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금술 이야기 ]

00. 연금술 이야기
01. 금을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의 욕망 -연금술 외
02. 연금술에 관한 에피소드 3가지
03. 연금술의 발전
04. 그 외 연금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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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연금술 이야기
출 처 :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연구소 홈페이지 중에서

 

 

연금술(alchemy)이 성립한 이론적 근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소 전환 가설이었다. 따라서 초기의 연금술사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을 믿었다. 그러나 중세 서양의 후기의 연금술사들은 모든 금속은 수은과 황으로 이루어졌다는 가설을 믿었다. 이것은 황과 수은에 소금이 첨가되어 수세기 동안 연금술의 이론적인 지주가 된 3원소설이었다. 즉, 나무가 탈 때, 타는 것은 황이고 증발하는 것은 수은이며, 재로 변한 것은 소금이라고 생각하였다.

연금술사들이 완전한 금속으로 생각하는 금은 순수한 수은과 순수한 황이 가장 좋은 비율로 결합된 것이라 생각하였다. 따라서 불완전한 금속(납이나 철 등) 중의 수은과 황을 순수하게 하고, 또 그 비유을 바꾸어 주면 완전한 금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연금술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 혹은 ‘엘릭시르(elixir)’라고 불리우는 신비의 물질이었다. 이 가상의 물질은 값싼 금속을 금이나 은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물질이라 믿고, 이것을 찾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았다. 그러나 어떤 연금술사도 실제로 금을 만든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현자의 돌’ 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양의 연금술이 현실과 직결되는 금과 은을 구하는 데 주력한 반면, 중극의 연금술은 불로장생을 위하거나 신선이 되기 위한 단(환약)을 만드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와 같은 차이 때문에 중국의 연금술은 마술적인 것이 되어 사라졌지만, 서양의 연금술은 실험 과학의 기초가 되어 근대 공업의 발달에 기여하였다.

연금술사들의 꾸준한 노력의 결과, 실험 기구(증류기, 도가니, 플라스크, 여과기 등)와 실험 기술(증류, 결정, 침전법 등)이 개발되었다.

비록 연금술사들의 믿음은 꿈에 불과하였지만 그들의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들은 현재 연금술사들의 꿈을 능가하는 부를 만들어 냈고, 또한 의학을 발전시켜 생명을 연장하는 일도 가능하게 되었다.

 

 

 

01. 금을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의 욕망 -연금술 외
출 처 : 과학의 역사에 숨겨진 뒷이야기, 에피소드 과학사

 

 

‘에밀레, 에밀레’라고 울리는 에밀레 종소리를 들으면 아름다운 종소리와 함께 슬픈 설화가 생각나 더욱 신비감을 준다. 철의 성분과 제련에 대한 근대적인 방법을 몰랐을 때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는 정성(?, 또는 잔인함?)을 보이면서까지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이러한 설화는 모두 소위 연금술의 이야기들이다.

연금술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물, 불, 공기, 흙 등 4원소가 만물의 근원으로서, 제1원질(第一原質)이라고 보았다. 사물은 이 네 원소의 섞인 비율에 따라 다른 성질을 가진다.

어떤 연금술사들은 연금술 용기를 동물의 자궁에 비유하면서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특별한 고통,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감수했다고 한다. 즉, 모든 동물이 태어날 때, 산고의 고통이 따르듯 고통이 수반되어야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합리주의자의 대표격인 데카르트도 젊었을 때 연금술에 심취한 적이 있었으며, 근대 역학의 체계를 세운 뉴턴이 말년에는 연금술에 탐닉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연금술의 열망과 그 끝없는 추구는 대략 서양에서 근대 과학이 나타나면서 시들해지기 시작했으며, 중국에서는 유학과 불교의 중흥에 따라 쇠락의 길을 걸었다. 뉴턴 자신도 연금술을 탐닉했으나 뉴턴의 과학이 파급되면서 연금술의 열정은 식어 갔고 이에 대한 비판은 강화되었다. 연금술은 라부아지에의 근대적인 화학에 의해서 대체되었고, 이에 따라 화학에서의 연금술적인 전통은 점차로 쇠퇴되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미신적이고 비과학적인 우스운 이야기에 불과한 것일까? 연금술은, 혹은 연금술에 대한 열정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연금술이 과학사에서 한 역할을 비유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연금술은 아마도 아들에게 자신의 포도밭 어딘가에 금을 묻어 두었노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은 땅을 파서 금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포도 뿌리를 덮고 있던 흙무더기를 헤쳐 놓아 풍성한 포도 수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금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유용한 발명과 유익한 실험들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연금술사는 지금도 마술사로, 첨단 과학자로, 외계인으로 무궁무진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꿔가면서 영원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우리들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다.

