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독일 연구진이 수소가 풍부한 물질을 인공적으로 만든 뒤 높은 압력을 가했을 때 영하 23도에서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기존의 금속성 초전도체가 영하 100도 이하에서 초전도 현상을 나타내던 것과 다른 엄청난 진전이다.(2019.05)
만약 과학자들이 상온에서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는 물질을 발견한다면 현재 버려지고 있는 엄청난 양의 전기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초전도 현상을 이용하면 저항에 의한 전기 에너지 손실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발전소를 줄일 수 있고 온실가스 발생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초전도 현상은 영하 70도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만 발생시킬 수 있었다.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연구소 연구팀이 최근 상온 초전도체에 한 걸음 다가서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 5월 22일자에 발표했다. 미카일 에레메츠 박사팀은 란타넘이라는 원소와 수소를 인공적으로 합성한 뒤 높은 압력을 가해 영하 23도에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에레메츠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는 상온 초전도 현상으로 가는 길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란타넘과 수소 화합물을 만든 뒤 길이가 수백 마이크로미터에 불과한 좁은 공간에 넣고 공기의 압력에 170만 배에 달하는 강한 압력을 가했다. 그런 뒤 온도를 낮추면서 물질의 전기 저항을 측정했다. 그랬더니 영하 23도에서 저항이 0으로 변했다. 또 초전도 현상은 저항만으로는 완벽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물질 주변에 형성된 자기장을 측정해 초전도 현상이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높은 압력으로 란타넘수소화물을 만들다
연구팀은 자신들의 기존 연구 결과를 토대로 높은 압력에서 금속성 란타넘수소화물을 만들 수 있었다. 수년 전 연구팀은 250만 배의 기압으로 황화수소를 압축해 영하 70도의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걸 확인한 적이 있었다. 당시 연구 결과 역시 이전까지의 어떤 연구 결과보다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발견했던 것이었다.
이번 연구 결과로 연구팀은 수소가 풍부한 물질을 금속 상태로 만들 경우 초전도성을 나타낼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경우 압력이 수소 가스와 금속 란타넘이 화학적으로 결합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이 황화수소에서 초전도 현상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구리를 함유한 세라믹 재료에서 초전도 현상을 확인한 것이 가장 높은 온도 기록이었다. 하지만 최고 기록이 영하 135도 정도로 큰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이 방식에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원리는 금속성 초전도체와 다른 이례적인 방식이었다. 전형적인 금속성 초전도체는 일반적으로 더 낮은 온도에서 저항이 0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속성 화합물이 영하 70도라는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나타낸다는 연구팀의 성과에 많은 물리학자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더 높은 온도에서 나타나는 초전도 현상을 찾아서
연구팀은 추가적인 실험을 통해 란타넘수소화물이 기존의 전형적인 초전도체와 다를 바 없는 물질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화합물의 수소를 더 무거운 동위원소로 대체한 뒤 실험했을 때 초전도이론에서 설명하는 대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온도가 영하 93도로 크게 떨어졌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를 넘어서는 높은 온도에서 나타나는 초전도 현상을 발견하기 위해 최근에는 이트륨수소화물을 가지고 실험하고 있다. 에레메츠 그룹 리더는 “이 물질을 이용해서 더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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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21년 9월 1일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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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온 초전도체 시대 열릴까
