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절 에너지란 무엇일까?

 

 

과학백과를 찾으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일’은 또 무엇일까?

역시 찾아보니 ‘물체에 힘을 가했을 때 힘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 거리’ 즉 ‘힘×거리’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또 힘은 무엇일까?

 

‘힘은 자연계에 중력전자기력약력강력 4가지가 있는데

이를 매개하는 입자에 의해 전달되는 작용’이라고 한다.

 

 

드디어 우리가 뭔가 실체라고 부를만한 것이 처음 등장한다.

 

‘힘을 매개하는 입자’

결국 에너지의 근원은 입자인가?

 

 

 

에너지는 그 종류도 엄청나다.
에너지 앞에 그 원천에 해당하는 단어를 갖다 붙이기만 해도 단어가 된다.

태양에너지핵에너지석유에너지소리에너지수소에너지,
생물에너지지열에너지재생에너지청정에너지 등.

과학적으로는 운동에너지위치에너지열에너지빛에너지전자기에너지 등 기본적인 에너지가 있고활성화에너지내부에너지자유에너지 등 과학을 제대로 공부해야 이해할 수 있는 에너지도 있다.

20세기 초 상대성이론에 의해 질량이 에너지와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는 E=mc2가 나왔다.
이는 결국 이 세상 만물이 모두 에너지라는 얘기이다.




 

 

이걸로도 부족하다는 듯 결정적 한방은 ‘암흑에너지’였다.
아무 것도 없는 진공이라고 여겼던 곳에도 에너지가 숨어있단다.
그렇다면 결국 물질도 공간도 모두 에너지란 말인가?
물질이 에너지 덩어리인 건 그렇다 쳐도  공간에 숨어있는 에너지란 또 뭐란 말인가?

에너지는 변신의 귀재라서 물질의 모든 변화에도 관여한다.
여러분 주변에서 움직이거나 뭔가 바뀌는 물체가 있는지 살펴보라.

사람이 움직이고 자동차가 지나가고 누군가 음식을 먹고 불을 켜고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밖에는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등등.

 

 

 

심지어 눈으로 볼 수 없는 움직임도 있다.
켜져 있는 냉장고집 안의 식물들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분 자신의 몸 속,
또는 이 글을 열심히 읽고 있다면 여러분의 뇌 속.

이 중에 에너지와 무관한 것이 있는지 잘 생각해 보라.
에너지는 세상을 바꾸면서 그 자신도 모습을 바꾼다.
때로는 움직임으로때로는 열이나 빛으로혹은 전기와 자기로 변신하고,
어떤 때는 공간상의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 그 크기를 바꾼다.

에너지는 변화의 동인이자 척도이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에너지는 아무리 사용해도 모습만 바뀔 뿐 절대 줄지 않는다.
에너지의 총량은 절대불변이다.
이게 그 이름도 신박한 ‘열역학 제1법칙, 에너지 보존 법칙’이다.

 

都大體 에너지란 무엇일까?

이처럼 우리는 에너지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에너지라는 말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서인지 에너지라는 단어를 1849년에 윌리엄 톰슨이 처음 과학적으로 사용했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놀란다.

고작 그것 밖에 안 되었다고?!
하지만 인류가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많은 천재들의 재능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산업혁명에서 시작한다.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한 산업혁명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기술에 의한 혁명이었다.
섬유 산업과 철강 산업에서의 기술적 혁신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증기기관으로 대표되는 열기관의 등장이 중요했다.

그러한 열기관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였다.
 
2차 대전 때 핵무기를 누가 먼저 개발하느냐를 놓고 경쟁을 벌였듯이,
열기관의 효율을 놓고 당대의 내로라하는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머리를 싸맸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놓고 볼 때 ‘열역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태동과 발전은 당연한 것이었다.
열역학에 대한 산발적 관심과 연구는 그 전에도 있었지만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열역학은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한다.

‘열역학 Thermodynamics’은 이름 그대로 열과 일에 대한 학문이다.

