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폭발이나 비행기 사고 등 많은 사람이 죽는 대형 사건이 터지면 우리는 흔히 기계의 결함을 우선적으로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통계에 따르면 항공사고의 73%가 인간의 실수에서 비롯됐습니다. 기계적 결함은 11%에 불과하지요. 1979년 스리마일 원자력발전소 사고나 1986년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역시 발전소를 운영하는 인력들의 실수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이렇듯 인간이 일으키는 실수를 ‘인간 요소’(Human factor)라고 합니다. 사람의 주의력 부족, 무능함, 비겁함, 어리석음 등을 다루고 있지요. 이 개념은 이제 항공공학이나 대규모 기술, 현대 사회를 유지하는 각종 산업에서 두루 쓰이고 있어요. 사람이 어떻게 실수하고 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를 중점적으로 다루지요. 실제 역사에 기록된 각종 인간 요소는 한 두 사람의 ‘판단 미스’가 어떤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명백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천년왕국’의 패배

1187년, 중동에서 일어난 ‘하틴 전투’는 인간의 오만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줘요. 그해 7월, ‘마호메트의 칼’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집트 술탄 ‘살라딘’이 갈릴리 해 연안에 자리한 티베리아스 요새를 공격했어요.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의 왕 ‘기 드 뤼지냥’은 살라딘을 격파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답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한 건 그가 이끄는 십자군의 무기가 살라딘이 이끄는 이슬람군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었어요.

7월 3일, 십자군은 뤼지냥의 명령에 따라 짐을 많이 챙기지 않고 떠났어요. 특히 물을 적게 챙겼답니다. 뤼지냥은 물수레가 너무 느려서 행군을 방해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참모총장인 트리폴리 백작이 차라리 조금 느리게 행군하자고 했지만, 뤼지냥은 이 조언을 듣지 않았답니다.

저녁 무렵 십자군은 가야 할 거리의 반도 못 간 채 갈증에 지쳐버렸어요. 뤼지냥은 그날 밤은 쉬고 다음 날 동틀 무렵 하틴 계곡에 가서 물을 보충한 뒤 티베리아로 향하기로 했어요. 나중에 밝혀졌지만, 이 결정은 치명적인 실수였죠. 군사 심리학에서 쓰는 말로 하면 당시 십자군은 ‘인간 신뢰도’ 수치가 ‘위험 수준’까지 떨어져 있었어요. 군인들의 사기가 완전히 바닥을 기는 상황이었지요.

전투는 십자군의 완전한 패배로 끝났어요. 십자군은 이슬람군의 포위를 뚫고 하틴 계곡으로 가려 했지만, 사방을 둘러싼 살라딘과 이슬람군을 이길 수 없었지요. 그 후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1세, 영국의 리처드 1세, 프랑스의 필리프 2세 등 유럽의 내로라하는 황제와 왕들이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중동으로 갔답니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어요.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이끈 제5차 십자군이 1228년에 잠깐 예루살렘을 차지했던 시기를 빼면, 예루살렘은 계속 이슬람 손에 있었답니다. 게다가 13세기 말이 되자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같은 중동의 기독교 국가들마저 살라딘에게 굴복해 다시 이슬람 국가가 되었어요. 군사들의 인간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린 한 사람의 어리석은 결정이 그야말로 역사의 방향을 바꾼 셈이지요. 

 

 

 

 

핼리팩스의 겁쟁이들

두려움과 겁, 무서움도 상황을 나쁘게 만드는 인간 요소예요. 1917년 12월 6일, 캐나다 핼리팩스 항구 앞 해협에서 노르웨이 여객선 SS 이모(SS Imo)와 프랑스 군함 SS 몽블랑(SS Mont-blanc)이 서로 부딪혔어요.  불행히도 몽블랑에는 탱크와 군용차의 연료로 쓸 벤젠 35톤과 3000톤이 넘는 폭발물이 실려 있었어요. 몽블랑은 이 위험한 화물을 프랑스 보르도까지 운반하던 중, 잠시 핼리팩스에서 다른 배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이모는 정박하던 몽블랑의 오른쪽 옆을 들이받았어요. 벤젠이 실려 있는 쪽이었지요. 이모가 몽블랑을 거칠게 긁으면서 불꽃이 튀자, 새어 나온 벤젠에 불이 붙었어요. 불길은 곧 옆 탱크로 번졌고 몽블랑에서는 연기가 솟아올랐지요.

이럴 때 선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답은 ‘항구에서 먼 곳으로 배를 몰고 간 다음 열심히 불을 끈다’예요. 그래도 불이 안 꺼지면 ‘킹스턴 밸브’를 열어 배를 가라앉혀야 하지요. 하지만 몽블랑의 선장 에이메 르 메디치와 선원들은 그야말로 겁을 잔뜩 먹었어요. 이들은 불을 끄지도, 킹스턴 밸브를 열지도 않은 채 위험한 폭발물이 실린 불붙은 배를 버리고 해안가로 도망쳤답니다. 소방선들이 치솟는 불길을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 배를 먼 바다로 옮기자는 결정이 내려졌어요. 하지만 너무 늦은 결정이었답니다. 아침 9시 6분이 되자 불길이 폭발물에까지 번졌고 몽블랑은 폭발해 버렸어요.

이 폭발의 위력은 원자 폭탄의 위력을 잴 때 쓰는 단위로 나타내야 할 만큼 엄청났어요. TNT 2500톤에서 3000톤이 한꺼번에 터진 정도의 힘이었어요! 핼리팩스에서 32km 떨어진 트루로 마을의 창문이 모두 깨질 정도였답니다. 폭발로 생긴 충격파 때문에 바닷물이 밀려나 해저가 드러나면서 1만 1000톤짜리 순양함 ‘니오베’와 범선 ‘쿠라크’가 하늘로 솟구쳤어요. 몽블랑의 잔해 중에는 폭발 현장에서 무려 19km나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것도 있어요. 닻에서 떨어져 나온 0.5톤짜리 쇳덩어리도 3km나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답니다.

 

 

 

이 폭발로 핼리팩스의 건물 1630채가 완전히 무너졌고 1만 2000 채가 심하게 파손됐다. 반경 800m 안의 나무가 부러졌고 철도는 망가졌으며 심지어 쓰나미까지 일어나 북미 원주민 거주지가 큰 피해를 입었다.

공식 자료에 따르면 이 사고로 1963명이 죽었고 2000명 이상이 실종됐으며 9000명 정도가 다쳤지요. 핼리팩스의 리치몬드는 주민 대부분이 사망할 정도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답니다. 캐나다 법원이 무조건 유죄를 주장했지만, 프랑스 정부는 르 메디치 선장을 감쌌어요. 르 메디치 선장은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1922년까지 일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원문: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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