 

 

02. 연금술에 관한 에피소드 3가지
출 처 : 과학의 역사에 숨겨진 뒷이야기, 에피소드 과학사

 

아득한 옛날부터 땅속에 묻혀 있는 금이나 은은 그보다 천한 금속이 몇 천년에 걸쳐서 점점 ‘성장’했다는 신앙이 있었다. 대개의 연금술사들은 수은이나 납과 같은 비금속을 금이나 은으로 변화시켜는 데 노력을 집중하였다. 일부 연금술사는 불로장수의 약을 찾아내려고 애썼는데 이것은 마시기만 하면 모든 질병이 낫고 긴 수명이 보장된다는 만능의 약이었다.

실제에 있어 거의 모든 연금술사가 취한 방법은 비금속에 섞으면 금이 되는 어떤 특별한 물질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이 특별한 것은 ‘철학자의 돌’ 또는 ‘현자의 돌’이라고 이름지어졌고 금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변성(變成)’이라고 불렀다.

 

1) 에드워드 3세와 라이문두스 룰루스

1329년에 영국을 다스리는 국왕은 에드워드 3세(Edward Ⅲ:1312-1377)였는데, 당시 대개의 전제군주가 그렇듯이 이 국왕도 금에 굶주려 있었는데, 불가사의하다고 할 만큼 손쉽게 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연금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유명한 연금술사를 찾아내라고 명하였다.

한편, 라이문두스 룰루스(Raimundus Lullus:1235-1315)는 스페인 귀족으로서, 프란치스꼬회의 수도사가 되어 이름을 날렸다. 그는 ‘철학자의 돌’-즉 ‘콩알 만한 크기의 귀중한 한 첩의 약’을 가지고 수은에 사용하여 광산에서 캐내는 금보다 더욱 순수한 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연금술사로서 그의 명성이 얼마나 높았던지 많은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많은 나라들을 방문했다고 알려졌는데, 영국에 머무는 동안 철, 수은, 납에서 600만 파운드의 값어치가 있는 금을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소문에 의하면 그 금의 일부는 속칭 “라몬금화”라 불린 금화를 만드는 데 쓰였다고 한다.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와 싸움을 벌였을 때 룰루스는 변장을 하고 영국에서 도망쳤는데, 룰루스가 살고 있던 방안에는 그 위에 오래도록까지 금가루가 남아 있었고 전해진다.

 

2) 의사 헬베티우스와 화가 엘리어스

1666년 12월 화가 엘리어스라고 자칭하는 낯선 사나이가 존 프레데릭 헬베티우스를 찾아왔다. 헬베티우스는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궁정 전속 의사로, 뒷날 명예혁명으로 영국왕 윌리엄 3세(William Ⅲ:1650-1702)가 된 오란주 공(Prince of Orange) 밑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엘리어스는 호주머니에서 상아로 만들어진 상자를 꺼내 놓았는데, 그 속에는 유황의 빛깔이고 호두알 크기의 유리와 같은 물질 세 조각이 들어 있었다. 그는 이것을 ‘철학자의 돌’이라고 말하였다. 엘리우스는 헬베티우스에게 이 조각의 하나를 손에 쥐고 살펴보라고 권하면서 커다란 황금판 5장을 보이고 자신의 ‘철학자의 돌’을 사용해서 얻은 금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하였고, 다시 또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갔다.

몇 주가 지난 후 엘리어스는 다시 돌아와 헬베티우스에게 작은 ‘철학자의 돌’을 건네주면서 “왕후들조차 본 일이 없는 훌륭한 보석을 드리지요”라고 말하였다. 엘리어스는 헬베티우스에게 “이 돌을 황색의 납으로 싸서 녹은 납속에 넣으시오. 황색의 납은 돌을 납의 증기로부터 보호하고 결국 그것은 녹은 금속 속에 충분히 스며들 것이오”라고 방법을 가르쳐 주고 되돌아갔으나 다시 돌아오지는 않았다.

헬베티우스는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스스로 실험을 하였다. 그는 납을 도가니 속에 넣고 녹였고, 아내는 그 동안에 귀중한 돌을 백랍으로 쌌다. 납이 녹자 백랍으로 싼 그 돌을 그 속에 넣었고 15분쯤 지나자 납 전체가 금으로 변하였다.

헬베티우스는 오란주 공을 비롯한 그의 신하들로부터 매우 존경받는 사람이었으며, 그 자신은 실제로 납을 금으로 바꾸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헬베티우스와 화가 엘리어스에 의해 만들어진 금에 관한 기록은 이밖에 아무것도 없으므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믿어지지 않고 있다.

 

3) 루덴돌프와 타우젠트

 

화학에 대한 지식이 눈부시게 발전한 20세기에 들어와서조차 비금속을 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1925년 프란츠 타우젠트라는 독일인은 비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고 공표하였다. 그는 ‘변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어떤 실험을 하다가 우연히 폭발사고가 나서 부산물로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경위를 밝혔다. 그는 땅속에서 자연적으로 극히 느린 속도로 비금속이 성장하여 금이 된다는 고대인의 신앙을 믿고 있었다. 자연에서 몇 십 만년이나 걸리는 일을 자신은 서너 시간동안에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타운젠트는 이 놀라운 뉴스를 가지고 뮌헨의 조폐국 전문가들에게 접근하였으나 모두가 상대해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제 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 최고위층 장군의 하나이며 후에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한 루덴돌프(Erich Ludendorff:1865-1937)와 접촉하는데 성공하였다. 루덴돌프는 타우젠트의 주장을 조사하기로 뜻을 굳히고 자신의 의붓 아들에게 그 조사를 담당케 하였다.

