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 100% 문과형 인간 모리 다쓰야]
영화감독이자 작가. 메이지대학 정보커뮤니케이션학부 특임교수로 강연 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방송국 PD로 근무하던 1998년, 옴진리교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A〉를 제작해 베를린영화제 등에 정식 초청받았다. 2001년에는 〈A〉의 속편 〈A2〉로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과 시민상을, 2011년에는 저서 《A3》로 제33회 고단샤 논픽션 상을 수상했다.

[과학 작가 다케우치 가오루에게 묻다]
다케우치 가오루 竹内薫
과학 작가・이학박사. 1960년 도쿄 출생. 도쿄대학교 이학부 물리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학교 대학원 박사 과정 졸업. 고에너지물리학 전공. 물리・수학・뇌・우주 등 난해한 분야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글로 정평이 나 있다.

모리 다쓰야 : 다케우치 씨는 서구 과학자들의 절반 정도는 신의 존재를 마음 한구석으로 믿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신앙을 가지고 과학을 병행하는 건데요, 곰곰이 생각하면 의아합니다. 신의 실재를 믿으면서 상대성이론과 진화론, 암흑 물질과 소립자 등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 모순은 없을까요? 가톨릭 신자인 다케우치 씨 본인은 과학과 신앙의 합의점을 어떻게 찾고 계신가요?

이 질문에 다케우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대답을 고심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아마도 이제껏 몇 번이나 묻고 답해온 질문일 것이다. 대답을 고민하기보다는 나에게 전달할 어휘를 고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윽고 다케우치는 “자연의 모든 것이 밝혀지면 신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다케우치 가오루 : 그런데 어느 순간, 공부를 하면 할수록 모르는 부분이 오히려 더 많아진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 하고 말입니다. 현재까지 과학을 통해 밝혀진 것은 극히 일부거든요. 
따라서 제 신념 체계를 ‘아무것도 모르는 수준’으로 규정한다 해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하지만 세계가 서서히 규명됨에 따라 지금까지의 제 신념 체계와 모순되는 부분이 발생한다면 규명된 부분을 우선시해야겠죠. 신념 체계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믿고 있는 것이니까요. ‘아는 것’과 ‘믿는 것’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있지 않습니까.
모리 다쓰야 : 다른 말로 ‘언젠가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라는 분명한 의식이 있다면 신앙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렇다면 다케우치 씨가 지금도 신앙을 계속 가질 수 있는 건 ‘인간 따위가 이 세계를 밝혀낼 수 있을 리 없다’는 의식이 어딘가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해도 될까요?

 

다케우치 가오루 :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이건 제가 변명으로 잘 사용하는 예인데, 쥐를 미로 속에 넣으면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갔다가 교대로 오가는 것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학습하지 못하는 것이 있어요. 두 번째, 세 번째, 다섯 번째, 일곱 번째 등 소수 素數의 모퉁이에서 도는 건 하지 못합니다. 쥐에게는 소수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지요. 
아마도 언어— 우리가 사용하는 기호 체계로서의 수학—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만. 그렇다면 그건 쥐라는 종이 가진 한계라는 뜻이겠죠. 인간에게도 쥐처럼 종의 한계가 있을 겁니다. 현재 인간의 시스템으로는 절대 규명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겠죠. 우주의 시작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라는 존재는 당분간은 안녕하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모리 다쓰야 : 예컨대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리사 랜들 Lisa Randall은 오차원 우주라는 가설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차원을 실감하고 확인하는 건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래도 인류가 ‘오차원 우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건, 쥐로 말하자면 소수의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뜻이 될까요?

 

다케우치 가오루 : 그럴 겁니다. 우주의 시작에 뭔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인간의 기호 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뇌와 기호 체계로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만약 인간이 사용하는 수학이라는 기초 시스템이 매우 강력해서 그것으로 우주 전체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면 신은 불필요해지겠죠. 그런데 저는 수학이라는 것이 그렇게 강력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물리학·수학 시스템과 우주 전체의 시스템이 완전히 일대일의 관계가 될 수는 없지 않을까요.
모리 다쓰야 : 쥐에게 소수 개념이 없는 이유는 그들의 생활에선 그걸 이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겠죠.
다케우치 가오루 : 그렇죠. 그런데 필요가 닥치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인간도 현재로서는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것 아닐까요. 우주의 시작에 대해서도 그럴 거고요.
모리 다쓰야 : 그러게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우주의 시작은 알고 싶은 부분이긴 하지만, 꼭 알아야 할 절박함이나 필요성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다케우치 가오루 : 비슷한 예인데, 지금 신재생에너지가 국가 전체의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2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이걸 10~20퍼센트까지 끌어올리자고 하지만, 현재로서는 기술적 돌파구가 없습니다. 즉 저비용의 획기적인 신재생에너지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거죠. 
그러나 일본의 경우 원전 사고의 영향으로 그 필요성이 절실하게 대두되고 있어요. 러시아와 미국 등 대국의 입장은 그렇지도 않은 듯하지만,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에 전 인류적으로 고민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향후 어떤 형태로든 돌파구가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과학자라면 우주론, 양자론, 소립자론 등과 관련해 필요성을 절박하게 인식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논문의 성과가 웬만하지 않은 한, 연구비를 받을 수 없는 사정 같은 것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생명과 관련이 있다거나 지구가 파멸한다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니까 조금 약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모리 다쓰야 : 종 전체의 욕망이 더욱 강해지지 않는 한 그런 돌파구는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말씀인가요?