두 다이아몬드의 뾰족한 끝 사이 공간에 황화수소(H₂S)와 수소(H₂), 메탄(CH₄)를 넣고 두 다이아몬드를 눌러 260만 기압이 되면 탄소질황수소화물(CSH)이 만들어진다. 이 물질은 임계온도가 15℃에 이르는 상온 초전도체이지만 정확한 구조는 밝혀지지 않았다. 애덤 펜스터/미국 로체스터대 제공
그런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상온에서 초전도체가 되는데 필요한 압력이 무려 267GPa(기가파스칼. 기가는 10억을 뜻함)로 우리가 익숙한 압력 단위로 바꾸면 260만 기압이나 되기 때문이다. 문장의 구두점보다 작은 공간에 황화수소(H₂S)와 수소(H₂), 메탄(CH₄)를 넣고 위아래에서 다이아몬드로 눌러 압력이 260만 기압까지 올리고 레이저를 쪼이면 기체 분자들이 해체되고 원자들이 재배치돼 상온 초전도체인 고체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탄소질황수소화물(CSH)라고 부르는 이 고체의 정확한 구조를 모를 뿐 아니라 실험 중에 다이아몬드가 압력을 견디지 못해 깨지면서 이 고체도 연기처럼 흩어져버린다는 게 문제다. 두 다이아몬드가 압력을 버티고 있는 사이 초전도체가 만들어졌다는 걸 전기저항 측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물론 이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발견이지만, 이를 두고 상온 초전도체 시대로 가는 문이 열렸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인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상온 초전도체 발견을 매년 연말에 발표하는 ‘올해의 연구성과’로 뽑지는 못하고 ‘10대 연구성과’의 하나로 올리는 데 그쳤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달 27일 상온 초전도체 논문이 나가고 열 달이 지난 최근의 상황을 알려준 기사를 소개했다. 뜻밖에도 관련 분야 전문가 사이에서도 논문에 대한 평가가 여전히 엇갈리고 있고 아직 다른 실험실에서 이 결과를 재현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보통은 이렇게 되면 데이터의 진위를 의심하기 마련이지만, 워낙 노하우가 필요한 실험이라 그 정도까지 가지는 않은 것 같다.
정작 연구를 이끈 미국 로체스터대의 물리학자 랑가 디아스 교수는 후속 연구로 CSH의 구조를 대략 파악했다면서도 특허 문제가 있어 밝힐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참고로 디아스 교수는 최근 상온 초전도체 제조 및 상용화를 목표로 언어슬리 머트리얼즈(Unearthly Materials)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했다.
디아스 교수는 작년 실험에서 필요했던 압력의 10분의 1 수준인 20GPa에서도 상온 초전도성을 보이는 물체를 만든 것 같다는 언급도 했다. 역시 특허 문제로 구체적인 얘기는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설사 20GPa(~20만 기압)에서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초고압이라 일상에서 이런 조건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왜 상온에서 초전도체가 되려면 이런 엄청난 압력이 필요한 걸까.
2015년 155GPa의 압력에서 만들어진 황수소화물(H3S) 결정이 초전도 임계온도가 203K를 기록하면서 시작된 수소화물 초전도체 경쟁은 지난해 CSH가 267GPa에서 288K를 찍으며 최초로 상온 초전도체의 자리에 올랐지만 아직 정확한 구조는 모른다. 아래 왼쪽은 황수소화물의 결정격자 구조이고 아래 오른쪽은 260K를 기록한 란타넘수소화물의 구조다. 사이언스 제공
1911년 금속 수은이 온도가 4.2K로 내려가는 순간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체가 되는 현상(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지점을 초전도 임계온도라고 부른다)을 발견한 뒤 내로라하는 물리학자들이 이를 설명하는 이론 연구에 뛰어들었지만 다들 쓴맛을 보고 떠났다. 거의 반세기가 지난 1957년 미국 일리노이대 존 바딘 교수와 박사후연구원 리언 쿠퍼, 대학원생 존 슈리퍼가 마침내 성공해(세 사람의 성 앞글자를 따 ‘BCS 이론’이라고 부른다) 197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이에 따르면 어떤 물체가 특정 온도보다 낮은 온도에 놓이면 평소에는 서로 밀치는 전자들이 둘씩 짝을 이뤄 결맞음 상태라는 집단행동을 함으로써 저항 없이 이동할 수 있다. 이들이 만든, 어떤 물질의 초전도 임계온도를 예측하는 식에 따르면 당시까지 알려진 모든 물질의 임계온도 상한선은 25K로 나온다. 실제 1980년대 중반까지 기록은 23K였다.
