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그재그(Zig-Zag) 이론이라는 걸 소개하려고 합니다.
N자, 혹은 눕힌 Z처럼 갈지자를 보이는 어떤 현상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식물학 전공 교과서에 실려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이론인데요, 어렵다기보다는 신기합니다.
이 이론을 세운 과학자는 영국의 조나단 존스(Jonathan D. G. Jones)와 미국의 제프리 댕글(Jeffery L. Dangl) 박사입니다. 그런데 제프리 댕글 교수는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루게릭병 때문에 손과 목 위쪽만 움직일 수 있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울다가 웃다가~

자, 그럼 본격적으로 지그재그를 만들어보겠습니다.
우선 가로축과 세로축을 그린 후 거기에 Z를 옆으로 눕힙니다.
여기서 그래프의 가로축은 시간입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수십만 년이나 수백만 년의 긴 시간이지요. 그리고 세로축은 식물의 면역력 정도입니다.
다시 말해 이 그래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식물의 저항성(면역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줍니다.

1단계: 식물, 미생물의 패턴을 알아채다!

Z의 시작입니다.
식물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일까요? 바로 외부에 있는 미생물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겁니다. 여기에는 식물의 생사가 달려 있습니다. 신경이 없어 몸 한쪽이 공격을 받고 있어도 다른 쪽이 알아채기가 힘들고, 사물의 형상을 뚜렷이 인식할 시각 능력이 없고, 움직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 조건 속에서도 식물은 내 옆에 있는 게 누구인지, 친구인지 적인지 알아내는 능력을 얻었으니… 바로 패턴 인식입니다.
식물은 오랜 시간 동안 그 능력을 갈고 닦아, 미생물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되풀이되는 물체의 형태인 패턴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물에게 패턴이란 간단히 말해 이런 겁니다.
시각이 없는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사람의 머리카락, 손, 발, 몸을 만져본 후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면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손이나 발의 구조, 머리카락 등이 사람의 패턴이 될 것입니다. 식물도 이 외계인과 마찬가지로 미생물의 패턴을 인식해 다양한 미생물들을 알아봅니다!

 

 

그렇다면 미생물의 패턴은 무엇이 있을까요? 미생물 중 가장 흔한 세균의 경우 세포벽, 이동할 수 있게 하는 편모와 섬모, DNA나 RNA가 패턴이 될 수 있습니다. 미생물의 이런 패턴에 과학자들은 분자 패턴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식물이 외부에 있는 미생물을 인식하면 자신의 방어단계를 경계단계로 격상시키고, 외부에 있는 미생물을 막을 수 있는 물질들을 만들거나 세포벽을 두껍게 만들죠. 그렇지만 이 단계에서 식물은 외부의 미생물이 친구인지 적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외부에 미생물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자마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작용을 시작할 뿐입니다.
이 지점이 바닥에서 위로 올라온 Z의 첫 번째 꼭짓점입니다. 식물의 저항성이 높아진 거죠.
식물은 웃고 있지만 미생물은 웃음이 안 나올 겁니다.

2단계: 식물의 패턴 인식을 무력화하라!

식물에게 패턴 인식이라는 무기가 생겼습니다! 이제 식물은 병원균에 대해 100전 100승일까요?
그런데 자연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그렇다면 미생물은 벌써 옛날에 멸종했겠죠? 이제 미생물이 반격할 차례입니다.
미생물 입장에서는 식물이 자신의 분자 패턴을 인식하는 것 자체를 막아야 합니다. 투명 미생물화~
역시 미생물도 능력자! 식물을 방해하기 위해 신기한 걸 만들어냅니다. 이펙터(effector) 단백질이라는 걸요.
과학자들은 미생물에서 분리한 다양한 이펙터 단백질이 식물의 단백질에 달라붙어서 식물의 단백질이 더 이상 작용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세균은 빨대 같은 통로를 만들어서 빨대보다 큰 이펙터 단백질을 식물의 세포 안으로 집어넣습니다. 이펙터 단백질은 세포 안에서 식물 면역 대방해쇼를…

세균이 세포 안으로 이펙터 단백질을 어떻게 전달하는지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미국 코넬대학의 앨런 콜머(Allen Colmer) 교수와 그의 학생인 셩양헤(Sheng Yang He)가 세균이 빨대 모양의 관을 식물 세포에 삽입한 후 그 관으로 단백질 폭탄을 집어넣는 모습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때 밝혀진 놀라운 사실은 세포 속으로 들어가는 단백질의 크기가 이 빨대의 지름보다 크다는 점입니다. 마치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네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단백질을 아주 크게 확대해보면 가느다란 실이 여러 각도로 엉켜 있는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세균의 이펙터 단백질은 빨대를 통과하기 전에는 뭉쳐져 있다가 빨대를 통과할 때는 실타래에서 실이 풀리듯 풀리고, 식물의 세포 속에 들어가서는 다시 뭉쳐집니다.
정말… 여우 같아요.

