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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온도와 압력에서 기화된 물질이 차지하는 부피가 같다면, 그 기체를 이루는 물질의 총 개수는 물질의 종류에 상관없이 같다.”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 세상이 낟알로 구성되었다고 믿었던 이탈리아의 과학자 아보가드로Amedeo Avogadro, 1776-1856가 제안한 가설이다. 물 2당량(36g)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소 2당량(4g)과 산소 1당량(32g)이 요구된다는 식의 근대정량화학은, 바로 이 아보가드로 가설을 바탕으로 태동하였다. 하지만 아보가드로 자신은 구체적인 숫자를 확정할 수 없는 처지였고, 물이나 수소, 산소가 결국에는 무한히 나눌 수 있는 물질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물질의 상대적인 비율에 기반 둔 근대화학의 법칙은 여전히 성립했다. 세상이 원자나 분자와 같은 낟알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필요했던 건, 이들 낟알 사이의 비율이 아니라 낟알들의 절대적인 크기와 질량에 대한 정보, 혹은 1당량 안에 든 낟알들의 일관된 개수였다.
18세기 중반, 런던의 어느 마을에서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남성이 한 티스푼 분량의 올리브유를 연못에 떨어뜨렸다. 노란빛을 띤 올리브유는 연못 표면의 4분의 1정도를 유유히 퍼져 나가다 멈췄다. 약 반 에이커가 조금 안 되는 넓이였다. 이 중년의 남성은 18세기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5-1790이다. 그는 정치인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으나, 자연과학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번개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폭풍우가 치던 날 들판에서 연을 날렸다는 일화는, 프랭클린의 과학자적 면모를 기술할 때 주로 거론되곤 한다. 분자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100년도 전에 프랭클린은 연못에서 올리브유를 구성하는 분자의 크기를 가늠해보려고 했던 것이다. 올리브유가 연못 표면에 무한히 퍼지지 않고 분자의 단일층으로 구성된 얇은 막을 형성할 때까지만 퍼진다는 가정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티스푼 분량의 올리브유 부피를 연못에 생긴 얇은 막의 면적으로 나눠 올리브유를 구성하는 올레산 단일분자의 크기를 대략적으로 얻어낼 수 있다.
좋은 과학이론이란 실험을 통해 반증 가능한falsifiable 이론이며, 실험 자체가 수행 가능한 이론이다. “나는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심오한 이론을 제안했으니 실험 방법은 당신들이 알아서 고안해 보라”는 식의 이론들은, 누군가에 의해 실험이 가능토록 각색되지 못하면 결국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게 마련이다. 브라운 운동과 관련된 아인슈타인의 관계식은 좋은 과학이론의 표본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kB T = D ζ.
흔히 아인슈타인의 관계식이라고 알려진 위 식은 액체 내부를 떠돌아다니는 콜로이드 입자의 무작위운동(브라운 운동)을 수학적으로 기술한 결과물로서, 콜로이드 입자의 요동이 마찰을 통한 에너지의 소멸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식의 좌변은 열에 의한 입자의 요동을 의미하고, 우변은 에너지의 소멸과 관련된 마찰계수이다. 그 둘 사이를 연결하는 비례상수가 콜로이드 입자의 확산계수인 셈이다. 마찰력이 존재한다는 건 물체의 운동에너지가 주위를 가득 채운 물 분자와 충돌해 소멸된다는 의미이고, 물체가 잃은 에너지는 열적 요동을 통해 다시 충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의 실체는 무작위적인 분자의 운동이라는 가설을 한 줄의 간단한 관계식을 통해 선언하고 있다. 위 식은 분자의 실재를 모르고도 측정할 수 있는 거시적 측정치들, 즉 물체의 확산계수(D), 마찰계수(ζ), 그리고 온도(T)를 통해, 분자 혹은 원자의 실재와 관련된 볼츠만 상수(kB)라는 보편적인 값을 정하는 걸 가능케 해준다. 입자의 크기는 확산하는 정도에 영향을 주며 마찰력의 크기를 결정한다. 즉, 큰 콜로이드 입자는 작은 확산계수와 큰 마찰계수를 가질 것이고, 작은 콜로이드 입자는 큰 확산계수와 작은 마찰계수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두 값을 곱하면 항상 kBT라는 양이 얻어진다는 것을 아인슈타인의 관계식이 말해준다. 이 가설이 맞다면 관측하는 물체가 크든 작든, 종류가 무엇이든, 매질의 점성이 어떤 값을 갖든 상관없이 동일한 값의 볼츠만 상수(kB), 따라서 아보가드로 수(NA)를 기체상수(R=kBNA)로부터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 값이 다르다면 원자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겠다는 패기가 담긴 관계식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관계식을 통해 프랭클린의 실험처럼 거시적인 측정값을 가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의 실체를 밝히고자 하였다. 당시 브라운 운동의 근원이 열적 요동이라는 주장은 아인슈타인이 처음 한 것이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의 위대성은 그가 새롭고도 검증 가능한 형태의 정량적인 이론을 제안해 냈다는 데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브라운 운동에 관한 논문이 1905년에 발표된 후, 이에 영감을 얻은 실험물리학자 중 페린Jean Baptiste Perrin, 1870-1942은 다양한 점성도(η)에서 다양한 크기를 갖는 콜로이드 입자(Rc)의 움직임 관측을 통해 일관된 값의 아보가드로 수가 얻어짐을 확인하고 분자이론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1 아인슈타인 관계식이 제안한 콜로이드 입자의 병진확산운동 실험 이외에도, 페린은 입자의 회전확산운동 측정(65×1022), 중력 하에서 퇴적된 기체/액체 에멀젼의 수직 분포 측정(68×1022 / 62×1022), 고농도 에멀젼의 요동 측정(60×1022)을 통해서도 일관된 값의 아보가드로 수를 얻을 수 있었다. 이들 값은 흑체복사 분석(64×1022), 패러데이 상수를 전자의 기본전하로 나눈 값(61×1022), 그리고 방사선 붕괴실험 분석(62×1022-70×1022) 등에서 가늠되는 아보가드로 수와도 동일한 범위에 있었다. 아보가드로 수의 결정을 통하여 물질 세계의 불연속성 증명에 천착한 페린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2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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