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연금술사
리제 마이트너
(1878~1968)

 

리제 마이트너

과학은 인간에게 사실을 인정하는 법과
놀라고 경탄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자연적 사건의 법칙성이 참된 과학자에게 안겨주는
심오한 기쁨과 경외심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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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 #초우라늄원소 #반유대주의 #핵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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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 마이트너는 빈에서 태어났으며, 여성은 김나지움 졸업시험(대학 입학 자격시험)을 치를 수 없던 시절에 성장했다. 그럼에도 이 수줍음 많은 소녀는 남성들의 세계 안에 확실히 자리 잡고 1901년부터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대생 중 하나로서 물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녀는 물리학에 대해서 억누를 수 없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박사과정 학생으로 베를린에 온 마이트너는 막스 플랑크의 지도를 받으면서 오토 한과 만나 오래 지속될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 주제는 당시에 아직 수수께끼였던 알파선과 베타선, 그리고 방사능이었다. 이로써 그들은 현대과학 최초의 방사능 연구 팀을 이루었다. 나이가 비슷한 두 사람은 함께 순조롭게 발전했지만, 오직 남성인 한만 보수가 높은 직책을 맡고, 여성인 마이트너는 오랫동안 보수 없이 일하면서 화장실 없는 지하 연구실 생활을 견뎌내고 뒷문으로 연구소에 출입해야 했다.

 

연구실의 리제 마이트너와 오토 한 (출처 : 위키백과)

 

훗날 그녀가 교수로서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위치한 빌헬름 황제 연구소에서 자신의 팀을 지휘할 때(나중에 노벨상을 받는 막스 델브뤼크, 부지런한 카를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제커 등이 팀원이었다) 많은 남성들은 그녀를 한 밑에서 일하는 조수로 여겼지만, 내부자라면 누구나 그녀가 과학과 물리학에 대해서 한보다 더 많이 안다는 것을 알았다. 연구소 직원들은 지시용 문서에 두 사람이 함께 한 서명 “오토 한, 리제 마이트너 Otto Hann, Liese Meitner”를 “오토 한: 마이트너의 글을 읽으시오 Otto Hann: Lies
Meitner”라는 말로 바꿔서 이해했다.

 

1920년 베를린의 물리학자들과 화학자들. 앞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소파에 앉은 이들 중 가장 오른쪽 여성이 마이트너다. 마이트너 오른쪽의 두 사람은 프리츠 하버와 오토 한. 앞줄 왼쪽 두 번째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출처 : 위키백과)

 

1930년대 초반부터 한과 마이트너는, 과거의 연금술사들이 원소들을 변환하려 애쓴 것에 빗대어 사람들이 즐겨 말하듯이, 현대의 연금술사로 나섰다.

 

“연성진은 필요없어!”

 

과거 연금술의 목표는 납을 금으로 변환하는 것이었지만, 이제 한과 마이트너는 우라늄을 향해 중성자들을 발사했다. 그 무거운 원소를 더 무겁게 만들어 이른바 “초우라늄 원소”로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연구가 절정에 달할 때(1938년에) 나치 정권의 병적인 반유대주의가 마이트너와 한의 연구실과 사생활을 침범했다. 정치적 무대에서는 오스트리아가 독일 “제3제국”에 합병되었고, (이미 오래 전에 기독교 세례를 받은) 리제 마이트너는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즉각 베를린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다행히 그녀는 스웨덴에 정착할 기회를 얻었지만, 그녀의 삶은 전혀 순조롭지 않게 되었다. 이미 60세였던 그녀는 새롭고 외로우며 상당히 가난한 삶을 시작하는 것을 힘겨워했다. 무엇보다도 가까운 장래에 과학 실험을 재개할 수 있을 가망이 전혀 없다는 점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했다. 아침마다 그녀는 온갖 장비가 갖춰진 실험실이 아니라 빈 방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친구들과 떨어지고 사랑하는 물리학으로부터 분리된 그녀는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살아야 했다.

