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istotle’s wheel paradox
- 아리스토텔레스의 바퀴 역설; 아리스토텔레스의 바퀴
- 수레바퀴의 역설
- 원의 둘레에 관한 역설
- 바퀴를 굴릴 때 안쪽의 작은 원의 원주가 바깥의 큰 원의 원주와 같게 보이는 역설
- 아래 그림에서 큰 원이 1회전할 때, 큰 원에 고정된 작은 원도 1회전한다. 그러므로 두 원의 둘레의 길이는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바퀴, ‘모든 원의 둘레는 같다?’
우리가 거의 매일 이용하고 있는 자동차에는 그 차가 움직인 거리를 나타내는 계기판이 있다. 계기판에 나타나는 거리는 자동차 바퀴의 회전수를 이용하여 구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문제를 하나 생각할 수 있다. 위의 그림과 같이 중심이 같고 반지름이 다른 두 개의 원을 평면 위에서 1회전 시켜보자. 그림은 평면에 접해있던 큰 원위의 점 A가 한 바퀴 돌아서 다시 평면 위의 점 B로 옮겨 간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이때, 선분 BD의 길이는 큰 원의 둘레와 같다. 그런데 큰 원이 1회전하는 동안 작은 원도 정확하게 1회전했으므로 선분 AC의 길이는 작은 원의 둘레와 같다.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BD=AC이므로 큰 바퀴와 작은 바퀴의 둘레의 길이는 같아 보인다. 그렇다면 모든 원의 둘레는 같은 것일까? 모든 자동차는 바퀴의 반지름의 크기에 관계없이 바퀴의 회전수가 같으면 항상 같은 거리를 움직이게 되는 것일까?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
그 해답은 다음 그림과 같이 다각형이 이동한 흔적을 이용하여 생각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림을 잘 보면 큰 정사각형은 변이 직선 AA′ 에 밀착된 상태를 유지하며 움직이고 있으나 작은 정사각형의 변은 직선 EE′에 밀착된 상태를 유지하지 않고 군데군데 점프하면서 움직이고 있다. 즉 □EFGH가 굴러 □E′F′G′H′로 옮겨 가는 동안 4개의 점선으로 표시한 점프하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이 점프하는 구간의 길이의 합이 바로 큰 정사각형이 굴러간 거리와 작은 정사각형이 굴러간 거리의 차이다. 같은 방법으로 정오각형을 한 바퀴 굴리면 5개의 점프하는 구간이 생기고 정n각형을 굴리면 모두 n개의 점프하는 구간이 생기게 된다. 변의 수를 무한히 늘려 다각형을 원에 가깝게 만들어 한 바퀴 돌리면 이 다각형은 무한히 점프하면서 한 바퀴를 돌게 된다. 즉, 두 동심원이 한 바퀴 돌아갈 때 내부의 작은 원은 쉴 새 없이 점프하면서 돌아간다.
첫 그림에서 큰 원은 선분 BD 위를 밀착된 상태로 굴러가므로 큰 원의 둘레와 선분 BD의 길이가 같다. 하지만 작은 원은 선분 AC 위를 무한히 점프하면서(미끄러지면서) 굴러가므로 큰 원의 둘레와 선분 BD의 길이가 같다. 하지만 작은 원은 선분 AC 위를 무한히 점프하면서(미끄러지면서) 굴러가게 되므로 작은 원의 둘레는 선분 AC의 길이와 같지 않다. 이제 변의 수를 무한히 많이 늘려 다각형을 원에 가깝게 만들면 작은 바퀴가 지나간 선분 속에는 이 다각형의 무한개의 변과 무한개의 ‘점프하는 부분’이 들어있다. 따라서 작은 바퀴의 둘레와 큰 바퀴의 둘레는 이 무한히 많은 ‘점프하는 부분’을 합해놓은 만큼 차이가 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큰 바퀴가 굴러가는 동안 작은 바퀴는 눈에 띄지 않게 점프하면서 굴러간 것이다.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명한 적이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바퀴라고 부른다.
