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에서 전자투과현미경scanning tunneling microscope을 이용해 제논 원자 35개를 배열하여 “IBM”이라고 쓴 영상을 내보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30년 전 일이다. 그 후 IBM에서는 일산화탄소 분자를 구리 원자 표면에 배열해 <소년과 원자 A Boy and His Atom>(2013)라는 1분 30초 분량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영화를 제작하였다. 내용인즉슨 한 소년이 원자를 만나 함께 춤도 추고 탁구공 다루듯이 원자를 가지고 노는 것이 전부지만, 데이터 저장의 극한을 보여준 영화로 알려져 있다(참고로 평점 6.8/10점을 받았다). 이렇듯 우리는 원자의 위치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시대, 더 이상 원자 혹은 분자의 실재를 의심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원자나 분자와 같은 낟알입자, particle로 세상이 구성되어 있다는 “원자/분자 가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진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IBM

 

“주어진 온도와 압력에서 기화된 물질이 차지하는 부피가 같다면, 그 기체를 이루는 물질의 총 개수는 물질의 종류에 상관없이 같다.”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 세상이 낟알로 구성되었다고 믿었던 이탈리아의 과학자 아보가드로Amedeo Avogadro, 1776-1856가 제안한 가설이다. 물 2당량(36g)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소 2당량(4g)과 산소 1당량(32g)이 요구된다는 식의 근대정량화학은, 바로 이 아보가드로 가설을 바탕으로 태동하였다. 하지만 아보가드로 자신은 구체적인 숫자를 확정할 수 없는 처지였고, 물이나 수소, 산소가 결국에는 무한히 나눌 수 있는 물질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물질의 상대적인 비율에 기반 둔 근대화학의 법칙은 여전히 성립했다. 세상이 원자나 분자와 같은 낟알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필요했던 건, 이들 낟알 사이의 비율이 아니라 낟알들의 절대적인 크기와 질량에 대한 정보, 혹은 1당량 안에 든 낟알들의 일관된 개수였다.

18세기 중반, 런던의 어느 마을에서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남성이 한 티스푼 분량의 올리브유를 연못에 떨어뜨렸다. 노란빛을 띤 올리브유는 연못 표면의 4분의 1정도를 유유히 퍼져 나가다 멈췄다. 약 반 에이커가 조금 안 되는 넓이였다. 이 중년의 남성은 18세기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5-1790이다. 그는 정치인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으나, 자연과학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번개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폭풍우가 치던 날 들판에서 연을 날렸다는 일화는, 프랭클린의 과학자적 면모를 기술할 때 주로 거론되곤 한다. 분자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100년도 전에 프랭클린은 연못에서 올리브유를 구성하는 분자의 크기를 가늠해보려고 했던 것이다. 올리브유가 연못 표면에 무한히 퍼지지 않고 분자의 단일층으로 구성된 얇은 막을 형성할 때까지만 퍼진다는 가정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티스푼 분량의 올리브유 부피를 연못에 생긴 얇은 막의 면적으로 나눠 올리브유를 구성하는 올레산 단일분자의 크기를 대략적으로 얻어낼 수 있다.

 

 

프랭클린이 연못에서 수행했던 실험은, 역사상 분자 크기 측정과 관련된 실험 중 가장 간단하면서도 기지가 돋보이는 실험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한 티스푼의 부피가 4.5ml(=4.5cm3)고, 반 에이커는 2000m2정도 된다는 사실에서 추정되는 올리브유 단일 기름층의 두께는 2×10-7cm=2nm 정도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올리브유의 주요 구성 성분인 올레산의 실제 길이(2nm)에 놀라울 정도로 가깝다.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측정치를 이용해서 광학현미경으로도 확인할 길이 없는 분자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다. 물론 프랭클린의 실험이 분자의 존재를 확증해주지는 않는다. 지금이야 올레산의 분자구조를 모두가 받아들이고 개별원자들의 크기, 거리를 다 알고 있는 시대여서 별 감흥이 없을 수 있겠지만, 당시는 올리브유가 개별 분자로 구성된 것인지 무한히 나눌 수 있는 연속적인 매질의 한 종류인지조차도 몰랐던 시절이었다.현대과학이라고 하면 슈퍼컴퓨터에 연결된 매우 정교한 기계장치를 보안 시설에 수용하고 있는 연구소가 연상되는 시대에, 프랭클린의 올리브유 실험은 무척이나 신선하다. 여러분은 분자의 크기를 대략적으로 가늠하는 방법 중 프랭클린의 올리브유 실험보다 더 저렴하고,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실험법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수학적으로도 나눗셈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이보다 더 간단할 수는 없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면 연못 표면을 덮은 기름의 면적 측정 정도가 되겠지만, 면적의 계산에서 100%의 오차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분자의 크기가 1cm의 천만 분의 일 정도로 작다는 직관을 전달하는 데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프랭클린의 실험 이후 100여 년이 흐른 20세기 초반까지도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의 근원이 무한히 나눌 수 있는 연속적인 매질인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낟알인지에 대한 논쟁이 최종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은 그런 시대에 태어났다. 취리히 공대에서 박사학위과정을 밟던 중 아인슈타인은 훗날 사람들이 ‘기적의 해’라고 일컫는 1905년에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A New Determination of Molecular Dimensions”을 비롯해서 (1)브라운 운동 (2)광전효과 (3)특수상대론 (4)질량-에너지 등가성에 관한 다섯 편의 논문을 발표한다. 이 중 학위 논문을 포함해 브라운 운동에 관한 논문이 ‘아보가드로 수’ (NA=6.022 x 1023), 즉 1몰에 담겨있는 고전적인 입자 개수의 결정을 통해 물질세계의 불연속성을 주장한 것이라면, 광전효과는 이러한 주장을 빛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한 셈이었다. 20세기 초반 타 과학자들이 파동학의 유행을 좇는 동안 아인슈타인은 분자라는 낟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무던히도 고심했고, 결국엔 아보가드로 수를 결정할 수 있는 이론적 바탕을 제안하였다. 이는 멀지 않은 훗날 실험가들이 원자 혹은 분자의 실재 규명을 위한 실험을 수행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좋은 과학이론이란 실험을 통해 반증 가능한falsifiable 이론이며, 실험 자체가 수행 가능한 이론이다. “나는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심오한 이론을 제안했으니 실험 방법은 당신들이 알아서 고안해 보라”는 식의 이론들은, 누군가에 의해 실험이 가능토록 각색되지 못하면 결국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게 마련이다. 브라운 운동과 관련된 아인슈타인의 관계식은 좋은 과학이론의 표본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kB T = D ζ.

