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파브르는 자신의 서재 책상 위에서 갓 부화한 산누에나방 암컷에다 철망을 덮고 외출했다. 그날 밤에 다시 돌아온 파브르는 서재에 불을 밝힌 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수컷 산누에나방 수백 마리가 서재를 뒤덮고 있었던 것.

암컷 나방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처럼 많은 수컷 나방을 불러 모은 것일까. 그 비밀을 밝히기 위해 갖가지 실험을 진행했으나 파브르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 에피소드는 파브르가 1879년부터 1907년까지 연이어 출간한 생애의 역작 ‘곤충기’에 소개되어 있다.

그로부터 약 50여년 후인 1956년 독일의 생화학자 아돌프 부테난트는 마침내 암컷 누에나방이 수컷들을 불러 모으는 비밀의 물질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무려 20년간에 걸쳐 50만 마리의 암컷 누에나방 배마디에 있는 분비샘을 하나씩 떼어내 모아서 혼합물을 추출한 것.

 

성호르몬에 대한 다양한 연구로 1939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아돌프 부테난트의 학창 시절 모습. ⓒ public domain

 

 

다시 그 혼합물에서 상관없는 물질을 하나씩 제거한 끝에 마침내 아주 강력한 성 유인물질을 찾아냈다. ‘봄비콜(bombykol)’이라고 명명된 그 물질의 분자가 공기분자 1조개 중에 하나만 있어도 수컷 누에나방은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독일의 페터 칼손과 마틴 뤼셔 박사는 1959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페로몬’이라는 신조어를 소개했다. ‘운반하다’는 뜻의 그리스어 ‘pherein’과 ‘자극하다’는 뜻의 그리스어 ‘hormon’의 합성어였다. 부테난트가 누에나방 50만 마리에서 분리해낸 물질은 바로 페로몬이다.

임산부의 소변에서 에스트론 분리

1903년 3월 24일 독일 브레머하펜에서 태어나 괴팅겐대학에서 1927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부테난트가 처음 연구를 시작한 분야는 성호르몬이었다. 그는 1929년에 임산부의 소변에서 에스트로겐 효과를 갖는 물질인 에스트론을 결정 형태로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다음해인 1930년 메리엔이 에스트리올이라는 새로운 여성 호르몬을 발견하자 부테난트는 에스트리올과 에스트론의 관계를 설명했다. 또한 그는 스펙트럼 분석 결과와 콜레스테롤의 식에 근거해서 에스트론의 화학식이 C18H22O2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1931년에는 남성의 소변에서 남성 호르몬의 일종인 안드로스테론을 순수하고 투명한 형태로 분리해냈다. 정제 과정에서 이 물질은 여러 면에서 에스트론처럼 거동하는 것이 증명됐다. 부테난트는 안드로스테론의 화학식이 C19H30O2라고 정의했는데, 에스트론과의 차이는 단지 1개의 메틸기와 5개의 수소원자를 더 함유하고 있다는 점뿐이었다.

부테난트는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이미 발견된 난소 호르몬 코르푸스 루테움을 1934년에 화학적으로 순수한 상태로 합성하는 데 성공한 후 프로게스테론이라 명명했다. 그 후 그는 임산부의 소변에서 발견한 프레그난다이올을 프로게스테론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1935년에 암스테르담대학의 에른스트 라퀴르가 고환에서 대표적인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추출해내자, 부테난트는 안드로스테론으로부터 테스토스테론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이 같은 업적을 인정받아 스위스의 레오폴트 루지치카와 공동으로 1939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독일의 나치 정부가 강제로 수상을 거부하게 하여 부테난트는 1949년에서야 노벨상의 메달과 상장만 받았다.

상대의 성적 자극을 유도하는 성페로몬

부테난트는 1936년부터 1960년까지 베를린대학의 교수 및 카이저 빌헬름 생화학 연구소(현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소장으로 근무했으며, 1960년부터 1972년까지 막스 플랑크 과학진흥회 회장을 지냈다.

그가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 발견한 페로몬은 혈액에 녹아 몸을 순환하는 호르몬과 달리 몸 밖으로 분비돼 다른 개체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상대방의 성적 자극을 유도하는 것은 성페로몬, 무리에게 위험을 알리는 것은 경보 페로몬, 장소나 방향을 알려주는 길잡이 페로몬, 여왕벌처럼 다른 개체의 생식 능력을 억제하는 계급분화 페로몬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특히 성페로몬의 경우 넓은 공간에서 흩어져 살던 동물들이 자신의 짝을 정확히 찾아내 후손을 이어가는 생식활동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유사한 곤충 종들이라도 잡종이 생기지 않는 것은 종마다 각각의 특이한 성페로몬을 분출하기 때문이다.

1971년에 마샤 맥클린톡은 여대 기숙사에 함께 지내는 여학생들의 월경주기가 같아지고 한 주기의 기간이 길어진다는 논문을 ‘네이처’에 발표하고 인간에게도 페로몬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 후에도 인간 페로몬과 관련한 논문이 발표되었으나 여전히 직접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성호르몬 연구 분야의 개척자로서 유전학 및 바이러스, 암 연구 분야에도 크게 기여한 아돌프 부테난트는 1995년 1월 18일 숙환으로 인해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원문: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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