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머릿속에는 뇌하수체라는 부위가 있다. 뇌하수체의 후엽에서 분비되는 펩티드 호르몬(Peptide Hormone) 중에는 항이뇨호르몬이 있다. 말 그대로 이뇨 작용을 억제하는 호르몬이다. 항이뇨호르몬은 다양한 작용을 하는데, 성관계 시 분비가 촉진되면서 상호 유대감을 증대시키는 역할도 한다. 남성에게는 다른 남성에 대한 적대감도 키운다. 이 호르몬을 아르기닌 바소프레신(Arginine Vasopressin)이라 부른다. 아르기닌 바소프레신은 혈액을 타고 신장으로 가서 수분을 재흡수하게 한다. 그로 인해 소변을 농축시키고 소변량은 줄어든다. 체액의 삼투 농도가 높아졌을 때 분비가 촉진된다.
우리가 물을 적게 마시거나 더위에 땀을 많이 흘려 체내의 수분량이 줄어들면(혈장의 삼투압이 높아지면) 혈액 속에 수분이 줄어들어 전해질의 농도가 짙어진다. 그러면 항이뇨호르몬의 분비가 촉진되어 신장에서 소변을 재흡수한다. 수분이 소변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혈액 속의 수분량을 증가시켜 전해질의 농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피를 흘리거나 계절에 따라 혈압이 떨어질 때도 항이뇨호르몬의 분비가 촉진되어 신장이 수분을 재흡수한다. 이러한 항이뇨호르몬을 억제하는 성분이 있는데 바로 알코올, 카페인 등이다.
일반적으로 물을 1리터 마셨을 때 0.4리터의 소변을 보게 된다. 맥주는 술 자체에 수분이 많아 이뇨 효과가 클 수도 있지만 알코올의 이뇨 효과로 체내 수분이 감소하게 되고, 이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갈증이 유발된다.
그래서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이면 입안이 마르고 갈증을 느끼게 된다. 술과 물을 같이 마시더라도 이미 제어된 항이뇨 호르몬 때문에 이뇨 작용은 계속된다. 그래서 마신 술의 양이 많지 않아도 알코올의 양이 많다면 소변의 양도 많아진다. 이러한 이뇨 현상을 막는 것이 나트륨의 섭취다. 나트륨은 아르기닌 바소프레신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신장의 수분 재흡수에 관여하는 물질이다. 아르기닌 바소프레신이 억제되어 이뇨 현상이 잦아지면 나트륨의 역할이 커지고 나트륨 요구량도 증가하게 된다. 결국은 탈수 현상으로 빠져나간 수분과 나트륨을 보충하기 위해 다음 날 해장국을 찾게 되는 것이다.
탈수 현상으로 부족해진 수분을 필요한 곳에 잘 배분하도록 히스타민(Histamine)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는데, 히스타민은 체내의 수분을 이동시켜 생명을 유지하는 총사령관이다. 히스타민의 증가로 안면 홍조, 어지러움, 두통, 속 쓰림, 구토 등이 일어난다. 히스타민은 생명 유지를 위해 뇌에 우선적으로 수분과 혈액을 공급한다. 뇌에 갑작스럽게 수분과 혈액이 증가하면 혈압이 올라간다. 이에 따라 두통이 발생한다. 많은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수분과 혈액의 이동 통로인 모세혈관이 확장되고 얼굴이 붉어진다.
히스타민의 분비 증가는 모세혈관의 확장으로 이어지고 혈관 확장으로 혈압이 떨어지면 혈류의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심장 박동수가 증가해서 가슴이 뛰게 된다. 커피를 마셨을 때도 비슷한 증상이 생길 수 있는데, 카페인이 알코올과 비슷한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탈수로 히스타민이 분비되면 위산 분비가 증가하는데, 위산 증가로 위 속의 산성이 강해지고, 이를 십이지장에서 중화하기 위해 알칼리성 용액과 섞게 된다. 이 알칼리성 용액은 소금과 수분으로 만들어진다. 탈수 현상으로 수분과 나트륨이 부족해지고, 이로 인해 알칼리성 용액이 부족해지면 음식물이 장으로 내려가는 데 평소보다 시간이 걸린다. 음식이 비정상적으로 위에 오래 머물면 발효가 일어나서 가스가 생긴다. 이것이 위를 더부룩하게 만들어 구역질이나 구토를 하게 된다.
