등이 없는 건강한 사람으로부터 대변을 기증받아 보관하고, 장에 이식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한다. 국내에서도 2017년 6월 프로바이오틱스 전문기업 바이오일레븐의 기업부설연구소인 김석진좋은균연구소가 ‘골드바이옴’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의 경우 김석진좋은균연구소와 함께 위막성 대장염과 염증성 장질환, 과민성장증후군 등을 치료할 목적으로 대변이식술을 시행하고 있다. 골드바이옴에 저장된 샘플을 이용하거나, 환자가 이를 원치 않는 경우에는 새로운 기증자를 찾아 대변 샘플을 제공 받는다. 조영석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헌혈이 가능한 확률보다 대변을 제공할 수 있는 확률이 3분의 1 이하로 낮다”며 “좋은 대변 샘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게다가 최근 미국에서 대변이식술로 인한 사망자가 나와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기존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앞으로 좋은 대변을 구하기가 더욱 까다로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좋은 대변 샘플을 찾기 위해 전문가들은 흡연이나 음주 등 생활 습관과 현재 건강 상태, 과거 병력, 가족력, 혈액검사로 알 수 있는 백혈구 수치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여부, 대변 속 해로운 균이나 기생충 감염 여부 등을 꼼꼼히 확인한다. 비만이거나 고혈압 환자, 변비가 있거나 자주 설사하는 사람도 대변을 기증할 수 없다.
동아사이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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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23년 3월 18일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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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똥이 아닙니다”…못 하는 게 없는 ‘만능 치료제’
한경DB
그동안 몰랐던 미생물의 기능성이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하나씩 하나씩 밝혀지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 생태계)’ 시대입니다.
이동중 우연히 찍은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 생태계) 기반 솔루션 제공 버스광고. 미생물을 활용한 건강관리법은 생각보다 가깝게 다가와있다. 남정민 기자
사람 장 안에는 38조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그 종류만 많게는 1000종에 달한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유익균으로 꼽히는 유산균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무수히 많은 미생물들이 장 안에 가만히 있는게 아니라 자기들만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생태계의 핵심은 ‘균형’입니다. 학계에서는 유익균과 유해균의 균형이 깨질 때, 그리고 미생물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사람이 병에 걸린다고 보고 있습니다. 인간 질병의 90%가 장내 미생물 생태계 불균형에서 나온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항생제 복용으로 인한 장염입니다. 잘못 먹은 음식이 없는데 장염에 걸렸다면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을 의심해볼만 합니다. 항생제를 너무 많이 복용한 탓에 장내 유익균이 죽어서 생태계가 깨진 사례입니다.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증(CDI)은 유해균인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이 과도하게 증식하면서 장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병입니다. 심한 경우 장이 썩어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CDI를 고치는 세계 최초의 미생물 기반 ‘알약’이 다음달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국 바이오기업 세라스테라퓨틱스가 개발 중인 ‘SER-109’가 그 주인공인데요. 업계에선 “미생물도 과연 약이 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던 물음표들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결정일 것”이라며 기대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라스테라퓨틱스 전에도 스위스의 페링파마슈티컬즈이라는 회사가 미생물 기반 CDI 치료제로 FDA 허가를 받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건강한 사람의 분변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분변이식(FMT) 방법의 치료제입니다. 클리닉에 가서 직장에 1회 투여하는 방식인데 치료보다는 ‘처치’에 가깝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세라스테라퓨틱스의 SER-109는 알약이라 보편적인 치료법 테두리에 들어온 최초의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입니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장질환뿐만이 아닙니다. 국내외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장내 미생물로 암, 중추신경계 질환(치매 등), 면역질환, 피부질환 등을 고칠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장내 다양한 미생물들은 암 공격수인 ‘T-세포’를 활성화시킨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미생물 자체로도 약이 되지만 미생물이 체내 세포와 신호전달물질을 주고 받으며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 몸속 유익균들은 면역세포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체내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는 법을 훈련시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장은 우리 몸 면역세포의 70%가 존재하는 곳입니다. 유익균이 적어지면 면역시스템에도 혼동이 와 자가면역질환이 생길 수 있는거죠.
국내 기업들은 아직 임상단계이긴 하지만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지놈앤컴퍼니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항암제 ‘GEN-001’을 개발 중입니다. 위암과 담도암 등을 적응증으로 하는데 위암 임상 2상 중간결과를 올 상반기 안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회사 관계자는 “세부 데이터는 오는 10월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의 자회사 지아이바이옴은 지난달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대장암 및 직장암 신약 후보물질 ‘GB-104’에 대한 임상 1상 시험을 승인받았습니다.
미생물 배양 기술, 유전자 분석 기술 등이 발달하면서 장내 균들이 중추신경계 조절, 지방저장 촉진, 면역체계 발달, 비타민 합성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고바이오랩은 ‘KBL697’을 건선 치료제로 개발 중입니다. 현재 미국과 호주에서 임상 2상을 진행 중인데 이외 아토피피부염, 과민성 대장증후군, 자폐 스펙트럼 장애 치료제들도 개발 중입니다.
장과 뇌가 연결돼있다는 ‘장뇌축’ 이론도 세계적으로 ‘핫’한 연구 주제입니다. 미생물들이 자기들끼리 만들어내는 다양한 화학물질이 신경계를 자극해 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셀트리온은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신약벤처인 리스큐어바이오사이언스와 파킨슨병 치료제 공동 연구개발 계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업계에선 마이크로바이옴의 미래가 무궁무진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미생물의 기능성도 하나씩 밝혀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산업 자체가 ‘뉴 모달리티(modality)’다 보니 가능성은 엄청나죠. 지금 밝혀진 미생물이 절반도 안 되는데 벌써 암, 뇌질환과 관련된 치료제까지 개발 중입니다.
규제기관 허들도 하나씩 넘다보면 기존에 고치지 못했던 질병의 수수께끼들을 미생물에서 찾아낼 수 있을거라고 봅니다.
-지놈앤컴퍼니 관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