트로코이드(trochoid)는 직선을 따라 굴러가는 원의 안 또는 바깥에 위치한 한 정점이 그리는 곡선이다. 원의 중심 C는 L과 평행하게 움직이며, 원 위의 회전하는 면 위에 있는 점 P는 트로코이드라 불리는 곡선을 그리게 된다. CP = b라고 하자, P가 원 내부에 있다면, b < a 를 만족하고, 원주에 있다면, b = a(이 경우는 사이클로이드이다.), 원 바깥에 있다면, b > a 를 만족한다. L을 x축으로 잡고, 매개변수를 이용하여 트로코이드의 방정식을 쓰면,
가 된다. 식에서 θ 가 매개변수로 사용되었다. 원 내부의 점이 그리는 자취(curtate)는 자전거 페달이 그리는 자취가 된다. 원 바깥에 정점을 잡았을 경우(prolate)에는 곡선은 자신을 교차하며 루프를 만든다. 정점이 원주에 있을 경우 싸이클로이드로 불린다.
원이 직선이 아닌 더 큰 원의 내부를 따라 돌면서 만드는 곡선은 하이포트로코이드로, 다른 원의 외부를 돌면서 만드는 곡선은 에피트로코이드로 부른다.
아래는 무한과 관련된 2023년 4월 1일 뉴스입니다~
(원문: 여기를 클릭하세요~)
‘자연수 집합’과 ‘짝수 집합’ 크기는 같다?…수학 바꾼 ‘무한’
수학자 이승재 서울대 박사후연구원(왼쪽), 인문학자 이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오른쪽)
Q(수학자). 무한을 단순히 큰 수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텐데요. 사실은 어떤 정해진 큰 수를 넘어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상태’라는 어려운 개념이에요. 그럼 인류사에서 무한에 관심을 갖고 탐구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요.
A(인문학자).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무한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입니다. 인류는 무서운 자연재해를 겪고 신에 관한 생각을 가지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무한한 존재에 관심을 가졌어요. 그러다 보니 무한에 관한 고민을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를 정확히 아는 건 어려운 일이지요. 무한을 수학적으로 연구한 고대 기록 가운데 흥미로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기원전 3세기경)의 저서 <모래알을 세는 사람>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아르키메데스는 공간 차원의 무한을 고민하면서 이 책을 썼는데요. 책에는 ‘우리가 사는 우주 전체를 모래알로 채운다면 얼마나 많은 모래알이 필요할까’라는 굉장히 재미있는 상상이 적혀 있어요.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인류가 무한을 다루기 위한 예비적인 작업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르키메데스의 <포물선의 면적에 관하여>라는 책에는 시간 차원의 무한을 고민한 흔적이 있는데요. 책에서 포물선과 직선이 두 점에서 만나 만드는 활꼴의 넓이를 구하려고 합니다.
먼저 활꼴에 내접하는 삼각형을 그리고, 삼각형을 빼고 남은 활꼴에 또 삼각형을 그리는 과정을 반복해 삼각형들의 넓이를 합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를 시간 차원의 무한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삼각형을 내접시키는 작업을 끝도 없이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이 방법을 ‘소진법’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무한히 수를 더하는 ‘무한급수’를 구하기위한 노력의 시초라고 할 수 있지요”
Q(인문학자). 고대 그리스에서 무한으로 어떤 탐구를 했는지 짧게 살펴봤는데요. 오늘날 수학자는 무한을 어떻게 정의하나요.
A(수학자). “앞서 무한은 수의 개념이 아니라 영원히 끝이 안나는 상태에 가깝다고 했는데요. 아무리 큰 자연수가 있어도 그 수에 1을 더하면 새로운 자연수가 나타나잖아요. 그래서 가장 큰 자연수를 구하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어요. 수학에서 이러한 부분을 엄밀하게 다루는 분야를 ‘집합론’이라고 합니다. 수학에서는 무한을 정의할 때 먼저 원소의 개수가 무한한 집합을 찾고, 그 집합의 크기를 무한이라고 이야기해요. 자연수 집합이 대표적이지요.”
Q(인문학자). 그러니까 무한을 다루기 위해서 적절한 대상의 집합을 설정하고, 그 집합의 크기를 일종의 무한이라고 생각한 거네요. 그 말씀을 듣고 보니까 끝이 없는 무한을 크기로 표현한다는 게 너무 재미있는 생각 같아요. 그러면 더 큰 무한과 더 작은 무한으로 나눌 수도 있을까요.