 

열熱 + 역力
Thermo + Dynamics

 

물론 이름에서는 ‘힘 역力’자가 사용되었지만
당시에는 힘이라는 단어가 오늘날 일이나 에너지와 비슷한 의미로 쓰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열역학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100년 남짓한 기간 동안 확고부동한 학문으로 자리 잡는다.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일과 열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자.
아까 얘기처럼 일은 가해 준 힘에 이동한 거리를 곱한 양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열이 이동하는 걸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뭔가 가해 준 힘이라는 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저절로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열이란 무엇이고 우리가 뜨겁거나 차갑다고 느끼는 건 뭘까?

18세기 후반까지 많은 과학자들은 열을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프랑스의 위대한 화학자 라부아지에는 열은 ‘칼로릭(caloric)’이라는 원소가 흐르는 것으로 생각했다.
역시 프랑스의 과학자 사디 카르노는 물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터빈을 돌리듯이
이러한 칼로릭의흐름이모든열기관의동력이라고 생각했다.

 

 

앙투안 라부아지에(1743~1794)

 

 

하지만 이미 1789년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군인이었던 벤저민 톰슨은
칼로릭 이론을 부정하고 열의 본질이 운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포의 포신을 물에 담그고 포신의 내부에 세게 마찰을 가하면
주위의 물이 뜨거워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게다가 온도가 일정 정도 올라가는 게 아니라 물이 끓을 때까지 계속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관찰했다.
 
만약 칼로릭이라는 원소가 있다면 그 양은 유한할 것이고
따라서 온도도 어느 정도 이상 올라갈 수 없을 텐데,
마찰을 계속 가하면 온도를 계속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따라서 온도는 마찰이라는 운동 또는 일에 의해 상승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1843년 시작한 주울의 유명한 ‘열의 일당량’ 실험은 일이 열로 바뀔 수 있음을 결정적으로 입증했다.

 

제임스 줄(1818~1889)과 그의 실험장치

 

 

그는 그림과 같은 실험장치로 추가 아래로 떨어지는 ‘운동’이
물속의 바퀴를 돌려 물의 온도를 높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운동에 의한   바뀔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무려 4년간에 걸쳐 실험을 정밀하게 반복하여
1847년 열의 단위인 칼로리와 일의 단위인 주울 사이에 1cal=4.18J이라는 관계가 있음을 보였다.
물론 당시에 주울이 사용했던 일의 단위는 ‘주울’이 아니었다.
나중에 윌리엄 톰슨이 주울의 업적을 높이 사서 에너지 단위에 그의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1주울 : 1뉴턴의 힘으로 1m 움직였을 때 한 일 = 심장이 한번 박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어쨌든 주울은 이처럼 서로 다를 것 같았던 일과 열 사이에 다리를 놓았고,
이로서 모든 것을 에너지로 통합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

하지만 여전히 열의 정체는 모호했다.
이제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칼로릭 이론은 버렸지만
여전히 열은 어떤 미지의 에너지의 흐름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에너지론’이라고 하는데 당시에 막 발아하기 시작한 ‘원자론’과 대립각을 이루었다.

지금의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 만물이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원자론’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개 가설에 불과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브라운 운동’을 원자론으로 설명했을 때도
많은 과학자가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하니 그 전이야 말해서 뭣하겠는가?

1908년 장 바티스트 페랭이 이를 이론의 여지없이 증명하고 나서야
원자론은 이제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에너지와 원자모두 근대 과학혁명의 산물들인 것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에른스트 마하와 같은 당대의 석학들이
소위 실증주의 학풍을 주도하면서 실험과 관찰로 입증되지 않는 것은 믿지 않겠다는 풍조가 만연했다.
따라서 열에 대한 원자론적 설명인 ‘기체운동론’은 당시에 많은 과학자들에게 배척당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기체운동론을 이끈 세 명의 과학자는 모두 당대의 천재라 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바로 클라우지우스와 맥스웰그리고 볼츠만,
그리고 이들은 이른바 ‘원자론 대 에너지론의 전쟁’에서 원자론 진영의 선봉장들이었다.

 

 

클라우지우스와 맥스웰, 그리고 볼츠만

 

 

1857년 클라우지우스는
기체의 압력과 온도가 입자들의 평균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기체운동론’을 발표했다.

1866년 맥스웰은 클라우지우스의 이론을 속도의 분포까지 고려한 이론으로 발전시킨다.
즉 입자들 중에는 속도가 빠른 것도 있고 느린 것도 있기 때문에
이를 통계적으로 고려해야 정확한 이론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볼츠만은 이러한 클라우지우스와 맥스웰의 생각을 발전시켜,
1872년 입자들의 충돌을 오직 뉴턴 법칙만을 적용해서 설명하고,
맥스웰의 분포 함수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맥스웰볼츠만 분포’를 발표한다.