그로부터 2년 뒤, 이 의붓 아들은 타우젠트의 주장을 조사하는 동안 그가 실제로 ‘변성’의 비밀을 발견한 것으로 확신하였다. 그는 엄중한 감시아래 실시된 40회 또는 50회에 걸쳐 실험에 입회하였고, 대개의 실험에서 타우젠트는 핀 머리만큼 되는 금 조각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하였다. 의붓 아들은 타우젠트가 금을 만드는 과정의 일부는 자신에게 보여 주었으나 최종단계는 보여주지 않았다고 말하였으나, 타우젠트가 없는 동안에 실시된 몇 번의 실험에서도 극히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은 것 같으며 1927년에는 사기의 가능성이 없었다고 확언하였다.

한 동안 루덴돌프 장군도 지극히 회의적이어서 몇 번이고 실험을 되풀이하도록 요구하곤 했는데 조사 결과를 보고 받고는 타우젠트가 예로부터의 오랜 비밀을 발견한 것으로 믿게 되어 자신의 법정 대리인에게 타우젠트의 방법을 개발하기 위한 회사를 설립케 하였다.

1928년이 되자 타우젠트는 ‘타우젠트 남작’일고 자칭하면서 궁전 같은 저택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고 회사의 거대한 자본을 믿고 거들먹거리며 기고만장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하고 1929년 말엽에 그가 사기 혐의로 체포되고 말았다.

재판은 1931년 1월 뮌헨에서 개최되었고 회사의 설립에에 이르기까지의 경위에 관한 많은 증언이 있었다. 어느 함부르크의 공장주는 법정에 핀 머리만한 금조각을 제출하고 타우젠트가 만들었고 증언하였으며, 타우젠트의 비서는 타우젠트가 실험을 통하여 분명히 20g의 금을 만드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증언하였다. 그러나 화학 전문가들은 모두 자신들의 눈앞에서 실시된 실험에서 타우젠트가 금을 만들지 못했다고 주장하였다. 이들 중 한 사람은 타우젠트가 실험하는 현장을 직접 관찰하였는데 언뜻 보기에 잘 진행되어 실험이 끝났을 때 용해 도가니 속에 금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랐으나, 나중에 타우젠트가 가지고 있던 금촉의 만년필이 생각나서 타우젠트가 실험으로 만든 금을 분석해 보았더니 그것은 만년필의 금촉을 만드는 데 쓰이는 합금이었다는 것이다.

마침내 타우젠트는 유죄로 판결되어 3년 8개월의 징역이 선고되었고, 재판의 비용도 지불하도록 명령되어 그의 실험실에 있었던 재료와 함께 남아 있던 약간의 금도 모두 몰수되었다. 재판장은 “이 선고가 큰 사기행위로 막대한 재산을 얻은 사실에 비해 지나치게 가벼운 형벌이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법정은 비교적 가벼운 벌을 주어도 지장은 없음직했다. 왜냐하면, 금을 잃은 사람들은 손쉬운 방법으로 한 재산을 만들 수 있다는 감언이설을 너무도 쉽게 믿어 버린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가능해진 원소의 변성

 

원자의 연구가 진전된 결과 일종의 ‘변성’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타우젠트가 처음으로 설득력을 발휘하여 많은 유명 인사들을 속여먹기 시작한 1925년보다도 훨씬 전에 과학자들은 원자는 분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있었다.

1896년 방사능이 발견된 뒤로 몇몇 원소의 원자는 자연의 과정에서 스스로 변화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1920년까지 러더퍼드(Enerst Rutherford:1871-1937)는 자연에서 얻은 입자로 원자를 타격하여 파괴하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일은 타우젠트가 징역형을 치르는 동안 콕크로프트(John Douglas Cockcroft: 1897-1967)와 월턴(Enerst Thomas Sinton Walton:1903-?)이라는 두 명의 케임브리지 대학의 과학자가 1932년에 실험실 안에서 인공적으로 가속한 입자를 이용하여 원자를 분할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후로 많은 물리학자들이 원자의 본질과 성질을 신중히 연구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수많은 원소의 원자를 분할할 수 있게 되어 원소의 ‘변성’은 거의 식은 죽 먹기처럼 흔한 일이 되어 있다.

그러나 연금술사의 목표-비금속을 실용적인 규모에서 금으로 변성한다는 일을 달성한 사람은 아직까지 없다.

