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미터법을 쓰지 않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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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9월, 미국 항공 우주국 NASA의 ‘화성 기후 궤도선(MCO, Mars Climate Orbiter)가 286일의 우주 비행 끝에 화성에 접근했습니다. 남은 건 화성 궤도에 무사히 진입하는 것. 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 화성 기후 궤도선은 추락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화성을 비롯해 이후에 있을 우주 탐사 프로그램을 위해 나사는 면밀한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단위’였습니다. 당시 화성 기후 궤도선 프로그램은 록히드 마틴사가 공동으로 참여했습니다. 단순히 제조뿐만이 아니라 발사부터 비행, 궤도 진입, 착륙까지 탐사에 필요한 정보를 수시로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나사는  ‘미터법’ 단위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록히드 마틴사의 개발팀 중 한 곳에서 ‘야드파운드법’ 단위를 사용하며 데이터에 오차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후 나사는 록히드 마틴사와 함께 진행 중인 다른 프로그램까지 단위를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숫자 10을 두고 뒤에 ‘m’를 붙이는 것과 ‘yd’를 붙이는 것은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화성 기후 궤도선 프로그램에 투자된 예산은 1억 2,500만 달러. 이 어마어마한 예산이 ‘고작’ 단위 차이 하나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단위가 얼마나 중요한 기준인지 되새겨주는 사례입니다.

 

 

1789년, 프랑스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납니다. 시민들은 계급에서 벗어나 평등한 권리를 찾기 위해 거리로 나왔고, 쟁취했습니다. 이 프랑스 혁명 속 단위도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제3계급 평민들의 가장 불만 중 하나는 무거운 세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거둬들이는 영주들은 더 많은 세금 징수를 위해 일정 면적 당 세금, 일정 작물의 수확량 당 세금 등 도량형 단위를 유리하게 조절했습니다. 영주별로 제멋대로인 도량형은 무려 약 25만개에 달했습니다.

자유와 평등을 위해선 도량형의 통일이 필요한 상황. 혁명이 끝난 후 프랑스과학아카데미에선 새로운 도량형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새로운 첫 단위인 ‘미터(metre)’가 탄생하게 됩니다.

미터는 몇 차례 수정을 거쳐 1875년 프랑스를 포함해 영국, 독일, 이탈리아, 미국 등 17개국이 모인 ‘미터협약’에서 공식적인 국제 단위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 후 1889년 미터협약에 의해 만들어진 국제도량형위원회의 첫 번째 회의에서는 길이를 나타내는 미터(m)뿐만 아니라 질량의 킬로그램(kg), 그리고 시간의 초(s)까지 총 세 가지의 단위가 기본단위로 합의되었습니다.

이후 1946년 전류의 양을 측정하는 암페어(A), 1954년 온도의 켈빈(K), 광도의 칸델라(cd)가 추가되었으며, 1971년 원자와 분자의 수량을 나타내는 몰(mol)이 마지막으로 추가되며 7개의 국제 기본단위가 갖춰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단위는 더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온도를 나타내는 단위는 켈빈 말고도 섭씨(℃)와 화씨(℉)가 있습니다. 이 두 단위는 모두 켈빈 온도에서 유도가 가능합니다. 켈빈 온도에서 273.15를 뺀 수치가 섭씨온도입니다. 이처럼 7개의 기본단위를 곱하거나 나눠 표현이 가능한 단위를 ‘유도단위’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진동수의 헤르츠(Hz), 전압의 볼트(V), 조도의 럭스(lx) 등이 있습니다.

기본 7개 단위에서 새로운 유도단위가 탄생하고, 미터협약 가맹국도 17개국에서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미터법은 대세를 넘어 만국이 사용하는 국제 기본단위가 되는 듯 했지만, 되지 못했습니다. 미터법을 사용하지 않는 국가도 존재했던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국가는 미국, 그리고 이에 더해 미얀마, 라이베리아가 미터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미터협약에 참여는 했지만, 자체적으로 미국만의 ‘야드파운드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 지역에선 속도제한 표지판을 잘못 이해하고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같은 속도라도 미국엔 ‘마일(ml)’로 표기된 표지판이, 캐나다엔 ‘킬로미터(km)’로 표기된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보는 미국인과 캐나다인은 평소 사용하는 단위로 이해를 하기 때문에 착각하기 쉬운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미국 스포츠 경기에서 단위의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표 스포츠인 미식축구는 ‘야드(yd)’가 필드에 적혀있고, 야구 경기에선 투수의 강속구가 ’99 mph(mile per hour)’로 표기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왜 미국은 미터법을 사용하지 않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불편함이 없으며, 야드파운드법에서 미터법으로 전환하면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굳이 바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국제 단위 사용이 필요할 때만 환산을 하면 되며, 오히려 미국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항공 분야에선 ‘리터(L)’가 아닌 ‘갤런(gal)’이 주 단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갤런은 영국의 갤런과 20% 가량 차이가 나기 때문에 US갤런으로 표기합니다. 국가의 권력과 영향력이 보편적인 기준을 새롭게 정의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화성 기후 궤도선과 같은 사건으로 인해 미국 내에서도 미터법 사용에 대한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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