A(수학자). “그렇죠. 그 부분이 무한을 이해하는 핵심이에요. 자연수 집합 안에 짝수 집합이 포함돼 있어요. 그러면 자연수 집합과 짝수 집합 중 어느 집합이 클까요? 대다수가 아무 의심 없이 자연수 집합이 더 크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런데 두 집합의 크기는 똑같아요. ‘한 집합이 다른 하나를 포함하고 있다’와 ‘한 집합이 다른 집합보다 크다’는 같은 문장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무한 집합은 어떻게 크기를 비교할까요? 수학자들은 어떤 집합과 다른 집합이 일대일대응이 된다면 이 두 집합의 크기가 같다는 개념을 내세워요. 자연수 집합과 짝수 집합을 한번 비교해볼게요. 자연수 집합에서 1, 2, 3, 4…에 2를 곱한 짝수를 대응하면 빠지는 숫자가 없이 모두 일대일대응이 돼요. 그렇기 때문에 두 집합의 크기가 같아요.
수학동아 DB
Q(인문학자). 수학자는 복잡한 무한을 어떻게 다루나요.
A(수학자). “예를 들어서 설명해볼게요. A는 자신보다 100m 앞서가는 B보다 2배 빠른 속도로 B를 따라잡으려고 해요. 그런데 A가 100m를 가는 동안 B는 다시 50m를 가고, 이어 A가 50m를 가는 동안 다시 B는 25m를 더 가지요. 이렇게 A가 B를 따라잡으려고 애써도, B 역시 계속 움직이므로 A는 영원히 B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기원전 5세기에 나온 ‘제논의 역설’입니다. 현대수학을 이용해 이 논리가 틀림을 보일 수 있지만, 19세기 전 까지는 이를 깨트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수학동아 DB
이렇듯 수학자는 무한급수를 이용해 무한을 다룹니다. 다른 예시를 하나 더 들어볼게요. 수학자가 하는 일 중 하나는 증명이잖아요. ‘1부터 n까지 자연수의 합은 언제나 n(n + 1)/2 이다’ 라는 명제를 증명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명제가 참이려면 n이 어떤 수이건 모두 참이어야 해요.
이러한 명제를 증명하는 방법 중 하나가 ‘수학적 귀납법’이 이에요. n = 1일 때 성립함을 보이고, n = k일 때 성립한다고 가정한 뒤 n = k + 1이 성립함을 보이면 어떤 무한한 계산이라도 참과 거짓을 증명할 수 있지요.”
수학동아 DB
Q(수학자) 지금까지 무한에 관한 수학 이야기를 했는데요. 교수님이 생각하시기에 우리는 진정 무한을 아는 걸까요.
A(인문학자) “무한을 어떤 방식으로 정의하는지에 따라서 답이 다를 것 같아요. 저도 무한을 처음 배울 때는 잘 못 받아들였어요. ‘왜 이걸 알아야 하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고요. 그런데 수학사를 공부해 보니까 그게 비단 저만의 경험은 아니었더라고요.
미적분학을 창시한 독일 수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1646~1716)조차 무한에 관해서 착각한 적이 있어요. 라이프니츠의 스승인 네덜란드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1629~1695)는 라이프니츠를 시험해보려고 분모가 ‘삼각수’이고, 분자가 1인 유리수들의 무한급수가 수렴하는지를 묻는 문제를 냈어요.
라이프니츠의 풀이 과정을 보면 이 위대한 수학자조차도 유한과 무한을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그런 걸 보면 무한을 이해하는 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네요.”
수학자. 굉장히 좋은 말씀을 해주신 것 같아요. 앞서 제가 말했던 무한의 크기에 관한 이야기도 직관적이지는 않잖아요. 실제로 19세기 후반 칸토어가 처음 무한의 크기를 이야기했을 때 수학자들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20세기 초반 독일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1862~1943)와 영국 수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에 의해 수리철학의 토대가 마련되면서 점차 무한을 받아들였지요.
수학자들 사이에서도 무한의 정의에 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해요. 예를 들면 ‘자연수 집합과 실수 집합의 중간 크기인 무한 집합이 있을까’ 같은 질문을 하지요.
‘연속체 가설’이라고 알려진 문제인데요. 근데 아주 신기하게도 ‘현재의 수학 체계에서는 이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할 수 없다’가 증명돼 있습니다. 증명할 수 없다는 게 증명됐다니 참 이상하지요. 어떻게 보면 우리가 무한에 여러가지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무한은 아직도 아니 어쩌면 영원히 이해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학동아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