 

 

 

03. 연금술의 발전
출 처 : 포항공대 출판부 현대사회화 과학 <과학사개론>중에서

 

 

이슬람의 연금술 저작 (1190년대)

연금술(alchemy)은 아랍에서 그 어느 곳보다도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서양의 연금술은 고대 이집트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와서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해서 본격적인 연금술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연금술은 그노시스교(Gnostics)를 위시한 신비주의 사상과 결합되면서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다. 이런 신비주의적 전통을 지닌 연금술은 아랍으로 건너오면서 역시 신비주의적인 수피즘(sufism)과 결합되면서 발전하게 된다. 연금술(alchemy)이라는 어휘 자체가 아랍어의 기원을 갖고 있으며, 그 외 알칼리, 알코올, 나프타, 나트륨 등 연금술을 통해서 발견된 수많은 화학적 물질들의 이름들이 아랍어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다.

한편 연금술의 이론적 근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모든 물질은 4원소들의 배합이기 때문에 그 비율을 바꾸면 다른 물질을 된다는 생각은 연금술들에게 물질이 변환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9세기에 와서 아랍 연금술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자비르 이븐 하이얀(Jabir ibn Hayyan, 721?∼815?)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새로운 황-수은설을 제창했다. 그는 무려 2,000여권의 저작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14세기 스페인의 연금술사들은 그의 이름에서 Jabir를 라틴명으로 Geber라고 불렀다. 자비르 이븐 하이얀이 정립한 황-수은설은 이슬람과 유럽 연금술의 기본 원리로 발전으며, 18세기 화학혁명 직전에 풍미했던 플로기스톤 이론에 이르기까지 오랜 동안 화학의 주요 이론으로 자리를 잡았다.

연금술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 이론이나 황-수은설을 이용하는 한편, 물리, 화학적 조작을 가하기도 했으며, 기도 혹은 주술도 활용하는 등 헬레니즘 시대 이래로 강하게 풍미했던 신비적 자연관이 깔려 있었다. 또한 연금술사들은 점성술사들처럼 대우주와 소우주가 서로 연결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다루고 있는 중요한 물질들을 —금(태양), 은(달), 철(화성), 납(토성), 주석(목성), 구리(금성), 수은(수성) — 각각의 별자리와 연관시켰다. 하지만 이렇게 신비주의적이고 비합리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금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과학사상 많은 기여가 나왔다. 즉 연금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화학적 방법, 시약이 사용되었으며, 천평과 화학적 조작이 활용되면서, 새로운 화학 물질도 많이 발견됐다. 연금술이 과학사에서 한 역할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평가에서 가장 비유적으로 잘 나타나고 있다. “연금술은 아마도 아들에게 자신의 포도원 어딘가에 금을 묻어두었노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은 땅을 파서 금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포도 뿌리를 덮고 있던 흙무더기를 헤쳐놓아 풍성한 포도 수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금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유용한 발명과 유익한 실험들을 가져다주었다.”

 

 

 

04. 그 외 연금술에 대하여

 

< 연금술은 오컬트 기술이며 의사과학이다. 연금술사는 몇가지 목적이 있다. >

 

기본 금속 (납, 구리같은) 을 고귀한 금속 (금 또는 은) (변형 모티브)
모든 질병을 고치는 연금약액, 혹은 묘약, 혹은 금속을 만들어내는 것 (의학 모티브)
영생불사하는 연금약액을 만들어내는 것 (영생 모티브)
금속을 변형시키고 만병통치약이며 영생에 이르게 하는 주요 열쇠로서 마법의 물질은 흔히 현자의 돌 (philosopher’s stone)이라고 불린다.

 

연금술은 세상은 4개의 기본 요소(즉 불, 공기, 흙, 물)과 3개의 필수성분 : 염, 황, 수은 으로 되어 있다는 신념에 기초하고 있다. 연금술의 기호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체계는 위의 7개의 기둥위에 세워졌다. 고대의 중국과 이집트의 오컬트 문헌은 연금술의 바탕이 되는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연금술은 중세 유럽에서는 널리 퍼졌었고 그 당시 가장 비밀스러운 연금술사들의 책은 헤르머스 트리스메기지스토스로 알려진 이집트의 신인 Thoth 신에 의해서 쓰여졌다고 말해졌다. (역주 : 헤르메스는 그리스 신으로 전령이기도 하며 죽은 영혼을 Hades 로 이끌기도 한다. 이집트의 토트신은 지혜의 신으로 알려져 있고 상형문자로 따오기의 머리를 하고 있다. ) 1455년에는 Corpus Hermeticum 이라고 불리는 책이 이탈리아의 플로렌스 지방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이집트 신의 연금술, 점성술 그리고 마법에 대한 지식을 편찬한 것이라고 주장되어졌다. 그러나 현재 이 책의 기원이 유럽이며, Thoth 가 널리 퍼진 다음에 쓰여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거의 모두 마법 주문과 쓸데 없는 오컬트 개념으로 채워져 있다.