 

흔히 아인슈타인의 관계식이라고 알려진 위 식은 액체 내부를 떠돌아다니는 콜로이드 입자의 무작위운동(브라운 운동)을 수학적으로 기술한 결과물로서, 콜로이드 입자의 요동이 마찰을 통한 에너지의 소멸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식의 좌변은 열에 의한 입자의 요동을 의미하고, 우변은 에너지의 소멸과 관련된 마찰계수이다. 그 둘 사이를 연결하는 비례상수가 콜로이드 입자의 확산계수인 셈이다. 마찰력이 존재한다는 건 물체의 운동에너지가 주위를 가득 채운 물 분자와 충돌해 소멸된다는 의미이고, 물체가 잃은 에너지는 열적 요동을 통해 다시 충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의 실체는 무작위적인 분자의 운동이라는 가설을 한 줄의 간단한 관계식을 통해 선언하고 있다. 위 식은 분자의 실재를 모르고도 측정할 수 있는 거시적 측정치들, 즉 물체의 확산계수(D), 마찰계수(ζ), 그리고 온도(T)를 통해, 분자 혹은 원자의 실재와 관련된 볼츠만 상수(kB)라는 보편적인 값을 정하는 걸 가능케 해준다. 입자의 크기는 확산하는 정도에 영향을 주며 마찰력의 크기를 결정한다. 즉, 큰 콜로이드 입자는 작은 확산계수와 큰 마찰계수를 가질 것이고, 작은 콜로이드 입자는 큰 확산계수와 작은 마찰계수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두 값을 곱하면 항상 kBT라는 양이 얻어진다는 것을 아인슈타인의 관계식이 말해준다. 이 가설이 맞다면 관측하는 물체가 크든 작든, 종류가 무엇이든, 매질의 점성이 어떤 값을 갖든 상관없이 동일한 값의 볼츠만 상수(kB), 따라서 아보가드로 수(NA)를 기체상수(R=kBNA)로부터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 값이 다르다면 원자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겠다는 패기가 담긴 관계식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관계식을 통해 프랭클린의 실험처럼 거시적인 측정값을 가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의 실체를 밝히고자 하였다. 당시 브라운 운동의 근원이 열적 요동이라는 주장은 아인슈타인이 처음 한 것이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의 위대성은 그가 새롭고도 검증 가능한 형태의 정량적인 이론을 제안해 냈다는 데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브라운 운동에 관한 논문이 1905년에 발표된 후, 이에 영감을 얻은 실험물리학자 중 페린Jean Baptiste Perrin, 1870-1942은 다양한 점성도(η)에서 다양한 크기를 갖는 콜로이드 입자(Rc)의 움직임 관측을 통해 일관된 값의 아보가드로 수가 얻어짐을 확인하고 분자이론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1 아인슈타인 관계식이 제안한 콜로이드 입자의 병진확산운동 실험 이외에도, 페린은 입자의 회전확산운동 측정(65×1022), 중력 하에서 퇴적된 기체/액체 에멀젼의 수직 분포 측정(68×1022 / 62×1022), 고농도 에멀젼의 요동 측정(60×1022)을 통해서도 일관된 값의 아보가드로 수를 얻을 수 있었다. 이들 값은 흑체복사 분석(64×1022), 패러데이 상수를 전자의 기본전하로 나눈 값(61×1022), 그리고 방사선 붕괴실험 분석(62×1022-70×1022) 등에서 가늠되는 아보가드로 수와도 동일한 범위에 있었다. 아보가드로 수의 결정을 통하여 물질 세계의 불연속성 증명에 천착한 페린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2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비록 그 숫자의 절대적인 값은 엄청나게 크지만 전혀 다른 이론과 실험방법을 통해서 아보가드로 수가 유한하고 일관된 값으로 얻어졌다는 얘기는, 물질을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분자나 원자와 같이 셀 수 있는countable 입자로 환원됨을 의미한다. 아보가드로 수(NA=6.022×1023)의 결정은 인류가 그동안 가졌던  세계관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했고 이후 양자역학의 태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물질세계의 연속성continuity 대 불연속성discreteness이라는 고대에서 비롯된 해묵은 논쟁은 이렇게 20세기 초반이 되어서야 일단락이 되었다. 본질적으로 우주는 원자로 불리는 100여 가지 레고 조각의 다양한 조합으로 이뤄진다는 걸 깨달은 인류는, 이후 놀라운 속도로 자연과 적극적인 상호작용하며 세상을 바꿔갔다.

 

 

(원문: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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