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개념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쉽게 말하자면 복제물을 다시 복제한 것을 말합니다. 최초의 모델에서 시작된 복제가 자꾸 거듭되면, 나중에는 최초의 모델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가 됩니다. 때문에 세계에서 고유하고 유일한 것은 사라지고 동어반복만이 남게 되는 것이지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혹은 원본보다 더 정교하게 복제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3D 프린터가 등장한 이상, 이런 고민은 조금 더 구체성을 띄고 우리의 삶속에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대형마트의 전자제품 코너에 가면 소형 3D 프린터를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주로 산업에 쓰였던 것이, 현재는 가정용으로도 널리 모급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앞으로는 무엇이든 집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며 사회적으로 한창 큰 파장을 일으켰었죠. 관련된 도서도 많이 나오고, 교육기관도 많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 수밖에 없게 됐죠.
그렇다면, 과연 3D 프린터는 무엇일까요?
3D 프린터
3D 프린터는 쉽게 말하자면 2D 프린터가 활자나 그림을 인쇄하듯이, 입력한 도면을 바탕으로 하여 3차원의 입체 물품을 만들어내는 기계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2D 프린터, 즉 잉크젯프린터의 경우에는 잉크를 종이표면에 분사하여 활자나 그림을 인쇄하는 원리를 가지고 있는데요, 따라서 텍스트나 이미지로 구성된 문서 데이터를 주로 이용하게 됩니다. 이때 2D 프린터는 앞뒤(x축)와 좌우(y축)으로만 운동하지만, 3D 프린터는 여기에 상하(z축) 운동을 더하여 입력한 3D 도면을 바탕으로 입체 물품을 만들어냅니다. 즉, 3차원의 입체적인 공간에 인쇄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3D 프린터의 역사
3D 프린터는 최근 들어서야 주목받으며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기업에서 물건을 제품화하기 이전에 시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용도로 먼저 개발되었습니다. 때는 1980년대, 미국의 3D 시스템즈 사에서 플라스틱 액체를 굳혀 입체를 만들어내는 프린터를 개발해낸 것이 그 시작이었답니다. 초기에는 높은 생산 비용 등의 문제나, 지적재산권 등을 이유로 항공이나 자동차 산업 등에서 시제품을 만드는 용도로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작 비용이 떨어지고, 지적재산권의 행사 기간이 종료됨에 따라 최근 본격적인 개발이 이뤄지고 있지요. 소재 역시 초기에는 단순히 플라스틱 소재에만 국한되어 있었지만 점차 발전하여 나일론과 금속 소재로 범위가 확장되었고 마침내 산업용 시제품 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상용화 단계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활용됨에 따라 점차 소재가 확장되어 이제는 플라스틱이나 금속 뿐 아니라 고무, 세라믹, 초콜릿 등이 그 재료가 사용되기도 한다고 하네요. 하드웨어 개발자들은 예전처럼 고가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손쉽게 제품을 개발 생산할 수 있어 즐거워한다는 후문입니다.
3D 프린터의 원리
3D 프린터는 모델링(modeling), 프린팅(Printing), 피니싱(Finishing)의 세 단계를 통해 물건을 복제해냅니다. 먼저 모델링은 3D 도면을 제작하는 단계로 3D 전용 CAD나 모델링 프로그램, 혹은 스캐너가 필요합니다. 프린팅은 모델링 과정에서 제작된 3D 도면을 이용하여 직접 물체를 만드는 단계로, 만들어야 하는 물체에 따라 적층형 또는 절삭형으로 작업을 진행합니다. 소요되는 시간은 물론 제작물의 크기나 복잡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지요. 피니싱은 산출된 제작물에 대해 보완작업을 하는 단계로, 색을 칠하거나 표면을 연마하거나 부분 제작물을 조립하는 등의 작업을 진행하는 단계입니다.
3D 프린터의 동작 방식은 기본적으로 케이크 위에 데코레이션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입체 형태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한 층씩 쌓아 올리는 적층형과 큰 덩어리를 깎아내려가는 절삭형으로 구분합니다. 먼저 적층형은 파우더(석고나 나일론 등의 가루)나 플라스틱 액체, 또는 플라스틱 실을 종이보다 얇은 0.01~0.08mm의 레이어로 겹겹이 쌓아 입체 형상을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레이어가 얇을수록 정밀한 형상을 얻을 수 있고, 채색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고 하네요. 재료의 손실이 없어서 최근 보급되는 대부분의 3D 프린터가 적층형이라고 하네요. 식용파우더를 사용하여 먹을 수 있는 고형을 만드는 연구도 진행중입니다.
반면, 절삭형은 커다란 덩어리를 조각내듯이 깎아내 입체 형상을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적층형에 비해 완성품이 더 정밀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재료가 많이 소모되고, 내부가 파인 모양은 제작하기 어려우며 채색 작업을 따로 해야만 한다는 것이 단점으로 꼽힙니다.