 

오늘날 변형 모티브는 무시되고 있으며 영생이나 의학 모티브만이 동종요법, 향기요법, 같은 영역에서 강하게 살아남고 있다. 많은 현대의 연금술사들은 그들의 오컬트 기술을 점성술, 침술, 최면와 다양한 뉴에이지 영성이 추구하는 것과 결합하고 있다. 연금술에서 갈라져 나온 현대의 화학과는 달리 고대의 기술은 매우 영적인 것이다. 연금술사들은 그들의 개념을 확인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실험장치를 개발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형이상학적인 목표와 신념때문에 연금술사는 과학적인 방법을 개발시키지는 못했다. 연금술사들은 그들을 초자연적, 마법이나 기타 미신등에서 분리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것이 계속 유지될 가치가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까지 인기를 끌고 있는지에 대한설명이 될 수 있다. 연금술사는 금속을 변형시키지 못했으며 만병통치약을 발견하지도 못했고 젊음의 샘을 발견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일부 연금술사는 지식의 진보에 기여한 바가 있다. 예를들어 파라셀수스 (1493-1541)는 병에 대한 약의 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현대의 연금술사까지도 받아들이고 있는 병이 신체의 불균형과 부조화에 있다는개념을 거부했다. 대신 파라셀수스는 병은 신체외부의 요인에 의해서 신체를 공격하는 요인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병을 고치기 위해서 다양한 화합물을 권장했다.

 

연금술사는 반과학론자 사이에서 아직도 번창하고 있다. 예를들어 로빈 머피는 연금술과 동종요법과 점설술을 합쳐서 그만의 대체의학을 창조해 내었다. Alchemical Institute는 오컬트 의사과학에 기초를 두고 있는 뉴에이지 치료법을 찾는 사람에게 연금술적 최면요법을 광고하고 있다. 연금술사인 John Reid는 QUINTESSENCE(고대 사람들이 생각한 5대 원소)를 찾는 사람에게 건강과 성공을 약속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과학은 essences 와 5대원소를 찾는 것을 포기한 다음부터 발전되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연금술에 대한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의 내용 >

 

연금술 (鍊金術) alchemy

 

납이나 구리 같은 비금속(卑金屬)을 은이나 금 등으로 변환시키려고 시도했던 유사과학(類似科學).

 

이러한 시도에서 화학적 방법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시도를 하는 동안 유사과학은 화학 자체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공기·물·흙·불·공간의 5가지 원소들이 여러 비율로 조합하여 모든 물질을 구성한다는 이론이 고대 중국·인도·그리스에서 거의 동일한 형태로 가정되었다. 게다가 물질 세계는 더운 것과 찬 것, 젖은 것과 마른 것, 양성과 음성, 남과 여 등 정반대의 개념들에 의해 작용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유사한 점성학적 개념들이 전해 내려오면서 이 세 문명의 철학자들은 원소·행성·금속 사이의 상관성(相關性)을 확립했다. 점성학자들은 자연 세계의 대우주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인간의 소우주에 반영되고, 역으로도 반영된다고 믿었다. 즉 적절한 점성학적 영향을 받게 되면 마치 인간의 영혼이 천상에서 완전해지는 것과 같이 납이 금으로 완성 또는 치료된다고 여기게 되었다. 기술자는 아마도 그의 실험실에서 금속을 조심스럽게 다듬고 오래 가열하여 일단 소멸시키고 더 나은 상태로 소생시키는 작업을 통하여 완성을 앞당기려고 했을 것이다. 경험이 풍부한 연금술사들이 오늘날 수정 및 보완하여 쓰고 있는 수많은 실험기구와 실험과정을 창안하여 사용했으나 그들은 여전히 기술자였고 그들의 직업상 비밀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실험상의 비법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의 연구대상인 물질들에 대해 은밀하고 상징적인 이름들을 많이 고안해냈다. 그리스의 저작자들은 비법을 은폐하기 위하여 고대의 신·영웅·왕 또는 철학자들의 이름을 사용하여 원고를 썼다. 이러한 혼란스런 경향은 신비주의적 성향이 연금술의 개념을 발전시키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헬레니즘 철학이 기술을 중시하는 과학의 관점에서 그노시스주의, 신플라톤주의, 그리스도교의 성스러운 묵시(默示)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함에 따라서 연금술에 관한 저서들이 전반적으로 모호성(模糊性)을 띠며 은밀해지기 시작했다. 그당시에 중국의 연금술사들은 금 자체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불로장생을 부여하는 힘을 가진 연금약액(elixir)으로 다른 금속을 금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찾았으며, 실용적인 모든 기술을 희생하면서 비법에 치중하여 기술이 미신 속으로 퇴보했다. 인도에서의 연금술도 결과적으로 비슷한 운명이 되었다.