그러다 1986년 큐프레이트(cuprate)라고 불리는 구리 함유 화합물(La-Ba-Cu-O)에서 초전도 임계온도 35K를 구현하는 데 성공하면서 고온 초전도체 시대가 열렸다. 참고로 여기서 고온은 상대적인 개념으로, 상온보다 훨씬 낮은 온도 범위다. 금속보다 전기전도도가 한참 떨어지는 세라믹이 오히려 초전도 임계온도가 더 높다는 건 충격적인 발견이었다. 초전도 임계온도의 양자 도약을 이룬 스위스 취리히 IBM 연구소의 게오르크 베드노르츠와 알렉산더 뮐러는 이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세라믹 고온 초전도 현상을 명쾌히 설명하는 물리 이론은 아직 없다.
미국 휴스턴대 물리학과 칭우 추 교수는 BSC 이론에서 임계온도를 결정하는 변수 가운데 하나인 포논 진동수에 주목했다. 포논은 결정격자를 이루는 원자의 진동을 입자화한 양자역학 개념으로 빛을 입자화한 광자와 같은 맥락이다. 압력을 올려 결정 구조를 바꾸면 포논 진동수가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 추 교수는 La-Ba-Cu-O에 1GPa(~1만 기압)의 압력을 가했고 정말 임계온도가 52K로 올라간다는 사실을 발견해 1987년 발표했다.
그 뒤 여러 조성의 큐프레이트가 만들어져 임계온도 기록 경신이 이어졌고 1993년 화학식이 HgBa2Ca2Cu3O10인 물질은 133K에 이르렀다. 이듬해 추 교수팀은 45GPa에서 이 물질의 임계온도가 164K(-109℃)까지 올라감을 확인했다. 그러나 큐프레이트 기반 초전도체의 임계온도 상승 행진은 여기까지였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2015년 임계온도가 203K(-70℃)인 초전도체를 만들었다는 논문이 ‘네이처’에 실렸다. 수소화물이라는, 수소를 포함한 물질에서 구현한 성취로 초전도 임계온도의 두 번째 양자 도약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사실 수소가 고온에서 초전도성을 가질 것이라는 예측은 1968년 일찌감치 나왔다.
1기압에서는 초전도 임계온도가 9.3K에 불과한 철셀레늄 결정은 그보다 높은 영역에서는 초전도체가 아니다(왼쪽. 가로축은 온도, 세로축은 전기저항). 이때 약 45만 기압의 압력을 가하면 결정 구조가 바뀌며 임계온도가 37K로 올라가 그 아래에서는 전기저항이 사라진다는 초전도성을 보인다(가운데). 4.2K에서 급히 압력을 빼면 바뀐 구조가 준안정 상태로 유지돼 1기압에서도 임계온도가 여전히 37K다(오른쪽). PNAS 제공
그런데 2000년대 들어 다이아몬드 모루로 초고압을 만드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수소화물 초전도체 연구가 본격화됐다. 수소만 쓰는 대신 수소와 다른 원소를 같이 쓰면 좀 더 낮은 압력에서도 안정적인 고체(결정)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연구소의 물리학자 미카일 에리메츠와 동료들은 황화수소(H₂S)와 수소(H₂) 혼합 기체에 155GPa의 압력을 가하면 원소로 해체된 뒤 황수소화물(H3S) 결정이 만들어지면서 초전도 임계온도가 203K에 이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뒤 다양한 수소화물이 만들어졌고 2018년 란타넘수소화물(LaH10)로 260K(-13℃)까지 임계온도를 끌어올렸다. 