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유명한 정복자인 칭기즈칸과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에는 공통점이 꽤 있다. 둘 다 전쟁터에서 귀환하던 중 외지에서 죽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그들의 사인(死因)이다. 정확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둘 다 모기 때문에 죽었다는 가설이 가장 유력하다. 바로 말라리아다.
2014년에 빌&멀린다게이츠재단은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자료를 근거로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 순위를 발표했다. 3위는 매년 5만 명의 사람을 물어 죽이는 뱀이었으며, 2위는 인간이었다. 살인사건 등으로 매년 47만여 명이 사망한다.
1위가 바로 모기였다. 매년 모기에 물려 죽는 사람은 72만 여명에 달한다. 모기는 말라리아뿐만 아니라 뎅기열, 황열, 일본뇌염, 사상충 등의 치명적인 질병을 인간에게 전파한다.
지난해 말 WHO가 펴낸 보고서에 의하면, 2017년에 전 세계에서 2억1900만명의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했으며 그중 43만5000명이 사망했다. 선진국의 경우 말라리아 발병이 거의 근절됐지만, 아직도 91개국에서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요즘은 말라리아가 모기에 의해 전파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다. 하지만 예전에는 습한 지역의 나쁜 공기가 말라리아를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모기의 부화 및 말라리아 원충의 발육은 습도가 높은 열대성기후에서 잘 일어나기 때문이다. 말라리아라는 용어 자체도 나쁘다는 뜻의 ‘mal’과 공기란 의미의 ‘aria’란 이탈리아어가 합쳐진 말이다.
질병이 세균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모기가 말라리아를 전파한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를 최초로 밝혀낸 이는 영국의 군의관 로널드 로스였다.
모기가 종달새를 물게 하는 방법으로 연구
그는 1857년 5월 히말라야 산맥 부근에서 인도 국경수비대의 영국 장군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영국으로 보내져 의과대학에 입학했으나, 의학보다는 음악이나 문학 등에 관심이 더 많았다.
의사 시험에 통과조차 못한 그를 바꾼 건 그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더 이상 용돈을 주지 못하겠다고 선언하자, 그는 다시 인도로 건너나 군의관이 되었다. 결혼한 후에도 여전히 다른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880년에 프랑스의 외과의사인 알퐁스 라브랑이 알제리에서 말라리아 원충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전해들었다.
자신이 근무하던 인도에도 말라리아 환자가 많았던 탓에 그는 1892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말라리아와 관련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말라리아에 걸린 환자들을 일부러 모기에 물리게 한 후 말라리아 원충이 모기의 위장에서도 자라는지를 조사했다.
몇 년간 이어진 연구에도 불구하고 그는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종류의 모기 중 단 하나만이 말라리아를 옮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기적처럼 한 모기의 위벽 세포에서 말라리아 원충처럼 보이는 검은 알갱이들을 발견했다.
갈색 얼룩날개모기라는 새로운 종류의 모기에서였다. 그는 그 연구결과를 영국의학잡지에 보냈다. 당시 그는 그것이 인간 말라리아 원충의 진화된 형태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것이 인간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연구할 차례였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말라리아 연구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본국으로부터 전임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조류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새들 역시 말라리아에 걸리기 때문이다.
종달새를 가둔 새장 속에 회색모기를 풀어놓고 연구하던 그는 조류의 말라리아 원충도 모기의 위장 속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것이 모기의 체강으로 빠져나와 타액선에 축적됨으로써 말라리아를 전파한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데에도 성공했다.
지금도 말라리아와의 싸움은 진행 중
그의 연구 결과가 알려지고 곧이어 이탈리아의 그라시 박사에 의해 인간의 말라리아 역시 모기를 통해 옮겨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로널드 로스는 이 공로로 190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공동 수상할 것으로 예상되던 그라시 박사는 당시의 여러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수상자 명단에서 제외됐다.
한편, 말라리아 원충을 최초로 발견한 알퐁스 라브랑에게는 좀 늦은 1907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이 주어졌다. 지난 2015년에는 중국의 약리학자 투유유가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 성분인 아르테미시닌을 발견한 공로로 다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단일 전염성 질환으로 노벨상을 세 번이나 받게 만든 질병은 말라리아가 유일하다.
그러나 모기가 말라리아를 전파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 120년이 흐른 현재에도 인류는 말라리아와의 싸움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
치료약은 계속해서 개발되어 왔으나 전염성 질병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라리아 원충은 모기와 사람의 몸속을 왔다갔다 하므로 백신 역시 크게 두 가지 방식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 모기 속의 원충이 인간에게 감염되는 것을 막는 방식과 이미 인체에 감염된 원충의 증식을 막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또 하나 확실한 방법은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 종류를 완전히 박멸하는 것이다.
최근 로널드 로스의 조국인 영국에서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성과가 잇달아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암컷 모기에게 불임 유전자를 전달하는 방법과 자살 유전자를 심은 유전자 변형 모기를 만드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유전자 변형 기술은 유전자가 다른 생명체에도 전달될 가능성이 있어 실제 상용화까지는 아직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다. 과연 말라리아 관련 분야에서 또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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