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세기 경 유클리드는 그의 책 <원론>에서 수학에서의 다섯 가지 공리를 말하고 있다.

 

 

1. 서로 다른 두 점이 주어졌을 때 그 두 점을 지나는 직선을 그릴 수 있다.

2. 임의의 선분은 더 연장할 수 있다.

3. 서로 다른 두 점 A, B에 대해 A를 중심으로 선분 AB를 반지름으로 하는 원을 그릴 수 있다.

4. 모든 직각은 서로 합동이다.

5. 한 선분을 서로 다른 두 직선이 교차할 때, 두 내각의 합이 180도보다 작으면, 이 두 직선을 연장할 때 두 내각의 합이 180도보다 작은 쪽에서 교차한다. (평행선 공리)

 

이 중 유명한 다섯 번째 평행선 공리를 자세히 살펴보자.
앞의 네 가지 공리에 비해 복잡해 보이고 왠지 ‘공리’스럽지가 않다.
그래서인지 수학자들은 앞의 네 가지 공리를 사용해서
다섯 번째 공리를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시 말해 다섯 번째는 ‘공리’가 아니라 ‘정리’가 아닐까 의심했던 것이다.

(순서대로) 가우스, 보여이, 로바체프스키

 

 

이 문제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가우스, 보여이, 로바체프스키 등에 의해 해결된다.
마침내 평행선 공리가 1에서 4번까지의 공리로부터 유도될 수 없음이 증명된 것이다.
더불어 이들은 평행선 공리가 성립하지 않는 기하학을 만들었고
이를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 불렀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 사실 이름은 별로다.
부정적인 ‘비非’자가 붙어 있어서인지 왠지 비정상적인 기하학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보편적 기하학이고
오히려 유클리드 기하학이 특수한 경우였던 것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 ⊃ 유클리드 기하학

기하학은 2천년 만에 신천지를 발견하고, 우주와 공간을 새롭게 쓰기 시작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나오기 전까지 공간은 절대불변의 존재였고
그래서 철학자 칸트는 공간이 인간의 경험을 초월해서 보편적으로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칸트

 

 

하지만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등장하면서 공간에 대한 패러다임이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한 역사학자 -19세기사의 최고 권위자로 불리는 에릭 홉스봄- 는
이를 기하학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까지 말했다.

일반 사람들은 물론 수학자들마저 일대 혼란에 빠졌을 때 한 수학자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토대를 정립했을 뿐 아니라,
4차원 이상의 고차원 기하학의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모색했다.
고차원에서도 거리, 각도 등을 정의할 수 있고 모순 없이 다양한 이론을 전개할 수 있음을 밝혔던 것이다.

 

 

바로 리만이다.

 

 

그의 리만기하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러분은 4차원 공간을 상상할 수 있는가? 쉽지 않을 것이다.
수학자들은 왜 난해한 공간을 만들어 놓고 고민하는 걸까?

 

 

상대성 이론과 4차원 공간

먼저 4차원 공간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2차원 평면에 있는 모든 선분들의 집합을 생각해보자.
그럼 이 선분을 결정하는 것은 양 끝의 두 점일 것이다.

 

 

그 두 점의 좌표를 각각 A(x, y), B(x’, y’)라 하면
이 선분은 x, y, x’, y’라는 4개의 변수에 의해 좌우된다.

이 4개의 변수로 된 모든 집합을 ‘공간’이라 부르기로 하자.
그러면 이 공간은 4개의 변수로 결정되는 4차원 공간이 되고,
이 4차원 공간상의 점 하나가 2차원 공간의 선분 하나에 해당한다.

이 4차원 공간을 머릿속에서 그리기는 쉽지 않다.
그냥 이 공간을 4차원이라 부르기로 정한 것이다.

잘 이해되지 않는가? 이해되지 않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길이는 다를 수 있지만 모두 수평인 선분들의 집합을 생각해보자.
이건 몇 차원일까?

 

 

만일 선분의 점 하나 A(x, y)가 결정되면 나머지 B는 y값은 같고 x값만 달라진다.
따라서 이 공간은 (x, y, x’)라는 3개의 변수로 결정되는 3차원 공간이 된다.

자, 그래서 이게 우리랑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걸까?
놀라지 마시라. 이 3차원 공간이 바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 앞의 공간이다.

 

 

 

 

오른쪽 눈과 왼쪽 눈에 각각 2차원 영상이 잡히는데
눈의 높이가 같이 때문에 우리 뇌는 이를 3차원 공간으로 해석한다.

우리 눈과 뇌가 매일 같이 하고 있는 일인데 이를 수학적으로 얘기하니 왠지 낯설다.
우리 뇌가 무의식적으로 순식간에 해내는 일을 굳이 말로 설명하려니 더 어려워진 거다.

그래서 ‘상상도 할 수 없는 고차원 기하학은 어떻게 연구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우리의 뇌가 그렇듯 자주 생각해서 익숙해지면 된다.

자 지금부터는 엄밀한 수학이 아니라 하나의 가설이다.

 

 

 

 

로봇팔을 예로 들어보자.
달걀을 아주 섬세하게 쥐고 있는 이 로봇팔의 작동을 인간은 어떻게 조정할까?

 

 

 

 

손가락 마디마디를 표현하는 여러 선분(막대기)들의 복잡한 조합을 계산해서 조정한다.
이건 선분의 개수와 각각의 움직임의 자유도에 따라 고차원 공간이 되는데,
여러 선분들의 하나의 조합을 이 고차원 공간에서의 한 점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이 한 점의 운동을 기술하면 그것이 바로 로봇팔을 통제하는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손가락을 따로 계산하면 너무 복잡하고 또 손가락끼리 동작을 맞추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의 팔도 이 로봇팔과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가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인간은 머릿속에 고차원 공간을 만들어 놓고
마치 한 점이 움직이는 걸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야구 선수의 놀라운 다이빙 캐치나 피아니스트의 현란한 손가락 움직임을 보자.
과연 이들이 하나하나의 동작을 의식해서 계산하고 있는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들은 전체 동작을 마치 하나의 동작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익숙해진 동작은 뇌가 한 점을 움직이는 느낌이 들 때까지 연습한 동작이다.
자전거 타기나 운전 역시 처음에는 손동작, 다리 동작 하나하나가 신경 쓰인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방법을 애써 떠올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타게 된다.

연습을 열심히 하면 여러 개의 저차원 공간으로 쪼개져 있던 것이
고차원 공간의 한 점으로 합쳐지는 것 같이 느껴질 수 있다.

예전에 황준묵 교수는 기하학의 본질은 ‘상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차원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등장하면서 이를 업그레이드했다.
왜냐하면 4차원 이상의 고차원은 애당초 ‘상상’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즉 기하학이란,
여러 데이터를 통합해서 한 점으로 상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추측컨대 우리 뇌가 사용하는 바로 그 기하학일지도 모른다!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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