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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질을 크게 확대해 볼 수 있는 렌즈의 원리는 고대 그리스인들에 의해 발견됐다. 그들은 유리잔에 물을 채워서 보면 개미나 벼룩 같은 작은 동물들도 크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후 최초의 현미경이 제작된 것은 1595년 네덜란드의 안경 제조업자였던 얀센 부자에 의해서였다. 그들이 발명한 현미경은 조그만 물체를 약 20배로 확대해 관찰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의 과학자 안토니 반 레벤후크는 1673년 약 300배로 물체를 확대할 수 있는 현미경을 제작해 사람의 정자를 비롯해 원생동물과 세균, 담수성의 조류 같은 미생물을 발견했다.

현미경 제작 기술은 점차 발달해 19세기 후반에는 최대 1500배까지 확대가 가능한 현미경이 개발됐다. 하지만 빛의 굴절을 이용해 물체를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광학현미경의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독일의 전기공학자 에른스트 루스카는 전자현미경을 개발한 공로로 198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 사진출처 : http://whenintime.com

 

 

그 한계는 빛의 파장에 의해 결정되는데, 가시광선 중에서 가장 파장이 짧은 쪽은 약 0.4㎛이다. 광학이론에 의하면 분해능의 극한은 빛의 파장의 절반 정도이므로 아무리 성능이 좋은 렌즈를 채용한다 해도 0.2㎛보다 작은 물체는 볼 수 없다.

특히 원자의 경우 그보다 훨씬 더 작으므로 원자를 보기 위해서는 무언가 새로운 개념의 현미경이 필요했다. 그 새로운 것은 발명한 이가 바로 독일의 전기공학자 에른스트 루스카다.

뮌헨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베를린공과대학에서 전기공학은 전공하고 있던 그는 1928년에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은 전자를 물체에 투과시킨다면 광학현미경보다 훨씬 더 분해능이 높은 현미경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1931년에 그는 마침내 전자들을 사용하는 전자현미경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그 현미경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광학현미경보다 분해능 성능이 훨씬 떨어지는 약 400배의 배율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1933년에 약 1만 배의 상을 얻을 수 있는 전자현미경을 만드는 데 성공함으로써 광학현미경보다 월등한 성능을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였다.

이후 루스카는 전자현미경을 더욱 개량해 1939년에는 최초의 상용화된 전자현미경을 개발했다.

 

전자현미경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발명 중 하나로 꼽힌다. 사진은 일반적인 전자현미경에 대한 이미지 컷.ⓒ Wikimedia / Dr Graham Beards

 

나노기술 시대를 열다

광학현미경에 여러 개의 렌즈가 있듯이 전자현미경에는 여러 개의 코일이 사용된다. 그 코일에 전류를 흘리면 렌즈가 빛을 굴절시키듯 전자를 굴절시켜서 물체의 확대된 상을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상을 사진필름 등에 기록할 수 있다.

전자의 파장은 가시광선의 10만분의 1에 달한다. 이후 개량된 전자현미경은 10만 배까지 확대상을 볼 수 있게 됨으로써 세상의 크기를 10만 배를 확장시켰다. 광학현미경이 박테리아 같은 마이크로미터의 물체를 볼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면, 전자현미경은 바이러스나 DNA 같은 나노미터 크기의 물체를 볼 수 있는 시대를 연 셈이다.

따라서 전자현미경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발명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루스카가 전자현미경을 발명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50여 년 후인 1986년이었다. 그는 1981년 주사터널링현미경을 처음으로 개발한 IBM 취리히연구소의 게르트 비니히와 하인리히 로러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주사터널링현미경(STM)이 이처럼 빨리 노벨위원회의 관심을 끈 것은 나노기술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기존 현미경이 인간의 눈을 확장한 개념이라면 STM은 촉감의 원리를 이용한 현미경이다. 이 현미경은 아주 미세한 바늘이 마치 손가락처럼 물체의 표면을 더듬어 전자현미경과 동일한 상을 얻는다.

즉, 뾰족한 탐침이 비행기가 저공비행을 하듯 물질 표면에 가까이 접근해 상하로 움직인 값을 기록하는 원리다. 때문에 바늘 끝을 물질 표면으로부터 똑같은 거리를 유지하게 하는 기술이 매우 중요한데, 여기에 이용되는 과학원리가 바로 터널링 효과다.

터널링이란 전자가 파동성을 띠며 시료를 통과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바늘을 표면으로부터 매우 작지만 일정한 거리만큼 떨어뜨려 유지시킬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아주 미세한 손가락으로 표면을 느끼는 것이 STM의 원리인 셈이다.

또한 STM은 원자를 옮기거나 변형시킬 수도 있고 분자를 몰아 원하는 곳에 갖다 놓을 수도 있다. STM의 등장으로 그동안 이론으로만 예측되던 나노기술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고, 실제로 이 기술이 개발된 이후 나노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에른스트 루스카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지 불과 2년 후인 1988년 5월 27일 사망했다. 때문에 생존자에게만 수여되는 노벨상의 너무나 느린 공적 인정에 대한 대표적인 경우로 종종 회자되고 있다. ⓒ Pixabay

 

개발한 지 53년 만에 노벨상 수상

에른스트 루스카는 1933년 베를린공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55년까지 지멘스 사에서 근무했다. 1955년부터는 막스플랑크연구소 산하의 프리츠하버연구소에서 전자현미경연구소장으로 근무했으며, 1959년부터는 동 연구소의 연구교수로 일했다.

하지만 그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지 불과 2년 후인 1988년 5월 27일 사망했다. 이때 그의 나이가 만 82세였으니, 만약 조금이라도 늦게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면 영원히 상을 받지 못할 뻔한 것이다. 그의 사례는 생존자에게만 수여되는 노벨상의 너무나 느린 공적 인정에 대한 대표적인 경우로 종종 회자되고 있다.

한편, 새로운 현미경의 개발로 노벨상을 수상한 최초의 사례는 195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제르니케다. 그는 1935년에 위상차 현미경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물질을 통과한 빛이 물질의 굴절률 차이에 의해 위상차를 갖게 되었을 때 이를 명암으로 바꾸어 관찰하는 위상차 현미경은 무색 투명한 시료라도 내부의 구조를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지난해에는 저온전자현미경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스위스의 자크 뒤보셰와 미국의 요아힘 프랑크, 영국의 리처드 핸더슨이 공동으로 노벨 화학상을 차지했다. 기존의 전자현미경은 단백질 같은 생체분자를 변형되지 않은 모습으로 관찰하기 어려웠으나, 저온전자현미경은 생체 고분자를 순식간에 얼려 이전에 보지 못했던 부분도 자연적인 상태로 관찰할 수 있다.

바로가기: http://www.sciencetimes.co.kr/?news=%ec%84%b8%ec%83%81%ec%9d%84-10%eb%a7%8c-%eb%b0%b0-%ed%99%95%ec%9e%a5%ec%8b%9c%ed%82%a8-%ea%b3%bc%ed%95%99%ec%9e%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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