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우리나라 최악 범죄로 꼽히는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가 33년 만에 특정됐다. 유족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는 소식이다.

잠자고 있던 증거품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경찰은 범죄 현장에서 나온 증거품에 대한 재감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겼다. 오래된 증거품에서 나온 DNA로 용의자를 특정한 사례가 있었기에 과학의 힘에 다시 기대를 걸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국과수는 5·7·9차 사건 증거품에서 동일인 DNA를 얻었고 이것이 현재 복역 중인 한 수감자 유전정보와 일치하는 것을 밝혀냈다. 검찰은 현재 살인·성폭력 등 재범 위험성이 높은 11개 범죄군의 형 확정자 등 16만9180명 DNA 정보를 갖고 있다.

보통 DNA 분석 정확도를 99.99% 이상으로 일컫는다. 상황을 감안하면 사실상 범인으로 확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DNA 분석은 최근 범죄 수사나 신원 감식, 친자 확인 분야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과학수사와 DNA 분석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DNA가 확실한 증거로 쓰이는 이유는 사람마다 고유한 염기서열 부위를 갖기 때문이다.

1984년 영국 유전학자인 알렉 제프리즈는 염기서열이 반복되는 부위를 포함하는 DNA의 부위를 발견하고 사람마다 그 반복되는 숫자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유전자 지문’이라는 표현도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후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증폭하는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기술까지 개발되면서 유전자분석이 일대 전기를 맞았다. 작은 DNA 증거만 있어도 이를 수만배 불려 특정 DNA와 비교할 수 있게 됐다.

범죄 수사에서 DNA 분석은 짧은 반복서열(Short tendem repeat·STR)을 주로 사용한다. 2~5개 짧은 염기서열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부위다. 이 반복되는 수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개인 식별에 이용된다.

초기 DNA 분석은 적은 시료 또는 부패된 시료로는 분석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STR 부위는 기존의 방법으로는 하지 못했던 부위까지 분석이 가능하다. 분석 부위가 짧고 반복되는 염기가 2-4개로 매우 적어 분석이 용이하고 자동화하는 데 매우 유리하기 때문이다.

유전자분석은 여러 단계를 거친다. 크게 보면 증거물에서 DNA를 분리하고 PCR 기법을 통해 증폭한 뒤 이를 전기영동해 대조 DNA와 비교하는 과정이지만 다양한 세부 과정이 있다.

육안 관찰이 끝난 증거물에 묻어있는 흔적이 실제로 혈흔, 정액 등인지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예비실험을 거친 뒤 증거물을 알맞은 크기로 절단하고 DNA를 분리한다. 분리한 DNA는 PCR를 통해 증폭하고 전기영동을 거쳐 감정물의 유전자형을 결정한다.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법이 쓰이기도 한다. STR 분석과는 다르게 핵 외에 존재하는 미토콘드리아에 있는 DNA를 분석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약 1.65kb 정도로 매우 작은 원형의 DNA다. 미토콘드리아 DNA에는 사람마다 변이가 심한 초변이 영역으로 불리는 HV1 및 HV2 부위가 있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핵 DNA와는 다르게 모계유전이다. 형제자매만 있는 경우 신원확인 등에 응용된다. 또 한 세포 안에 많은 수 복제수를 갖고 원형 작은 유전자로 되어 있어 치아, 뼈와 같이 STR 분석이 곤란하거나 불가능한 시료 분석에 쓰인다.

DNA 분석은 장기 미제 사건 해결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한 사람에게서 나온 생물학적 시료는 그 유전자형이 같다. 사람 유전자는 죽을 때까지 유지된다. 한 사람이 여러 곳에서 범행을 하고 다른 종류 증거물이 현장에서 발견되더라도 같은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다. 유전자형을 알고 있으면 이번 사례처럼 세월이 많이 흘러도 범인임을 입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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