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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폭염이 지속되면서 냉방기 사용에 따른 전력 사용량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고 한다. 에너지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될 때마다 가끔씩 고개를 드는 것이 있는데, 바로 상온 핵융합이다. 사기사건이 많았던 영구기관(永久機關)처럼 인류의 미래 에너지 문제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다고 떠드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의도적인 조작이나 사기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성급한 성공 발표로 혼란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성급한 상온 핵융합 발표로 대학에서 쫓겨난 폰스와 플라이슈만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핵융합 발전을 위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오늘날에도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유럽연합,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인도와 함께 공동으로 진행되는 ITER((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 국제 열핵융합 실험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한국형 핵융합장치인 KSTAR(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의 상용화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핵융합 장치는 초고온의 플라즈마, 초전도, 고냉각 등 어렵기 그지없는 온갖 극한기술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언제쯤 상용화에 성공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지난 1989년 3월, 세계 각국의 주요 언론들은 인류의 오랜 숙원인 에너지 문제가 곧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고무적인 보도기사를 일제히 쏟아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주요 신문들의 1면 톱기사로 보도된 바 있다. 상온 핵융합에 관해 연구하던 미국 유타대학의 화학자 스탠리 폰스(Stanley Pons)와 마틴 플라이슈만(Martin Fleischmann)이 기자회견을 열고 상온에서 핵융합 실험을 성공시켰다고 발표했던 것이다. 팔라듐 격자로 된 전극 사이로 중수를 전기분해한 결과 많은 열이 발생했는데, 핵융합 반응이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최소 1억 도 이상의 초고온이 필요한 기존의 핵융합 연구와는 달리, 상온에서도 핵융합이 가능하다는 이 소식은 전 세계의 과학자들을 충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획기적인 연구결과로 폰스와 플라이슈만은 일약 스타과학자로 떠올랐고, 연구내용을 접한 미국 행정부는 국가적인 지원방안까지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흥분과 기대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논문이 나온 후 과학자들이 관련 내용을 검증해본 결과 오류가 발견되었고, 두 과학자가 계산과정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했음이 밝혀진 것이다. 이들은 사기를 칠 작정으로 의도적으로 논문 조작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식으로 논문이 나오기도 전에 언론을 상대로 직접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은 매우 잘못된 행위였다. 결국 폰스와 플라이슈만은 전문 학술지를 통해 검증을 받기도 전에 대중에게 발표해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고 유타대학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 사건은 성급한 보도를 내놓은 언론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인식과 함께 과학언론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미국 언론계에서 논문이 나오기 전에는 연구성과를 보도하지 않는 관례가 생기게 되었다. 또한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행정부는 ORI(Office of Research Integrity,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설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영화 ‘체인 리액션’의 장면 그대로?
폰스와 플라이슈만 이후에도, 상온 핵융합에 성공했다는 언론의 보도는 가끔씩 나온 바 있다. 또한 영화의 소재로도 등장한 바 있는데, 키아누 리브스 주연, 앤드루 데이비스 감독의 ‘체인 리액션(Chain Reaction; 1996)’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시카고 대학의 이공계 대학원생인 주인공 에디(키아누 리브스 분)는 실험을 하다가, 전자 키보드에서 흘러나온 음파가 액체 관에 작용하면서 불빛과 연쇄반응이 이어져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새로운 에너지는 공해가 없고 적은 원료로 막대한 양을 만들어낼 수 있으므로 고갈되어 가는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인데, 실험이 성공하여 연구 결과의 공식 발표를 앞두고 주인공은 암살 협박을 받게 되고 실험실은 대폭발에 휩싸여 날아가 버린다. 실은 오래 전부터 이 연구를 비밀리에 진행해 온 미국 정부가 향후 상업적인 이용 등에서 주도권을 상실할 우려 때문에 관련 과학자들을 제거하려던 것이었는데, 주인공은 이러한 정부의 음모에 맞서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국내외에서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과학기술적 측면에서는 잘못되거나 허황된 부분이 거의 없고 완성도가 높으므로, 이공계 학생이나 과학기술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꼭 볼만한 영화로 꼽힌다.