탈수로 수분이 부족해지니 갈증으로 물을 많이 마시게 되는 데, 장에 수분 유입이 증가하더라도 나트륨에 의존해 수분을 흡수하는 소장과 대장에서는 수분의 흡수가 적어지고 대변에 수분이 증가해 무른 변을 보게 된다.
술을 마시면 탈수가 유발되고, 수분과 나트륨을 비롯한 체내 미네랄 부족이 발생하게 된다. 항상성 유지를 위해 뇌에 영양 공급이 필요해진다. 영양을 빠르게 공급하려면 포도당이 필요한데 그래서 술 마신 다음 날 꿀물을 찾게 되는 것이다. 꿀물은 당분과 수분으로 신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술과 달리 니코틴은 항이뇨호르몬의 분비를 증가시킨다. 그래서 술이나 커피를 마시면 담배를 더 피우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항이뇨호르몬이 우리의 기억에도 관여한다는 점이다. 술을 많이 먹으면 ‘필름이 끊긴다’고 하는데, 이것도 항이뇨호르몬과 관계가 있다. 기억이 잘 나질 않아 담배를 피운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도 아마 니코틴의 힘을 빌어 항이뇨호르몬의 분비를 증가시켜보자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도 지나치면 항이뇨호르몬의 과다 분비로 고혈압을 악화시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결국, 술의 양보다 술 안에 들어 있는 알코올의 양에 따라 항이뇨호르몬의 분비와 억제 정도가 달라져서 소변의 양이 변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뇨 작용으로 탈수가 진행되면 술을 더 마시게 된다는 것이다. 술은 엔도르핀(Endorphin)의 분비를 촉진해서 강력한 진통 효과와 즐거운 기분을 유발하는데, 그 효과가 사라지면 더 큰 고통이 찾아올 수 있다. 술을 마실 때의 엔도르핀이 그리워 다시 술을 찾게 되는데, 이것은 알코올중독으로 가는 길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평소에 체내 수분 관리를 잘하고 절제된 음주를 한다면 음주에 따른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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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22년 12월 4일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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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먹는가
‘발효의 과학’은 음식의 장기 저장과 맛 향상을 통해 요리 발달에 기여
발효는 사실 부패와 같은 미생물의 영양분 분해 과정이지만, 인간의 기준에서 유리한 부패는 발효라고 특별히 따로 부르는 것뿐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우리 김치도, 서양인들의 치즈도 살짝 ‘썩은’ 음식인 셈이죠. 고기나 생선을 숙성시키면 더 맛이 좋아진다고 하죠? 숙성이 바로 효소의 작용으로 발효가 일어나는 과정입니다. 숙성의 정도를 잘 조절해야지, 그렇지 못하고 과(過)숙성하면 부패로 진행됩니다. 적당한 발효는 가열 요리처럼 식재료를 맛있고 소화하기 쉽게 바꾸어 줍니다. 젖산 발효는 수소이온 농도를 변화시켜 시큼하고도 독특한 냄새와 맛을 풍기게 만듭니다. 초산 발효는 톡 쏘는 식초를 생산합니다. 알코올 발효는 사회의 합법적인 경(輕)마약 ‘술’을 인류에게 선사해 주었습니다. 이번 시간은 발효의 과학에 대해 공부해 봅시다.
