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터(Ventor)나 처치(Church)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이 유전체 서열을 분석하면서 하는 일들은 사실상 정보과학에서 개발된 알고리즘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유전체학, 단백질체학 등의 분야에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기계학습 기법, 즉 통계적 기계학습 기법의 상당수는 대체로 이론컴퓨터 과학자들의 연구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것들을 벤터나 처치와 같은 과학자들이 생화학(또는 생물학)에 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과학에는 합성생물학 등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이 언급하는 것들은 우리가 단지 시스템을 분석하는 차원을 넘어 시스템을 가공하는 차원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공학 전반에 관해 잠깐 살펴보고, 그 뒤에 생명공학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사람들이 현재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인지 생각해 보자.
먼저 공학 이야기이다. 대략적으로 얘기해서, 지금의 공학은 사실상 응용컴퓨터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좀 편향된 말이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공학에서는 두 가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우리는 무언가를 분석한다. 그리고 요즘 분석이란 그에 필요한 적절한 계산 시스템들을 모아서 계산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공학은 무언가를 설계하는 창의성이기도 하다. 요즘 그것은 조각들을 끼워 맞추는 방식에 관한 정보의 흐름을 설계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즉, 한 관점에서 볼 때, 요즘의 공학은 모두 응용컴퓨터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생명공학도 또 하나의 응용컴퓨터 과학일 뿐이다. 생화학(또는 생물학)에 응용된 사례일 뿐인 것이다.
대략 1905년경에는 전기공학이, 2005년 지금의 생명공학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1905년의 전기공학은 지금의 전기공학과 전혀 달라 보이는데, 앞으로 100년 사이에 지금의 생명공학도 그처럼 극적으로 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그러한 변화가 기하급수적으로 가속될 수도 있지만, 생화학(또는 생물학)은 물리학보다 사실상 더 복잡하므로 발전 속도와 현실 유지 사이에 약간의 균형이 이루어질 것이다.
1905년의 전기공학은 어떠했을까? 당시 전기공학은 물리학에서 막 갈라져 나온 상태였다. 원래는 응용물리학이었다. 실제로 1904년에 MIT에서 전기공학은 물리학과에 속해 있었는데, 그런데 그해 교수들이 회의를 열어서 ‘전기쟁이들(electricals)’을 내쫓았다고 한다. 그 일을 계기로 MIT에 전기공학과가 생긴 것이다.
현재 우리는 같은 형태의 일이 일어나면서 생명공학과가 설립되는 광경을 보고 있다. 생화학(또는 생물학), 즉 응용생물학이 있었는데, 이제는 생명공학이 되었고, 생명공학은 대학에서 자연과학 학부보다는 공학 학부에 설치되고 있다. 1905년의 전기공학이 일종의 수공업이었다고 할 때, 전기를 기본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50년 뒤였다. 1950년대에 이르러서야 전기공학은 과학에 기반을 두게 되면서 면모를 일신했던 것이다. 그리고 50년이 더 흐른 뒤 정보와 컴퓨터과학에 토대를 두게 되었다.
그리고, 공학은 응용컴퓨터과학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현재 생명공학은 몇 가지 흥미로운 일을 시작하고 있지만, 그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어렴풋이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고고 할 수 있다. 벤터가 미코플라스마(mycoplasma)를 해킹하고, 유전자를 해킹하고, 최소 유전체를 합성하려 하고, 조각들을 끼워서 인공생명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심지어 유전자 이전 시대로 돌아가는 접근법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의 한 연구진은 유럽연합의 지원을 받아서 DNA에 의존하지 않는 인공 세포를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들은 RNA와 더 원시적인 성분들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이 생명분자들을 끼워 맞추고 야생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을 하게 할 방법을 찾으려고 시도하는 일종의 공학이라고 할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이오브릭(biobrick)이라는 개념도 있다. 바이오브릭은 표준 구성요소를 뜻한다. 웹사이트 ‘igem.org’에 가보면, 생화학(또는 생물학)적 부품이 어떤 것들인지 알 수 있는데, 여기서 구성요소가 칩이 아니라 생화학(또는 생물학)적 부품, 즉 유전자인 것이다. 지금 현재 수백 개의 생화학(또는 생물학)적 부품이 있으며, 부품 번호(또는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유형별로 분류된 항목들을 마우스로 눌러서 들어가면 각 부품이 종류별로 나와 있고,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볼 수 있다. 그렇다. 그것은 분자 수준의 생화학(또는 생물학)이자 공학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수준의 생화학(또는 생물학)도 있다. 신경 수준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한 연구와 개발에도 박차가 가해지고 있는데, 일례로 노스웨스턴대학의 무사이발디(Mussa-Ivaldi) 같은 과학자들은 로봇을 통제하는데 신경망, 즉 생물의 신경망을 이용한다. 로봇의 중심에 그것을 통제하는 작은 축축한 것이 들어 있는 셈이다. 브라운대학과 듀크대학, 그리고 머스크(Musk)의 뉴로링크 연구진은 원숭이의 뇌에 전극을 꽂고, 유전체 분석에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기계학습 기법을 이용해서 원숭이의 머리에서 어떤 신호가 오가는지 파악해 원숭이가 생각만으로 비디오게임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생각만으로 로봇을 조종하게 했다. 최근 언론에 몇몇 사지마비 환자를 대상으로 이 기술을 활용하는 시험이 시작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던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분석해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꾸는 쪽으로 나아간 또 하나의 사례이다. 우리는 생화학(또는 생물학)을 과학에서 공학으로 이용하는 쪽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인 것이다.
