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연합뉴스 제공

 

2019년 새해 벽두부터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화제다. 주중 5일간 방영되는 한 아침 TV프로그램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는가 하면 2016년 출간한 책 ‘백년을 살아보니’가 뒤늦게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런 인기는 1920년생인 김 교수가 올해 우리 나이로 100세가 됐기 때문이다. 흔히들 ‘100세 시대’라고들 하지만 실제 100세까지 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김 교수가 화제가 된 것 아닐까.

지금도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 걸으며 강의도 서서 하는 김 교수를 보면서 ‘건강 100세’라는 말이 실감 났다. 늘 잔잔한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차분하고 겸손하게 말하는 김 교수를 보면 노인은 늘어도 어른은 주는 것 같은 우리 사회에서 나이 들어가는 많은 사람들의 롤모델이라는 생각이 든다.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2016년 펴낸 책 ‘백년을 살아보니’가 올해 들어 베스트셀러가 됐다. 올해 김 교수가 우리 나이로 100세가 됐기 때문이다. 교보문고 제공

 

김 교수의 책 ‘백년을 살아보니’ 역시 그의 인품이 그대로 느껴지는 잔잔한 에세이로 이뤄져 있는데 내용이 유익할 뿐 아니라 잔재미도 꽤 있다. 특히 몇 달 뒤면 만 50이 되는 필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구절이 여기저기 보인다.

예를 들어 김 교수는 “인생에서 50에서 80까지는 단절되지 않은 한 기간으로 보아야 한다”며 “50부터는 ‘80이 되었을 때 나는 적어도 이러한 삶의 조각품을 완성해야 한다’는 준비와 계획과 신념과 꾸준한 용기를 갖고, 제2의 마라톤을 달리는 각오로 재출발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그런데 옥의 티라고 할까 김 교수의 책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100살을 사는 게 평범한 일 같은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50에서 80까지는…’이라는 앞의 구절만 봐도 우리나라 남성의 기대수명이 80이 안 된다는 걸 생각하면 실제로는 벅찬 얘기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수명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인이 있다. 우연(운)도 중요하지만 건강과 생활습관, 유전,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지난 100년 동안 의학의 발전(건강)과 식량증산 및 상하수도를 비롯한 사회인프라의 개선(환경)으로 지구촌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유전과 통제할 수 있는 생활습관은 수명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상위 10%와 하위 10% 수명 5년 차이나

학술지 ‘이라이프(eLife)’ 1월 15일자에는 유전자가 기대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영국 에딘버러대 등 다국적 공동연구자들은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수명 데이터와 이들 자녀의 게놈을 분석해 수명과 관련된 유전자를 찾았고 그 영향력을 평가했다. ‘왜 당사자들의 게놈이 아니라 자녀의 게놈을 분석했지?’ 이런 의문이 들 텐데 다 이유가 있다.

 

유전자 변이형(대립형질)과 질병 위험성 및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그래프다. 왼쪽부터 알츠하이머병/파킨슨병, 흡연/폐암, 심혈관계질환, 2형 당뇨병, 기타 암이다. APOE 유전자의 변이형(ε4)은 알츠하이머병/파킨슨병과 심혈관계질환 위험성을 높여 수명에 꽤 영향을 미침을 알 수 있다. 반면 기타 암 발생 위험성을 낮추는 ATXN2/BRAP 유전자와 CDKN2B-AS1 유전자의 변이형은 심혈관질환의 위험성은 높이기 때문에 수명에 미치는 영향이 상쇄된다. ‘이라이프’ 제공

 

이번 연구의 바탕이 되는 데이터는 현재 영국이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에서 얻었다. 영국 바이오뱅크는 2010년 기준 40~69세인 영국인 50만 명에게서 얻은 게놈 데이터를 공개해(물론 동의 아래) 의학을 비롯한 여러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한 프로젝트다.

그런데 이들의 게놈 데이터로 수명 관련 연구를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등록자 50만 명 대다수가 아직 생존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대안으로 이들의 부모 수명 데이터를 들여다본 것이다. 물론 부모와 자식은 유전자가 50%만 동일하지만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통계처리를 하면 의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들의 부모 100만여 명 가운데 60%가 사망했다. 이들의 수명 데이터와 자녀의 게놈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수명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 또는 유전자 근처의 SNP(단일염기다형성. 개인에 따라 DNA염기서열이 다른 지점)를 12개 찾았다.

이 가운데는 APOE 유전자처럼 수명과 연관성이 높다고 널리 알려진 유전자(신경정신질환 및 심혈관질환)도 있었고 MAGI3 유전자(자가면역질환)처럼 처음 밝혀진 것들도 있었다. 이들은 유전형에 따라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3개월까지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개별 유전자의 영향력을 분석한 것과 별도로 연구자들은 다중유전자위험점수(polygenic risk score. 약자로 PRS)도 산출했다. PRS는 최근 개발된 분석법으로, 어떤 특성(여기서는 수명)에 한 개인의 전체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을 수치화한 것이다.

