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조작 슈퍼돼지 <옥자>,
유전자가 운명을 결정하는 세상 <가타카>
지난 몇 년 동안 《네이처》 저널의 표지를 크리스퍼CRISPR와 관련된 그림이 여러 번 장식했다. 크리스퍼란 단어가 낯설게 들린다면 유전자가위라고 이해하면 된다. 간단히 말해서 크리스퍼는 유전자에서 원하는 부분을 잘라낼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유전자가위를 이용하면 근육의 양이 엄청 많은 ‘몸짱’ 동물을 만들 수도 있다. 동물의 DNA 중에는 섭취한 단백질이 전부 근육으로 가지 않도록 억제하는 기능이 있다. 그런데 그 억제하는 DNA를 잘라서 못 쓰게 만들면 근육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은 중국과 협력해서 근육 돼지를 만들었고, 정상적인 돼지보다 근육을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있는 돼지의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유전자 연구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가 <옥자>이다. 옥자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슈퍼돼지의 이름이다. 영화 초반부에서는 슈퍼돼지 옥자가 전 세계적으로 수 십 마리밖에 되지 않는 희귀종인 줄 알지만, 후반부에 가면 공장에서 옥자와 동일한 종이 수천 마리 사육되는 현실이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밝혀진 슈퍼돼지를 사육하는 목적은 단 하나, 식용으로 쓰기 위한 것이었다. 슈퍼돼지를 만드는 데 다른 고상한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유전자를 조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유전자가위 기술은 유전자 조작 식품과는 다르다고 한다. 유전자가위는 유전자를 자를 뿐, 다른 생명체의 유전자를 섞는 행위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유전자가위가 유전자 조작 기술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두려움을 피해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자체 유전자를 잘라내 비활성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적 가능성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유전자 기술이 광범위하게 쓰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잘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유전자가위를 인간에게 적용하면 인간의 유전자 풀(gene pool), 즉 인류의 유전자 구성을 바꿔버릴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의 가장 큰 윤리적 논쟁 중 하나가 이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되었을 때 나타나는 예측하기 힘든 결과이다.
《스펙테이터》라는 잡지에서 유전자가위를 논하면서 “우생학이 돌아오다”라는 제목을 단 적이 있다. ‘우생학’이라는 학문은 낯선 분야이다. 과거에는 크게 유행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이걸 공부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생학이 가장 나쁜 방향으로 변질되어서 실행된 나라가 독일이었다. 독일은 1929년 대공황 이후 유전병 치료에 들어가는 예산을 법적으로 삭감하기 시작한다. 유전적 질환자, 정신 질환자들에게 자발적으로 거세하는 방법을 권하다가 이를 강제적 거세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후 이러한 정책은 집시, 흑인들에게도 시행되었다. 히틀러가 집권하면서부터는 기형아에 대한 자비로운 살해가 시작됐다. 심각한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는 어릴 때 안락사 시키자는 법안이 통과됐고, ‘살 가치가 없는 삶’이라는 개념이 널리 퍼졌다. 처음에는 유아들을 대상으로 시행되던 안락사 법은 1939년에는 3세까지로 넓혀졌고, 1941년에는 17세까지로 그 해당 연령이 높아졌다. 그 이후로는 모든 기형 환자와 동성애자, 유대인으로 범위가 확장됐다.
이렇게 해서 2차 세계대전 동안의 홀로코스트, 대학살이 시작된 것이다. 이 대학살로 600만 명 이상의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이 끝난 뒤 우생학은 강한 비판을 받고 금지된다. 처음에는 학문으로 출발했지만, 그것이 실제 정책으로 실행되면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우생학은 일제강점기 때 잠깐 유행하다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생학의 유산이 널리 퍼져 있는 게 현실이다. “역시 우월한 유전자다. 연예인은 동생까지 잘생겼다”는 얘기가 TV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방송된다. ‘우월한 유전자’라니? 공부를 잘해도, 잘생겨도, 운동을 잘해도 우월한 유전자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다른 극단에 . 있는 사람들은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부 잘하고 똑똑한 사람 본인은 물론 그 가족도 우월한 유전자라고 하는 게 우생학적 사고이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지금까지 얘기한 유전자가위 기술, 그리고 그것이 인간에게 적용됐을 때 우리가 우려하는 우생학을 예언적으로 잘 보여준 영화가 있다. <가타카>라는 영화이다. 영화 <가타카>에서 묘사하는 미래는 적격자와 부적격자로 계급이 나뉜 사회이다. 이 계급 차이는 지금처럼 교육, 돈, 직위 등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게 아니라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그래서 한번 태어났을 때 받은 유전자가 자신의 신분을 결정하고 그게 평생 동안 이어진다.
<가타카> 영화에서 주인공 빈센트 프리맨이 처음 느낀 차별이 보험에서의 차별이다. 보험회사는 기록을 가지고 통계 조사를 해서 보험료를 책정하고 고객을 스크리닝 할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그가 유년시절에 보험이 없어서 유치원에도 못 가는 장면이 있다. 유치원에서는 종종 사고가 나는데 보험이 없기 때문에 빈센트를 받아주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정규 교육을 못 받으니 다른 기회를 얻는 경쟁에서 뒤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유전자의 차이가 보험의 차별을 낳고, 보험의 차별이 교육 기회의 차별을 가져온다.
영화에서 빈센트 프리맨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는데, 빈센트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여자친구가 알게 되면서 둘은 갈등하게 된다. 이때 빈센트는, 자기는 의사가 30년 산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도 살아 있다고 고백한다. 또한 유전적으로 불완전한 형 빈센트와 완벽한 동생 안톤의 대조로 유전적으로 약하게 태어났어도 노력에 의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전적 확률이 우리의 운명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 영화의 주된 메시지인 것이다.
영화에서 보는 미래 사회는 유전정보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이다. 왜 이런 사회가 도래했을까? 유전공학의 발전이 한 가지 중요한 요소였다. 검사 비용이 저렴해지고 검사 속도 또한 빨라져서 그렇게 된 부분이 있지만, 또 다른 부분에서는 빈센트 프리맨의 부모가 유전자 결정론을 믿었던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애초에 ‘이 아이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맞는 교육을 받게 한 것인데, 사실 사회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회가 유전자 결정론을 더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수록 우리 사회의 미래는 영화에서 그려진 미래와 비슷한 쪽으로 갈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유전자 결정론은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만고불변의 사실이 아니라, 그렇다는 믿음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믿음은 사실이 될 수도 있고, 믿음으로 그칠 수도 있다.
유전자가 우리 미래를 결정하는 게 아니듯, 우리 사회의 미래 역시 유전자 결정론이 지배하는 미래로 결정되어 있지 않다. 결국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실천을 하고, 어떻게 사람을 대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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