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모든 것에 대한 연구로 간주될 수 있으며, 과학을 포함하여 다른 모든 앎 방식의 어머니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철학은 이런저런 이유로 악명이 높다. 많은 사람들은 철학을 공부하는 것을 완전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그들에게도 철학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삶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 의견이 아무리 모호하더라도, 의식적으로 특정 철학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어떤 철학도 따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그것 역시 하나의 철학적 입장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어떤 철학적 입장에 서있는 것일까? 대표적인 입장인 “합리주의(Rationalism)”와 “경험주의(Empiricism)”부터 시작해 보자.

 

과학과 합리적 담론에 대한 현대 사회의 강조를 감안할 때 합리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합리주의의 창시자는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인데, 그는 경험 없이도 지식을 얻는 방법으로 합리주의를 생각했다.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은 데카르트가 도달한 최초의 합리주의적 결론이었다. 그런데, 데카르트의 두 번째 “자명한” 결론은 신도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자명한” 결론인가? 여기서, 우리는 데카르트의 합리주의가 상당히 비합리적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합리주의의 발전과 동시에,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과 존 로크(John Locke)와 같은 영국 철학자들은 지식에 대한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즉, 다른 인식론)인 “경험주의”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경험주의는 세계에 대해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 세계를 관찰하는 것, 즉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대 과학은, 비록 합리주의의 원리도 일부 포함되어 있지만, 분명히 17세기 경험주의에서 시작되었다. 경험론자들 이전의 세계는 마술적이고 신비로운 설명이 지배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는, 주요 지지자들 사이의 격렬한 논쟁에서 알 수 있듯이, 서로 모순되는 철학이다. 하지만 오늘날 스스로를 합리주의자라고 여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주의에 기반을 두고있는 과학적 방법도 수용한다. 그렇다면 결국 화해가 가능한 것인가? 임마뉴엘 칸트(Immanuel Kant)는 확실히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그의 해결책은 오늘날의 합리주의 운동 추종자들 대부분에게는 큰 호소력이 없었다. 신을 믿고 싶어하는 것은 철학자의 마음을 밝혀주는 합리적 이상이며 따라서 경험적 사실이라고 그는 제안했던 것이다. 게다가 칸트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 지각하는 것(경험주의)의 상당 부분이 사실 우리 마음(합리주의)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을 관찰했는데, 이러한 일반화는 그를 이상주의 철학으로 이끌었다.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회의론(Skepticism)”은 어떤가? 회의론은 “누군가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간결하게 정의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대표적인 회의론자는 소크라테스(Socrates)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제자들에게 그들의 사고 방식의 오류를 보여주기 위한 질문을 함으로써 가르쳤다(소위 “소크라테스 방법”). 그리고 데이비드 흄(David Hume) 역시 오늘날 과학의 궁극적인 목표로 여겨지는 현상들 사이의 인과 관계를 확립할 가능성을 부인하기까지 하였지만 탁월한 회의론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회의론은 지식 이론이 아니라 사실이 아닌 것을 밝히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철학으로서의 합리주의나 경험주의와 많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회의론과 관련된 보다 현대적인 방법은 통계학적 방법인 두 가지 근본적인 유형의 오류 중 하나를 범할 확률로, 실제로 올바른 결론을 거부하는 것(극도의 회의론) 또는 잘못된 결론을 받아들이는 것(극도의 속기 쉬운)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회의론에 따르면 50%-50% 규칙이 반드시 좋은 타협인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한편, “인본주의(Humanism)”는 14세기에 유럽(대부분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다.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원래 하나님과 하나님의 의지 또는 의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관계없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르네상스와 인본주의로부터 근대 즉 과학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인본주의는 진정한 의미의 철학적 입장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유일성과 가치를 선언하는 세상에 대한 태도이다. 참고로, 14세기 훨씬 이전에도 많은 철학자들은 매우 유사한 의미로 인간에 초점을 맞추었다. 예를 들어, 그리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말한 바 있다. 프로타고라스는 소피스트(sophist, “(겸손하지 않은) 전문가”를 의미)였는데 그의 진술은 진리가 절대적이지 않고 인간마다 다르게 인식된다는 상대주의 철학의 초기 사례로 일반적으로 간주된다(참고로, 상대주의 관점에서 때때로 객관적인 현실과 같은 것은 없으며 우리가 지각한 우주는 사실 상상의 산물일 수 있다는 학파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발언보다 더 인본주의적인 진술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자연주의(Naturalism)”는 목적의 효과적인 달성이라는 측면에서 “유물론(Materialism)”과 동일하다. 마르크스주의와 관련이 있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얻게된 부정적인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는 유물론은, 형이상학적 세계는 없다고 보며, 존재(existence)는 전적으로 물리적이라는 보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식을 획득하는 정신적 과정을 포함하여 우리의 모든 감각은 뇌의 물리적 특성(이것이 암시하는 모든 능력과 결점 포함)을 기반으로 한다.

