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인기 팟캐스트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Joe Rogan Experience)’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마야의 도시국가 팔렌케 마야 제국의 12대 왕이었던 키니치 하나브의 방패(K’inich Janaab’ Pakal, 사진 참조)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기원후 683년 사망할 당시 그의 석관에 특이한 문양이 조각돼 있는 덮개를 남겨놓았다. 그리고 이 덮개 안에는 하늘을 날고 있는 사람의 모습과 함께 무엇인지 설명하기 힘든 형상들이 뒤섞여 있었다.
“외계인의 마야문명 기원설은 상상”
10일 ‘사이언스’ 지에 따르면 이 문양을 놓고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스위스의 고고학자였던 에리히 폰 데니켄(Erich Anton Paul von Däniken)이다.
그는 “이 석관 덮개의 문양이 무엇인가를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며, “UFO 착륙 장면을 묘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곧 반발에 부딪혔다.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이 문양을 가로로 보았을 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세로로 놓았을 때는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온다며 데니켄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나 대중성을 노리는 일부 책자들과 TV 쇼는 그렇지 않았다. 이 방패에 대해 거론하면서 마야 문명과 우주선을 연결해 새로운 이야기들을 양산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외계인 착륙설이다.
지난 2월 많은 청취자를 확보하고 있는 인기 팟캐스트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도 키니치 하나브의 방패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방송을 진행한 조 로건(Joe Rogan)은 외계인들이 아메리카에 착륙해 마야문명을 이루었다는 주장에 대해 극히 회의적이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그가 처음 한 일은 주류 고고학자들의 조언을 듣는 일이었다.
첫 번째 조언자는 미국 래드포드 대학의 고고학자 데이비드 앤더슨(David Anderson) 교수였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석판의 문양이 지하세계로 내려가고 있는 키니치 하나브 왕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아래쪽 프로펠러가 불을 뿜어내는 것 같은 문양은 지하세계의 모습을 의인화한 것이고, 우주선과 같은 모습은 마야인 들이 자주 표현하고 있는 세계수(world tree), 즉 세계 중심에 서 있는 나무를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래드포드 교수의 글이 소개되자 곧 ‘좋아요(likes)’를 누른 사람의 수가 1000여 명에 달했다. 그의 글을 지지하는 발언도 잇따랐다.
주류 고고학계 ‘의사고고학’ 추방 선포
앤더슨 교수를 비롯 그를 지지하는 고고학자들은 마야 문명을 UFO와 연결하려는 일부 고고학자들의 시도를 ‘의사고고학(pseudoarchaeology)’이라 칭했다. 외형상 고고학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고고학을 흉내 내는 가짜 고고학이란 의미다.
이들은 UFO와 관련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과거 인류 문명 유산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고고학적 연구 결과와 관계없는 신화도 아닌 이야기들이 마치 진짜인 것처럼 세계를 떠돌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중에는 외계인이 이집트인들과 마야인들에게 피라미드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으며, 전설상의 도시 아틀란티스를 탈출한 피난민들이 세계 곳곳에 뛰어난 문명을 전수해주었다는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포함돼 있다.
앤더슨 교수는 10~14일까지 열리는 미 고고학회(SAA)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앤더슨 교수는 그 자리에서 지난 수십년 간 떠돌고 있는 기이한 이야기들에 대해 설명하고, 고고학계가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할지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주류 고고학계가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은 최근 ‘의사고고학’이 대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면서 고고학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채프먼대학이 실시한 조사(Survey of American Fears)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중 41%가 오래 전에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했다는 사실을, 57%는 아틀란티스와 같은 상상 속의 고대 문명이 존재했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지난 2016년 같은 질문에 대해 각각 27%, 40%의 응답률이 있었던 것과 비교해 각각 14%, 17% 늘어난 것이다.
앤더슨 교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나타나는 데 대해 시청률에만 열중하는 대중매체에 그 책임을 돌리고 있다. 그는 “특히 ‘고대 외계인(Ancient Aliens)’이라는 케이블 TV 쇼는 13년째 인기를 이어가면서 비고고학적인 낭설을 퍼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인 우월론자들 역시 의사고고학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들은 유럽인이 아메리카를 점령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살고 있었던 원주민이었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캐나다 동부에 있는 한 섬이 스칸디나비아 바이킹이 지도를 통해 거론했던 빈랜드(Vinland)였으며, 유럽 후기 구석기 시대 중엽의 ‘솔류트레 문화(Solutrean)’를 이 지역에서 창출했다는 이야기를 퍼뜨리고 있다.
텍사스 대학의 고고학자 스테파니 멀더(Stephennie Mulder) 교수는 “의사고고학 확산이 고고학의 미래가 달려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멀더 교수는 이번 SAA 심포지엄에서 ‘Aliens, Atlantis, and Aryanism: ‘Fake News’ in Archaeology and Heritage‘란 주제로 고고학과 관련된 가짜 뉴스에 대해 그동안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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