효모균 효모균이 싹을 틔우고 있는 모습을 현미경으로 촬영한 사진. 게티이미지
발효 식품의 정의는 ‘동물 또는 식물의 원재료를 효모, 유산균, 곰팡이 같은 미생물을 이용해 변형한 식품’입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 전체가 10조 개인데, 미생물은 100조 개라고 합니다. 온갖 잡균들이 살고 있는 것이죠. 집마다 장맛이 다르다, 사람마다 손맛이 다르다고 하는 건 곳곳에 서식하고 있는 균들이 모두 조금씩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장 사랑받는 발효인 알코올 발효부터 살펴봅니다. 술의 탄생은 아마도 포도 같은 과일이나 쌀 등 곡물이 적당한 온도에서 수분과 함께 장기간 방치되고 난 후 풍기는 알코올 냄새에 초기의 인류가 끌려온 우연에 의한 것이라 짐작됩니다. 알코올 발효는 산소가 차단된 상태에서 효모 등 미생물에 의해 곡물·과일 속의 당류가 분해돼 알코올(에탄올)과 이산화탄소로 생성되는 과정입니다. 식물이 장기 저장하려고 만든 다당류인 녹말(전분)이 누룩에 의해 포도당이 되고, 다시 효모에 의해 10단계 효소 반응을 거치면 피브루 산이 나옵니다. 이것이 다시 2단계 더 효소 반응을 하면 에탄올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막걸리, 청주, 맥주, 포도주 등은 모두 알코올 발효의 산물입니다. 효모 등 미생물의 발효를 이용한 술을 양조주라고 합니다. 양조주는 모두 알코올 도수가 15~18%를 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발효균이 더 높은 농도의 알코올 속에서는 죽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술꾼들이 좋아하는 독한 술을 만들려면 이들 첫 번째 술을 끓여서 고농도 알코올만 남겨야 합니다. 이를 증류주라고 하고 소주, 고량주, 위스키, 브랜디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술을 마실 때마다 작은 미생물들의 노고에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미생물은 당분을 분해해 ATP 에너지를 얻으려 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알코올을 남길 뿐이지만 말이죠.
맥주 보리로 민든 양조주의 대표인 맥주. 이를 증류하면 알코올 도수가 높아지며 위스키가 된다. 게티이미지
젖산 발효는 요리의 과학 중 가장 맛있는 발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절이고 재우고 삭혀 먹는 대부분의 음식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필수 식품으로 꼽히는 장(醬)과 젓갈류는 오랜 세월 곰삭은 조상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서양에는 치즈와 피클, 요구르트류가 대표입니다. 간장·된장·고추장과 에멘탈·모짜렐라·고다 치즈는 그 나라의 음식 문화를 압축해 보여준다고 할 수 있죠. 중국의 두반장, 태국의 피시소스를 생각해 보세요. 프랑스의 블루치즈, 아이슬란드의 삭힌 상어 하우카르는 미식의 상징입니다. 우연히 혹은 의도적 발명이든 간에 젖산 발효는 음식의 저장 기간을 크게 늘려 인간의 활동 범위를 넓히고 혹한·혹서 등 가혹한 날씨에도 풍부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이런 실용적 목적뿐 아니라 발효 과정에서 생긴 ‘어른의 맛’은 혀의 즐거움을 몇 배로 늘려주었습니다. 흔히 커피, 술과 더불어 발효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면 이제 어른이 됐다고 여기는 관행이 있죠. 누렇게 띄운 청국장, 삭힌 홍어는 물론이고 곰팡이가 핀 블루치즈, 시큼한 요구르트 같은 ‘냄새나는’ 음식은 아이들은 꺼리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발효 음식을 만들 때 ‘숙성한다’는 표현을 쓰는데요, 성숙해야 숙성 음식을 먹을 수 있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초산 발효는 알코올 발효로 생긴 에탄올이 한 번 더 산화 발효되면 초산을 생산하는 과정입니다. 술이나 음식이 시다, 상한 냄새가 난다 하는 게 이 초산 때문입니다. 