 

다케우치 가오루 : 네, 그런데 요 며칠 사이에 방금 말씀하신 양자우주 연구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습니다.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등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BICEP2’ 프로젝트 팀이 남극에 설치한 전파망원경을 통해 원시중력파의 증거를 최초로 관측했다고 발표했거든요(2015년, 이 팀이 관찰한 물질은 원시중력파가 아니라 우주먼지의 흔적이라는 결론이 최종적으로 나왔다. 한편 2016년 2월 캘리포니아공과대학의 킵 손 Kip Thorne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중력파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했음을 발표했고, 킵 손 교수는 이 업적을 인정받아 2017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 옮긴이). 굉장히 커다란 성과라고 봅니다.
모리 다쓰야 : 그 발견은 어떤 의미와 성과로 연결될까요?
다케우치 가오루 : 학부 시절 제 지도 교수님이 우주론 연구자인 사토 가쓰히코佐藤勝彦 씨였습니다. 우주 인플레이션을 최초로 검증한 연구자 중 한 분이죠. 인플레이션 우주가 있었고, 그때 중력의 요동이 잔물결로 존재했습니다. 그것이 지금 여기 쏟아져내리는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에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어요. 말하자면 우주가 열릴 때 양자우주 중력파의 각인 같은 것을 발견했다는 말이죠. 이건 정말 엄청난 뉴스입니다. 지금까지 인플레이션 우주라는 개념은 어떤 의미로는 수학 이론상의 픽션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발견으로 ‘이건 수학이 아니라 물리다’라며 단번에 논픽션이 된 거죠. 그래서 우주가 실제로 검증되고 싶어한다고 해야 하나, 이쪽으로 오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제법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주가 실제로 검증되고 싶어한다. 다케우치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문법상의 의미에 대해서도(왜 의인법인가라든가 주체는 누구인가라든가) 질문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늘 그렇듯이) 약속 장소로 오다가 길을 잃어 상대를 기다리게 만들었으니 지금은 일단 들어보자.

다케우치 가오루 : 즉 해상도가 올라가는 겁니다. 디지털카메라로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 텐데요, 약 10년 전의 디지털카메라는 해상도가 별로 좋지 않아서 사진을 찍은 뒤 보면 세부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죠. 그만큼 보기가 힘들었어요. 하지만 과학에서는 항상 관측 정밀도가 올라갑니다. 그에 따라 세계를 인식하는 그물코가 점점 촘촘해지기 때문에, 그 전까지 파악되지 않던 현상이 보이기 시작하죠. 
이론에 관해서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수학과 이론물리학이 발달하고, 관측 정밀도가 올라가죠. 이들 셋은 서로 얽히고설키며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어쨌든 세계를 인식하는 그물코가 그렇게 점점 촘촘해지면서 이번에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중력파의 흔적을 마침내 확인할 수 있게 되었어요. 굉장히 미시적인 부분입니다. 중력은 매우 약하기 때문에 사실 보기가 무척 힘들거든요. 
그런데 인플레이션 우주 때는 중력파의 변동이 굉장했기 때문에 공간이 상당히 크게 왜곡되었습니다. 그래서 공간 위에 있는 전자파도 큰 영향을 받았던 거고요. 그것이 이번에 발견된 중력파의 흔적이죠. 인플레이션 우주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최초의 직접적인 증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빅뱅에 관해서도 처음에는 다들 바보 취급을 했습니다. 우주가 대폭발에서 시작되었다니 말이 되느냐면서. 그러다 여러 증거들이 나타나자 서서히 인정받게 되었어요. 이번 발견은 빅뱅의 최초 증거인 허블의 법칙(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법칙)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원문: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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