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물리학자 카를 슈바르츠실트는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자 3개월 만에 첫 번째 풀이를 구했다. 여기에서 블랙홀의 수학적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사진제공 위키미디어

독일의 물리학자 카를 슈바르츠실트는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자 3개월 만에 첫 번째 풀이를 구했다. 여기에서 블랙홀의 수학적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사진제공 위키미디어

 

 

블랙홀의 존재가 이론적으로 예견된 것은 불과 10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915년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이 시초다.  하지만 당시 아인슈타인이 블랙홀의 개념을 직접 제시한 것은 아니다. 바로 이듬해 다른 독일인 물리학자 카를 슈바르츠실트가 그의 심오한 방정식을 풀어 해를 발견하면서 지금의 블랙홀에 해당하는 수학적 개념이 나타났다.

 

●방정식 속에 숨은 블랙홀 개념을 발견하다

슈바르츠실트는 포병 장교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러시아와의 접경 지대에서 싸우는 중에 일반상대성이론을 만났다. 피부에 수포가 생기는 자가면역질환인 천포창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이 독특한 방정식의 풀이에 매진했다. 물리학자로서의 직관을 발휘해 어려운 방정식을 최대한 단순화해 풀었다. 그는 회전하지 않는 매끈한 구라는 조건을 상정하고 방정식을 풀어 처음으로 일반상대성이론의 해를 얻어 냈다.

그런데 그가 푼 해에는 특정 값이 무한이 되는 ‘특이점’이 있었다. 질량을 가진 물체의 지름이 어떤 반지름보다 작아지자, 중력이 너무나 강해진 나머지 우주에서 가장 빠른 존재인 빛조차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이런 존재가 우주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관련 내용을 11쪽짜리 논문으로 작성해 학회에 투고했다.

슈바르츠실트가 우주에는 이런 특이점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믿은 것은 너무 극단적인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70만㎞에 이르는 태양의 반지름이 3㎞로 쪼그라들거나, 지구를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 크기의 공간에 우겨넣을 경우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후 다른 사람이 구한 일반상대성이론 풀이에도 비슷한 개념이 줄곧 등장했고, 곧 일반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특이점을 만드는 이 반지름에는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이라는 용어가 붙었다.

 

●지구가 손가락 한 마디 만해지면 블랙홀

물리학자들은 우주에 실재로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으로 수축한 별이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태양이 정말로 3km로 줄어들고 지구가 손톱만 하게 작아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상상한 것이다. 찬드라셰카르,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이 1930년대에 계산을 한 결과, 특정 질량의 별이 자체 중력으로 무너져 내려 수축할 경우 이런 일이 가능하며, 이 경우 밖에서 보면 별이 수축하다 특정 크기보다 작아지는 순간 마치 내부 공간을 갑자기 우주에서 도려낸 것처럼 보이지 않게 될 것이라고 결론 내리게 됐다. 표면에서 나온 빛이 탈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그림으로 상상하는 암흑에 휩싸인 존재로서의 블랙홀의 모습이다.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은 별이 그 크기 이하로 수축하면 블랙홀(슈바르츠실트 블랙홀)이 되는 반지름을 말한다. 이 반지름의 경계면은 오늘날 사건지평선으로 불린다. 사진제공 위키미디어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은 별이 그 크기 이하로 수축하면 블랙홀(슈바르츠실트 블랙홀)이 되는 반지름을 말한다. 이 반지름의 경계면은 오늘날 사건지평선으로 불린다. 사진제공 위키미디어

 

 

하지만 이 때까지 블랙홀이라는 용어는 없었다. 용어는 블랙홀의 구성요소이자 경계면인 ‘사건지평선’이 먼저 생겼다. 1958년,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으로 구획되는 블랙홀의 경계면을 지칭하는 말로 미국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필켈슈타인이 사건지평선을 제안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 그 밖에서는 알 수 없게 되는 경계면이라는 뜻이었다.

1963년에는 슈바르츠실트보다 좀더 많은 조건을 포함하는 일반적인 일반상대성이론 풀이가 나왔다. 뉴질랜드의 수학자 로이 커가 발견한 이 풀이는 회전하는 천체에서 만들어지는 특이점의 존재를 예견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회전하는 블랙홀의 특징을 좀더 잘 해석할 수 있는 풀이였다. 오늘날 이 블랙홀은 ‘커 블랙홀’로, 슈바르츠실트의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은 ‘슈바르츠실트 블랙홀’로 불린다.

1963~1964년, 드디어 일부 기사에 ‘우주의 검은 구멍(블랙홀)’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널리 쓰이지는 않았다. 1967년,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존 아치볼트 휠러 박사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강연에서 블랙홀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휠러는 이 이름을 적극 사용했고, 곧 블랙홀은 널리 알려진 단어가 됐다. 2008년 휠러가 타계했을 때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실린 부고 기사에 따르면, 그는 이 단어를 강연 중 청중에게 들었고, 곧바로 마음에 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간접적으로만 보던 블랙홀, 이제 직접 관측

이후 천문학자들은 블랙홀의 존재를 믿고 관측을 통해 크고 작은 무수한 블랙홀을 발견하게 됐다. 생성 원인이나 성질도 이론을 통해 밝히고 있다. 별의 잔해와 먼지가 블랙홀 주변에 거대한 회전 원반을 이루며 블랙홀 내부로 흘러 들어가면, 물질이 서로 부딪히며 마찰열과 빛, 고에너지 입자를 방출한다. 먼지 원반의 수직 방향으로 내뿜는 고에너지 입자는 ‘제트’로 불리며 먼 지구에서도 관측될 정도로 강렬하다. 지상에서는 이런 제트를 관측해 블랙홀의 존재와 성질을 간접적으로 연구해 왔다.

 

충돌하는 두 블랙홀이 주변에 중력파를 발생시키는 모습을 그렸다. 중력파는 그 동안 빛을 통해 관측하기 어려웠던 블랙홀 연구에 새 돌파구를 열었다. 사진제공 NASA

충돌하는 두 블랙홀이 주변에 중력파를 발생시키는 모습을 그렸다. 중력파는 그 동안 빛을 통해 관측하기 어려웠던 블랙홀 연구에 새 돌파구를 열었다. 사진제공 NASA

 

 

2015년부터는 블랙홀끼리의 충돌로 생성되는 미세한 시공간의 일렁임인 ‘중력파’ 검출에도 성공하면서(최초 발표는 2016년), 이제는 전자기파가 아닌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블랙홀 연구가 탄력을 받게 됐다.

최근에는 초대질량블랙홀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번 EHT 연구에서 관측한 것도 초대질량블랙홀이다. 태양보다 질량이 최소 수백만 배 큰 블랙홀이다. 우리은하 중심부에 위치한 초대질량블랙홀인 ‘궁수자리A별(Sgr A*)’은 태양 질량의 400만 배 이상의 크기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 정도는 우주에서 ‘귀여운’ 수준의 초대질량블랙홀로 평가 받는다. 태양 질량의 수백억 배 크기의 초대질량블랙홀도 우주에는 존재하는 것으로 과학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간 이론과 간접 관측으로만 존재를 추정해 오던 블랙홀이 10일 밤 처음으로 관측 결과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블랙홀도 직접 관측을 통해 연구할 수 있는 시대다. 처음에는 방정식 속에 숨은 수학적 개념이었던 블랙홀이 천문학적인 존재가 된지 104년. 인류는 이제는 직접적인 증거로 그 실체를 보다 확실히 알게 됐다.

 

 

(원문: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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