 

아랍의 연금술은 그 기원에 있어서 다른 나라의 연금술의 경향만큼이나 신비하다. 헬레니즘 시대에 이집트로 전해진 연금술은 오늘날 파노폴리스의 조시모스라고 밝혀진 최초의 연금술사의 연구와 합쳐졌다. 중국과의 교섭을 통해 아랍에서는 후에 유럽의 연금술에서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로 생각한 신비한 물질인 변형시키는 약제의 사용을 채택했다. 12세기에 그리스도교 학자가 알라지(850~923/924)의 아랍어 연구를 번역하여 유럽에서 연금술이 부흥하게 되었고, 1300년까지 그 시대의 뛰어난 철학자·과학자·신학자 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의 중요한 연금술적 발견으로는 무기산과 알코올을 들 수 있다. 의학화학이나 제약학은 이때의 부흥으로부터 2세기 후에 스위스의 연금술사인 파라셀수스(1493/94~1541)의 영향을 받아 나타났다. 르네상스 시대의 물리학자와 화학자들은 그리스의 원자설에 새로운 흥미를 느끼고 변환의 가능성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연금술사들이 축적해놓은 화학적 사실들은 오늘날 재해석되었고 이를 기초로 근대 화학이 정립되었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화학적으로 금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여 결론적으로 반박할 수 있었다. 연금술적 철학과 기술의 산발적인 부흥은 20세기에도 지속되었다.

 

 

참고문헌

화학의 역사 : 오진곤, 전파과학사, 1993
화학의 발자취 – 원시인에서 화학자로 : Hugh W. Salzberg, 고문주 역, 범양사, 1993
에피소드 과학사 – 화학이야기 : A. 셧클리프, 조경철 역, 우신사, 1991
화학을 쌓아올린 사람들 : 이길상, 전파과학사, 1983
화학의 발달 : 이길상,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7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Chemistry : H. M. Leicester, Dover Publication Inc., 1971
A History of Chemistry : H. Bauer, Edward Arnold, 1907

 

 

< 연금술- 앨리슨 쿠더트저/ 연금술 이야기/민음사간 에서 인용 >

1) 연금술 Alchemistry

넓은 의미로 중세의 화학. 생명이 없는 물질의 형성이나 생명의 신비를 궤뚫는 철학체계. 헤르메티즘 혹은 이것의 동의어 연금술은 원래 자신의 감각에 푹 빠져 있는 인간의 현존 상태에서 원래 인간이 만들어질 때 있었던, 신서한 상태로 인간의 영혼을 다시 소생시키는 철학적인 정밀과학이다.

2) 엘릭시르 elixir

아랍어 al-ichsir, el-eschir 에서 파생된 단어로 원래의 뜻은 돌, 혹은 건조한 가루. 화학에서는 넓은 의미로 용해된 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액체 약을, 고대 약제학에서는 추출액이나 유화액을 의미하기도 한다. 좁은 의미로는 로 연금술 이론에 전해지고 있는 전설적인 만병통치약으로, 이로부터 현자의 돌이 만들어진다.

3) 변성

원래 고대 이집트에서 발전한 금을 모조한 합금 제조법의 발견에서 유래하였다. (2,3세기의 Leyden papirus). 기저금속에 금색이나 은색을 입히는 것이다.

4) 변성의 색이론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홉킨스 Hopkins

1단계

최초의 기저금속을 납이나 주석, 혹은 철과 같이 녹인다. 그러면, 검은 표면의 금속이 된다. 이것이 검은 색 단계.

2단계

검은 합금을 소랴으이 은과 하꼐 가열하고 다음에는 수은(안티몬이나 비소가 섞인) 혹은 주석과 함께 가열한다. 이것이 백색화

3단계

소량의 금과 유황물로 노란색으로 만드는 단계

4단계

색조의 위계상 가장 높은 단계인 보라색

5) 현자의돌

<궁극의 물질>로서 그로서 물질이 생겨나고, 이의 도움으로 비천한 금속을 귀한 금속으로 변환 시킬 수 있는 연금술사들의 마지막 생성물. 대부분의 연금술 문헌에 따르면, 이 돌을 만드는 과정은 7단계로 원물질을 수은물에 액하하기, 땅에 묻어 부패시키기, 힌색으로 되는 과정, 현자의 우유를 먹여 노란색으로 변색시키기, 붉은색으로 환원, 응고시키기, 현자의 돌의 탄생 단계로 되어 있다. 이와는 달리 하소, 승화, 용해, 부패, 증류, 응고 채색 과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현자의 돌은 반짝이는 루비색이며 단단하기도 하지만 유리처럼 부서지기도 쉽고, 가루로 만들 수도 있다고 표현되어 있다. 혹은 선홍색의 샤프란 꽃 색깔을 닮은 가루로 불에서는 연기도 불꽃도 내지 않고 밀납처럼 녹았다가, 차가와 지면 금보다 더 무겁다고 한다.

 

 

1) 파피루스 에버스 Papyrus Ebers

1862년 이집트의 테베에 위치한 무덤에서 발견한 파피루스로 연금술에 관한 내용을 담은 가장 오래된 저술. 기원전 1550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12인치 폭에 68피트 길이의 이 파피루스는 고대 이집트에서 제사장의 신성한 문자로 여겨지던 신성서체 hieratic(상형문자로 흘려쓴 초서체)로 쓰여눞다. 이 파피루스의 저자로 헤르메스, 혹은 토르가 언급되어있다. 여기에는 머리가 희어지면 검은 송아지의 피를 기름에 끓여 바르라는 등 각종 광물 성분을 이요안 치료술이 나온다. 그리고 여기에는 후에 피타고라스 학파가 차용한 마술의 수 4가 자주 나온다.