남은 것은 동료들의 편지뿐이었던 그녀에게 1938년 12월에 베를린의 한으로부터 고무적인 소식이 날아왔다. 중성자로 우라늄을 타격하면, 더 무거운 원소들(초우라늄 원소들)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더 가벼운 원소들이 발생한다는 것을 한이 화학자 프리츠 슈트라스만과 함께 발견했다는 소식이었다. 우라늄이 바륨으로 변환되는데, 이는 우라늄 원자핵이 쪼개짐을 의미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한은 전했다. 한은 그의 실험에서 나온 이 결과를 스스로 납득할 수도 없었고 타인들에게 설명할 수도 없었다.

며칠 후(1938년 성탄절 직전에) 리제 마이트너는 두껍게 쌓인 스웨덴의 눈을 헤치고 그녀를 찾아온 조카 오토 로베르트 프리쉬를 맞이했다. 당시 프리쉬는 코펜하겐에서 일하는 물리학자였다. 두 사람은 겨울 들판을 산책하면서 한의 실험 결과를 숙고했고 이를 옳게 해석했다. 원자핵의 분열이 물리학적으로 가능하다는 점과 이 분열 과정에서 에너지까지 방출된다는 점을 알아챈 인물은 두 사람 중에서도 특히 리제 마이트너였다. 그 에너지가 바로 핵에너지다. 핵에너지는 곧 시작되는 2차 세계대전에서 원자폭탄의 형태로 군사 목적에 쓰이게 된다. 실화라고 믿기 어려운 상황이다. 늙수그레하고 조막만 한(당시 리제 마이트너의 몸무게는 50킬로그램에 못 미쳤다) 여자가 성탄전야의 산책길에서, 인간이 원자핵의 거대한 에너지를 뽑아내 세계를 파괴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훌륭한 소설의 소재로서 손색이 없다. 언젠가 이 소재로 소설을 쓰겠다는 작가가 나올지도 모른다.

 

“불꼬오오오옻!”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리제 마이트너의 물리학을 향한 열정은 왜 그토록 억누를 수 없는 수준이었을까? 그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진실 추구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었을까? 또한 방사능에 어떤 특별한 점이 있기에, 위대한 여성 두 명(리제 마이트너와 마리 퀴리)이 똑같이 방사능을 평생의 연구 주제로 삼은 것일까? 이 글 앞에 배치한, 참된 과학자의 기쁨과 경외심에 관한 인용문을 쓸 때 리제 마이트너는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 오토 한이 단독으로 노벨상을 받을 때, 왜 그녀는 제외된 것일까?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노벨 재단의 관련 문서들이 공개되어 있다. 그 문서들은 당시의 결정권자들이 리제 마이트너의 공로를 전혀 몰랐음을 보여준다. 핵분열에 대한 그녀의 설명은 원자물리학의 매우 정교하고 근본적인 통찰들을 상대성이론의 근본적인 한 귀결과 종합한 결과다. 당시에는 여성이 그토록 똑똑할 수 있음을 어떤 남성도 믿을 수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노벨 재단의 관련 문서들이 공개되어 있다. 그 문서들은 당시의 결정권자들이 리제 마이트너의 공로를 전혀 몰랐음을 보여준다. 핵분열에 대한 그녀의 설명은 원자물리학의 매우 정교하고 근본적인 통찰들을 상대성이론의 근본적인 한 귀결과 종합한 결과다. 당시에는 여성이 그토록 똑똑할 수 있음을 어떤 남성도 믿을 수 없었다.

리제 마이트너의 생각은 늘 그녀 자신의 실험들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녀는 「우주적 kosmisch 과정들에서 방사능이 갖는 의미」를 다룬 논문으로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그녀는 이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 신문은 그녀가 “화장 化粧 kosmetisch 과정들”에 대해서 강연한다고 보도했다.

 

강의하는 마이트너. 1946년. (출처 : 위키백과)

1959년, 브린모어대학의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마이트너 (출처 : 위키백과)

 

그러나 현재 그녀는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을 받고 있다. 원자번호 109번 원소는 그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그 원소 마이트너륨 Meitnerium은 방사성 금속이며 기호는 Mt다.

 

묘비에는 “리제 마이트너: 한 순간도 인간애(humanity)를 잃지 않은 물리학자”라는 글이 새겨졌다.

 

 

(원문: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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