간략히 정리하면 볼츠만이 클라우지우스의 기체운동론과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맥스웰의 통계적인 수학적 방법을 활용하여 완성한 것이다.

물론 그 당시의 과학자들은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볼츠만은 다른 과학자들과의 오랜 논쟁 끝에 신경쇠약에 걸려 고생하다,
1906년 가족들과 여행을 떠난 이탈리아의 한 호텔 방에서 목을 매어 자살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1905년 아인슈타인이 마침내 원자론을 증명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여곡절 끝에 열의 본질이 밝혀졌다.
결과는 원자론의 압승놀랍게도 열은 입자들의 평균 운동에너지였던 것이다.
무수히 많은 작은 입자들의 운동이 우리에겐 열로 감지되고 온도로 측정되는 것이다.

사실 뜨겁다 차갑다는 느낌도 그러한 입자의 운동이 우리의 피부 입자에 전달하는 신호일 뿐이다.
그걸 우리의 뇌가 뜨겁다 또는 차갑다고 느끼는 것이다.
온도를 측정하는 것도 입자들이 온도계 속의 액체와 충돌해서 에너지를 전달하고,
그 에너지에 의해 액체 전체의 부피가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것을 우리가 눈금으로 읽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열은 일이 아니다.

일을 할 때 어떤 계를 구성하는 입자들은 모두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열을 가할 때 입자들은 여러 방향으로 제멋대로 움직인다.
그래서 일은 ‘힘×거리’로 산뜻하게 정의되지만 열은 그런 식으로는 정의할 수가 없다.
하지만 외부와 에너지를 교환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일과 열은 동일하다.

자 이제 조금씩 에너지의 정체에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마지막 단계로 진행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들을 보다 명확히 이해해보자.
먼저 ‘계’라는 개념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계는 열역학에서 ‘우리가 관심이 있는 부분 또는 영역’을 말한다.
이를테면 열기관도 계가 될 수 있고 우주 전체도 하나의 계로 생각할 수 있다.
계가 아닌 모든 부분은 ‘주위’라고 한다.

열기관의 경우 열기관을 제외한 우주 전체가 ‘주위’이다.
전체 우주를 하나의 계로 생각하면 ‘주위’는 없다.

계에는 ‘고립계, 닫힌계, 열린계’가 있다.
‘고립계’는 주위와 물질과 에너지 교환이 없는 계,
‘닫힌계’는 에너지 교환만 가능한 계,
‘열린계’는 물질과 에너지의 교환이 모두 가능한 계이다.
우주는 고립계이고, 핸드폰은 닫힌계, 우리는 열린계이다.
핸드폰은 주위와 에너지만 교환하고, 인간은 물질도 먹고 배설하니까.

 

 

순서대로 고립계, 닫힌계, 열린계

다음엔 좀 더 어려운 ‘내부에너지’라는 개념이다.
내부에너지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여러분이 던져 올린 공이 하늘 높이 솟았다가 떨어진다고 생각해보자.

시시각각 그 공의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는 바뀐다.
속도로 정의되는 운동에너지는 처음엔 그 값이 크지만
높이가 최대가 되어 속도가 0이 되면 에너지도 0이 된다.

위치로 정의되는 위치에너지는 처음엔 그 값이 작지만
높이가 최대가 되면 위치에너지 값 역시 최대가 되고 땅에 떨어지면 0이 된다.

이렇게 운동에너지와 위지에너지 각각은 그 위치에 따라 계속 달라지지만 그 합은 일정하다.
이를 ‘역학적 에너지’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이러한 역학적 에너지처럼
어떤 계의 모든 내부 입자들의 운동에너지와 퍼텐셜 에너지의 합을 ‘내부에너지’로 정의한다.
여기서 퍼텐셜 에너지란 분자들 사이의 역학적 에너지전기적 에너지전자들이
다른 에너지 상태로 전이할 때의 에너지 변화 등등이 모두 포함된다.
당장 일과 열로 전환되지는 않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는 에너지를 통칭해서 퍼텐셜 에너지라고 한다.