그러다 작년 로체스터대의 디아스 교수팀이 황화수소(H₂S)와 수소(H₂)에 메탄을 더해 267GPa에서 만들어진 물질 CSH(정확한 구조는 모르지만)가 임계온도 288K(15℃)를 기록해 최초로 상온 초전도 현상을 구현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수소는 결정을 유지하기에는 너무 가벼운 원자라 낮은 압력에서도 상온 초전도체인 수소화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디아스 교수를 비롯한 몇몇을 빼고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7월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는 약간의 트릭을 써서 상압(1기압)에서 원래 임계온도보다 훨씬 높은 임계온도를 구현할 수 있다는 논문이 실렸다. 이 방법을 적용하면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구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예일대 보조빅 교수는 준안정 상태 초전도체 실험을 서로 다른 깊이의 골이 두 개인 통(단면을 도식화했다)에 들어있는 공에 비유해 설명했다. 깊은 골(A)이 안정 상태이고 얕은 골(B)이 준안정 상태다. 통을 기울여 B가 A보다 낮게 하면 둘 사이의 마루 기울기가 완만해지며 공이 안정 상태인 B의 위치로 넘어간다. 그 뒤 통을 다시 세우면 A가 다시 안정 상태가 되지만 공은 가파른 마루를 넘어가지 못하고 준안정 상태에 머문다. 여기서 A와 B가 서로 다른 결정 구조이고 마루 기울기를 완만하게 하는 게 압력을 높이는 조작이다. PNAS 제공
논문의 교신저자는 1987년 1GPa의 압력을 가해 큐프레이트 La-Ba-Cu-O의 초전도 임계온도를 35K에서 52K로 끌어올린 휴스턴대 추 교수로 34년 만에 또 비슷한 일을 해냈다. 상압에서 임계온도가 9.3K에 불과한 철셀레늄(FeSe) 결정에 45GPa의 압력을 가하면 결정 구조가 바뀌면서 임계온도가 37K로 올라간다. 그런데 4.2K의 초저온에서 압력을 신속히 빼자 초고압 상태의 결정 구조가 유지되면서 올라간 임계온도도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 예일대 화학과 이반 보조빅 교수는 지난달 같은 학술지에 실린 해설에서 이 연구가 상온 초전도체 실용화로 가는 ‘불안정한 경로’를 열었다며 높이 평가했다. 여기서 불안정하다는 건 초고압에서 만들어진 결정 구조가 상압에서는 준안정(metastable)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장 안정한 상태로 돌아가기에는 에너지가 부족해서 이 상태에 머물 수 있다. 실제 실험에서도 1주일 이상 준안정 구조가 유지됐다.
사실 준안정 상태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식탁에 놓여있는 술병은 준안정 상태이지만 식탁을 흔들지 않는 한, 에너지로 교란하지 않는 한 쓰러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참고로 술병은 쓰러져 있는 게 안정 상태다.
보조빅 교수는 이번 실험을 서로 다른 깊이의 골이 두 개인 통에 들어있는 공에 비유했다. 깊은 골(A)이 안정 상태이고 얕은 골(B)이 준안정 상태다. 공은 A에 머물며 왔다갔다한다. 통을 기울여 B가 A보다 낮게 하면 둘 사이의 마루 기울기가 완만해지며 공이 새로운 안정 상태인 B로 넘어간다. 공이 왔다갔다하는 움직임이 작을 때 그 뒤 통을 빠르게 다시 세우면 A가 다시 안정 상태가 되지만 공은 가파른 마루를 넘어가지 못하고 준안정 상태에 머문다.
여기서 A와 B가 서로 다른 결정 구조이고 마루 기울기를 완만하게 하는 게 압력을 높이는 조작이다. 그리고 공이 왔다갔다하는 정도가 온도다. 상압에서 철셀레늄은 A가 안정한 구조이고 초고압에서는 B가 안정한 구조다. 공의 움직임이 작은 4.2K의 초저온에서 압력을 순간적으로 빼 상압으로 만들면 B가 준안정한 구조임에도 이 상태를 유지한다는 말이다. 반면 공의 움직임이 다소 큰 77K에서 감압을 하면 준안정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안정한 구조로 돌아가 임계온도가 다시 내려간다.
