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벌레 속(屬) 로에셀리 110년 전 연구 결과 빛 봐
나팔벌레속(屬) 단세포 생물 S.로에셀리의 다양한 자극 반응 [Dexter et al. & Current Biology 제공]
하나의 세포로만 이뤄진 단세포 생물이 전혀 단순하지 않은 복잡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신경계를 가진 다세포 동물만 복잡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통념을 뒤집는 것이다.
생물의학 분야 저널을 발간해온 ‘셀프레스(Cell Press)’에 따르면 하버드의대 시스템 생물학자 제레미 구나와르데나 부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민물 원생생물인 ‘스텐토르 로에셀리(Stentor roeseli)’가 자극에 다양하게 반응하며 복잡한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을 담은 연구 결과를 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실었다.
S.로에셀리는 나팔을 닮은 무색의 원생생물로 현미경 없이 맨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크다. 조류(藻類) 등에 붙어 생활하며 섬모를 움직여 먹이를 “입”으로 가져간다.
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이미 1906년에 미국 동물학자 허버트 제닝스가 똑같은 결과를 내놓아 관심을 끌었지만 이후 다른 실험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바람에 학문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장되고 말았다.
구나와르데나 연구팀은 제닝스 이후 연구에 사용된 단세포 생물이 S.로에셀리가 아니라 나팔동물 속(屬)의 다른 종(種)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S.로에셀리를 이용해 100여년 전 연구의 재현에 나섰다.
제닝스는 화학물질을 쏴 S.로에셀리를 자극했지만 구나와르데나 연구팀은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스타이렌 미세 구슬을 쏘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폈다.
그 결과, 총 57차례의 실험에서 S.로에셀리가 폴리스타이렌 미세 구슬 자극에 ▲몸통을 굽혀 구슬을 피하거나 ▲섬모 운동 방향을 바꿔 구슬을 입 주위에서 밀어내고 ▲몸통을 수축하고 ▲조류에서 떨어져나와 다른 곳으로 가는 등 제닝스가 처음 보고한 회피 반응들이 모두 확인됐다.
S.로에셀리를 자극하는 실험 한 장면 [Dexter et al., Current Biology 제공]
각 개체의 반응은 편차가 커 제닝스가 제시했던 일관성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통계적 분석을 통해 S.로에셀리가 불쾌한 자극을 피하기 위해 처음에는 몸을 굽히거나 섬모운동 방향을 바꾸고 그래도 자극이 계속되면 몸을 수축하는 것을 찾아냈다.
이는 S.로에셀리가 이전 경험을 토대로 단계별 회피 행동을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연구팀은 이를 “순차적 의사결정 형태”로 해석했다.
특히 S.로에셀리가 불쾌한 자극에 몸을 수축한 뒤에는 다시 수축할 것인지 아니면 조류에서 떨어져 나와 다른 곳을 갈지를 결정할 때는 동전 던지기처럼 50대50 가능성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세포 생물에는 상당히 놀라운 능력으로, 이런 예측할 수 없는 의사결정이 포식자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지적됐다.
구나와르데나 부교수는 한 과학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 결과는 S.로에셀리가 자극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으로, “단세포 생물이 상당히 복잡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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