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의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영국의 화학무기 겨자가스 공격을 받았다.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 에는 화학전에 대한 경험이 나온다. 겨자가스로 15분마다 심한 고통을 겪었고, 눈이 타는 듯이 아프더니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일시적으로 실명이 된 것이다. 후방병원으로 후송된 그는 그곳에서 종전을 맞았다. 겨자 냄새가 난다고 겨자가스라고 이름 붙은 황 머스타드는 전쟁에서 독가스로 사용되었다.
최초로 독가스를 개발한 사람은 유대인 출신의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1868~1934)다. 하버는 1904년부터 질소와 수소를 이용해 암모니아 만드는 방법을 찾았다. 1908년 공기 중 질소를 이용해 암모니아 합성법을 개발했고, 1913년에는 암모니아를 공업적으로 합성해 비료를 대량생산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농업생산량이 크게 늘어났고 인류는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는 ‘공기에서 빵을 만들었다’는 찬사를 받으며, 191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노벨 화학상 수상을 비난하는 여론이 거셌다. 하버가 독가스를 개발하고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독가스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가 개발한 독가스(염소가스)는 1915년 4월 벨기에 이프르에서 처음 사용됐다. 염소는 공기보다 무거워서 방공호나 참호바닥까지 내려갔고, 참호에 숨어 있던 병사들은 고스란히 독가스를 마셨다. 이로 인해 5,000여 명이 죽고 1만여 명이 치명적인 폐 손상을 입었다.
1933년 화학연구소 소장으로 있던 하버는 나치로부터 모든 유대인을 해고하라는 지시를 받자 사직서를 제출하며 나치의 지시를 거절했다. “제가 40년 이상 제 동료들을 선택한 기준은 지성과 성품이지 그들의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옳다고 생각한 이 방법을 앞으로도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마지막 편지를 남긴 하버는 독일에서 추방되었으며, 스위스로 가는 도중 죽음을 맞았다.
1943년 12월 2일 이탈리아 남부 바리 항구에 정박한 연합군 선박들이 독일 공군의 공습을 받았다. 선박 38척 가운데 17척이 침몰하고 8척이 파괴되었다. 이때 공격받은 미국 수송선 존 하비호에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지시로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100톤가량의 겨자가스가 있었다. 선박이 파괴되면서 가스가 항구를 덮쳐 연합군 장병과 항구 주변 민간인 1,000명 이상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800명의 사상자가 병원 치료를 받았다.
희생자를 부검하자 혈액을 만드는 골수가 손상을 받아 백혈구 숫자가 급격히 떨어진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임파 조직과 골수 조직이 모두 망가졌다. 이때 겨자가스를 연구하던 학자가 있었는데, 루이스 굿맨 과 알프레드 길맨이다. 두 사람은 이 사고가 있기 1년 전부터 질소 머스타드를 연구했다. 그들은 독성이 큰 황 머스타드보다 질소 머스타드가 백혈구 같이 빨리 분열하는 세포의 분열을 막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질소 머스타드가 혈액의 백혈구 수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백혈구 수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는 백혈병에 질소 머스타드를 사용하니 백혈구 숫자가 많이 감소했다. 백혈병뿐만 아니라 림프종과 말기 혈액암 환자도 치료되었다. 림프종이란 림프 조직에 발생한 악성종양이다. 질소 머스타드를 이용해 개발된 최초의 화학요법제가 메클로에타민(제품명: 머스타겐)이다. 이것이 《암병동》 에 나온 엠비퀸이다.
머스타겐을 말기 림프종 환자에게 투여하자 10일 후 목에 있던 혹이 거의 사라졌다. 물론 암을 완전히 낫게 하지는 못했지만 항암효과는 수 주간 지속되었다. 이것으로 화학요법을 통해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고, 1949년 항암제로는 처음으로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다.
당시에는 암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외과수술과 방사선 치료가 있었다. 칼로 암세포를 도려내고 방사선을 쬐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암세포까지 모두 제거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더구나 주변 조직으로 전이된 암세포는 없애기 쉽지 않았다. 화학요법제의 도입으로 암 치료에서 세 번째 강력한 무기를 가지게 되었다.
전쟁 중 폭격으로 비록 큰 인명 피해를 입었지만 불행으로만 머물지 않고 세심한 관찰을 통해 항암제 개발로 연결될 수 있었다. 이후 지속적인 항암제 발전이 이뤄졌다. 겨자가스는 수많은 항암제가 개발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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