 

 

(원문: 여기를 클릭하세요~)

 

 

 

아래는 2019년 7월 3일 뉴스입니다~

(원문: 여기를 클릭하세요~)

 

인간이 고안한 ‘칼로리’, 인간을 지배하다

에너지 개념을 적용하면, 우리의 몸은 기계와 다를 것이 없다. 대단히 복잡하고 정교하지만, 결국은 땔감(영양소)을 공급받아 그것을 운동 또는 열의 형태로 변환하여 각 기관에서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다.

프리츠 칸 ‘인체라는 산업 궁전’(1926). 1920년대 무렵이면 서구에서는 인간의 몸을 기계 또는 기계의 집합인 공장으로, 인간이 섭취하는 음식물을 그 기계를 돌리는 연료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널리 퍼졌다. 칼로리 등 숫자로 음식의 영양가를 따지는 생각도 이때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 위키피디아

인간은 먹어야 산다. 하지만 왜, 어떻게 그런가? 우리가 먹은 음식은 어떻게 우리 몸을 지탱하고 힘을 주는가? 이 당연해 보이는 일을 아귀가 잘 맞게 설명하기 위해 예로부터 수많은 현인들이 여러 가지 궁리를 했다. 고대 그리스의 갈레노스는 인간이 먹은 음식물이 정맥을 따라 간에서 ‘자연의 영’으로 바뀌고, 이것이 심장에서 깨끗한 공기와 만나 ‘생명의 영’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맥을 따라 뇌로 간 생명의 영은 다시 정화되어 ‘운동의 영’이 되고, 신경계를 따라 흐르며 우리 몸 각 부분에 명령을 내려준다는 것이다.
열과 에너지, 그리고 영양

한편 동아시아 전통의학에서는 인간이 음식을 먹으면 그 안에 담겨 있던 정(精)과 기(氣)가 우리 몸으로 들어오고, 그것을 토대로 혈액이나 진액 같은 물질적 구성 성분과 신(神) 등 비물질적 작용이 나타난다고 설명해 왔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형체 있는 음식이 우리 몸 안에 들어가면 형체 없는 뭔가로 바뀌고, 거기에서 나오는 힘이 우리를 지탱해 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할 적절한 개념은 한참 뒤에야 예상치 못한 영역으로부터 등장했다.

건강이나 몸매에 신경을 쓰는 이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낱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칼로리’일 것이다. ‘백미밥 한 공기는 280㎉, 콜라 한 캔은 130㎉…’ 등의 숫자를 외우다시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 숫자는 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온 것일까?

‘칼로리(calorie)’라는 말은 라틴어로 열을 뜻하는 ‘칼로르(calor)’에 프랑스어 어미 ‘-ie’를 붙여 만든 낱말로, 오늘날 열의 단위로 쓰인다. 구체적으로는 1g의 물의 온도를 섭씨 1도 높일 만큼의 열을 뜻한다. 학교 수업시간에 칼로리라는 말은 물리학, 생물학, 체육, 가정·가사 등 여러 과목의 교과서에 뿔뿔이 흩어져 등장한다. 하지만 그 역사는 사실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칼로리라는 말이 생겨나기 전에 먼저 생겨난 말이 ‘칼로릭(caloric)’이다. 아마도 ‘열소(열의 원소)’라는 이름으로 번역할 수 있을 텐데, 근대 화학의 기초를 닦은 라부아지에(1743∼1794)가 만들어낸 말이다. 그는 〈화학원론〉(1789)에서 서양에서 예부터 내려온 4원소설을 거부하고, 모두 33개의 원소를 새롭게 이름 지었다. 그 중에서 산소, 수소, 질소 등은 오늘날까지 원소로 인정받고 있지만, 빛(lumiere)과 열소(caloric)는 뒷날 원소가 아니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열이 물질의 한 갈래라는 라부아지에의 가설은 곧 기각되었지만, 칼로릭이라는 이름은 후대의 학자들에게 여러 갈래로 영감을 주었다. 프랑스의 니콜라 클레망은 1824년 ‘칼로리’라는 단위로 열을 측정하자고 제안했다. 칼로리는 역시 프랑스에서 만든 미터법과 깊이 결부된 단위였으므로(‘물 1g’ 또는 ‘가로, 세로, 높이 1㎥ 부피의 물’은 모두 미터법을 기반으로 정한 양이다.) 미터법과 더불어 점점 널리 보급되었다. 1860년대 무렵이면 유럽 대륙과 영국의 사전들에 칼로리라는 신조어가 추가되었다.