코로 냄새를 맡아 식용 불가 ‘썩었다’ 판단을 내리는 1차 관문인 초산, 즉 식초는 동시에 음식의 저장과 맛 향상을 위해 필수적인 요리의 상비군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식재료를 과학적·문화적으로 가공하는 과정, 즉 요리는 종합 학문입니다. 아삭아삭, 폭신폭신 같은 음식의 식감은 물성, 즉 물리적 현상입니다. 고소한, 달콤한 음식의 맛과 향은 화학적 현상입니다.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은 생화학적 성분입니다. 음식을 먹고 느끼는 행위는 뇌의 생리적 현상입니다. 이렇게 요리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면 물리, 화학, 생화학, 미생물학, 생리학, 심지어 인문학적 지식까지 필요한 것이죠. 다음번에는 맛과 향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아래는 2023년 5월 9일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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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없는 물과 맛있는 물…물과 술 이야기 2
술 술의 기원은 과일이 자연 발효되면서 만들어진 천연 과일주까지 거슬로 올라간다. 알코올 냄새는 동물에게 먹잇감이 많다는 강력한 신호를 준다. 게티이미지
지난번에는 아무 맛이 없는 무미(無味)의 물을 공부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물에는 맛없는 물뿐 아니라 맛있는 물도 있습니다. 바로 술이지요. 술은 에탄올, 정확하게는 에틸 알코올(CH3CH2OH)이 함유된 물입니다. 비슷한 사촌 알코올인 메탄올, 즉 메칠 알코올(CH3OH)은 화학적 구성으로는 더욱 단순한 형태이지만 인체에 독성이 있어 마시면 눈이 멀거나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실험실 알코올이나 공업용 알코올을 술 대신 마시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술의 기원은 자연 상태에서 우연히 일어난 당(糖) 분해 또는 당 발효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일반적입니다. 상상해봅시다. 숲 속에서 푹 익은 과일 몇 개가 포식자의 입을 피해 살아남습니다. 혹은 벌들이 채취한 꿀이 벌집에서 흘러나와 어딘가에 고입니다. 여기에 온도와 습도가 맞아떨어지면 알코올 발효가 일어나면서 천연 술이 빚어집니다. 원시림에 사는 유인원이 이 냄새에 끌려 처음 마셔보고 취하는 장면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술의 시조에 해당하는 포도주와 꿀술의 탄생은 아마도 이런 신화와 민담의 어디쯤에서 나왔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짐작합니다. 과일과 곡물의 자연 발효에서 채취한 신비의 물, 맛있는 물을 인위적으로 제조하려는 과정에서 술이 인간 세상에 등장했다는 거죠.
식물 열매의 주성분인 탄소 화합물, 즉 탄수화물은 녹말 등 다당(多糖)류와 설탕, 맥아당 등 이당(二糖)류, 그리고 분자 1개짜리 단당(單糖)으로 나뉩니다. 당 발효는 미생물이 당을 유기산이나 이산화탄소, 수소기체 등의 기체로 분해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 가운데 사람처럼 단 것을 좋아하는 단세포 미생물인 효모가 포도당을 먹고 이를 에탄올과 이산화탄소 기체로 분해하는 과정이 당 발효 중 하나인 알코올 발효입니다. 산소가 필요 없는 무산소 호흡 과정입니다. 당이 알코올로 바뀌는 이 신비한 변화는 자극적인 냄새와 감각을 일시 마비시키는 특유의 효능으로 인해 사람을 비롯한 동물들을 매혹합니다. 과학자들의 기록에는 초파리부터 코끼리까지 술에 취해 해롱거리는 모습의 관찰 일지들이 넘쳐납니다. 이처럼 알코올의 유혹이 강한 것은 여기에 당분이 있다는 강력한 먹이 발견 신호를 주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번뇌를 잊게 만드는 뇌 마취 효과보다는 달콤한 먹잇감이 부근에 있다는 원초적인 생존 욕구가 알코올 선호의 출발인 셈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술이 광범위하게 퍼진 것은 여러 장점이 있어서입니다. 