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알파고의 승리로 끝난 알파고 대 이세돌의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가 있었다. 그리고, 그 후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2018년 현재의 상황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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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AI, 기는 정책, 막는 정부

 

2016년 3월 9일. 역사에 기록될 세기의 대결이 시작됐다.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AlphaGo)’와 한국의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이다. 대국 결과는 인간의 패배. 바둑에서 AI가 인간을 넘어서는 순간이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에릭 슈밋 ‘알파벳’(구글의 지주회사)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대국의 진정한 승자는 사실 인류”라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이 대결을 계기로 인류는 AI가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에 도래했음을 실감하게 됐다. ‘알파고 쇼크’ 이후 2년, 강산이 꽤나 변했다.

알파고 개발사인 딥마인드(알파벳의 자회사)는 이세돌 9단과의 대국 이후에도 꾸준히 바둑 AI를 발전시켰다. 지금까지 개발된 알파고는 총 4가지. 2015년 10월 중국의 판후이 2단을 이기고, 2016년 1월 국제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데뷔한 알파고 판(Fan), 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 리(Lee), 지난해 5월 커제 9단을 꺾은 알파고 마스터(Master) 그리고 지난해 10월 개발된 ‘끝판 왕’인 알파고 제로(Zero) 등이다. 딥마인드는 알파고 마스터를 끝으로 더 이상 인간과 대국을 펼치지 않았고, 알파고 제로의 개발과 함께 바둑 AI를 개발해온 2년 역사의 종지부를 찍었다.

 

배우는 AI에서 독학하는 AI로

알파고의 은퇴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애초부터 알파벳은 바둑 같은 특별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범용 AI’의 실현을 위해 알파고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알파고는 바둑계를 떠나 신약, 자연과학 등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다.

그렇다면 은퇴하기 전까지 알파고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바둑 측면에서는 인간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 바둑 실력을 수치화한 점수인 ‘엘로(ELO)’로 살펴보면 알파고 리는 3797점, 알파고 제로는 5185점이다. 점수 차가 800점 이상일 때 승률은 100%다. 실제로 알파고 제로는 36시간의 학습만으로 알파고 리를 넘어서는 실력을 갖췄고, 3일 뒤 펼친 대국에서 100대 0 압승을 거뒀다.

AI에게 바둑을 가르칠 인간 스승도 사라졌다. 알파고 제로는 인간에게 바둑을 배우지 않았다. 알파고 리는 인간 바둑기사의 기보 16만 건을 학습했지만, 알파고 제로는 바둑 규칙 말곤 아무런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셀프 바둑’을 두며 바둑의 이치를 스스로 터득했다. 알파고 제로의 개발을 소개한 ‘네이처’ 논문 제목 역시 ‘인간 지식 없이 바둑을 마스터하기’였다. 딥마인드의 수석과학자인 데이비드 실버는 “인간의 지식에 속박되지 않은 점이 오히려 알파고 제로를 강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알파고가 2년간 남긴 발자취는 AI 개발의 방향성에도 꽤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정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선임연구원은 “그간 AI와 ‘빅데이터’는 불가분의 관계로 다량의 데이터 확보가 AI 개발의 성공 조건이자 장애물로 작용했다”며 “알파고 제로로 인해 AI가 데이터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이 증명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AI에 데이터를 입력하며 스승을 자처하던 인간의 역할이 무의미해지고, 인간조차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서 AI가 스스로 해결책을 낼 수 있음이 확인됐다는 의미다.

이로 인해 데이터 중심 AI가 알고리즘 중심 AI로 변하는 세대교체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딥마인드는 이러한 중심 이동이 AI가 복잡한 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높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령 인류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단백질의 3차원(3D) 구조를 밝혀 신약 개발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또 재난 현장에 투입된 로봇이 생전 처음 보는 구조물을 해체하거나 조립할 수도 있다. 실제로 구글은 2016년 로봇 팔이 데이터 없이 스스로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여는 법을 터득하게 하는 실험에 성공하기도 했다. 스마트 공장의 에너지 관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알고리즘 중심 AI는 날씨, 생산량, 습도 등의 데이터를 얻지 않아도 건물이나 공장의 전력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AI 개발의 황금기

2016년 3월 진행된 이세돌 9단(오른쪽)과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결 모습. 이 대결에서 알파고가 압승하면서 인공지능의 무한한 능력에 대한 관심과 두려움이 커졌다. [한국기원 제공]

알파고는 민영기업이 AI 개발에 경쟁적으로 참여하는 생태계도 구축했다. 알파고 이후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IBM 등 세계적 IT기업이 앞다퉈 저마다의 AI 기술을 내놨다. 시작은 봇(bot)같이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언어 이해 AI’의 개발이다. 애플 시리, 구글 어시스턴트, 아마존 알렉사, MS 코타나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정부출연연구소인 ETRI의 ‘엑소브레인(Exobrain)’도 언어 이해 AI다. 엑소브레인은 2016년 11월 EBS ‘장학퀴즈’에 참가해 우승을 거둔 바 있다.

그사이 뚜렷한 성장세를 보인 다른 분야는 ‘자동번역’이다. ‘구글 번역’ 등 기존 번역 프로그램은 문맥과 동떨어지고, 어순도 엉망인 번역 결과를 내보냈다. 하지만 최근엔 AI가 스스로 문장 전체의 정보를 학습하고 글의 문맥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번역 결과물은 예전보다 더 정확하고 자연스러워졌다. 구글을 필두로 국내에선 네이버가 지난해 7월 번역 서비스 ‘파파고’를 출시했으며 카카오 역시 뒤를 이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공식 통역 서비스로 사용된 ‘지니톡’ 역시 국내 기업 ‘한글과컴퓨터’와 ETRI가 공동 개발한 자동번역 AI다.

