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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높이의 고압송전선 위에서 작업 중인 노동자들의 모습.[사진=EBS 화면캡처]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전선 위의 참새’란 영화 보셨나요? 뭔가 대단한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는 아니지만 제목에서 뭔가 불안함이 느껴집니다. 고압선 위에 앉은 참새라고 생각하면 상식적으로 “저러다 감전 당하는 것 아닌가” 싶은 마음에 불안하기만 합니다.
미국의 정치인이었던 유진 메카시는 언론을 향해 ‘전선 위의 참새들’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언론이란 모두 전선 위 참새들이며, 어느 한 마리가 다른 전선으로 날아가 감전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면 모두 그 곳으로 날아간다”고 비꼬았지요.
매카시의 말처럼, 안전한 걸 확인하면 몰려가는 습성이 참새(언론)에게는 진짜 있을까요? 아니면 위험한 고압선인 줄 알면서도 누구든 먼저가서 앉을 수밖에 없는 본능(직업)일까요? 어느 쪽이든 ‘참새’를 벗어날 수 없는 평가군요.
요즘 도심에서는 전선 위에 앉아 있는 참새들은 보기 힘드시지요? 대신 전선 위에 앉은 비둘기는 간혹 눈에 뜁니다. 문제는 참새든, 비둘기든 고압선 위에 앉아도 어째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람은 바로 감전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날짐승의 발에는 절연체라도 장치돼 있는 것일까요?
전선 위에 앉아있는 새들.[사진=유튜브 화면캡처]
‘감전(感電·electric shock)’은 몸에 전류가 흘러 전기적 충격을 주는 현상입니다. 전류가 몸에 흐르기 위해서는 전위차가 있어야 합니다. 전위차가 ‘0’이면 전류가 흐르지 않습니다. 이 말은 참새(날짐승)와 전선의 전위차가 ‘0’이라는 의미입니다.
고압선에 참새가 앉으면 참새의 발과 전선은 서로 병렬연결 됩니다. 이 때 두발과 전선 사이의 저항이 0이 돼 전위차도 0이 됩니다. 병렬회로에서 따로 나누어진 회로들은 전위차가 모두 같기 때문에 참새와 전선 사이의 전위차도 0이 되는 원리입니다. 전위차는 물의 수위 개념과 같습니다. 수위가 같으면 물은 어느 한쪽으로 흐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전위차가 같으면 저항값이 적은 쪽으로 전류가 흐릅니다. 병렬연결된 회로는 저항값이 큰쪽보다 적은 쪽으로 전류가 더 많이 흐르는데 참새의 저항값과 전선의 저항값 중 참새의 저항값이 더 큽니다. 인체나 동물의 저항값이 전선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전위차가 수위라면 저항값은 물길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두 개의 물길이 있는데 물이 흐르기 쉬운 곳과 흐르기 어려운 곳 중 물은 어느 곳으로 흐를까요? 자연의 이치는 힘든 곳과 편한 곳 중에 늘 편한 곳으로 흐르려고 합니다. 전기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생긴 장애물인 참새를 향해 흐르기보다 잘 흐르도록 길이 잘 닦인 전선으로 흐르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사람은 어떠냐고요? 사람도 이론적으로는 참새와 마찬가지입니다. 두 손으로 전선에 매달려도 감전되지 않습니다(제발 몸으로 시험하지 마시길). 다만, 지면과 연결된 철탑이나 전봇대에 닿으면 참새든, 사람이든 감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고압선에서 활선작업 중인 노동자.[사진=유튜브 화면캡처]
피뢰침의 원리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지구는 엄청나게 큰 도체입니다. 그래서 지구에는 전기가 들어갈 공간이 넘쳐나 전위차도 큽니다. 번개가 치면 피뢰침에 끌려가 곧바로 땅(지구)으로 전기에너지를 보내버립니다. 참새나 사람이 지면과 닿아있는 전신주 등에 몸을 접촉하는 것은 스스로 거대 도체인 지구와 고압선을 연결시켜주는 제3의 도체가 되겠다는 것과 같기 때문에 감전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전기의 성질을 이용해 전기를 멈추지 않고, 전류가 흐르는 고압선 위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전기를 몇 시간 멈추면 엄청난 경제적 타격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절연체 몇 개에 생명을 내맡기고 ‘활선작업’을 해 많은 인명피해를 불러왔습니다.
활선작업은 전류가 흐르는 길을 억지로 막고 작업하는 것입니다. 작은 실수나 갑작스런 기후의 변화에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작업입니다. 다행히 2016년 6월 이런 직접 활선작업이 폐지됐습니다. 사람이 참새가 아니듯이 과학도 사람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작업에 내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