2) 주역참동계 周易參同契

중국 연금술의 창시자 위백양이 142년에 썼다는 이 저술은 유교의 역, 도교의 철학, 불사의 약인 만연단술을 종합한 이론서이다. 자연의 금과 수은으로 이 단약을 만들 수 있다고 하였고, 수은이 중시되었다.

3) 라이든 파피루스와 스톡홀름 파피루스 Leyden and Stockholm papyri

이집트에서 기원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그리스어로 된 파피루스. 기원후 1,2세기에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라이든 파피루스는 귀금속을 늘리기 위해 금이나 은을 닮은 합금이나 금속을 만드는 방법을 다루었다. 여기에는 유황물을 다루는 법이 최초로 쓰여 있다.

4) 포박자 抱朴子 내편 內編

갈홍이 완성한 중국 연금술의 고전으로 중국 초기 연금수르이 전통을 집대성 해 놓았고, 단술과 그 이론을 정리해 놓았다. 선인이 되는 약, 즉 환약을 만드는 법이 기술되어 있는데, 마찬가지로 여기서는 기본물질은 수은과 금이다. 수은을 변화의 상징이자 회귀의 성질과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5) 완전성의 총체 Summa Perfectionis

최초로 이묃된 연금술 서적, 1481년에 초판이 인쇄된 것으로 보이며, 저자는 이슬람의 유명한 연금술사 게버Geber(아랍식으로는 자비르)로 되어있다. 제목이 들어 있는 첫 쪽에는 이라고 뷋겨있다. 연금술의 주요한 실습과정과 다양한 연금술 기구에 사용법이 담겨있으며, 유황-수은 이론이 유황, 비소, 생생한 작용자에 관한 이론으로 약간 수정되어 있다. 저자는 당시 알려진 금속의 성질에 정통하여 있다.

6) 헤르메스의 에메랄드 명판 the Emerald Table of Hermes

헤르멧의 교훈이 담겼다는 명판으로 그 출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인용된 것으로 보아 13세이엔륚 이 명판이 잘 알려져 있었으며, 1541년 뉘른베르크에서 처음으로 [연금술에 관하여 De Alchemia]에 인쇄되어 실렸다. 기본적인 연금술 교리를 밝혀 놓은 가장 오래된 진술을 담고 있는 것으로 13세기 연금술 저세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7) 고가의 새 진주 the New Pearl of Great Price

1546년 베니스에서 Presitio Margatia Novella라는 제목으로 라틴어로 발간된 연금술 저서. 교황 폴 3세와 베네치아 의회의 재가를 얻어 알디네 이쇄에서 발행한 것으로 인쇄술의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1330년의 페트루스 보누스가 쓴 연금술 안내서를 담고 있으며, 칼라브리아의 야누스 라시니우스 Janus Lacinius of Calabria가 편집했다. 초기 연금술 문헌들을 많이 인용하여 두었고, 고대 연금술사들이 14세기 연금술에 끼친 영향을 서술하였다. 상징적인 목판들이 실려있다.

8) 유태인 아브라함의 형상 The Figures of Abraham the Jew

유명한 프랑스 연금술사 니콜라스 플라멜의 무덤에서 나왔다는 58 * 45 cm, 두께 4 cm의 대리석판. 판의 꼭대기에는 그리스도, 성 베드로, 성 바울로 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달과 태양의 상징도 들고 있다. 이 대리석판은 플라멜 자신의 상형문자 원본을 담고 있으며, 여기 나오는 그림들은, 거의 변하지 않은 상태로 그의 뒤를 잇는 연금술사 들의 저서에 나오고 있다.

9) 태양의 광채 Splendor Solis

솔로몬 트리스모스신이 저자로 알려진, 1582년에 발간된 소책자. 연금술의 사상과 작업과정을 보여주는 22장의 아름다운 채색 상징화들에 금으로 장식된 48장의 독일어 책자이다. 색조에 강조를 두며, 연금술을 어떤 기술보다 가단한 자에게 위안을 주는 가장 고귀한 기술이라고 묘사했다.

10) 야금술에 대하여 De Re Mtallica

연금술의 실용적인 측면을 다룬 최초의 인쇄서 중의 하나. 원래는 광산과 야금학을 다룬 중세의 고전으로 1556년 바젤에서 발행됐다. 저자는 게오르그 바우어 Gerog Bauer로 흔히 아그리콜라 Argicola로 알려져 있는 요하임슈탈 광산의 시의이다. 라틴어로된 전 12권의 방대한 이 전집에는 야금법 외에 시금법, 소금, 질산, 다른 화학물질 만드는 법등이 자세한 목판화와 함께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연금술에서 개발된 각종 실용적인 작업과정을 상세히 후세에 전함으로서 연금술이 다양한 분야로 자리잡아 가는 데 크게 기여했다.