영화에서처럼 액체에 특정의 음파를 쏘아주면 빛이 나오는 일은 물리학적으로 실제로 존재하는 현상이다. 이른바 Sonoluminescence 즉 ‘음파발광’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꽤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고, 여러 물리학자들이 이를 이용하여 높은 열과 에너지를 생성하려는 연구를 실제로 진행해온 바 있다.
지난 2004년 3월에는 미국의 몇몇 과학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핵융합 반응에 성공했다는 외신보도가 나온 바 있다. 즉 액체가 담긴 시험관에 초음파 진동으로 자극을 가하면서 액체 속의 작은 기포를 압착한 결과, 온도가 수백만도까지 상승하면서 일부 수소원자가 빛과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핵융합반응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국내 통신사가 인용한 당시 기사는 필자가 운영위원으로 있는 과학기술인단체의 게시판에도 올라왔는데, 필자를 비롯한 여러 회원들은 영화 ‘체인 리액션’의 장면이 정말 그대로 실현되는 것인지, 폰스와 플라이슈만의 경우처럼 성급한 발표가 아닌지 부정적인 댓글들을 단 바 있다. (그 후로는 별 다른 소식이 없는 것으로 봐서 이 역시 오류가 확실한 듯하다.)
언젠가 북한에서도 상온 핵융합에 성공했다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는데, 초고온과 온갖 난해한 기술들을 동원하지 않고 핵융합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상온 핵융합 연구는 아직도 여러 나라의 과학자들이 매달리는 흥미로운 주제이다. 이것에 정말로 성공한다면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세주가 되겠지만, 그동안 과장이나 오류가 많아서 앞으로도 웬만한 성공 발표는 ‘양치기 소년’ 취급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래는 2022년 12월 13일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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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핵융합 실험 성공… 무한청정 ‘꿈의 에너지’ 성큼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꿈의 에너지’라 불리는 핵융합 발전 연구에서 미국이 무한 청정에너지 생산을 위한 획기적인 성과를 얻어냈다. 투입된 에너지보다 생산된 에너지가 더 많은 순 에너지(net energy gain) 단계에 도달, 핵융합발전의 상용화 가능성을 한층 더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13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 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부 산하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는 최근 실시한 핵융합 실험에서 투입한 에너지보다 19% 많은 에너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순 에너지를 뽑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은 핵융합으로 전력 생산이 가능한 상태가 됐다는 의미다.
시각물_핵융합 과정
태양의 원리 이용하는 핵융합 기술
핵융합(nuclear fusion)은 원자들이 합쳐져 더 무거운 원자가 되는 반응이다. 예를들어 수소(H) 원자 두 개가 합쳐지면 헬륨(He)으로 변해 질량이 줄어들면서 에너지를 외부로 방출한다. 이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이 핵융합 발전이다.
지구상 모든 에너지의 근원이 되는 태양이 에너지를 생성하는 방식이 바로 핵융합이다. 태양은 수소를 중수소(수소보다 중성자가 하나 더 있는 수소), 삼중수소, 또는 헬륨으로 융합시키며 에너지를 뿜어낸다. 태양 외의 다른 항성(star)들도 핵융합 반응을 통해 빛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우주에서 일어나는 핵융합의 원료는 수소다. 수소는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원소 가운데 제일 가볍고 결합 에너지가 낮아 융합이 쉽다. 태양은 중력과 내부 압력이 높아 1,500만 도에서 수소 핵융합이 가능하다.
태양이 아닌 지구에서 인공적으로 핵융합을 일으키려면 엄청난 고온이 필수적. 최소 1억 도 이상의 온도가 갖춰져야 한다. 높은 온도에서 물질은 고체(얼음), 액체(물), 기체(수증기) 상태를 지나 플라즈마(초고온에서 음전하를 가진 전자와 양전하를 가진 이온으로 분리된 상태)에 도달하는데, 이 상태에서 원자핵, 자유전자가 따로 떠돌아다니며 서로 융합하게 된다.
