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은수사 물그릇에 생기는 역고드름

얼음 체적팽창과 모세관 효과 복합작용

“은수사 지형 조건 승빙 형성에 유리”

전북 진안군 마이산 탑사에 둔 정화수에서 거꾸로 자라는 역고드름이 만들어졌다.

 

영하 10도 날씨가 이어지던 지난 7일 전북 진안 마이산의 은수사 탑사에 놓인 정화수 그릇에서 하늘로 향해 고드름이 솟아오르는 현상이 관찰됐다. 은수사의 역고드름(승빙)은 1928년 원불교 회보에 “마이산에서 청수를 떠놓고 기도를 드리면 물이 거꾸로 올라와서 얼음이 되어 불체(佛體)로 화한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오래 전에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음향측심기를 발명한 물리학자 허버트 G. 도시가 <미국물리학회지>에 ‘신비한 얼음’(peculiar ice)에 대해 보고한 것이 최초 기록이다.

경기 연천 폐터널, 강원 삼척 환선굴, 한라산 구린굴 등지에서도 역고드름이 발견되지만 이들은 종유석처럼 위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생긴 것이다. 은수사 고드름은 “물이 자연상태에서 중력을 거슬러 위로 솟아올라 만들어진 얼음기둥”으로 형성 원리가 다르다.

경기도 연천·철원 경계지역 경원선 철길 폐터널의 거꾸로 자라 오른 역고드름 무리.

 

플라스틱 얼음접시가 가장 효과적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의 변희룡 교수와 전주대 과학교육과의 윤마병 교수 연구팀은 역고드름을 일반 냉장고를 사용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생성 원리를 분석했다. 냉동실 안에서 얼음을 제조하는 얼음접시(ice tray), 스테인리스, 주석, 놋쇠, 도자기, 플라스틱, 유리 등 다양한 재질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 모양의 그릇으로 실험했다. 소형과 대형 술잔, 보온병, 보온컵, 투명 보온컵 등이 사용됐다. 이 가운데 플라스틱으로 만든 얼음접시가 가장 효과적이었다. 또 물도 여러 종류를 번갈아 실험했는데, 빗물, 초순수, 1차 증류수, 은수사 샘물, 생수 순으로 역고드름이 잘 만들어졌다. 끓인 빗물을 100도 상태에서 냉동실에 넣어도 바늘 모양(빙추)이나 원기둥 모양(빙주)의 역고드름이 생겼다. 반면 수돗물이나 바닷물로는 만들어지지 않으며 빗물이나 증류수에 맥주, 콜라, 사이다, 수채화 물감을 아주 조금만 섞어도 역고드름은 생기지 않았다.

역고드름을 만드는 환경 조건은 무척 섬세해, 역고드름이 형성되는 중에 얼음접시를 만지거나 냉동실 문을 여닫기만 해해도 역고드름 과정이 멈췄다. 또 냉장고가 있는 방의 출입문을 여닫는 진동에도 영향을 받았다. 사람이 자주 드나드는 낮에는 실패할 때가 많았고, 밤에는 역고드름이 잘 생겼다.

미동면과 완동수가 주역

연구팀이 밝힌 역고드름 생성 원리는 이렇다. 우선 실험에 쓰인 냉장고의 냉동실 기온은 영하 15도에서 영하 27도 사이를 23분 간격으로 반복했다. 얼음접시에 담긴 물은 냉동실에 넣은 지 약 135분 뒤에 영하 17.7도에 이른 뒤 냉각기 진폭에 따라 영하 17.5~영하 18.5도를 오르내렸다.

얼음접시는 작은 방(소실)이 32개로 구성돼 있었는데, 냉동 시작 20분 뒤부터 소실 안의 결빙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면이 한꺼번에 어는 것은 아니고 여러 미세한 선을 따라 어는데 수면에서 가장 늦게 어는 부분이 생긴다. 연구팀은 이를 ‘미동면’(未動面)이라 부르고, 미동면이 형성되는 원리를 조사했다.