AI는 사용자의 말뿐 아니라 얼굴도 인식할 수 있게 됐다. ‘얼굴인식 AI’로 사진이나 영상을 분석하면, 사진 속에서 사람 얼굴을 찾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일까지 가능하다. 페이스북, 애플, 구글 등이 이미 관련 기술 개발을 완료했다. 2년 전엔 사람과 고릴라를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이었지만 최근 성능이 급격히 향상됐다.

슈밋 알파벳 회장의 말처럼 알파고 쇼크는 인류의 삶에 실보다 득을 많이 가져왔다. 가장 큰 수확은 많은 이가 AI에 눈을 뜨고, 높은 관심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과학자, 경제학자들의 용어로 여겨지던 AI가 이젠 일상 대화 속으로 스며든 정도다.

알파고 쇼크는 ‘4차 산업혁명’의 촉매제로 작용하기도 했다.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이 화두가 세상에 던져졌다. 이때만 해도 일부 전문가와 관련 기업들의 관심사에 불과하던 4차 산업혁명은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국 이후 순식간에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알파고 쇼크 이후 우리 정부 역시 관련 대책을 쏟아냈다. 다양한 성과도 나왔다. 참여가 저조하던 민영기업도 AI 분야에 동참했다. 삼성전자는 관련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네이버와 카카오는 저마다 AI 연구 전문 자회사를 설립했다. AI가 실제 현장에 이질감 없게 적용되기도 했다. 가천의대 길병원은 IBM의 AI의사 ‘왓슨’을 통해 진료 조언을 받기 시작했고, AI 스피커, 음성인식 검색 같은 각종 서비스도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2월 25일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폐회식에서 LED램프를 장착한 드론이 수호랑을 만들고 있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하지만 우리나라가 아직 4차 산업혁명 강국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2016년 WEF에서 스위스 최대 은행 유니언뱅크(UBS)는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적응 준비 순위를 139개국 중 25위로 기록했다. 세계 11대 경제대국이자 IT 강국이란 타이틀에 못 미치는 성적이다. UBS는 한국의 문제 중 하나로 법질서를 꼽았다. 한국의 법질서 적응 준비 순위는 62.26위에 불과하다.

UBS의 지적처럼 실제 연구 현장에서도 과도한 법적 규제가 4차 산업혁명 기술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평가한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에 속하는 드론, 자율주행차 등은 각종 규제에 몸살을 앓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한국은 드론과 자율주행차 등 무인이동체 세계시장에서 불과 2.7%만을 차지한다. 한국드론산업진흥협회에 등록된 1200여 개의 업체 중 수익을 내는 곳은 30여 곳 정도다.

 

규제 개선 제자리걸음

2016년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와 프로기사 간의 대결을 특집으로 다룬 학술지 ‘네이처’ 표지. [동아DB]

한국의 드론은 도심 하늘에서 날지 못한다. 비행을 하려면 국토교통부의 허가가, 드론을 이용한 항공촬영을 하려면 국방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자율주행차가 질주하기 위한 스마트도로, 정밀도로지도 등 인프라 표준은 규제에 걸려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지 못했다. 무인이동체가 상용화됐을 때 보험은 운전자와 제조사 중 누가 납부하는지, 이들로 인해 발생한 문제의 책임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와 같은 논쟁적 문제에 대한 논의도 시행되지 않았다.

다행히 규제는 점차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해 스마트 시티, 자율주행차, 드론 등 4차 산업혁명 대표 기술에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 또는 유예해주는 정책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문제는 이미 관련 개발자들에겐 이런 방향성이 정권이 바뀌면 또다시 뒤엎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때 시작된 빅데이터 활용 프로젝트는 현 정부 들어 중단 위기에 몰렸다. 건강관리 AI 등의 개발에 필요한 의료 빅데이터를 민간에 제공하기로 했지만, 보건복지부가 최근 그 가이드라인을 뒤엎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발자들은 정권이 바뀌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까 몸을 사리게 될 터. 정권마다 관련 정책을 재검토하고 수립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4차 산업혁명의 발전 속도를 더디게 만들고 있다. 일례로 알파고 쇼크 이후 박근혜 정부는 ‘4차 산업혁명전략위원회(전략위)’를 수립했다. 범부처 차원에서 국가가 나아가야 할 4차 산업혁명 전략의 방향성을 세우기 위해서다. 전략위는 지난해 2월 22일 첫 회의를 진행했지만, 이후 탄핵과 맞물리며 사실상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문재인 정부 역시 같은 목적성을 가진 ‘4차 산업혁명위원회(혁명위)’를 구성했다. 전략위와 차이점은 위원회 구성원 중 정부 쪽 인사가 다수인지, 민간 쪽이 다수인지 정도다. 혁명위는 지난해 10월 11일 제1차 회의를 진행했다. 정권 교체 현장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줄 컨트럴 타워가 1년 가까이 없었다는 의미다.

한 연구자는 “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국내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의 수준 자체는 선진국에 뒤지지 않지만, 기술 개발 이후 상업화가 힘들다는 것이 문제”라며 “시장을 어떻게 발전시킬지에 대한 청사진이 먼저 그려져야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이 봇물처럼 발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보상을 통해 학습하는 머신러닝 기술의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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