다중유전자위험점수 상위 10%인 그룹과 하위 10%인 그룹의 기대수명을 비교하자 5년 정도 차이가 났다. 장수에 유리한 유전자 조합을 타고 나면 불리한 조합을 지닌 사람에 비해 5년은 더 산다는 말이다. ‘겨우 5년?’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 사실 유전자가 수명에 미치는 영향은 신체특성이나 성격에 미치는 영향보다 적다.

2000년 인간게놈초안이 발표된 이래 많은 사람들이 ‘장수 유전자’ 사냥에 뛰어들었지만 기껏해야 1년 정도 영향을 주는 유전자를 찾는데 그쳤다. 지금까지 연구결과를 종합하면 수명에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은 16~25%로 추정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7% 미만이라는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유전자가 수명에 미치는 영향력이 키 같은 특성에 비해 작은 건 수명이 번식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자식을 낳고 키우는 기간인 60세 정도까지만 수명이 보장되면 우리 종이 생존하는 데 별 지장이 없기 때문에 100살까지 무병장수할 수 있는 유전자조합이 진화할 이유가 없다.

한 유전자가 두 얼굴을 지니는 것도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반감시키는 요인이다. 예를 들어 이번 연구결과 암 관련 유전자 가운데는 폐암 위험성과 관련된 CHRNA3/5 유전자만이 유의미하게 수명에 영향을 미쳤다. 반면 ATXN2/BRAP 유전자와 CDKN2B-AS1 유전자는 암 위험성을 낮추는 유전형이 심혈관질환 위험성은 높이기 때문에 결국 효과가 상쇄돼 수명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생활습관이 10년 이상 좌우

그렇다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인 생활습관은 수명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학술지 ‘혈액순환(Circulation)’ 2018년 7월 24일자에는 생활습관에 따른 50세 미국인의 기대여명을 예측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연구자들은 5가지 생활습관을 ‘좋음’과 ‘나쁨’ 두 가지로 나눈 뒤 습관이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5가지 생활습관 가운데 좋은 쪽은 금연, 체질량지수 보통범위(18.5~24.9), 하루평균 30분 이상 신체활동, 적당한 음주, 양질의 식단이다.

5가지 생활습관 가운데 좋은 쪽을 지닌 게 많을수록 50세의 기대여명이 늘어난다. (위 그림)은 여성으로 5가지 다 나쁜 쪽에 비해 다 좋은 쪽이 14년이나 더 길다. (아래그림)은 남성으로 5가지 다 나쁜 쪽에 비해 다 좋은 쪽이 12.2년이 더 길다. ‘혈액순환’ 제공

 

연구자들은 1980~2014년, 1986~2014년까지 실시된 장기간 추적 연구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시작할 때 12만3219명에서 최대 34년이 지나는 사이 4만2167명이 사망했다. 이들은 설문조사를 통해 5가지 생활습관에 대해 답했다. 따라서 수명과 생활습관의 관계를 추측할 수 있었다.

그 결과 5가지 모두 좋은 생활습관을 실천하는 50세 여성의 기대여명은 43.1년으로 5가지 모두 나쁜 생활습관으로 사는 50세 여성의 기대여명 29세보다 무려 14년이나 더 길었다. 남성 역시 5가지 모두 좋은 습관이 37.6년으로 5가지 모두 나쁜 습관의 25.5년보다 12.2년더 길었다.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5가지 모두 좋은 생활습관을 지닌 사람의 비율이 30년 만에 15%에서 8%로 줄었다”며 “2014년 미국의 1인당 의료지출비가 9402달러(약 1000만 원)로 세계 1위임에도 기대수명이 소득이 비슷한 나라들보다 휠씬 짧은 이유”라고 해석했다.

TV에서 김형석 교수의 일상을 지켜보니 위의 5가지 생활습관이 모두 좋은 쪽인 것 같다(술은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과음은 아닐 것이다). 김 교수의 게놈을 분석해 다중유전자위험점수를 내보면 상위 10%에 들지 않을까(어머니도 101세까지 사셨다). 그리고 운도 김 교수의 편인 것 같다(심각한 사고나 임의의 돌연변이로 인한 암 발생 등을 피했다). 백년을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나 정작 김 교수는 책에서 “일은 목적이고 건강은 수단”이라면서도 “건강이 일을 도왔는지 일이 건강을 도왔는지 묻고 싶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일이 내 건강을 유지해주었다고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계속 일을 한 게 장수의 비결이라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장수한 철학자들은 다들 일을 좋아했던 것 같다. 20세기 전반을 풍미한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손(1859~1941)은 어느 날 “당신의 삶을 요약해 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단 세 단어로 답했다고 한다.

“태어나서 일하다 죽었다.”

 

 

 

(원문: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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