미동면은 결빙 속도가 느린 물분자(완동수·緩凍水))로 인해 생기는데 완동수는 물 분자가 결빙을 시작할 때 얼음 분자로 결합되지 못하고 축출돼 나온다. 완동수는 기포를 많이 가지고 있는 이물질이기 때문이다. 기포가 많다는 것은 열전도가 낮아 늦게 결빙될 수 있다는 얘기다.

미동면의 완동수가 결빙되기 전에 인근의 결빙으로 인해 체적 팽창이 생기면 미동면의 수위가 상승해 주변 빙면보다 높아진다. 윤마병 교수는 이전 연구에서 0도 부근에서 얼음이 얼면 부피가 8.9% 정도 증가한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연구팀은 주변보다 높아진 부분을 ‘수적순’이라 이름지었다. 결국 수적순이 자라면서 얼어 얼음기둥이 된다는 것이다.

기포와 모세관 현상도 한몫

역고드름이 10~15㎝까지 높이 자라는 데는 물속에 포함된 기포의 구실이 크다. 기포는 물이 얼 때 얼음분자가 이물질을 밀어내기 때문에 생긴다. 밀려나온 기포는 미동면으로 모이고 물보다 가볍기 때문에 위쪽으로 올라간다. 수적순이 결빙되기 전이라면 꼭대기까지 이르러 기포가 터진다. 기포가 올라오면서 함께 올라온 과냉각수는 기포가 터지는 충격에 언다. 0도보다 낮은 온도임에도 얼지 않은 상태인 과냉각수는 조그만 충격에도 바로 얼음으로 변한다.

수적순이 결빙됐더라도 기포의 압력이 대기압보다 높아 빙판을 뚫고 올라갈 수도 있다. 이때 기압 차이에 의한 냉각 효과로 대기와 직접 접촉하는 외부 가장자리가 결빙한다.

모세관 효과도 역고드름 형성에 작용한다. 완동수가 얼음기둥을 만들 때 완동수가 지나온 자리에는 아래로부터 다른 물이 들어오기 때문에 얼음기둥 안에는 수관이 생긴다. 모세관 효과로 물이 계속 올라와 결빙 과정이 반복된다. 연구팀은 또 얼음기둥이 모두 원형인 것은 기포가 표면장력에 따라 원형으로 올라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북 진안 마이산은 역암층의 암석이 풍화와 침식으로 떨어져 나간 전형적인 타포니 지형으로 꼽힌다.

 

“타포니 지형이라 역고드름 풍작”

왜 마이산 은수사에서 역고드름이 자주 발생할까? 연구팀은 은수사 주변이 지형(타포니 지형)과 기온, 습도 등에서 역고드름이 형성되기 좋은 조건이라고 분석했다. 우선 은수사와 2㎞ 정도 떨어진 진안 자동기상관측소의 관측 자료와 역고드름이 자주 발생하는 은수사의 청실 배나무 밑과 약 7m 떨어진 회양목 나무 밑의 기온과 습도 등을 관측해 비교했다. 영하의 날씨일 때는 은수사의 기온이 자동기상관측소보다 기온이 더 높거나 같은 반면 영상의 날씨에서는 항상 은수사의 기온이 더 낮았다. 기온이 빙점에 가까워지기 쉽다는 점에서 역고드름이 생기기 좋은 조건이라는 것이 연구팀의 분석이다. 상대습도도 은수사가 높았는데, 습도가 높으면 증발이 느리기 때문에 역고드름 꼭대기가 느리게 얼어 얼음기둥이 길게 자랄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연구팀은 “은수사가 타포니 지형의 큰 바위산 아래 계곡 속에 위치해 역고드름이 자주 형성되는 것 같다. 타포니 지형에 젖어 있는 빗물이 증발하거나 응결하면서 잠열을 소모하거나 방출하는데, 이는 계곡의 습도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빙점에 가까운 경우가 자주 생기고 다습한 환경이 만들어진다”고 해석했다. 타포니 지형은 암벽에 벌집처럼 생긴 구멍 형태의 지형을 말한다. 마이산 암벽에 전형적인 타포니 지형이 있다.

 

 

(원문: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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