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탄생한 이유

*이 글은 신희섭 교수님의 카오스 강연 ‘뇌, 신비한 세계로의 초대’를 토대로 제작되었습니다.*

뇌는 왜 생겼을까?
미국의 유전학자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의 명언 속에 그 답이 있다.

진화의 역사를 더듬어 뇌의 수수께끼를 풀기 전에 먼저
오래된 드라마를 하나 보고 가자.
다음은 2000년에 방영된 드라마 <가을동화>의 한 장면이다.

뜬금없이 나무 얘기는 왜 하느냐고?
‘뇌가 왜 생겼을까?’라는 질문을
 ‘식물에는 왜 뇌가 없을까?’
로 바꾸기 위해서다. (질문을 바꾸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자, 식물에는 왜 뇌가 없을까? 너무나 간단하다. 
식물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움직이지 않으면 뇌가 필요 없을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멍게(우렁쉥이)의 일생을 살펴보자.

멍게는 유충 시절에는 뇌가 있다.
바다 속을 떠돌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체가 되어 바위에 달라붙어 생활하면서
멍게는 놀랍게도 자신의 뇌를 먹어치운다.
바위에 뿌리내리고 다시는 움직이지 않게 되자
더 이상 뇌가 필요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 뇌는 움직이기 위해, 운동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다.
미국의 뇌과학자 로돌포 이나스(Rodolfo Llinás)의 말을 빌리자면

이를테면 해면에는 뇌는커녕 뇌의 전신인 신경조차 없다.
해면은 움직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바다를 떠다니는 해파리서부터 간단한 신경이 나타난다.

리고 편충과 같은 기생충이 속한 편형동물에서
처음으로 뇌 비슷한 게 나타난다.

여기서 문제,
해파리와 편형동물은 어떤 차이가 있기에
편형동물에서 신경이 더욱 발달해서 뇌가 됐을까?

해파리는 한 방향으로 운동하지만,
편형동물은 우리 인간처럼 3방향으로 운동하기 때문이다.
해파리는 위아래만 있지만
편형동물에게는 앞뒤, 좌우, 위아래가 있는 것이다.
1차원에서 3차원으로 운동이 복잡해지면서
이를 조율하기 위해 복잡한 신경계가 필요해진 것이다.
바로 본격적인 뇌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가을동화’라는 드라마의 은서처럼 나무가 되고 싶은가?
은서 얘기처럼 ‘다시는 움직이지 않으면’ 된다.

자 다음은 인간의 뇌로의 진화다.
역시 옛날 노래를 하나 찾아보자.
하덕규의 <가시나무>라는 노래의 한 소절이다.

뇌는 운동하기 위해 진화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기왕 할 바에야 운동을 잘하는 것이 생명체의 지상과제가 된다. 

운동을 잘 하려면 운동하고 싶어야 한다.
운동하고 싶다는 것은 바로 ‘감정(emotion)’이다.

그래서 감정을 만들어내는 ‘변연계’라는 곳이 탄생한다.

그런데 이게 또 문제다.
감정은 생존에 굉장히 훌륭한 도구지만 이 역시 지나치면 해가 된다.
그래서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게 또 필요해진다.
바로 이성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해서 변연계를 대뇌피질이 둘러싸게 된다.
감정을 이성으로 똘똘 만 셈이다.
(주의! 물론 이것은 복잡한 뇌의 작용을 지극히 단순화한 설명이다.)

운동하는 나, 운동을 욕망하는 나, 욕망을 통제하는 나,
이렇게 수많은 나가 생겨나고 그래서 이것을 하나로 통제하려는 자아,
그리고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 ‘헛된 바램’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기원이다. 

원래는 생존의 도구였던 뇌가 마음이라는 이름으로 주인이 되는 순간이다.
신희섭 선생님(기초과학연구원_단장) 말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