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용중인 아라비아 숫자는 원래 인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사진=EBS 화면캡처]

 

숫자는 정확하고 과학적입니다. 어떠한 주관도 담기지 않은 정보를 가장 객관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그래서 차가운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숫자는 보기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조작된 숫자가 마치 진실인 것처럼 받아 들여질 때는 숫자의 객관성은 위협받게 됩니다. 그러나 숫자의 탓이겠습니까? 인간의 욕심 때문이겠지요.

0~9까지 아홉개의 숫자가 모든 숫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0~9까지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면서 완성이기도 합니다. 각 숫자는 어떤 정보와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0’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나 ‘원점’의 개념으로 사용됐습니다. 6세기 초 자리값을 나타낼 때는 빈자리에 ‘●’이나 ‘○’라는 기호를 사용했습니다. ‘120’과 ‘102’, ‘012’를 구분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0이 없어 아예 비워두거나 빈 자리에 ‘●’ 등을 넣어 ’12●’, 1●2′, ‘●12’처럼 표시를 했습니다.

이 기호들은 인도어로 ‘텅비었다’라는 뜻의 ‘슈냐(sunya)’라고 불렀습니다. 이 슈나가 0으로 변했고, 6세기 말 음수와 양수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로도 0을 사용하게 된 것이죠. 그러다가 ‘십진법’을 사용하면서 0의 중요성이 커졌습니다. 드디어 120, 102, 012로 표기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들은 없는 것은 없는 것일뿐 이라면서 0을 인정하지 않았고, 로마숫자에도 0 없이 I, IIIIIIV처럼 표기했습니다. 인도에서 0의 쓰임새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영영 만나지 못했을 숫자였습니다.

‘1’은 처음과 시작의 의미입니다. 0이 있는 만큼 0살, 0학년, 0층 등으로 사용해야 할 법도 한데 1부터 시작해서 1살, 1학년, 1층으로 씁니다. 가장 큰 이유는 1이 0보다 먼저 만들어진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수에서 1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1은 2, 3, 5, 7처럼 1과 자신만 약수로 가지고 있는 소수(素數)도, 1과 자신 이외의 소수를 약수로 가지고 있는 합성수도 아닌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Unique‘나 ‘Only‘의 의미를 가진 독보적인 숫자입니다.

‘2’는 대립과 조화를 나타냅니다. 1보다는 덜 외로운 둘이지요. 동양에서는 음(陰)·양(陽)을 말할 때 2를 떠올렸습니다. 음은 하늘, 어둠, 차가움, 수동적, 차분함 등을 상징하고, 양은 땅, 밝음, 뜨거움, 능동적, 역동성을 상징합니다. 서로 대립하는 음양이 조화를 이뤄 공존하는 것을 2라고 인식했습니다.

‘3’은 완벽함을 의미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라는 ‘삼위일체’의 교리로, 부활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인도의 힌두교는 브라마, 시바, 비슈누 등 3대신을 모십니다. 부모와 아이, 하늘과 땅과 물, 우리 전통 종교인 천도교는 천(天)·지(地)·인(人) 3재 사상이 핵심이었지요. 사람이 하늘과 땅의 대립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2개의 점은 하나의 선에 불과하지만 3개의 점은 하나의 온전한 평면을 만들 수 있어 완벽함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4’는 불길함을 의미합니다. 한자의 ‘죽을 사(死)’가 발음이 같아서 기피하는 것입니다. 한중일 3국이 유달리 싫어하지요. 병원이나 일반 건물에 4층이 없거나 엘리베이터에도 4층 대신 F층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4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동서남북 4방향과 현무, 주작, 청룡, 백호 등 4신수, 춘하추동 4계절, 4자성어, 절 입구의 4천왕 등 4를 즐겨 사용했는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문화가 유입돼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는 4를 좋아했는데 1, 2, 3에 4를 더해주면 10이라는 완벽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물, 불, 흙, 공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은 4를 신성시 한다고 합니다.

‘5’는 완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오행, 오곡, 오장, 오륜, 오감, 정오각형 등 완전무결한 집합체는 보통 5가지로 나뉘거나 이뤄져 있다고 합니다. 사람의 손가락과 발가락 수, 계절의 여왕 5월 등은 완성을 상징합니다. 또, 사랑과 화합을 나타내는데 음인 여성을 뜻하는 숫자 2와 양인 남성을 뜻하는 홀수 3의 결합으로 결혼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6’ 기독교에서 악마 사탄을 뜻하는 숫자입니다. 동양에서는 4, 서양에서는 6과 13을 불길한 숫자로 여깁니다. 성경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666’에서 비롯된 것인데 각종 영화에서 ‘6’을 불길한 숫자의 대명사로 표현하지요. 그러나 수학자들은 6을 완전무결한 수, 최소의 완전수로 부르며 좋아합니다. 주사위의 가장 큰 수와 면수가 6이기도 합니다.