 

일부 사람들이 믿는 것과 달리 “사실주의(Realism)”는 자연주의 및 유물론과 공통점이 별로 없다. 이는 사실주의가 우리의 마음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보편이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예: “녹색”은 특정 사물이 가지는 구체적인 녹색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보편성이라는 것이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현실의 일반적인 속성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유물론과 매우 흡사하다고 볼 수 있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유물론이 구별된다는 것은 오컴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의 “명목주의(Nominalism)” 형식에 기반한 사실주의에 대한 반응에 의해 확인된다. 명목주의는 보편성이라는 것이 단순히 특정 대상의 속성을 일반화한 것이며 이러한 일반화는 우리 마음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며 외부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때 ‘오컴의 면도날’ 주장이 등장하게 된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동일한 현상에 대해 가능한 설명들이 서로 다른 수의 가설에 의존하는 경우, 다른 모든 것이 동등하다면 가장 적은 수의 가설을 필요로 하는 설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가장 간단한 설명이 더 정확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실주의가 아니라 명목주의가 현대 과학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오컴의 면도날이 과학적 방법의 철학적 기둥 중 하나라는 사실에서 분명하다.

 

지금까지의 살펴본 것들 대부분은 논리적인 용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논리(Logic)”란 무엇일까? 그리고 과학과 철학의 주요 목표인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지식체계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는데 논리가 어떻게 도움이 될까?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논리적이라고 부르는 두 가지 주요 방법이 있다. 바로 “연역(Deduction)”과 “귀납(Induction)”이다.

 

연역은 여러 가정으로 시작하여 이러한 가정에서 논리적으로 필요한(즉, 내부적으로 일관된)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아래에서 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은 연역의 한 예이다.

  1. (만약) 모든 인간은 죽는다(대전제)
  2.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소전제 또는 관찰)
  3. (그럼) 소크라테스는 죽는다(결론)

일반적인 대전제(1)와 소전제 또는 구체적인 관찰(2)로부터 결론(3)까지 논리적으로 이어진다. 반면에 귀납법은 특정 사건의 많은 사례를 관찰하여 일반화를 추론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물리학 법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내일 태양이 떠오를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귀납법은 베이컨에 의해 초기 과학적 방법의 일부로 정식화되었다.

 

연역은 대전제와 소전제가 옳다면 결론이 정확하다는 점에서 귀납보다 논리적으로 더 강력한 방법이다(단, 결론에 이르는 연역적 추론에 있어서, 소전제의 경우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연역적 추론에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반면 귀납법은 과거에 주어진 결과를 생성한 조건이 크게 변경된 경우 오류가 발생하기 쉽다. 아래에서 보는, 버트랜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언급한 바 있는 귀납적 칠면조의 고전적인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칠면조는 농장에서 아침 7시경에 식사를 했다. 칠면조는 훌륭한 귀납주의자였으므로 충분한 관찰이 수집될 때까지 새로운 장소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수백 일이 지난 후 칠면조는 매일 아침 7시경에 식사를 했다는 사실을 기록하는 메모를 했다. 그러나 칠면조는 매우 훌륭한 귀납주의자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더 많은 관찰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마침내 364일 동안 일관된 관찰을 한 후 칠면조는 일반적인 예측을 할 만큼 자신감을 얻었다. 즉, 칠면조는 다음 날 아침 7시에도 음식을 먹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날은 추수 감사절이었다.

 

이와 같은 귀납법에 대한 경고적인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귀납법은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통계학 전체 분야는 인과 메커니즘의 설명이 아니라 관찰의 외삽(Extrapolation)을 통해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에 귀납에 기반한다. 통계는 적어도 오해의 소지가 있고 실제로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만 생물학 및 사회학과 같은 복잡계 과학(complex sciences)에서는 통계적 사고 방식이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또한 귀납법은 과학적 방법의 초석인 가설을 생성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순수한 연역은 삼단논법과 같은 연산의 엄격한 범위 내에서만 새로운 지식을 생성할 수 있는 폐쇄된 시스템이다.

 

두 가지 방법 모두를 사용할 수는 없을까? 연역법과 귀납법의 장점을 결합하면서 동시에 각각의 방법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사실상 있다고 할 수 있다. 변증법(Dialectics)으로 알려져 있는 이러한 방법은, 소크라테스가 최초로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어떠한 아이디어들에 대한 전제를 조사하고 한 아이디어에서 다른 아이디어로 이동하여 그 아이디어들이 비판을 어떻게 견뎠는지 확인함으로써 아이디어들을 비교했다. 이렇게 왔다갔다 하는 과정이 변증법적 접근을 구성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이른바 “가설적-연역적 방법(Hypothetical-Deductive Method)”,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방법의 기초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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