앞으로 수십 년 사이에 또 다른 수준에서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생물을 만지작거림으로써 우리는 공학의 특성을 다시금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0년 사이에 공학이 정보과학, 즉 응용컴퓨터 과학으로 바뀐 것과 같은 방식으로 공학은 다시금 바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생화학(또는 생물학)적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공학 시스템에 영감을 주는지 사례를 들어 설명할 수는 있다.
편형동물의 일종인 다기장류(polyclad flatworms)를 예로 들어보자. 이들은 몸으로 미세한 물결무늬를 일으키면서 움직이는 동물이다. 화려한 색을 띠고 있고 몸 가장자리를 따라 물결무늬를 일으키는 아주 단순한 동물로, 이들의 뇌는 뉴런이 약 2000개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움직이고, 먹이를 잡고, 물결무늬를 일으켜서 몸 한가운데 있는 입으로 보낸다. 1950년대에 이 동물에 관한 논문들이 쏟아졌는데, 그 논문들에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지만, 아마도 한 대학원생이 저지른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그는 다기장류 사이에 뇌 이식이 가능한지 알아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두 개체의 뇌를 잘라낸 후, 이 동물들의 기능이 회복될지 알아보기 위해서 두 개체의 뇌를 교환하는 실험을 했다고 한다. 실험 결과는 다음과 같다 — 뇌를 잘라내자 이들은 둔해졌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고, 약간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그리 잘 움직이지는 못했다. 먹이가 입, 즉 먹는 구멍 가까이에 놓이면, 그것을 붙들긴 했지만 입 안으로 잡아당기진 못했다. 그러다가 다른 개체의 뇌를 이식하면, 며칠 뒤에 거의 정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실수가 일어났다. 뇌를 잘라낸 후 180도 돌려서 붙인 것이었다. 그 결과, 편형동물은, 처음에는, 잘 움직이지 못하다가, 그후 거꾸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는데, 또 그로부터 며칠 지나면 적응해서 스스로 방향을 조절해 움직였다.
사실 이 동물의 구조를 보면 몸 양편으로 두 쌍의 신경섬유가 뻗어 있다. 그러니까 네 가닥의 신경섬유가 뇌에서부터 몸을 따라 죽 뻗어 있는 것이다. 뇌를 잘라내면, 한쪽 끝에 네 끄트머리, 반대쪽 끝에도 네 끄트머리가 생기는데, 그것을 180도 돌려서 붙이면 끄트머리들이 연결되어 재생되고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앞뒤를 뒤집어서 붙여도 마찬가지로 적응할 수 있다. 위아래를 뒤집은 다음 앞뒤를 뒤집어서 붙여도 (비록 몇 가지 행동은 그리 잘 해내지 못하지만)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뇌를 잘라냈다가 90도로 돌려서 붙이면, 회복되지 않는다. 끄트머리들이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뇌를 잘라낸 뒤 동물의 등에 구멍을 내 거기에 집어넣으면 꽤 별 탈 없이 움직인다. 고작 2000개의 뉴런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IBM PC의 펜티엄 프로세서를 꺼내 맥 PC의 소켓에 거꾸로 끼웠는데, 작동한다고 상상해보라. 현재 우리 공학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지만, 생화학(또는 생물학)은 온갖 곳에서 그런 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생화학(또는 생물학)적 시스템을 만지작거리고 가공함으로써, 우리가 이해한 복잡성과 계산의 의미에 변화가 일어나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언젠가는 생명체의 복잡성을 다른 어떤 식으로 이해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컴퓨터 계산이 새로운 물리학이나 화학을 활용하지 않은 채 이전의 수학에서, 꽤 전통적인 수학을 재고함으로써 나온 것이고, 1937년에 개발된 계산 개념이 그 뒤로 30~40년 동안 다듬어진 것처럼. 또 비유하자면 계산이 이전의 이산수학(discrete mathematics)이었듯, 우리가 이 복잡성 이해를 기존 정보나 계산 이해와 관련지어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50~100년에 걸쳐, 생화학(또는 생물학)의 이해에도 현격한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공학 전체와 우리가 공학을 생각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물론, 똑같은 유전암호 모듈을 이용해서 똑같은 몸을 대상으로 실험을 두 번 시도해도 결코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일란성 쌍둥이를 생각해 보라!)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