만일 초고압에서 상온 초전도체를 만든 뒤 상압에서도 그 구조가 준안정 상태로 유지될 수 있다면 상온 초전도체 실용화로 가는 길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보조빅 교수는 “물질을 준안정 상태로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다”며 “임계온도가 높은 준안정 초전도체를 만드는 붐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상온 초전도를 구현했지만 압력이 낮아질수록 불안정해지는 수소화물과 상압으로 낮추는 길은 찾았지만 아직 고온 초전도체에 불과한 준안정 물질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상온상압 초전도체에 이를 수 있을지 또는 제3의 주자가 나타나서 승리할지 아니면 모두 실패할지 자못 궁금하다.
2023년 3월 24일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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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난제, 상온 초전도 시대 열리나?
20.5℃에서 초전도가 되는 물질을 발견해 그 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한 미국 로체스터대 랑가 디아스 교수. photo sciencesprings
미국 로체스터대 연구팀이 상온의 범위인 20.5℃에서 초전도 성질을 보이는 물질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과학계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상온에서 존재하는 초전도체의 발견은 그동안 물리학의 중요한 난제 중 하나였다. 만약 연구팀의 결과가 일상의 환경에서 실현된다면 에너지 혁명 등 세상은 또 한 번 변할 것이다.
전기 손실 없는 에너지 혁명 기대
초전도 현상은 물체의 전기저항이 어느 온도 이하에서 급격히 0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전기저항이 0이라는 것은 전류가 아무런 저항 없이 흐르는 것이고, 전기에너지가 이동 중에 손실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전기회로에서 전력 손실이 생기지 않고 저항에 의한 열이 발생하지 않아 에너지가 낭비되지 않는다.
1911년 네덜란드 물리학자 카메를링 오네스(Kamerlingh Onnes)는 절대온도 4.2K(-268.8℃)의 극저온 상태에서 수은의 전기저항이 0이 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처럼 전기저항이 없어지는 온도를 ‘임계온도’라고 하고, 전기저항이 완전히 사라진 물체를 초전도체라고 한다.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면 물체가 자석 위에 둥둥 떠오르는 등 신기한 현상이 나타난다. 초전도체가 자기장을 밀어내는 성질(반자성·反磁性)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초전도체 위에 자석을 놓으면 초전도체의 자기장이 세지면서 자석을 밀어내는 방향으로 유도전류가 소용돌이처럼 발생한다. 이때 저항이 없으므로 유도전류가 사라지지 않아 자기장이 자석을 계속 밀어내어 떠 있을 수 있다. 스스로 떠 있는 상태에서 수평력을 가하면 마찰력이 작용하지 않아 적은 에너지로도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는 자기부상열차가 가능해진다.
또 초전도체는 초고속 컴퓨터인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데도 필수이다. 자기장을 이용해 플라스마를 가둬서 핵융합을 달성하는 ‘토카막(tokamak)’ 기계 개발도 가능하게 만드는 꿈의 물질이다. 디지털 전자기기의 효율성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다. 휴대전화로 오래 통화를 하다 보면 열이 많이 난다. 노트북, 텔레비전, 비디오 등 열을 낼 필요가 없는 가전제품에서도 상당한 열이 발생한다. 이를 열 손실 없이 전류가 흐르는 초전도체로 대체하면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다. 그 밖에도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비롯해 로켓, 반도체 등 초전도 기술의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더욱이 배터리가 필요 없는 초전도 사회도 만들 수 있을 전망이다.
