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경전 ‘열반경’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고대 인도의 한 임금이 진리에 관해 논하다가 신하에게 코끼리 한 마리를 몰고 오라 명령하였다그는 맹인들을 불러 모아 코끼리를 만져 보고 각자가 생각하는 코끼리에 대해 말하게 하였다먼저 상아를 만진 맹인이 코끼리는 무입니다라 하였다그러자 귀를 만진 맹인은 아닙니다코끼리는 곡식을 고를 때 쓰는 키같이 생겼습니다.”라고 반박하였다또 다리를 만진 맹인은 둘 다 틀렸습니다코끼리는 마치 커다란 절굿공이같이 생긴 동물이었습니다,”라고 하였다이처럼 각 맹인이 서로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다투자 왕은 그들을 물러가게 하고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보아라코끼리는 하나이거늘저 여섯 장님은 제각기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을 코끼리로 알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구나眞理(진리)를 아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니라.”

맹인모상(盲人摸象)이라는 사자성어로도 잘 알려진 이 일화는 맹인들이 자기가 경험한 것만을 옳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코끼리의 본 모습이라 주장하는 것처럼 누구나 자기가 알고 있는 만큼만 이해하고 고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이 이야기는 천문학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사실 천문학도 이러한 맹인들의 모습과 어느 정도 닮은 부분이 있다수백 년간 천문학자들은 빛을 이용한 관측만을 해 왔기 때문이다다시 말해우리는 코끼리를 알아내는 데 촉각에만 의존한 맹인들처럼 시각에만 의존하여 우주를 탐구해오고 있었다는 것이다하지만 천문학자들이 위의 일화 속 맹인들과 다른 것은 다행히 기술이 발전하면서 눈으로 직접 관측할 수 있는 가시광선뿐만 아니라 에너지가 가장 낮은 전파부터 가장 높은 감마선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천체들의 여러 얼굴을 관측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이를 통해 우리는 우주라는 거대한 코끼리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어느 정도는 전체의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게 되었다.

 

1054년에 폭발한 초신성 잔해인 ‘게 성운’을 다양한 빛을 통해 관측한 모습. 좌측부터 차례로 X선, 가시광선, 적외선, 전파 이미지이다. <출처 : NASA/CXC/SAO (X-ray), Paul Scowen and Jeff Hester (Arizona State University) and the Mt. Palomar Observatories (optical), 2MASS/UMass/IPAC- Caltech/NASA/NSF (infrared), and NRAO/AUI/NSF (radio)>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할까위의 코끼리 일화에 이야기를 조금 더 붙여보자만약 맹인들이 머리를 모아 코끼리는 무 같고키 같고절굿공이 같다는 정보를 모았다고 하자하지만 여전히 전체 코끼리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그런데 그때코끼리가 크게 운다면맹인들은 깜짝 놀라 코끼리는 무나 키절굿공이와는 달리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마찬가지로 천문학에서도 하나의 천체를 다양한 빛을 통해 관측하고 있지만여전히 알아내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주 공간 너머로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코끼리 울음소리와도 같은 무언가일 텐데현대 천문학에서는 중력파가 그런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그리고 2017년 8월 17우리는 처음으로 중력파와 빛이라는 두 가지 감각을 이용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을 알아내게 되었다.

 

서로 회전하며 가까워지고 있는 두 개의 블랙홀이 만드는 중력파의 모습 <출처 : SCIENCE MAGAZINE>

 

중력파 느끼기

중력파란질량을 가진 물체가 움직이면서 생기는 공간의 요동이 파동처럼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 종이로 포장된 나무젓가락을 위에서부터 눌러서 쭈글쭈글하게 만들어 벗겨본 적이 있을 것이다이때 종이 포장을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손에 의해 쭈글쭈글해진 종이 포장이 아래까지 내려가는 것이 마치 물체의 움직임에 의해 쭈글쭈글해진 공간의 요동이 전달되는 중력파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사실 질량을 가진 움직이는 물체라면 어느 것이든 중력파를 만들 수 있지만일반적인 물체가 만드는 중력파는 진동수가 굉장히 낮으므로 주변의 잡음과 뒤섞여 관측할 수 없다그래서 현재까지 관측된 중력파는 모두 질량이 큰 블랙홀이나 중성자별이 짝을 이루고 돌다가 합쳐지는굉장히 특수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중력파들이다.