11) 영원한 지혜의 이중무대 Amphithreatre of Eternal Wisdom

영적인 연금술사였던 하인리히 쿤라드 Heinrich Khunrath의 저작으로 1609 년에 발간된 연금술서. 신지학과 신비주의 전파에 크게 기여한 저서로 에메랄드 명판, 연금술 성채, 쿤라드의 예배당(실험실)등 신비적인 주제를 담은 금속 판화들이 들어 있다.

12) 아탈란타 푸가 Atalanta Fugiens

미하엘 마이어 Michael mire가 1618년에 발간한 저서. 연금술 교리와 고대 신화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50개의 동판화를 담은 이 저서는 특히 연금술이 음악과 맺고 있는 관계를 보여준다. 원래 전체 제목은 <아틀란타 도주, 말하자면 화학의 비밀에 관한 새로운 상징화; 도판화에 감상이나 풍자 시아 주석을 가미하여 보거나 읽어서 쉽게 알 수 있도록 함; 3성에 맞는 50 여개의 푸가는 마음을 신서하게 하거나 귀에도 적합하게 함. 단 두 소리는 하나의 곡조에 맞추어서, 2행시를 읊는 데 적합하게 하였다; 전체가 보거나 읽거나 명상하거나, 이해하고,판단하고 노래하고 듣는 데 나무랄 데 없이 적합하다.> 이다. 비생물 물질계에 남성, 여성 원리를 적용하는 연금술 사상, 신인동형론이 잘 나타나 있다.

13) 연금술 박물관 Hermetic Museum

1625년 루카스 제니스 lucas Jennis 에 의해 프랑크 푸르트에서 처음 발간된 연금술 문헌집. (원제 : Meseum Hermeticum) 처음에는 483쪽 분량에 아홉 개의 논문으로 발간되었으나, 1678년에는, 863쪽에 21개 논문으로 개정 발간됐다. 실린 논문에는 니콜라스 플라멜, 현자에 돌에 과난 황금 소책자, 램스프링의 책, 피라레테스의 세 논문 등이 속한다.

14) 황금의 삼발이 The Golden Tripod

미하엘 마이어가 주요한 연금술 논물 세 편을 편집한 책으로 1618년 프랑크 프루트에서 처음으로 발간됐다. 전체 제목은 <황금의 삼발이, 혹은 세편의 주요한 화학 논문들, 즉 베네딕트 회의 수사 바실리우?발렌틴의 [12개의 열쇠]와 부록; 영국 현인 토머스 노턴의 [예식서 Ordinal]; 크레머라는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장의 유언장> 이다. 이들 세사람은 현자의 돌을 보유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크레머 John Cremer는 런던에서 22톤의 기저금속을 금으로 변성시켰다는 레이몬드 룰리 Raymond Lully로壙?현자의 돌을 만드는 방법을 전수받았다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 유언장이 크레머의 것인지, 룰리의 것인지는 학실하지 않다. 이 유언장에는 연금수웳 중심이 살아 있는 물을 만드는 방법이 들어 있다. 15세기 브리톨가에 속한다는 토마스 노턴의 [연금술 예식서 Ordinall of Alchimy]는 1477년에 씌여진 운문시 형식의 글이다. 연금술의 비법, 실험과정, 실험실 운영등 연금술사에게 필요한 지식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 베일의 거장으로 남아있는 바실리우스 발렌틴의 [열두 개의 열쇠]는 엉뚱한 언어와 기묘한 삽화들로 가득찬 논문으로 17세기 연금술 용어와 상징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15) 영국의 고대 연금술 문헌집 Threatrum Chemimum Britannicum

1652년 Ashmolean Mueum의 창시자 엘리아스 아시모리 발간한 논문 모음집 <고대 영어로 연금술에 관해 서술한 유명한 철학자들의 시편들>을 모았다는 표지 설명대로, 운문으로 된 고대 영국의연금술 문헌을 집대성했다. 노턴의 [예식서]가 이 책의 앞부분을 차지하고 그 뒤를 이어 [연금술의 조성 The Compound of Alchymie] 초서의 [자유민] 이 실려 있다.

16) 화학의 즐거운 정원 Viridarium Chymicum

1624년에 연금술에 관한 동판화에 풍자시를 붙여 편찬한 작은 포켓판 책자.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물론,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위해 시적인 그림으로 장식했다는 이 책은 107개의 동판화를 싣고 있는데, 이 동판화 맞은 편에 라틴어로 된 풍자시를 실어 놓았다. 여기에는 [열두 개의 열쇠]에 나오는 삽화 외에 편찬자의 생각인 화려한 연금술의 정원이 등장한다.

17) 개정된 철학 Philosophia Reformata

요한 다니엘 밀리우스의 작품으로 역시 프라으 푸르트에서 1622년에 발간된 책으로 700여쪽이 너는 분량. 이 책은 금속의 생성, 철학자들의 12단계, 연금술의 이론, 철학자들의 문헌들을 다루고 있다. 제목과 달리 새로운 이론은 찾아볼 수 없지만, 이 책에 실려 있는, 연금술의 열두 작업을 묘사하고 있는 동일한 크기의 동판화 들은 특히 흥미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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