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미생물의 공생
50년 전 마굴리스 ‘공생설’ 주장
처음 밝혀진 세입자는 미토콘드리아
최근엔 인체 곳곳 미생물 생태계인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연구 활발
태아는 무균 상태…출생 뒤 구성돼
여러 질병과 건강에 큰 영향 끼쳐
미생물은 우리 몸의 안과 밖에도 무수히 존재하면서 우리 몸의 건강과 질병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림은 다양한 미생물을 표현한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매년 과학자들은 100만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한다. 이 중 대부분은 다른 과학자의 주장을 인정하고 자신의 가설을 더 발전시킨 것이지만, 때로는 기존 학설을 완전히 뒤집는 이단아가 나온다. 보수적인 학계에서 이런 기존의 틀을 흔드는 학설은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렵고, 수많은 거절을 맛볼 수밖에 없다. 약 160년 전에 찰스 다윈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 여기에 또 다른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람의 진화에 관한 가설은 항상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은 상식이 된 ‘인간은 침팬지나 다른 유인원과 같은 조상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지금도 일부 사람은 믿지 않는다. 그만큼 쉽게 인정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사실이 ‘우리가 하나의 생명체가 아닌 여러 생명체의 공생체’라는 것이다.
세입자 미토콘드리아와 집주인인 우리
이를 처음 주장한 사람이 미국의 여성 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 세포에 존재하는 미토콘드리아라 불리는 소기관이 예전엔 독립적인 세균이었다. 필자가 태어난 해이기도 한 1967년 당시에 이런 주장은 황당하기 그지없이 들렸고, 실제로 마굴리스 박사의 논문은 무려 열다섯 군데의 학술지로부터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이 주장을 <이론 생물학>에 발표했다. 진핵세포의 ‘공생설’이 이렇게 탄생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 식물, 곰팡이가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로 지구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먼 과거에 세균의 일종인 다른 생명체와 공생체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그때 입주한 작은 세입자가 지금도 우리 세포 안에 미토콘드리아로 남아 있다. 마굴리스의 주장은 당시에는 파격이었지만 지금은 정설이 되어 생물학 교과서에 그의 이름과 함께 당당히 실려 있다.
현재의 미토콘드리아가 된, 당시에는 독립해서 살고 있었던 세균이 머나먼 우리 조상 생물의 몸 안에 들어와 함께 살기로 한 것이 수십억년 전이다. 당시 우리의 조상은 지금과 같은 다세포가 아닌 아메바나 짚신벌레 같은 단세포 생명체였을 것이다. 이때 우리 조상의 세포 안에 입주한 세균의 유전자가 지금까지도 미토콘드리아 안에 남아 있는데, 그걸 해독해보니 우리 대장 속에서 흔히 발견되는 대장균의 먼 친척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미토콘드리아의 조상 세균은 왜 자기 삶을 버리고 다른 생명체의 안으로 들어왔을까? 현재 사람 몸은 수십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하나의 세포 안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여러 개 존재한다. 이 미토콘드리아의 역할을 알면 이런 공생의 이유가 보일 것이다.
우리가 먹은 음식물은 대부분 포도당으로 바뀌고, 이는 피를 타고 몸 구석구석을 돌며 근육, 간, 심장, 뇌 등 여러 곳의 세포에 공급된다. 포도당이 산소를 이용해 연소하면서 에너지로 바뀌는 호흡 과정이 우리 몸의 모든 세포에서 일어난다. 이때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미토콘드리아다. 포도당, 산소, 미토콘드리아 중에 하나라도 부족하면 사람은 즉사한다. 반대로 미토콘드리아는 사람 세포 안에 살 수 없다면 즉사한다. 인간과 미토콘드리아는 같이 있을 때만 살 수 있는 관계, 공생이 맞다.
한 연구원이 산소 없는 혐기성 배양기에서 장내 미생물을 배양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천종식 교수 제공
또 하나의 파트너, 우리 몸의 미생물
최근에 인간이 공생체라는 가설은 또 하나의 새로운 파트너가 끼어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바로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고 불리는 미생물 연합군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은 피부와 구강, 기도에 존재하고, 식도, 위, 소장, 대장을 이루는 소화기에서도 발견된다. 마이크로바이옴을 이루는 미생물은 수십에서 수백 종에 이르고 주로 세균이지만 효모와 같은 곰팡이도 일부분의 역할을 한다. 미생물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은 대장이며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수백 종의 다양한 미생물이 발견된다.
그 양은 얼마나 될까? 대변의 약 3분의 1이 미생물이라고 하면 아마도 감이 좀 올 것이다. 우린 사실 매일 엄청난 수의 미생물을 화장실을 통해 자연계로 방출하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의 무게는 간이나 뇌와 비슷하다. 이런 마이크로바이옴이 사람과 공생 관계일 수 있다는 주장이 최근에 쏟아지고 있다. 2016년 당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위한 ‘국가 마이크로바이옴 계획’(National Microbiome Initiative)을 제창했다. 여기에는 미국의 주요 연구기관뿐만 아니라, 마이크로바이옴 전도사로 알려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도 참여했다. 우리 몸에서 널리 발견되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정말 우리에게 꼭 필요한 중요한 존재인가, 아니면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아무 영향력이 없는 나그네일까?