‘무한동력’에 다가가기 위해선 ‘점화’ 단계에 도달할 정도의 핵융합이 필요하다. 핵융합 점화는 인간이 인공적으로 일으킨 핵융합이 1억 도 등 조건을 조성해, 자연스럽게 다음 핵융합으로 옮겨붙는 현상이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KFE)의 한 연구원은 “모닥불이 옮겨붙는 원리와 같다”고 설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로런스 리버모어 연구소에서 연구자들이 레이저 핵융합 연구 장치인 국립점화시설(NIF) 내부를 점검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NIF를 이용한 핵융합 실험에서 순 에너지를 생산하는 작업에 성공, 핵융합발전의 현실화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리버모어(캘리포니아)=로이터 연합뉴스
다양한 장점을 가진 꿈의 에너지
원자력 발전에 활용되는 핵분열(nuclear fission)과 정반대의 반응을 활용하는 핵융합은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꿈의 에너지’다. 핵분열은 가장 무거운 우라늄 원소를 중성자에 충돌시켜 다른 두 개의 원소로 만들면서 에너지를 생산한다. 핵분열에서 에너지와 함께 생산된 중성자는 다른 우라늄과 무거운 원소들을 자기 마음대로 깨뜨리며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그래서 원전 기술의 핵심은 이 연쇄반응을 제어하는 것.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와 같이 자연재해로 제어가 불가능한 상황이 오면 폭발 등 사고로 이어진다.
하지만 핵융합은 1억 도 이상의 온도 등 특수 환경에서만 일어난다. 핵융합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핵융합 점화’에 도달하려면 인간의 제어가 필요하다. 오히려 지진 등 인간의 제어가 불가능한 상황에선 알아서 반응을 멈춘다. 이 밖에도 핵융합은 핵분열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고, 원료도 얻기 쉬우며, 핵폐기물이나 탄소 발생이 거의 없는 장점을 가진다.
그동안 핵융합 연구는 1억 도 이상의 온도와 일정 수준의 압력을 지속적으로 갖추는 데 집중됐다. 연구소마다 방법은 다르지만, 목적지는 같았다. 이번에 로런스 리버모어 연구소가 사용한 것은 관성 봉입 핵융합(inertial confinement fusion) 방식이다. 높은 밀도로 압축된 중수소와 삼중수소로 연료 캡슐을 만들고, 192개의 강력한 자외선 레이저빔을 동시(10억 분의 1초)에 쏴 에너지를 가하는 방식이다.
인류가 핵융합을 통해 순 에너지를 인공적으로 생산한 건 로런스 리버모어 연구소가 처음이다. 레이저 방식 핵융합을 연구하고 있는 방우석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는 “핵융합 점화라는 기술적 단계에 처음 도달했다는 게 과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라며 “엔지니어링이나 비용의 문제를 해결하고 상용화하는 데까지는 최소 10년 이상의 연구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상용화까지는 아직 많은 장애물이 남아 있다. 레이저 방식은 설계상 방출 에너지양이 적다. 외신에서는 이번에 생성된 에너지가 ‘주전자 10개’ 분량의 물을 끓일 수 있는 낮은 수준의 열량이라고 평가했다. 발전소를 돌릴 만한 거대한 열량을 얻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또한 레이저 방식은 단발성이어서, 레이저를 더 자주 쏠 수 있는 기술 개발도 필요하다. 핵융합 연료와 레이저의 비용이 지나치게 높은 것도 걸림돌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 등이 연구하고 있는 핵융합은 자기장으로 초고온 환경을 만드는 토카막(tokamak) 방식이다. 한국형 핵융합 연구시설인 한국형초전도핵융합장치(KSTAR)는 물론, 한국 등 세계 각국이 참여한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도 자기장 방식이다.
투입 에너지보다 생성 에너지가 높은 ‘핵융합 점화’ 단계에 공식적으로 도달하진 못했지만, “관성 방식보다 뒤처졌다”고 평가하긴 이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선 자기장 방식은 ‘핵융합 점화’가 지속적으로 일어날 만큼의 거대한 에너지 방출이 목표다. 예를 들어 자기장 방식을 활용한 유럽 공동핵융합실험장치 JET가 생산한 에너지는 59메가줄(MJ)이었다. 이번에 미국이 성공한 에너지량 2.5MJ의 20배가 넘는다.
거대한 에너지 방출이 오랫동안 일어나면 ‘핵융합 점화’에 도달한다고 보기 때문에 ‘오랜 시간 1억 도 이상의 환경을 유지시키는 것’이 선행 과제다. 한국의 KSTAR는 30초 동안 1억 도 이상을 유지하며 세계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