술 안에 있는 에탄올, 즉 알코올이 해로운 세균과 기생충을 없애주기 때문에 깨끗한 물이 부족한 곳에서는 물 대신 술을 마셨습니다. 식욕을 자극하고 음식 재료의 단백질 등 영양소에 맛과 향을 더해주기도 하죠. 적당한 양을 마시면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을 낮춰주는 효능도 발휘합니다. 그래서 술 마시는 인간, ‘호모 임비벤스(Homo Imbibens)’는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맥주는 고대 수메르나 이집트의 벽화에서 발견되는 오래된 술입니다. 포도주 역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상류 지역의 고원에서 출발한 옛 술입니다. 고대와 중세에서 초기 술은 신을 섬기거나 왕족 등 특권층의 유흥용으로만 허락된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농사가 대규모로 보급되면서 술 제조법도 널리 퍼졌고, 서서히 일반 백성도 술을 기호품으로 즐기게 되었습니다. 향정신성 약품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술에는 독한 술과 약한 술이 있습니다. 약한 술이 먼저 탄생했습니다. 왜냐하면 효모가 먹고 남은 부산물인 에틸알코올의 농도는 18%가 한도이기 때문입니다. 알코올이 더 진해지면 효모 스스로 용액 속에서 살지 못하고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천연발효주인 포도주, 맥주, 청주 등은 더 독하게 만들려면 증류를 해야 합니다. 가열해서 수분은 날리고 알코올 농도를 높이는 거죠. (전통) 소주, 고량주, 보드카, 위스키, 브랜디 등 독주는 알코올 함량을 40~70%까지 강화한 술입니다. 이렇듯 강화 독주는 짜릿함을 안겨주지만 천연 상태의 술보다 훨씬 자극이 심하기 때문에 위, 장 같은 소화기관이 약하거나 알코올 분해 효소가 적은 이들은 희석해서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즐거운 파티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이롭다. 알코올은 설탕, 소금 등 다른 성분과 마찬가지로 약과 독의 이중성을 갖고 있다. 게티이미지
술은 몸에 약과 독을 모두 줍니다. 위와 장의 표면에서 흡수된 에틸알코올은 뇌에서 도파민,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해 중추신경을 자극합니다. 진정제나 약한 마취제 효과를 냅니다. 술을 마시면 졸음이 오고 긴장이 풀리면서 느긋하고 약간 유쾌한 상태가 됩니다. 동시에 시상하부를 자극해 교감신경을 활성화합니다. 아민과 아드레날린 분비가 촉진돼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얼굴이 붉어지거나 몸에 땀이 납니다. 에탄올의 삼투 효과 때문에 콩팥에서 소변을 더욱 많이 배출시킵니다. 알코올 섭취가 더 많아지면 말을 더듬거나 몸을 가누지 못하는 주사(酒邪)를 부리게 됩니다. 뇌의 판단 기능을 마비시키기 때문입니다.
몸속에 에탄올의 농도가 짙어지면 인체는 필사적으로 이를 분해해서 몸 밖으로 내보내려 애씁니다. 알코올 탈수소 효소가 에탄올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아세트알데하이드(CH2CHO)는 독성 물질로 쌓이면 큰 해악을 끼칩니다. 더욱 폭음하면 인체 속 화학 공장인 간에 과부하가 걸려서 간이 망가집니다. 술을 자주 마시면 알코올에 대한 내성이 생기면서 점점 많은 양의 술을 마시게 됩니다. 알코올 중독 상태에 빠지는 거죠. 앞부분 글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분량이 문제라고 말씀드렸죠. 설탕과 소금은 적어도 넘쳐도 독이 됩니다. 딱 적정 용량만 써야 약이 되는 겁니다. 알코올 역시 같은 중용의 원리가 적용되는 성분입니다. 독술 아닌 약술로 승화시키는 게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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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부 포기하고 인류 발전에 기여한 맥주
덴마크 맥주의 자존심, 칼스버그
▲ 오리지널 칼스버그 로고 |
ⓒ 위키피디아 |
“세계 최고의 맥주를 만든다면, 경쟁자를 두려워할 필요 없다.”
