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국내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됐던 미국드라마 ‘과학수사(CSI)’에는 ‘길 그리썸(Gil Grissom)’이라는 멋진 수사관이 등장한다. 수사대의 반장이기도 한 그리썸은 전공인 ‘법곤충학(forensic entomology)’을 바탕으로 범인들을 빠짐없이 체포해 나간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수사관이 피해자가 살해된 날을 11월 1일로 추정하지만, 그리썸만은 법곤충학에 의거하여 전혀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법곤충학이 국내에서도 중요한 수사기법의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 forensicmag

 

 

그는 “피해자의 사체에서 나온 파리유충을 분석한 결과, 말라티온이라는 살충제 성분이 나왔다”라고 밝히며 “이 살충제는 번데기가 나타나는 시기와 산란을 4일 정도 지연시켜주므로, 피해자가 살해된 날짜는 11월 1일이 아니라 4일”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적 논리로 무장한 그의 주장에 다른 수사관들은 할 말을 잃은 채 먼 산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이 같은 과학적 논리를 제공한 법곤충학이 국내에서도 중요한 수사기법의 하나로 활용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사후 경과시간 추정 어려울 때 법곤충학 활용

법곤충학은 형사범죄와 관련되어 주목을 받기 전만 하더라도 크게 3가지로 분류됐다. 사체의 사망 시간이나 범죄발생 환경을 추정하는 ‘법의곤충학’ 외에도 법정이나 보험 등에서 곤충과 관련된 판단을 도와주고 그 보상을 다루는 ‘배상곤충학’, 그리고 사람이 만들어 놓은 환경이나 제도 또는 물체에 곤충이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도시곤충학’ 등이 그 것.

특히 배상곤충학은 저장곡물에서 해충이 발생할 경우에 그 책임이 원산지에 있는지, 아니면 유통과 보관 시에 있는지 등을 판단하는데 사용되기 때문에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반면에 법의학 개념의 법곤충학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곤충의 종류와 발육 상태를 통해 사망 시간과 원인, 그리고 장소를 추리해 내는데 사용된다. CSI처럼 사체에서 나온 구더기나 근처에 있는 벌레들을 대상으로 사망시각을 유추하고, 단서를 찾아내서 범인을 검거하는 것이다.

 

사망 원인이나 시간 추정이 어려울 때 법곤충학이 해결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 sfu.museum

 

 

그렇다면 곤충으로 어떻게 사망 시간 및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범죄현장에 시체가 있는 경우, 사후경과 시간의 결정은 매우 중요한 요소를 지닌다. 범인을 검거하는 일 외에도 보상 문제 및 기일(忌日) 등을 결정하는데 있어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만약 시체를 발견하는 시간이 늦어지게 되면 법의학 측면에서 사후 경과시간을 추정하는 사실상 무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관계자는 “이처럼 사후 경과시간을 추정하는 작업이 어려워졌을 때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법곤충학”이라고 소개하며 “시체 주변에서 곤충이 발견될 경우, 이를 증거로 삼아 수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곤충별로 다른 습성을 활용하여 형사사건 분석

법곤충학이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세계로 시야를 돌리면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최초로 법곤충학을 이용하여 사건을 해결한 사례는 1850년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법곤충학은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많은 사건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관련 연구도 꾸준히 진행되었다. 1960년대 들어서는 동물의 사체를 대상으로 한 과학적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진행된 연구에서 사체의 부패가 진행되는 단계에 따라 이에 관여하는 곤충 등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과학자들은 많은 연구 결과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1960년대에 진행된 연구가 오늘날의 법곤충학 기반을 마련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법곤충학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국내는 아직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다.

 

시체 상태와 사후경과 시간에 따라 접근하는 곤충의 종류가 다르다 ⓒ incodom.kr

 

 

실제로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형사 사건이 벌어지면 법곤충학자가 현장에 가장 먼저 들어가서 증거를 확보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국내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장이나 부검과정 중 출현하는 구더기 등을 박멸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관계자는 “사람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가 곤충이다 보니 사람의 죽음과도 많은 관여를 하고 있다”라고 설명하며 “곤충들은 시신이 부패가 진행되면서 내뿜는 가스의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습성의 차이에 따라 각 부패의 단계별로 시간을 두고 모여든다”라고 말했다.

과거 고신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망 후 가장 먼저 시체에 접근하는 곤충은 검정 파리나 쉬파리 같은 파리류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몇 분 안에 시신에 도착하여 부패가 진행된 후 2주까지 시신에 머물기 때문에 초기의 사후 경과시간을 측정하는데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이후에는 송장벌레 같은 딱정벌레류가 파리의 알과 구더기를 먹기 위해 몰려들고, 그 다음으로 개미나 말벌 같은 잡식성 곤충들이 달려드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밖에도 온도나 습도 등 외부적인 요인에 따라 구더기의 성장 속도나 몰려드는 곤충들의 종류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런 요인들을 감안하여 사후 경과시간을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관계자는 “만약 시신이 많이 부패되었음에도 유충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여러 가지 정황을 유추해 볼 수 있다”라고 언급하며 “예를 들어 시신을 공격하는 곤충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에 보관되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시신이 나중에 유기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원문: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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