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륨, 원소기호 He. 헬륨 보기가 힘들어졌다. 최근 헬륨 가격이 급등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헬륨이 쓰이는 곳에서는 비상사태다.
국내 한 이벤트 업체가 5월 초 공지문을 올렸다. 헬륨 풍선 판매를 중단한다는 내용이다. 한 통(47리터)에 14만원하던 헬륨 가스가 50만원에도 구하기 힘들어졌다고 하소연했다. 헬륨 풍선 가격이 오르는 건 판매업체가 폭리를 취해서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국내 문제만은 아니다. 파티시티는 미국 전역 900여개 매장을 운영하는 파티용품 판매점이다. 올해 45개 매장을 폐쇄했다. 미국 언론은 파티 시티 폐점을 “이례적”이라고 전하며 “이는 세계적인 헬륨 부족 현상의 전조”라고 전망했다.
도대체 헬륨 가스 시장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폭풍에 휘말린 헬륨 시장을 뛰어들기 전 헬륨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He, 어떻게 얻나
헬륨은 원소주기율표 상 수소 다음으로 가벼운 기체다. 우주에서는 수소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기체다. 우주 구성 원소 중 24%가 헬륨이다. 지구 대기에는 많지 않다. 워낙 가볍다 보니 지구 중력을 이겨내고 밖으로 나가 흩어진다. 대기에 남아 있는 헬륨은 0.0005%정도다.
대기 중에는 헬륨이 적어 채취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우주에서 헬륨을 채취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투자대비수익이 거의 없다.
헬륨은 알려진 화학 원소 중에서 어는 점이 가장 낮다. 절대영도(-273.15도)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한다. 헬륨 가스를 추출할 때는 극저온에서도 얼지 않는 성질을 이용한다. 다른 가스를 저온 고압으로 액화해 제거한 후 남은 헬륨 가스를 얻는 방식이다.
여기서 다른 가스란 보통 천연가스다. 지구상에서 생산하는 헬륨은 대부분 천연가스에서 추출한다. 천연가스에는 수증기, 이산화탄소, 메탄, 수소, 질소, 아르곤, 헬륨 등 다양한 가스를 가지고 있다. 우선 천연가스 냉각을 방해할 수 있는 수증기와 이산화탄소를 제거한다. 그다음 천연가스를 극저온 상태로 만든다. 여러 가스를 액체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를 액화 공정이라고 한다.
온도를 낮춰도 액체가 되지 않는 가스가 있다. 끓는점이 낮은 메탄, 수소, 질소, 아르곤, 헬륨 가스 등이다. 액화 공정에서 이 가스는 따로 분리한다. 다시 초저온으로 냉각해 기체를 분리한다.
앞서 언급했던 헬륨은 화학 원소 중 끓는 점이 가장 낮다. 냉각 과정에서 먼저 액화한 수소, 질소, 아르곤을 분리할 수 있다. 이후 여러 불순물을 제거하면 고순도 헬륨 가스를 얻을 수 있다.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간다
천연 가스전은 많다. 헬륨 생산성이 있는 천연 가스전은 세계적으로 손꼽힌다. 가장 많은 양을 생산하는 곳은 미국과 카타르다. 미국은 와이오밍과 텍사스 주에서 주로 생산하는데 전 세계 생산량 가운데 40% 이상을 차지한다. 카타르는 30% 정도를 차지한다.
헬륨 가격 상승 문제는 우선 카타르 영향이 크다. 2017년 카타르와 아랍 7개국 단교했다. 종교 갈등이 주원인이다. 아랍 7개국에는 사우디아라비아도 포함된다. 카타르는 사우디아라비아를 통해 헬륨을 수출했다. 단교 이후 판로가 좁아져 수출에 악영향을 미쳤다. 공급이 부족하니 상품(헬륨)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생산량을 늘리면 숨통이 트인다. 하지만 미국 사정도 여의치 않다. 헬륨은 반도체 공정에도 쓰인다. 반도체 굴기에 나선 중국의 헬륨 수요가 폭증하니 미국에서도 생산량 조절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반도체 공정용 헬륨 수요는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다.
헬륨 가스 생산 기지에서도 차질을 빚고 있다. 다국적 석유화학기업이자 대표 헬륨가스 생산기업인 엑손모빌이 6월부터 헬륨 생산기지 정기 보수를 실시할 것으로 전해진다. 한동안 헬륨 가스 공급 중단 사태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헬륨 가스 가격 급등은 시장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우리나라 경우 최근 1년 사이 2~3배 치솟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생산시설 유지 보수로 인한 공급 중단 우려 때문에 가격 상승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헬륨 풍선 판매를 중단한 이벤트 업체뿐만 아니라 산업계와 과학계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헬륨은 단순히 풍선을 띄우거나 목소리를 변조하는 데 쓰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정부터, MRI, 핵 융합로까지 타격 불가피
헬륨 사태가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건 우선 반도체 때문이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 헬륨은 필수불가결이다. 헬륨 특성 때문이다.
반도체 노광과 증착 과정에 헬륨은 고온의 실리콘 웨이퍼를 식히는 데 쓰인다. 웨이퍼에 여러 물질을 플라스마 상태로 입힌다. 반도체에 필요한 물질을 고온으로 가열해 플라스마 상태로 만들고 웨이퍼 기판에 부착하는데 헬륨은 플라스마가 균일하게 도포되도록 돕는다.
의료계에서도 헬륨을 사용한다. 자기공명 영상(MRI) 장치가 대표적이다. MRI는 초전도 현상을 이용한다. 초전도는 극저온에서 금속, 합금, 유기물질, 세라믹 등 물질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초전도체를 이용해 강력한 자기장을 만들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인체 내부를 들여다보는 장치가 MRI다. 헬륨은 냉각제로 단시간에 물질을 절대영도 가까이 끌어내려 물질을 초전도체로 만든데 쓰인다.
‘인공태양’으로 알려진 핵융합발전장치에도 헬륨이 꼭 필요하다. 쓸모는 MRI와 비슷하다. 핵융합발전장치는 초전도 상태 공간(토카막)에 플라스마를 가둬야 한다. 초전도 공간을 만들기 위해 헬륨이 활용된다.
기상청에서는 하루에 두 번 실시하는 고층기상관측에 헬륨을 사용한다. 무선 기상관측 장비를 대형 풍선에 매달아 상공 35킬로미터까지 올린다. 이때 쓰는 풍선에 헬륨을 넣는다. 기상청에서는 전국 고층기상관측을 위해 매일 헬륨 6통(282리터)를 쓴다.
헬륨 풍선 외에도 이렇게 많은 분야에서 헬륨을 활용한다. 자동차 에어백, 로켓 연료, 잠수용 산소통 등 언급하지 않은 분야가 훨씬 많다. 업계에서는 헬륨 외 다른 기체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른 기체가 헬륨 역할을 대신하더라도 대규모 수요를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산업계와 과학계의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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