문제는 초전도 현상이 극저온에서만 이뤄져 실제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값비싼 액체 헬륨이나 액체 질소 등으로 냉각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크다. 액체 질소를 이용하면 -196℃까지 온도를 낮출 수 있다. 액체 질소가 공기로 바뀌면서 주위의 온도를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196℃까지 온도가 내려가면 빛처럼 움직이던 전자가 자전거를 타듯 천천히 움직인다. 액체 헬륨을 이용하면 -269℃까지로 더 낮은 온도를 만들 수 있지만 가격이 질소보다 30배나 비싸다. 임계온도가 낮을수록 냉각비용이 많이 든다.
이런 이유로 오네스가 초전도 현상을 발견한 이후 많은 물리학자가 100년 넘도록 상온에서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물질을 만들려는 연구를 지속해왔다. 개중에는 상온 초전도체의 구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로체스터대 랑가 디아스(Ranga Dias)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20.5℃에서 초전도가 되는 물질을 발견해 그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희토류 원소인 루테튬(Lu)에 수소와 소량의 질소를 넣은 뒤 대기압의 2만배 압력(10킬로바·1kb=1만4500psi)으로 압축하고 3일간 200℃의 고온으로 구웠다. 이른바 ‘루테튬 수소화물(NDLH)’이다. 이 물질은 평소 짙은 푸른색을 띠지만 높은 압력을 가하면 초전도체가 되며 붉은색으로 바뀌기 때문에 ‘붉은 물체(red matter)’라고 이름 붙였다. 또 초전도 현상은 저항만으로는 완벽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물질 주변에 형성된 자기장을 측정해 초전도 현상이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수소는 가장 가벼운 물질로 진동에너지가 상대적으로 커서 전자 사이를 묶어주는 힘이 강하다. 상온 초전도체에는 가볍고 결합이 강한 재료가 필요한데 수소는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이상적인 재료라는 게 디아스 교수의 설명이다.
랑가 디아스 교수가 발견한 상온 초전도 물질인 ‘루테튬 수소화물(NDLH)’. photo 로체스터대학
논문 철회 이력 탓에 학계는 판단 신중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상온 초전도 현상으로 가는 길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금속성 초전도체가 영하 100℃ 이하에서 초전도 현상을 나타내던 것과는 다른 엄청난 진전이다. 디아스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그동안의 장벽을 깨고 초전도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말한다. 카네기과학연구소의 알렉산도 곤차로프 박사 또한 “이번 논문은 다양한 기술을 동원한 역작이며 믿을 만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학계 다수는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아직 판단을 유보하며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연구팀의 과거 논문 철회 이력 때문이다. 디아스 교수팀은 지난 2020년 10월 황화수소에 탄소를 추가해 다이아몬드 모루 사이에 넣고 14.5℃의 상온에서 대기압보다 267만배 강한 초고압으로 압축해 새로운 초전도체를 만들었다고 ‘네이처’에 발표한 바 있다. 이 연구는 그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의 10대 과학 성과에도 선정되었다. 하지만 초전도체 연구의 과학적 접근법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어 결국 논문이 철회되었다.
디아스 교수팀은 2020년의 논란이 되풀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다른 과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르곤국립연구소 등 다른 실험실에서 초전도 전환 실험을 재연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식재산권을 들어 초전도체를 다른 기관에 배포하지 않겠다고 밝혀 학계에서는 성공 여부에 대한 진실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디아스 교수는 “이번에는 다섯 번이나 확인했다”며 “우리의 연구로 초전도 가전과교통, 핵융합 등으로 가는 길이 현실이 됐다”고 밝혔다.
물론 연구팀의 연구가 당장 상온 초전도 물질을 상용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상온 초전도체가 상용화되려면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특히 상온에 도달했더라도 압력을 줄여나가는 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상온 초전도체 연구 결과들을 보면 모두 초고압에서 이뤄졌다. 압력이 높으면 초전도체의 크기가 작아져 구조를 파악하기 힘들다. 따라서 다음 과제는 더 낮은 압력에서 작동하는 상온 초전도체를 찾는 것이다. 세계의 과학자들은 디아스 교수팀의 후속 연구에 기대감을 표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