두 방식을 사용하면 기존의 방식대로 제품을 생산하는 것보다 오히려 재료를 더 아낄 수 있다고 하는데요. 자동차 휠 제조사 HRE에 따르면, 최근 선보인 세계 최초의 3D 프린팅 티타늄 휠은 지금까지의 제조방식에 비해 훨씬 낭비가 덜하다고 하네요. 기존의 방식으로 알루미늄 휠을 만들면 소재의 약 80%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3D 프린터를 사용하면, 불필요한 낭비가 사라지는 것이죠. 더군다나 디자인의 측면에서도 자유도가 더더욱 높아졌다고 해요. 다양한 구조를 엮어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3D 프린터의 활용
3D 프린터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분야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항공이나 자동차와 같은 제조업 분야에서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유럽항공방위산업체(EADS)는 3D 프린터를 이용하여 자전거를 조립 단계를 거치지 않은 완성품으로 인쇄해낸 바 있으며, 영국의 사우샘프턴대학에서는 시속 160km로 비행하는 무인비행기를 제작하기도 한 것이 그 예시입니다. 시장조사에 따르면 현재 3D 프린팅의 주 용도는 산업기계부문이 19.9%, 항공부문이 16.6%로 각각 1,2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자동차 분야가 13.8%로 3위를 차지했다네요.
하지만 보편화가 되면서 그 활용 영역을 빠르게 넓혀 의료, 건설, 소매, 식품, 의류 산업 등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의료계에서는 가장 적극적으로 이 3D 프린터를 도입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환자에게 딱 맞는 인공관절이나 인공장기를 만드는 등 정밀도가 필요한 분야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외에도 치아, 두개골, 의수, 인공 귀 등을 만들 때 사용됩니다.
식품 분야에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죠. 장미 모양이나 사람 얼굴 모양을 본딴 입체 초콜릿을 만드는 것은 기본이구요, 쿠키나 라면과 같은 패스트푸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NASA에서는 우주에서 먹을 음식을 만들기 위해 피자나 햄버거를 만들 수 있는 3D 푸드 프린터를 개발하기도 했다고 하지요.
3D 프린터의 장점
3D 프린터의 장점은 끝도 없습니다. 먼저 부품 개발비용과 시간이 절약되구요. 부품 경량화가 가능하고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지요. 또 부품간의 결합을 고려할 필요 없이 원하는 디자인을 통째로 뽑아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기존에 비해 설계오류에 훨씬 더 발빠른 대응이 가능한 거지요. 포드의 기술 책임자인 엘렌 리는 “우리는 3D 프린터를 이용해 다양한 부품을 만들고 있다”며, 3D 프린터의 중요성과 장점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는 “3D 프린터를 쓸 경우 제작 과정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죠. 국내에서도 3D 프린터가 적극 활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현대모비스가 있는데요, 지난 2002년부터 실제 부품 개발에 이 3D 프린터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네요. 디자인을 자주 변경해야 하는 개발 초기단계에 활용하면 단가를 줄이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속한 검증과 피드백이 가능해지죠. 포르쉐나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3D 를 활용하고 있다고 해요. 점차 그 강도와 내구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는 안전성 역시 보장되겠죠?
중국, 3D 프린터로 세계 최대 교량 축조
또한 최근에는, 3D 프린터로 만든 교량이 중국 상하이에 설치되어 큰 관심을 모았는데요. 교량의 총 길이는 26.3미터, 넓이는 3.6미터에 달합니다. 재료는 특수 콘크리트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3D 프린터로 만든 교량 중에서는 최대 규모라고 하죠. 이 작업을 담당했던 칭화대의 쉬웨이궈 교수와 연구진은 이를 위해 콘크리트 3D 프린팅 시스템을 자체 개발했답니다. 이 시스템은 디지털 건축설계, 프린팅 가공 경로 생성, 제어장치 작동, 콘크리트 자재 배합 등 복합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기능들이 한데 모여 안정적이고 완성도 높은 프린팅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죠. 더군다나 축조 비용이 기존 방식의 3분의 2밖에 들지 않았다고하네요. 일반 아파트에 사용되는 콘크리트의 압축강도가 약 24MPa인데, 이 다리의 압축강도는 65MPa, 휨강도는 15MPa입니다. 사람들이 다리 위에 가득 차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 내구성 있는 다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죠. 실제의 4분의 1 규모인 다리를 먼저 축조한 뒤 다리가 얼마만큼 압력을 받는지, 형체가 변형되는지 등에 관한 데이터를 수시로 수집하여 약 450시간에 걸쳐 축조되었습니다. 3D 프린팅을 실제 건축시공에 활용한 사례는 드물기 때문에 이 교량의 축조가 더 의미 있었답니다!
하지만 분명 생각해볼 지점도 존재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쉽게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진짜보다 더 정교하게 복제된다면, 결국 원본, 즉 고유한 것에 대한 가치는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원본은 보존할만한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원본이라고 믿는 것조차 이미 허상인 걸까요? 3D 프린터가 보편화되어 지금보다 쉽게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면, 어쩌면 각자가 가진 운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도 있을까요? 오늘은 다소 철학적일지도 모를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며 하루를 마무리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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