공생 관계는 서로에게 유익한 관계이다. 만약 한쪽이라도 손해를 보거나 아무런 이익이 없다면 그건 진정한 공생 관계라 할 수 없다. 먼저 미생물의 처지에서 생각해보자. 대장 안 미생물의 미생(微生)은 숙주인 우리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다. 신의 역할을 하는 우리가 먹는 음식에 따라 마이크로바이옴 구성원들의 운명이 갈릴 것이다. 의식주 모두를 제공하는 우리는 분명히 마이크로바이옴에 절대적인 이익을 준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장내 미생물은 장 밖으로 나가면 살지 못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마이크로바이옴이 우리 대장에 살게 된 것은 최소 1500만년 이상 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인간이 지구에 나타나기 훨씬 전이며, 인간이 침팬지뿐만 아니라 진화적으로 더 먼 고릴라와도 갈라지기 전의 일이다. 그만큼 둘의 동거가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럼 반대로 우리가 마이크로바이옴으로부터 얻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대학에서 대장의 미생물은 단순히 우리의 소화를 도와준다고 배웠다. 실제로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는 사람의 유전자로는 분해하지 못하는 거친 탄수화물, 즉 섬유질이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장내 미생물이 이런 섬유질을 분해해서 우리에게 부족할지도 모르는 열량을 보충해준다. 흔히 식이섬유로 대표되는 이런 거친 탄수화물은 미생물 한 종이 분해하기는 어렵고, 여러 미생물이 분업을 통해 연합군을 만들어야 소화할 수 있다. 현미나 통밀 또는 사과 껍질 등에 존재하는 식이섬유가 여기에 해당한다. 미생물이 이렇게 연합군을 형성해서, 세 들어 사는 주인의 소화를 돕는 것은 동물의 세계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다. 다만 동물마다 다르게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대장에 가장 많은 수의 미생물 군단을 거느리고 있는 사람이나 쥐와 달리, 반추동물인 소나 양은 주요 미생물 부대를 위에 두고 있다. 여러 개로 되어 있는 소의 위에서는 사람의 대장 마이크로바이옴은 분해할 수 없는 거친 셀룰로스까지 분해한다. 셀룰로스는 소의 주식인 풀, 벼와 같은 초본식물의 세포벽을 이루는 주성분으로, 진화 과정에서 소는 이걸 직접 분해하는 것보다 미생물에게 외주용역을 주는 것을 택했다. 우리 인간이 볏짚과 같은 거친 식물은 소화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와는 마이크로바이옴의 종류가 다른 것이다.
동물의 장 또는 위에서 공생하는 미생물 연합군, 즉 마이크로바이옴은 분해가 몹시 어려운 식물의 섬유질을 분해해서 숙주인 동물에게 에너지원이 되는 짧은 지방산과 필수 비타민을 만들어 준다. 이때 장내에서 일어나는 발효의 부산물로 메탄가스가 발생한다. 이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도 25배 이상의 영향력이 있는 온실가스다. 사람이 만드는 메탄은 다행히 미미한 양이지만 가축화된 소나 양 같은 반추동물이 배출하는 메탄가스의 양은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우리 몸 안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은 사람 세포의 평균 크기보다 훨씬 작지만 수는 더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천랩 제공
진화 거치며 서로 돕는 관계로
다시 우리 몸 미생물과 우리의 관계로 돌아와보자.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이 제공하는 의식주에 전적으로 기대어 살고 있다.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임신부 몸 안의 태아는 태어날 때까지는 미생물이 거의 없는 무균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어나면서 엄마의 질 속 미생물을 전수받고, 추가로 모유를 비롯한 음식물과 주변 환경으로부터 다양한 미생물이 장으로 들어오면서, 생애 첫 마이크로바이옴을 형성한다. 이 첫번째 미생물 연합군이 잘못 구성되면 후에 아토피, 천식, 자폐, 비만 등이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과학계의 중론이다. 특히 최초 6개월이 중요하다고 한다.
마이크로바이옴이 없는 ‘무균’ 상태인 사람을 연구를 위해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실험용 동물을 대신 사용해 마이크로바이옴이 없거나, 충분히 형성이 안 된 경우를 연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 적합한 동물이 바로 생쥐다. 생쥐도 사람과 비슷하게 장에 마이크로바이옴이 있지만,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보다도 더 깨끗한 시설에서 전혀 미생물이 존재하지 않는 무균 생쥐를 키울 수 있다. 그럼 무균 생쥐는 마이크로바이옴을 가진 정상 쥐와 발달 과정에서 어떤 차이를 보일까?
여러 연구에 따르면 무균 생쥐는 정상 생쥐에 비해 소장의 융모가 얇아지고 그 안의 모세혈관 형성도 크게 부진했다. 장을 튼튼하게 지켜주는 점막도 얇고 세포의 재생능력도 떨어져 정상 생쥐에 비하면 크게 빈약한 장을 가지게 됐다. 전체 면역계를 조절하는 티(T)세포의 종류와 양에서도 정상 생쥐과 달리 문제가 있었고, 이는 나중에 관절염이나 다양한 자가면역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생물이 없는 생쥐는 분명히 건강에 문제가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는 동물이나 인간 모두 장내 미생물로부터 추가적인 영양분을 공급받는 것 이외에 마이크로바이옴으로부터 다른 도움을 받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억년의 오랜 진화 과정 동안 서로 다른 생명체 사이에 이루어진 협동은 약육강식의 자연계에서 살아남은 비법이었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수십억년 전에 우리와 같이 살기 위해 입주한 미토콘드리아와 수천만년 전부터 끈끈한 공생 관계를 이룬 마이크로바이옴까지, 인간은 단순히 자신만의 존재는 아니었다. 최근 연구를 종합해보면 미토콘드리아뿐만 아니라 마이크로바이옴의 이상이 다양한 질병의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면 그동안 등한시됐던 이들 세입자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서로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린 마굴리스 박사의 공생설이 50년 후에 다시 주목받는 이유이다. 이제는 ‘한집 세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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