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시대, 세상이 바뀐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이정식씨(중소기업 운영·가명)의 삶은 5G 상용화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변화는 이씨 아파트에 5G 기지국이 설치되면서 시작됐다. 아파트 내 기지국 설치를 반대해온 이씨의 아내는 전자파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는데 최근에는 전자기과민성증후군(EHS) 증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5G 전자파의 유해성을 다룬 유튜브에 심취한 아내는 와이파이 공유기를 차단하는가 하면 가족들의 실내 휴대폰 사용까지도 병적으로 꺼렸다. 휴대폰을 둘러싼 충돌이 잦아지면서 가정생활도 깨졌다. 이씨는 “아내가 하도 난리를 치니까 이제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기지국 하나 들어선 것뿐인데 온가족이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 김상민
불확실성에서 생겨난 전자파 공포
전자파는 유해한가? 답은 ‘안전하다’이다. 다만 조건이 있다. 인체보호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국립전파연구원은 “인체 보호기준을 벗어난 강한 세기의 전자파는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현재 일상에서 접하는 전자파는 미미한 수준으로 아주 오랜 시간 노출되지 않는 이상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휴대폰 전자파에 대한 답도 있다. 2011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휴대폰 전자파(RF)의 암 발생 등급을 2B로 분류했다. 2B는 사람에게 발암 증거가 제한적이고 동물실험에서도 근거가 충분하지 않을 때 부여되는 등급이다. 2B군에는 휴대폰 전자파뿐만 아니라 커피, 절인 채소도 포함된다. 휴대폰 전파의 암 발생 위험도는 술, 담배, 자외선보다 낮고 김치, 피클과 같은 수준이다.
김학림 교수(단국대 의대)는 전자파에 대한 두려움은 무지와 불확실성에서 온다고 본다. 최근 5G 전자파의 유해성 논란이 확대되는 이유도 5G가 경험해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월 19일 영국과 독일 등 유럽 36개국의 과학자와 의사 180여명은 5G 주파수의 유해성에 대한 심층연구가 이뤄질 때까지 5G 서비스 개시를 유예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유럽연합(EU)에 제출했다. 이들은 상용화에 앞서 이동통신사업자 등 산업계의 입김이 닿지 않는 독립적인 연구를 통한 검증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유럽 시민사회에서도 스위스를 중심으로 5G 보이콧 운동이 확산되는 추세다.
유럽과 달리 국내에서는 세계 최초 타이틀을 달고 5G 서비스 상용화가 이뤄졌다. 그렇다면 국내에서는 5G 전자파 유해성에 대한 우려가 해소된 것일까. 현재 국내에서 상용화된 5G는 3.5㎓(기가헤르츠)대 주파수를 이용한다. 기존 LTE 주파수(최대 2.6㎓)와 큰 차이가 없다. 때문에 전자파 인체 노출량에 대한 측정방법도 이전 LTE 때와 같다. LTE와 5G(3.5㎓)에 대한 인체 유해성은 사람의 체온 변화를 통해 측정하는데 전자파를 통해 체온이 올라가면 인체 유해성도 올라간 것으로 본다.
시중에 유통된 LTE, 5G(3.5㎓) 휴대폰 단말기의 전자파흡수율(SAR)은 0.151W/㎏에서 최대 0.612W/㎏으로 전자파흡수율 1등급에 속한다. 김기회 국립전파연구원 연구관은 “현재 휴대폰 전자파는 인체 보호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수준”이라며 “인체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전자파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휴대전화 판매점 앞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영민 기자
하지만 5G 초고주파 대역(28㎓)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해당 주파수 대역은 미지의 영역이다. 28㎓ 대역부터는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해당 주파수 대역의 전파는 인체 내부를 투과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내부 전기장 세기를 근거로 온도 변화를 측정하는 기존 3.5㎓ 대역의 전자파흡수율 측정방식으로는 28㎓ 대역 주파수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할 수 없다.
28㎓ 대역에서 전자파 인체 노출량 평가는 전력 밀도(인체 표면의 면적에 흡수되는 전자파량)를 사용하는데 정확한 전력 밀도를 측정할 수 있는 장비와 방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일부 업체에서 전력 밀도 측정시스템을 개발하긴 했지만 신뢰성에 대한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아 한계가 있다.
업계, 전자파 차단 필름·스티커 출시
5G 휴대전화 ‘전자파 괴담’은 3.5㎓와 28㎓ 사이에 메우지 못한 작은 틈새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28㎓ 대역에서의 인체 유해성 관련 연구는 상당한 데이터가 축적된 이전 주파수대 연구와 비교해 미미한 수준이다. 국제비전리복사방호위원회(ICNIRP) 기준에 따라 한국도 300㎓ 주파수 대역까지 인체 보호기준을 마련해 두었지만 사용자들은 ‘기준’만으로는 마음을 놓지 못한다. 여기에 휴대폰 전자파로 팝콘을 튀기고 달걀을 익히는 ‘조작’ 영상이 유튜브에 돌면서 괴담이 확대재생산되는 것이다.
김남 충북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는 “6㎓ 이하에 대한 연구는 많고 다양한 데 비해 28㎓ 대역은 연구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현재까지 진행된 28㎓ 관련 연구에서 나타난 특이사항은 없는데도 사람들은 생소하다는 이유만으로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산업계는 5G 휴대폰 전자파 논란을 되레 부채질하고 있다. 업계는 5G 전자파 유해성에 대한 입장이 극단으로 나뉜다. 5G 상용화 이후 휴대폰 전자파 차단 필름·스티커를 비롯해 침구와 앞치마, 담요 등 전자파 차단제품이 쏟아졌다. 이들 전자파 차단제품 제조업체들은 전자파의 위험성을 부풀리고 다른 한편에선 제품의 전자파 차단 효과를 과대포장해 매출을 올린다. 이른바 ‘공포 마케팅’이다. 최근에는 가정용 저가형 전자파 측정장비들이 출시되고 있는데 이들 장비 대부분은 낮은 전자파를 측정하지 못하는 불량 장비들이다. 예컨대 실제 전자파가 0.01에 불과하더라도 액정에는 장비 최소치인 1로 표기되는 것이다.
이동통신사·휴대폰 제조사들은 반대 입장이다. 이들은 5G 전자파 유해성은 없다고 일축한다. KT는 지난 9월 11일 자체 발간한 5G 뉴스레터 팩트체크 코너를 통해 “WHO와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등 국내외 공인기관에서 통신 전자파의 인체 유해성에 대해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하다고 할 수 없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KT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관계자는 “KT의 주장은 진흥원의 입장과 다르다”며 “지금은 5G가 안전한지 지켜보는 시기인 만큼 5G를 비롯해 전자파가 유해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고 말했다. 관련 산업계가 같은 사안을 두고 이해관계에 따라 둘로 나뉘어 혼란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5G를 혁신성장의 한 축으로 설계한 정부는 5G 유해성을 둘러싼 불안 여론 진화에 나서고 있다. 최형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주파수가 높다고 해서 인체에 더 위험한 것은 아니다”라며 “10㎓ 이상에서 전자파의 인체 침투 깊이는 0.27㎝ 이하로 대부분 피부에서 흡수될 뿐만 아니라 5G 28㎓의 경우에는 장애물이 있으면 통신이 끊기기 때문에 사람에게 전자파가 닿지 않는 구조로 만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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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파수로 알아보는 5G – 혁신의 시작은 지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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