그렇다면 중력파는 어떻게 관측하는 것일까망원경을 이용해 보면서 관측하는 빛과는 달리 중력파는 공간 자체의 요동이기 때문에 어느 한 방향으로 공간이 뒤틀림을 느껴야’ 한다물론 그 뒤틀리는 정도는 매우 작아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레이저를 서로 수직인 두 방향으로 쏘고그것들이 같은 거리를 갔다가 각각 거울에서 반사되어 다시 돌아온 시간의 차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공간의 왜곡을 측정하게 된다만약 공간이 뒤틀리지 않았다면 레이저가 다시 돌아오는 시간은 두 방향 모두 차이가 없겠지만만약 공간이 한쪽으로 뒤틀렸다면 그 방향으로 빛이 실제 이동하는 거리가 더 짧아지므로 더 먼저 도착하는 방향이 생기게 되며 공간의 왜곡이 심할수록 그 시간 차이는 길어지게 된다현재 가동 중인 중력파 관측소는 미국의 LIGO 2곳과 유럽의 VIRGO, 총 3곳이며 더 많은 지상관측소와 위성 관측소인 LISA가 계획 단계에 있다.

 

LIGO 핸포드 중력파 관측소의 모습. <출처 : NASA(APOD)>

 

 

중력파 관측이 중요한 이유는 크게 2가지가 있다첫 번째로는 중력파를 관측함으로써 이 중력파를 만들어낸 천체의 질량을 예측할 수 있다빛을 이용해 천체를 관측하여 물체의 질량을 알아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로대개 경험적인 식을 이용하여 대략적으로 추정하는 경우가 많다직접 추정할 수 있는 경우는 중심 천체 주위를 도는 작은 천체들을 직접 관측하여 그 궤도를 통해 중력을 측정하는 것으로 굉장히 높은 분해능의 관측이 필요하여 우리 은하 바깥의 천체에 대해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방식이다또 밝기를 이용한 관계식의 경우 암흑 물질의 질량이 포함되어있지 않아 직접 주변 천체들의 운동을 분석하여 계산한 천체의 질량과 차이가 난다하지만 중력파는 그 진동수가 그 기원이 되는 천체들의 질량의 총합과 비례하며진동수가 증가하는 속도는 그 기원이 되는 천체들의 질량비와 비례하는 등 간단한(?) 물리적 계산을 통해 직접 질량을 계산해 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멀리서 온 빛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여 어두워지는 데 비해 중력파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욱 효율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천체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먼 거리에 있는 천체를 관측한다는 것은 곧 더 과거의 우주를 관측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우주 형성 초기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으며더 나아가서는 우주배경복사 이전의 우주를 관측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그렇다면 이러한 이점은 우리가 우주를 새로운 방법으로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었을까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중력파 신호의 모습. 서로 주위를 돌며 가까워지면서 진동수가 증가하다가(Inspiral), 합쳐지면서 가장 강한 신호를 내고 (Merger) 이후에도 약간의 신호를 낸다 (Ringdown) <출처 : APOD>

 

2017년 8월 17일

2017년 8월 17중력파 관측소 LIGO와 VIRGO에서 100초간 중력파 신호가 감지되었다과학자들은 3곳의 신호를 분석하여 어느 방향에서 중력파가 발생하였는지 대략적으로 추측하였다중력파가 처음으로 관측되기 시작한 지 2초 후페르미 감마선 망원경에서 감마선 천체 폭발(Gamma-Ray Burst) 현상을 발견하였다이후 4시간 동안 과학자들은 상세한 분석을 통해 중력파 신호가 어디에서 왔는지그리고 중력파를 일으킨 천체의 질량이 얼마인지 알아내었으며 충돌을 일으킨 천체가 처녀자리에 있는 은하 NGC 4993에 있으며 그 당시까지 관측된 중력파 신호들보다 훨씬 가벼운 천체의 운동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후 계산된 위치 정보를 바탕으로 전파부터 X선까지 다양한 파장의 망원경이 NGC 4993을 집중적으로 관측하였고 시간에 따른 밝기의 변화를 보여주는 광도 곡선을 제작하였다.

광도 곡선을 분석해본 결과 이 현상은 킬로노바(Kilonova)’라 불려왔던 현상이었다킬로노바란, 매우 무거운 별이 자신의 밝은 빛을 감당하지 못해 외곽의 기체를 밀쳐내는 과정에서 갑자기 밝아져 옛날 사람들이 보기에 새로운 별이 나타난 것처럼 보이는 신성(노바)보다 1000배 더 밝은 신성을 부르는 용어로그 당시까지만 해도 왜 이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확실히 알지 못하였다그런데 중력파 관측을 통해 이 현상을 일으킨 천체의 질량을 알게 되자 이것이 블랙홀보다는 가벼우면서 다른 별보다는 훨씬 어두운 중성자별 두 개가 짝을 이루고 있는쌍둥이 중성자별의 충돌에서 왔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게 되었다더 나아가서지금까지 수차례 관측되었던 짧은 기간 나타나는 감마선 천체 폭발 현상 역시 별이 폭발한 것이 아니라중성자별 두 개가 충돌하면서 일어난 것임을 알게 되었다정리하자면 중력파라는 새로운 감각을 통해 킬로노바와 감마선 천체 폭발에 대해 기존에 알고 있던 사실들을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킬로노바의 모습 <출처 : NASA(APOD)>

