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세탁기는 한번 고장 나면 고치기 어렵고 돈도 많이 든다. 대신 우린 최신식 세탁기의 뛰어난 성능과 편리함을 누린다. 흥미롭게도 동물과 다른 인간 뇌의 뛰어난 인지능력 역시 진화 과정에서 병에 대한 저항성을 포기하고 얻은 반대급부라는 이론이 나왔다. (2019. 1.)
인간이 우울증이나 자폐증, 불안장애 같은 정신질환에 왜 취약한지를 세탁기에 비유한 이론이 제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여느 동물보다 월등히 우월한 학습과 인지 능력을 얻은 데 대한 대가로 인간의 뇌가 동물보다 약해졌다는 주장이다. 뇌의 효율성과 건장함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연구소는 로니 파즈 신경생물학과 교수 연구진이 텔 아비브대,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와 함께 인간 뇌의 기능적 우수성과 질병에 대한 취약성을 현대의 가전제품에 비유한 ‘세탁기 이론’을 제안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이론은 세포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셀’에 최근 소개됐다.
세탁기는 빨래와 탈수, 건조 등에 최적화하도록 점점 더 정교한 기술이 적용되며 진화해왔다. 하지만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고장 나기 쉽고, 한번 고장 나면 수리가 어렵거나 많은 비용이 든다. 성능이 향상된 만큼 이를 누리는 데 감내해야 할 대가가 커진 것이다. 연구진은 뇌 신경세포가 더 효율적으로 진화함에 따라 오류를 막는 능력은 반대로 줄어들어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뇌와 세탁기의 진화 과정이 유사하다고 봤다. 인간과 다른 영장류인 마카크 원숭이의 뇌와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신경세포의 활동을 비교해 연구진은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
연구진은 텔 아비브대와 UCLA 병원의 간질 환자들의 뇌에 진단을 위해 이식한 전극에서 개별 신경세포들의 전기활동도를 측정했다. 그리고 마카크 원숭이의 뇌에서도 마찬가지로 전기활동도를 측정했다. 연구진이 주목한 뇌 영역은 전두엽 피질과 편도체다. 전두엽 피질에선 주로 의사결정이나 합리적 사고 같은 고등 인지기능이 일어나고, 편도체에선 기본적인 생존과 관련된 기능들이 작동한다.
측정 결과 좀 더 고등한 기능을 수행하는 전두엽 피질의 신경세포 활동은 인간과 원숭이에서 모두 편도체보다 효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두 영역에서 모두 인간 뇌 신경세포가 원숭이보다 더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신경세포의 효율성이 높을수록 기능 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에 대해서는 더 취약했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파즈 교수는 “동물의 뇌는 아주 정교하지는 않지만 기능에 덜 실패하는 쪽을 택했다”며 “생존에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인간의 뇌에선 오류가 생겼을 때 이에 대한 저항성이 낮아 부적절하거나 과장된 반응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파즈 교수는 덧붙였다. 이런 반응이 바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나 불안장애,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우울증, 자폐증 같은 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동물이 진화하는 동안 뇌의 효율성과 건장함 사이에서 ‘제로섬게임’이 일어났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제로섬게임은 게임 참가자들이 무엇을 선택하든 이득과 손해의 총합이 제로(0)가 된다는 뜻의 경제학 이론이다. 뇌의 진화라는 게임에서 동물은 효율성을 포기하는 대신 정신질환에 대한 저항성을 얻었고, 인간은 효율성을 높여 뛰어난 인지능력을 확보했지만 정신질환에 취약해졌다는 설명이다.
인간의 뇌가 왜 다른 동물보다 훨씬 뛰어나게 진화했는지는 과학자들의 해묵은 연구 주제다. 연구진은 인간과 원숭이의 뇌에서 개별 신경세포의 활동 기록을 비교한 이번 실험이 이 연구에 큰 진전을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최고의 학습∙인지∙적응 능력과 불안∙우울 같은 정신질환은 결국 동전의 양면일 것”이라고 파즈 교수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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