1883년 11월 덴마크 코펜하겐, 칼스버그 대표 야콥 크리스티안 야콥센은 맥주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연구 결과를 보고받은 후, 과감히 공개를 지시했다. 회사 기밀로 유지하면 엄청난 부가 보장될 수 있는 내용이었기에 반대 목소리가 나올 법도 했지만, 누구도 그의 지시에 토 달지 않았다. 칼스버그 연구소에서 나온 결과물은 전 인류와 공유한다는 철학을 따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이전 맥주는 맛과 품질이 일정하지 않았다. 효모들이 다른 미생물에 쉽게 감염되기 일쑤였고 같은 효모라 할지라도 동일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만약 최상의 맛과 품질을 만드는 효모를 골라내 지속적으로 배양할 수 있다면 인류는 차원이 다른 맥주를 경험할 수 있을 터였다. 양조장 또한 수익과 운영에서 높은 안정성을 기대할 수 있었다.
1883년 칼스버그 연구소가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연구소장이던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은 각고의 연구 끝에 효모를 단일 균체로 분리하고 배양하는 데 성공한다. 이 기술을 보유했다는 것은 칼스버그가 세계 최고의 라거 맥주를 독점적으로 양조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콥 야콥센은 모든 지식과 정보를 공개하고 원하는 양조장에 자신들이 발견한 효모를 보냈다. 정말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고결한 철학 때문이었을까? 사업가로서 라거 맥주 시장의 파이를 폭발적으로 키울 수 있으리라는 야망은 과연 없었을까?
▲ 칼스버그를 세운 야콥 크리스티안 야콥센 |
ⓒ 위키피디아 |
야콥센이 맥주 기술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 뮌헨 슈파텐 양조장을 방문했을 때, 이 세 명은 당시 세계 맥주 시장을 주름잡던 영국 에일에 대항하기 위해 라거에 베팅하기로 결심하고 연구에 매진한다. 때마침 1842년 체코 플젠에서 세상에 나온 필스너 우르켈은 이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선사했다.
1845년 뮌헨에서 고향 덴마크로 돌아온 야콥센의 손에는 슈파텐에서 가져온 효모가 들려있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효모가 죽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중간중간 물을 뿌리며 마차를 탄 젊은 야콥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자신만의 맥주를 만든다는 기대감,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 새롭게 출현할 라거에 대한 설렘, 그가 느꼈을 감정이 어땠는지 상상하기 쉽지 않다.
1847년 야콥슨은 아들 칼(Carl)의 이름과 덴마크어로 언덕을 뜻하는 베르그(bjerg)을 붙여 ‘칼스버그'(Carlsberg) 양조장을 코펜하겐에 설립한다. 흥미로운 건, 그가 과학에 관한 지식이나 학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맥주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필경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였던 아버지 한스 크리스티안 오스테드와 뮌헨에서 함께 라거 연구를 했던 동료들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리라. 또한 영국의 양조 산업을 탐방하며 장치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넓혔던 경험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 |
ⓒ carlsberg group |
1860년대 들어서야 라거에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파스퇴르의 효모와 젖산균 발효에 대한 연구는 미생물학자와 의사뿐만 아니라 양조자들에게도 큰 희망을 준다. 야콥슨은 과학이 맥주 양조 중 겪는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이라 확신하며 1875년 세계 최초의 맥주 연구기관인 ‘칼스버그 연구소’를 세운다. 맥주 재료, 양조, 발효 등 맥주에 대한 연구들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었고 곧 위대한 연구물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라거 효모의 순수 분리 배양은 그 믿음에 대한 첫 결과물이었다. 그전까지 맥주 양조는 기술이 아닌 운과 환경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곤 했다.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은 이런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는 양조장의 효모가 여러 균체와 다양한 개체군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중 소수의 효모 균주만이 발효에 가장 적합하다고 가정했고 이를 찾는 실험을 시작했다. 오랜 시간 실험과 발효를 진행한 결과 단일 세포에서 자란 순수한 라거 효모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고 칼스버그는 이 효모를 가지고 기존과 다른 수준의 라거를 만들었다.