한편 바다 건너 영국에서는 물리학자 제임스 프레스콧 줄(1818∼1889)이 운동과 열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까다로운 실험을 반복하고 있었다. 줄은 1840년대 초반, 무거운 추가 낙하하는 운동을 이용하여 단열된 통 안의 물을 휘젓고, 그 물의 온도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측정하는 실험을 설계했다. 반복된 실험을 통해 그는 물 1g의 온도를 섭씨 1도 올리기 위해서는 ‘1뉴턴(N)의 힘을 받은 물체가 1m 움직일 때 필요한 에너지’(이것은 뒷날 줄의 이름을 따서 ‘1줄(J)’로 명명되었다)의 약 4.2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중·고등학교 시간에 억지로 외우곤 하는 ‘열의 일당량’, 즉 ‘1cal=4.2J’이라는 공식은 이렇게 유래한 것이다.

줄의 실험은 물리학뿐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운동, 열, 전기와 자기, 화학반응 등은 수천 년 동안 별개의 범주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에너지’라는 큰 틀 안에서 이제 이 모든 현상을 하나로 묶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보일러는 석유나 석탄 속에 숨어 있던 화학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변환하고, 증기기관이나 가솔린엔진은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변환한다. 전동기는 전기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발전기는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 준다. 이제 이 모든 반응을 줄 또는 칼로리라는 하나의 물리량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칼로리가 알려주는 것, 알려주지 않는 것

그러면 생명체가 음식을 먹으면, 그 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역시 칼로리가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음식에 담겨 있던 화학에너지는 소화기관에서 잘게 쪼개져 흡수되고, 순환기관(혈관)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의 세포까지 전해진다. 세포의 소기관들은 영양소들을 열에너지 또는 운동에너지로 바꾸어 근육을 움직이고, 체온을 높이며, 신경세포 사이에 신호를 주고받는다. 칼로리로 표현되는 에너지 개념을 적용하면, 우리의 몸은 기계와 다를 것이 없다. 대단히 복잡하고 정교하지만, 결국은 땔감(영양소)을 공급받아 그것을 운동 또는 열의 형태로 변환하여 각 기관에서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줄이 물을 휘젓는 실험을 거듭했듯이, 인간이라는 기계의 열효율도 측정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의 화학자 윌버 애트워터(1844∼1907)는 인간 기계의 에너지 대사를 측정하기 위해 폭 4피트, 높이 8피트의 단열된 방을 만들었다. 그 안의 실험자가 들이마시는 산소의 양과 섭취한 음식의 양을 측정하고, 내놓는 이산화탄소와 땀과 배설물의 양과 온도를 측정하여, 인간이 음식물로 받아들인 화학적 에너지의 양과 체온으로 내놓는 열에너지의 양 사이의 관계를 알기 위해서였다.

애트워터는 수백 건의 실험을 거듭한 결과 오늘날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통계를 얻었다. 인체의 소화흡수를 거쳐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1g이 4㎉의 열량을, 지방은 9㎉의 열량을 낸다는 이른바 ‘4-9-4 법칙’ 또는 ‘애트워터 시스템’이 바로 이때 탄생한 것이다. 칼로리는 이제 열의 단위일 뿐 아니라 영양의 지표가 되었다.

음식물의 가치를 숫자로 잴 수 있다는 생각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1900년대가 되면 미국의 영양학 교과서들은 무게나 부피가 아니라 ‘100칼로리를 얻을 수 있는 분량’ 같은 식으로 여러 가지 식품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무게를 줄이려면 얼마나 적은 칼로리를 섭취해야 한다든가, 몸무게를 늘리려면 칼로리 섭취를 얼마나 늘려야 한다든가 등의 지침이 대중매체에 범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0여년 후, 현대인들은 각자 하루에 먹은 음식들을 검색해 보고 칼로리를 계산한다거나,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집어들다가 칼로리를 확인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칼로리라는 개념은 인간이 자연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지만, 이제는 그 개념이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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