‘7’은 행운의 숫자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7을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7이 환영받는 이유는 성경의 천지창조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창세기에 6일째에 천지창조를 마무리짓고, 7일째에 천지창조를 축복하면서 안식을 하지요. 즉, 끝맺음과 축복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에서는 ‘화나게 하다’와 ‘죽음의 땅’이라는 발음과 비슷해 싫어했다고 합니다. 수학자들은 7을 소수인데다 다른 수와 별로 관련이 없고, 정칠각형을 작도하기도 불가능해 아주 특별한 수로 평가한다고 합니다.

 

8은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입니다. 8이 많이 들어간 번호판은 경매를 통해 비싼 값에 구입하기도 합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8’은 구원과 해탈을 뜻하기도 하고, 부와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입니다. 나아갈 ‘발(發)’과 발음이 비슷한데 ‘돈을 벌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개회식 시각은 8월8일 오후 8시8분, 1988년 8월8일에는 중국 전역에서 결혼식이 열려 시끄러웠다고 합니다.

중국은 거대한 땅덩어리에도 불구하고 모든 국토가 UTC(협정 세계시)에서 8시간 빠른 시간대를 적용합니다. 중국 서부지역의 경우 시차가 3시간까지 날 수 있음에도 여지 없이 동일한 시간대를 적용합니다. 수도 베이징이 위치한 시간대를 기준으로 한 것이지만, 사실은 8에 대한 애착 때문입니다.

8은 반으로 나누면 4가 아닌 3이나 0이라 합니다. 가로로 나누면 0이 2개, 세로로 나누면 3이 둘이 됩니다. 또 옆으로 눕히면 ‘무한대(∞)’가 됩니다. 무척이나 많은 의미를 지닌 숫자여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한다고도 합니다.

‘9’는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경지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10은 신의 영역으로 남겨두기 때문입니다. 바둑이나 정치 등 ‘9단’을 최고로 칩니다. 중국에서는 황제를 상징하는 수입니다. 9는 제 아무리 높아도 나머지 1이 모자라는 숫자로 신 다음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인간에게는 마지막 수로 인식돼 우리나라에서는 ‘아홉수’를 경계하기도 하지요.

요즘은 마케팅에서 즐겨 활용되고 있습니다. ‘9원’의 마케팅이 바로 그것입니다. 맨 왼쪽의 앞자리가 숫자가 작을수록 가격이 싸다는 느낌을 크게 받기 때문에 9원 마케팅은 대세로 자리 잡았습니다. 1만원보다 100원 싸지만 만원대가 아닌 천원대인 9900원에 샀다는 뿌듯함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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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19년 6월 19일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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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발명한 ‘영(0)’ 문명을 바꾸다

모든 문명이 숫자를 만들어 냈지만, 오늘날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은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쓰고 있다. 이 숫자 체계의 가장 큰 장점은 인도에서 발명한 ‘영(0)’이라는 기호다.

수를 세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활동이다. 동물도 수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많고 적음을 비교할 수 있다. 침팬지를 비롯한 영장류는 덧셈과 뺄셈도 이해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나 눈앞의 사물의 개수를 세는 것을 넘어 곱셈과 나눗셈 같은 추상적 조작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학이라는 거대한 추상의 세계를 쌓아올리는 것은 인간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중세 유럽(12세기)의 곱셈표. 자릿수의 개념이 없는 로마숫자로는 필산으로 곱셈을 할 수 없었기에 이와 같은 표를 찾아가며 계산을 해야 했다. / 영국 국립 도서관 홈페이지

수학을 일종의 인공 언어라고 한다면 숫자는 그 언어의 기초가 되는 문자라고 할 수 있다. 숫자를 발명한 덕에 인간은 손가락·발가락으로 셀 수 없는 큰 수도 헤아릴 수 있게 되었고, 정수로 똑 떨어지지 않는 값도 표기하고 계산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나아가 복소수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까지 창안했다. 인간은 숫자를 통해 자연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감각의 세계 뒤에 숨어 있는 질서를 수학이라는 언어로 표현하여 과학의 시대를 열었다.

서구 근대 수학과 과학의 바탕

모든 문명이 숫자를 만들어 냈지만 오늘날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은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쓰고 있다. 이 숫자 체계의 가장 큰 장점은 인도에서 발명한 ‘영(0)’이라는 기호다.