학계에서는 이 효모에 칼스버그의 이름을 따 ‘사카로미세스 칼스버겐시스'(Saccharomyces carlsbergensis)라는 학명을 붙였고 사람들은 단순히 ‘라거 효모’라고 불렀다. 칼스버그가 위대한 것은 이 라거 효모를 필요한 모든 양조장에 보냈다는 것이다. 라거 시장의 파이를 키우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폄하할지라도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많은 양조장이 이에 대해 고마움과 경의를 표했다. 일례로 1885년 네덜란드 하이네켄 또한 칼스버그에 감사 편지를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이를 계기로 라거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맥주 시장의 판도를 순식간에 바꿔 놓는다. 20세기 들어 영국 에일은 선반 끝으로 밀려났고 라거가 새로운 왕좌에 앉게 된다.
1909년 칼스버그는 또 다른 업적을 세상과 공유한다. 2대 연구소장 소렌 소렌슨이 수소 이온 농도 지수(pH, power of hydrogen)를 발표한 것이다. pH는 산성과 알칼리성의 정도를 0~14까지의 지수로 표시한 혁명적인 발견이었다.
pH는 맥주 양조에서 가장 중요한 효소와 효모의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로써 이에 대한 관리와 조절은 맥주 향미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품질의 핵심이다. 소렌 소렌슨의 이 연구는 맥주뿐만 아니라 화학계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그 공로로 소렌슨은 노벨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 전용잔에 담긴 칼스버그 |
ⓒ 윤한샘 |
칼스버그 필스너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시장을 휩쓸었고 덴마크 황실에 공급하는 첫 맥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칼스버그 로고 위에 보이는 왕관도 바로 이때 붙여졌다.
칼스버그 필스너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부드러움’이다. 투명한 밝은 황금색 칼스버그를 머금으면 섬세한 탄산과 쓴맛이 입안을 간지럽힌다. 깔끔하고 청량하며 무난하다. 진하고 무거운 필스너 우르켈이나 깨끗하지만 다소 날카로운 하이네켄과는 다른 결을 갖고 있다. 가볍지만 우아하며 모나지 않고 기품이 있다. 5%의 알코올은 이 모든 것을 받치는 기둥과 같다.
하지만 내가 칼스버그를 마실 때마다 느끼는 건, 단순한 향미가 아니라 아우라다. 오리지널 라거 효모를 사용한 맥주라는 아우라, 덴마크 황실이 인정한 맥주라는 아우라 그리고 더 나은 맥주를 만들기 위해 얻은 지식을 세계와 공유한 양조장이라는 아우라는 다른 맥주에서 맛볼 수 없는 칼스버그만의 독특한 아로마와 같다.
2016년 칼스버그는 1883년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이 발견한 라거 효모로 만든 맥주를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창고에서 발견된 맥주에서 당시 효모를 추출해 그때 레시피로 맥주를 만든 것이다. ‘1883’이라고 명명된 이 맥주는 인류 발전에 기여한 위대함과 헌신을 상징한다. 맥주가 단순히 알코올을 함유한 술이 아닌,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할 수 있는 존재임을 칼스버그는 보여 주고 있다.
칼스버그가 더 나은 맥주를 만들었는가? 아마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는가?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