 

 

이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중성자별의 충돌이 실제로 관측되면서 우리는 우주에 존재하는 무거운 원소의 기원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중성자별이란 말 그대로 중성자로 이루어진 별인데중성자는 양성자보다 조금 더 무겁고전자보다는 훨씬 무거운 입자이다만약 기존의 원자에 중성자가 달라붙게 되면 조금 더 무거운하지만 원자의 종류 자체는 변하지 않는 동위원소가 만들어지게 된다이러한 동위원소는 새로운 혹이 달라붙은 만큼 불안정하여 베타 붕괴라는 과정을 거쳐 조금 더 가벼운 다른 원소로 변화하게 되고 이를 통해 기존에 만들어지지 않았던 새로운 원소를 만들게 되기도 한다기존의 원자에 중성자가 달라붙는 과정을 중성자 포획이라고 부르는데중성자는 전기를 띠고 있지 않아 원자에 잘 달라붙지 않는다. 따라서 굉장히 중성자가 많을 때만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중성자 포획은 앞에서 말한 베타 붕괴 과정보다 느린 것과 빠른 것두 가지로 나뉘는데 느린 것은 느린(Slow) 과정또는 s-프로세스라 하고 빠른 것은 빠른(Rapid) 과정또는 r-프로세스라 부른다둘의 차이는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느린 과정은 마치 사람이 출발선에서 두 걸음 갔다가 한 걸음 뒤로 돌아오는 것과 같은 과정이다이런 과정을 거치더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듯 느린 과정을 통해서도 차곡차곡 철보다 더 무거운 원소들이 만들어지게 된다이러한 과정은 주로 별이 수소 연료를 다 사용하고 폭발하기 직전 단계에서 핵 가장자리에 중성자가 차곡차곡 쌓이게 되면서 일어나며어느 정도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지면 베타 붕괴가 더욱 빨리 일어나기 때문에 두 걸음 갔다가 두 걸음 돌아오는 것처럼 더는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지지 않게 된다하지만 우주에는 훨씬 무거운 원소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그러한 원소들이 만들어지는 빠른 과정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열심히 탐구해 왔다.
빠른 과정은 한 걸음 뒤로 돌아오기 전에 다섯 걸음여섯 걸음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느린 과정보다 훨씬 무거운 원소를 만들 수 있지만 그만큼 짧은 시간 안에 중성자가 많이 만들어지는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지금까지 천문학자들은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려면 막연하게 초신성 폭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하지만 초신성이 폭발할 때 만들어지는 중성자의 양이 빠른 과정을 거쳐 훨씬 무거운 원소를 만들기에는 충분치 않아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중성자별의 충돌은 별 자체가 중성자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중성자가 분리되어 나오고 자연스럽게 빠른 과정이 일어나 무거운 원소들이 만들어질 수 있게 된다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불안정한 원소들이 붕괴하면서 나오는 에너지가 주변의 가스를 데워 빛이 나옴으로써 우리가 그 현상을 관측할 수 있게 된다실제로 천문학자들이 킬로노바 현상에서 만들어지는 무겁고 불안정한 원소들의 비율을 조절하여 광도 곡선과 스펙트럼을 만들어보니 2017년 8월 17일부터 관측된 킬로노바의 그것과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천문학자들은 킬로노바 현상이 중성자별의 충돌에서 유래된 것이며 우주에 존재하는 무거운 원소들이 이 현상을 통해 만들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력파와 킬로노바 연구를 통해 밝혀낸 원소들의 기원. <출처 : NASA(APOD)>

 

 

이렇게 중력파를 느끼고다양한 파장의 빛을 봄으로써 천체의 특성을 알아내는 과정을 다중 신호 천문학(Multi-Messenger Astronomy)’이라 부른다. 2017년 8월 17최초의 다중 신호 천문 관측이 위와 같이 큰 성과를 거두었고그로부터 한 달 뒤인 9월 22일 우주로부터 날아온 가벼운 입자인 뉴트리노가 우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한 은하의 활동적인 핵으로부터 발사되었다는 것이 최초로 밝혀지면서 중력파뿐만 아니라 뉴트리노까지도 다중 신호 천문학의 범주에 들어가게 되었다과연 이러한 새로운 감각들이우주라는 거대한 코끼리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게 될지 앞으로도 주목해 보자.

 

 

 

(원문: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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