영은 단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의 기호가 아니라 ‘위치기수법’의 핵심 요소다. 위치기수법이란 숫자 기호가 놓인 자리에 따라 그 값이 결정되는 숫자 쓰기 방식이다. 예를 들어 2라는 기호를 그냥 쓰면 둘이지만, 20이라고 쓰면 십의 자리가 둘이 있는 것이므로 스물이 되고, 200이라고 쓰면 백의 자리가 둘이므로 이백이 되는 것이다. 이때 영은 그 자리에는 1부터 9 사이의 값이 없음을 나타내지만 그 자리를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2019라고 쓰면 백의 자리에는 아무 값이 없지만, 0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므로 우리는 219와 2019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위치기수법의 장점은 열 개의 기호(십진법일 때)만 있으면 아무리 큰 수나 작은 수도 자릿수를 맞춰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위치기수법이 아닌 로마숫자를 예로 들어 비교하면, 로마숫자에서 1은 I이지만 10은 X, 100은 C, 1000은 M과 같이 자릿수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기호를 만들어 내야 한다. 기호도 점점 많아질 뿐 아니라 이런 식의 기수법으로는 필산이 불가능하다. 오늘날에는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도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서너 자리의 큰 수를 자유자재로 곱하고 나눌 수 있지만, 중세유럽에서는 가장 뛰어난 학자들도 큰 수를 곱하거나 나누려면 ‘곱셈표’를 뒤적거려야 했다. 그들의 학문이 얕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쓰던 숫자가 효율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86×47은 일의 자리, 십의 자리, 백의 자리를 각각 곱하고 그것을 더하면 되지만, 로마숫자로 CCLXXXVI와 XLVII을 곱하려면(같은 숫자들이다) 자릿수를 맞춰 계산할 재간이 없다. 100이 47보다 크다는 것도 위치기수법으로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지만, 로마숫자로 써 놓으면 C가 XLVII보다 크다는 것을 형태만으로는 알 수 없다.

로마와 그 문명을 계승한 중세유럽도 십진법을 썼지만, 0이라는 기호를 생각해 내지 못했기 때문에 위치기수법도 쓰지 못했고 그 결과 수학의 발달이 더뎠다. 특히 기하학에 비해 대수학의 발달이 뒤처졌다. 이에 비해 0을 발명한 인도 문명,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인 아랍의 이슬람 문명에서는 대수학이 눈부시게 발달했다. 9세기에 활동한 페르시아 출신의 수학자 무함마드 이븐 무사 알 콰리즈미는 〈인도 숫자를 이용한 계산〉이라는 책에서 0을 포함한 인도 숫자를 이용한 계산법을 정리했고 〈복원과 대비의 계산에 대한 책〉에서는 이항과 제곱근 등을 이용하여 이차방정식을 푸는 법을 정리해 근대 대수학의 기초를 다졌다. 10세기 무렵이면 이슬람 세계 전역에 위치기수법과 분수 표기법 등이 전파됐다.

과학은 인류 공통의 자산

이슬람 수학은 한편으로는 이슬람 왕국이 지배하던 오늘날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지중해에서 이슬람 상인들과 교역하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을 통해 유럽 기독교 세계에 전해졌다. 알 콰리즈미와 그의 책은 영향력이 대단했다. 알 콰리즈미의 이름은 문제 해결의 절차를 뜻하는 ‘알고리즘(algorithm)’의 어원이 되었고, 〈복원과 대비의 계산에 대한 책〉은 제목이 길다 보니 복원을 뜻하는 ‘알 자브르’라고 간략히 불렸는데 이는 뒷날 대수학을 뜻하는 ‘알제브라(algebra)’의 어원이 됐다.

유럽인들은 시계 문자판과 같은 일상생활에서는 계속 로마숫자를 썼지만, 복잡한 계산을 할 때는 인도-아라비아 숫자가 훨씬 편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12~13세기 무렵부터 수학자들의 책에서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소개하기 시작했고, 15세기에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책의 종류와 수가 크게 늘어나자 인도-아라비아 숫자가 대중에게도 친숙해졌다.

유럽인들이 보기에는 인도-아라비아 숫자는 동쪽에서 온 것이었다. (아랍인들도 동쪽 인도에서 온 숫자로 여겼다.) 하지만 그보다 더 동쪽에 살던 한국 사람들이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접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중국은 원 제국 이후 이슬람 세계와 교류를 통해 아라비아 숫자를 알고 있었지만, 0만 받아들여 천문학 계산 등에 이용하고 나머지 숫자는 그대로 한자를 썼다. 우리나라는 대한제국 때 서양식 교육을 받아들이면서 아라비아 숫자를 도입했다.

오늘날 인도-아라비아 숫자는 세계 모든 이들이 자연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쓰는 기본 도구가 되었다. 특히 서구 근대의 수학과 과학은 인도-아라비아 숫자로 쌓아 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 과학과 수학은 서구를 벗어나 온세계의 것이 되었으니, 인도-아라비아 숫자도 인류 공통의 자산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쓴웃음을 짓게 하는 소식이 있었다. 지난 5월 한 마케팅 업체에서 “아라비아 숫자를 미국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에 찬성하십니까?”라고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56%가 반대했다는 것이다. 이 조사는 편견이 사람들의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기 위해 기획한 것이다. 매일 쓰고 있는 숫자도 아라비아 숫자라는 이름을 붙이자 뭔가 경계해야 할 낯선 것이 되어 버린다. 인류 공통의 자산인 과학도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 앞에서는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게 된다.

무지는 편견을 낳고, 편견은 두려움을 낳는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은 그 두려움을 가리기 위해 남을 혐오하고 공격한다. 만일 다른 문화, 다른 인종, 다른 젠더, 다른 계층에 대해 공연한 거리감과 미움을 갖게 되었다면 그 이유는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한다. 나는 무엇을 모르고, 무엇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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