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대칭인 생명체들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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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우리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며 살고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의 신체 구조만 봐도 그렇다.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들은 ‘신기하게도’ 좌우 대칭의 몸체 구조를 가졌다.
동물들은 혹스(Hox) 유전자라는 특별한 유전자의 작용으로 이런 대칭 구조의 신체를 갖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유전자가 6억년 전 인간과 동물의 옛 공통조상에도 존재했으며, 몸체 각 부위의 형성을 유도하는 역할을 했다는 연구가 나왔다.
미국 스토워스 의학연구소(the Stowers Institute for Medical Research) 연구진은 좌우 대칭 동물의 몸체 형성을 조절하는 혹스 유전자가 작은 별모양 말미잘(Nematostella vectensis)의 방사형 대칭 몸체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새로 발견했다.
좌우 대칭형 양향동물(Bilateria)과 말미잘 같은 자포동물문(Cnidaria)은 약 6억년 전 공통조상에서 분화됐다.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 28일자에 발표된 이 연구는 혹스 조상 유전자의 기능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아울러 진화생물학에서의 중요한 단계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 분야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진화생물학의 새로운 장 열어
연구를 이끈 스토워스 의학연구소 매튜 깁슨(Matthew Gibson) 박사는 “말미잘은 우리에게 혹스 유전자가 고대에 어떻게 기능했는지를 엿보게 한다”고 말했다.
양향동물들에게서 혹스 유전자의 역할은 잘 확립돼 있다. 양향동물들은 머리에서 꼬리까지의 축을 가지고 있고, 거의가 좌우 대칭이며, 인간에서부터 개나 물고기, 거미에 이르기까지 모든 동물을 포함한다.
혹스 유전자는 유전 프로그램을 작동시켜 사지나 장기 같은 다양한 신체 구조물 형성을 돕는다. 동물들이 태어나 발달하면서 서로 다른 신체기관들이 정체성을 갖도록 조절하는 것.
각 부위의 정체성은 발달하는 유기체의 해당 영역에서 혹스 유전자가 어떻게 발현되는가, 즉 혹스 코드(Hox code)에 의해 좌우된다.
혹스 유전자는 말미잘이나 해파리, 산호충 같은 방사형 대칭 동물을 포함하는 자포동물문(Cnidaria)에서 확인되었다. 그러나 자포동물들의 몸체 계획 조절에서 이 유전자의 특별한 역할이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었다.
6억년 전 혹스 코드는 어떤 역할 했나?
깁슨 박사는 “혹스 코드가 어디서 유래됐고 양향 동물이 출현하기 전에 혹스 코드가 어떻게 생물의 발달을 조절했는지에 대한 기능적 증거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말미잘의 혹스 유전자 기능 연구를 통해 약 6억년 전 우리를 포함한 동물의 공통 조상들에게서 이 유전자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실험 대상 말미잘(Nematostella vectensis)의 몸체를 정형화(patterning)하는 유전자들(Anthox1a, Anthrox8, Anthrox6a, Gbx)의 기능을 정지시켰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동원됐다.
하나는 짧은 헤어핀 RNA 처치를 통해 혹스 유전자 기능을 정지시키는 것, 다른 하나는 크리스퍼-카스9 유전자 가위를 사용해 유전체에서 혹스 유전자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혹스 유전자 기능 정지시키자 기형 유발
그 결과 연구팀은 혹스 유전자의 기능 상실이나 파괴가 신체의 세분화나 촉수 패터닝 모두에서 놀라운 결함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돌연변이 말미잘은 정상적으로는 네 개의 촉수가 생겨야 하는데 비해 두세 개의 촉수만 발생했다. 일부 촉수들은 정상보다 커졌고 부분적으로 융합되었으며, 다른 촉수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깁슨 박사는 “혹스 조상 유전자의 역할은 몸체 부위 형성을 유도하고 그 부위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존하는 양향동물들에게서 혹스 유전자는 다만 부위의 정체성을 조절하는 역할만을 하기 때문에 두 기능이 분리되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진화가 반드시 유전자 코드 더 복잡하게 만들지는 않아”
논문 제1저자인 슈오난 헤(Shuonan He) 스토워스 연구소 대학원 박사과정생은 “발달 중인 자포동물에게서 혹스 코드를 밝혀낸 이번 연구는 진화생물학자들에게 혹스 코드 진화과정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유전자들은 양향동물과 자포동물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분리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다”며 “이제 더 많은 자포동물 계통에서 이 유전자들이 유사한 방식으로 사용되는지 시험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깁슨 박사는 이번 연구에 대해 “진화를 통해 유전자 코드가 반드시 더 복잡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추가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화 과정은 무조건 정교함과 복잡성을 증가시킨다’라는 대중적인 인식과는 달리, 많은 경우 전혀 그렇지 않다는 분석이다.
깁슨 박사는 이어 “우리의 고대 동물 조상들은 오늘날의 인간에게도 존재하는 똑같은 유형의 유전자에 의해 조절되는 복잡한 생물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며 “단지 그 유전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사용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