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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추위 극복한 극지생물 결빙 억제 단백질 추출해서 장기·줄기세포 보존제 활용
남극식물서 뺀 저온유전자 주입후 추위에도 벼 잘 자라
남극 지의류 항산화물질은 무방부제 화장품에 첨가

 

 

 

 

극지방의 극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생물에서 추출한 물질을 상업화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냉해에 강한 벼 품종을 개발하고 장기이식, 줄기세포 냉동 보관에 활용할 수 있는 보존제 등을 만드는 한편 방부제를 쓰지 않는 화장품이나 결빙 방지 아이스크림 제조에도 활용하고 있다. 극지연구소는 27일 남극 해양미생물에서 추출한 ‘얼음 형성 억제물질’로 혈액 냉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상을 막는 냉동 보존제를 개발해 알테르바이오텍에 기술이전을 했다고 밝혔다. 혈액은 얼거나 녹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얼음이 적혈구 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에 냉동 보관이 어려워 의료 현장에서 보관과 수급이 어려웠다. 하지만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해양미생물로 만든 냉동 보존제를 사용하면 혈액을 6개월간 장기 보관할 수 있다. 현재는 최장 35일까지만 보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혈액 폐기율이 크게 낮아지면서 2014년 기준 80%에 불과한 국내 혈액 자급률 해소에도 도움을 줄 전망이다.

혈액 보관뿐만 아니라 극지 생물에서 추출한 결빙방지 단백질을 활용해 장기나 줄기세포 보존제로 활용할 수 있다. 남극에 사는 물고기는 차가운 바닷물에서 사는 만큼 체액 어는점이 해수 온도보다 낮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체내 수분이 얼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남극 물고기 중 일부는 ‘비동결 단백질(AFP·Antifreezing protein)’이라는 특이한 물질을 갖고 있다. 체내에 AFP를 갖고 있으면 낮은 온도에서도 물이 얼지 않는다. 극지 물고기가 진화를 거치면서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단백질인 셈이다.

이 같은 결빙방지 단백질을 활용해 줄기세포나 장기를 보관할 때 온도를 영하 100도 이하로 떨어뜨린 뒤 나중에 사용하기 위해 녹여야 할 때 얼음 결정이 만들어지면서 장기나 세포 등이 파괴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현재는 결빙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세포가 얼지 않도록 화학물질을 넣어주지만 장기나 줄기세포 DNA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 한계다.

이준혁 극지연구소 극지유전체사업단 책임연구원은 “화학물질을 고농도로 넣으면 독성으로 장기나 줄기세포 DNA가 변할 수 있다”며 “극지 생물에서 분리해낸 단백질은 생체친화적인 만큼 이 같은 단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국적 식품회사 유니레버는 북극 물고기에서 AFP를 대량 분리해낸 뒤 이를 아이스크림에 첨가해 판매하고 있다. 아이스크림 맛을 높이기 위해 지방을 넣으면 어는점이 높아지면서 얼음 알갱이가 생긴다. 하지만 AFP를 넣으면 어는점이 낮아지는 만큼 아이스크림에 얼음이 생기는 것을 막아 부드러움을 오랜 기간 유지해주는 한편 지방 함량도 낮출 수 있다.

최근 김우택 연세대 생물학과 교수와 이형석 극지연구소 극지유전체사업단 책임연구원 공동 연구진은 남극에 서식하는 ‘남극좀새풀’에서 저온에 적응하는 유전자 ‘DaCBF4’를 분리해내는 데 성공했다. 남극에서 꽃이 피는 식물은 남극좀새풀과 남극개미자리 등 단 두 종에 불과하다. 특히 남극좀새풀은 0도 온도에서도 광합성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분 동결을 막는 유전자도 갖고 있다.

연구진은 유전체 분석을 통해 DaCBF4가 저온에 적응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이 DaCBF4를 벼 세포에 넣고 배양시키자 일반 벼와 비교했을 때 저온에서도 생장 능력이 현저하게 증가한 벼가 탄생했다.

이형석 책임연구원은 “벼에 심각한 냉해를 미칠 수 있는 온도인 4도에서 8일간 배양했더니 일반 벼는 12%만 살아남았지만 DaCBF4를 주입한 벼는 62% 생존율을 보였다”고 밝혔다. 또 DaCBF4를 주입한 벼의 정상적 생육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동안 겨울철 추위에 강한 밀과 보리의 유전자를 작물에 넣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유전자 주입 후 생장이 느려지거나 개체가 작아지는 왜소발육증, 꽃이 피는 시기가 늦어져 생산성이 감소하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한계에 직면한 바 있다. 이형석 책임연구원은 “이상기온으로 초가을 무렵 기온이 떨어지면 벼가 이삭을 맺지 못하는 등 피해가 발생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남극 식물 유전자원을 활용해 농작물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적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이처럼 DaCBF4를 주입해 냉해에 강한 벼를 만들어낸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인 ‘프런티어스 인 플랜트 사이언스’ 최신호에 발표했다. 극지연구소는 남극 바위에 붙어 사는 ‘지의류’의 일종인 라말리나에서 항산화 성질이 뛰어난 ‘라말린’이라는 물질을 찾아내 화장품에 적용하기도 했다. 남극 식물은 해안가 바위에 붙어 강한 자외선을 받는 만큼 스스로 산화물질을 제거하는 항산화물질을 만들어낸다. 라말리나에서 분리해낸 라말린은 비타민C보다 50배 이상 높은 항산화 효과를 갖고 있는데 LG생활건강은 라말린 추출물을 활용해 ‘프로스틴’이라는 무방부제 화장품을 출시했다. 이형석 책임연구원은 “추운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힘겹게 진화해 온 극지 생물자원이 향후 인류의 생명을 살리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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