 

미오글로빈이라는 단백질이고요, 근육에 산소를 운반해주는 단백질입니다. 우리에게는 쇠고기, 돼지고기 같은 모습으로 친근하지만요. 저 빨간 부분에서 철과 산소가 결합하죠. 어쨌거나 실처럼 생겼죠?

더 놀라운 건 미생물 한 마리가 가지고 있는 이펙터 단백질이 여러 종류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슈도모나스 시링가에라는 세균 한 마리에는 30가지 이상의 이펙터 단백질 폭탄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30개 이상의 식물 단백질을 공격할 수 있다는 얘기죠.
이런 식으로 미생물의 단백질 폭탄 공격을 받은 식물은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하고 미생물의 밥이 되고 맙니다. 식물의 저항성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며 Z의 아래쪽 꼭짓점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얌전히 있을 식물이 아니죠. 식물도 다시 나름의 방어법을 개발합니다.

3단계: 미생물의 단백질 폭탄의 뇌관을 제거하라!

오랜 노력 끝에 식물은 결국 미생물의 단백질 폭탄을 완벽하게 무력화시키는 단백질을 찾아냈습니다.
이 단백질은 저항성 단백질이라고 합니다. 단백질 폭탄에 저항하기 위한 단백질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단백질 하나로 식물이 본격적으로 저항성으로 바뀌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식물 입장에서 조금 잔인하기도 합니다. 자살폭탄을 터트리기 때문입니다.
어찌어찌 이런 일이…
식물에게 이런 이펙터 단백질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그 식물이 이미 외부에 있는 미생물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병원균이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 병원균이 곧 자기를 공격하려는 낌새를 눈치챈 것입니다. 그러니 재빨리 병원균을 죽여야 하겠죠.
하지만 식물의 대사는 미생물에 비해 아주 느립니다. 대장균은 한 세대가 20~30분인데, 식물은 석 달에서 여섯 달, 심지어 1년이 걸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일촉즉발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까요?
식물이 가진 가장 빠른 반응 중 하나가 세포 자살입니다.

 

이 반응은 보통 12~24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세균의 생장시간보다는 길지만 세균이 식물을 공격하는 것을 막기에는 충분합니다.
세포 입장에서는 슬픈 일이지만 전체 식물의 차원에서는 휴~ 살았다! 지요.
이렇게 하여 식물의 저항성이 다시 올라갔습니다. 이제 식물은 웃고 세균은 다시 눈물을…
여기가 Z의 마지막 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4단계: 다시 미생물의 반격이 시작된다. 그런데 몇 번을 더 해야…


생물과 생물 간의 상호작용은 생존을 위한 싸움이기 때문에 끝없이 계속됩니다. 그러니 식물과 병원균의 공격과 반격도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저항성 단백질이 등장하여 식물이 승리하는가 싶더니 미생물은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공격태세에 돌입합니다.
미생물 입장에서는 식물의 패턴 인식을 다시 방해하려고 해도 식물이 금방 저항성 단백질을 만들어 무력화할 것 같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입니다. 하지만 미생물은 영리하게도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냅니다.
바로 식물의 저항성 단백질을 공격해 그 기능을 잃게 하는 2차 단백질 폭탄을 투입하는 것이죠. 그러면 식물은 패턴 인식 이후의 신호체계가 또 망가지고 미생물은 그 틈을 노려 식물을 공격할 시간을 벌게 됩니다. 저항성 단백질이 없는 식물은 이제 미생물의 차지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은? 식물은 자신의 1차 저항성 단백질을 무력화시킨 미생물의 2차 단백질 폭탄을 해치울 2차 저항성 단백질을 다시 만들어 미생물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또 그 다음은? 이 싸움은 계속됩니다.
이 때문에 병원성 세균 하나가 30가지 이상의 단백질 폭탄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이는 기본적으로 이런 먹고 먹히는 싸움이 30번은 계속된다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식물과 미생물의 상호작용 속에 이렇게 깊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줄 아셨나요?
지금은 세균뿐 아니라 곰팡이나 바이러스, 선충이나 곤충도 단백질 폭탄을 만들어 식물의 저항성을 억제한다는 보고가 쌓이고 있습니다.
인간이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생명체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환경과 상황에 대처하려고 끊임없이 ‘머리를 굴립니다’. 오직 인간만이 최상의 생명체, 고도의 지적 생명체라고 생각하며 다른 생물들을 경시하는 오만한 시선은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원문: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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