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설리는 전직 해병대원이다. 하반신은 마비됐다. 휠체어 없이는 돌아다닐 수 없다. 그는 외계 생명체 ‘나비’족의 모습을 본떠 만든 인공 육체 ‘아바타’를 조종하게 됐다. 본인의 뇌에서 생각하는 대로 아바타를 움직일 수 있다. 모든 감각이 아바타와 연결된 그는 걸어 다닐 뿐만 아니라 강인한 전사로 재탄생한다.

아바타 주인공 제이크 설리(휠체어를 탄 남자)와 아바타 연결을 위한 링크 유닛. 이 링크 유닛이 뇌-기계 인터페이스(BMI) 역할을 한다.

2009년 개봉한 영화 아바타 주인공 제이크 설리는 ‘증강 인간’이 된다. 증강 인간은 ‘인간 보다 더 나은 인간’ ‘진화한 인간’ ‘장애를 극복한 인간’으로 풀 법하다. 제이크 설리는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지만, 뇌파 등 각종 신호를 통해 아바타를 조정하면서 장애를 극복한, 그리고 인간보다 더 나은(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아바타(오른쪽)를 이용해 나비족 전사가 된 제이크 설리

아바타는 참신한 상상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생각만으로 다른 물체(혹은 생명)를 움직이는 행위와 대상의 ‘상징’이 됐다. 뇌로 물체를 제어하고 외계 생명체가 등장하는 꿈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아바타라는 상징은 상상에서 벗어나 점점 현실 ‘존재’로 다가온다.

뇌에서 발생하는 신호, 컴퓨터로 전달할 수 있다!

아바타를 조종하는 기술. 생각만으로 대상을 움직이는 기술을 총칭하는 말이 있다. 뇌-기계 인터페이스(Brain-Machine Interface·BMI)다. 컴퓨터가 기계 자리를 대체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BMI로 통일한다.

BMI는 뇌 신호를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데이터 신호로 전환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인간 생각은 어떤 매커니즘을 갖추고 있을까. 뇌는 신경세포(뉴런)로 이뤄졌다. 수천억개가 넘는다고 한다. 뉴런은 시냅스를 통해 전기와 화학 신호를 전달한다. 이 신호를 생각의 기본 정보체, 혹은 전달체라고 할 수 있다. 전기적 신호 전달 과정에서 미세한 전류와 파장이 나온다. 뇌파라고 한다.

BMI는 뇌 속 전기 신호나 뇌파를 이용해 특정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기계(컴퓨터) 데이터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수많은 과학자가 뇌가 만들어내는 신호를 기계 신호로 바꾸려고 시도 해왔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뉴런은 시냅스를 통해 전기, 화학적 신호를 전달한다. BMI는 이 전기 신호를 측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게티이미지뱅크)

그 시작은 1924년 독일 정신과 의사 한스 버거 연구로 본다. 한스 버거는 뇌파를 측정해 인간과 기계 간 신호 전달 가능성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1973년 미국 비달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라는 용어를 최초 사용했다. 그는 뇌 전기적 신호로 사람과 컴퓨터가 서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개념을 제안했다.

1980년대는 실험을 통해 BMI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다. 존스 홉킨스대학은 원숭이 뇌 신호를 측정, 움직임과 특정 뇌 신경세포 신호 간 상관관계를 밝혀냈다. 영장류 행동과 뇌 신호 간 관계를 밝힌 건 이때가 처음이다. BMI 기반을 닦은 선구적인 연구 사례다. 영장류 실험으로 인간에게 BMI를 적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독일 정신과 의사 한스 버거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뇌 신호를 측정하는 기술이 등장했다. 뇌 영역 별 작동 원리가 밝혀지면서 BMI 기술은 한층 진보했다.

뇌 신호 얻고, 정보를 추출하고 구분하면 컴퓨터가 읽는다

BMI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까. 3가지로 단계를 나눌 수 있다. ①뇌 신호 획득 ②뇌 신호에서 특정 정보 추출 ③정보 구분과 학습 등이다.

뇌 영역별 주요 기능

우선 뇌로부터 신호를 읽어내야 한다. 뇌는 각 영역별로 특정 기능을 수행한다. 보통 BMI 뇌 신호는 대뇌 피질에서 측정한다. 대뇌 피질 경우 전두엽은 문제 해결, 감정, 복잡한 사고, 자발적 운동, 언어 발성 등 을 맡는다. 두정엽은 촉감 자극을 받는다. 후두엽은 시각 자극을, 측두엽은 청각 자극을 수신하고 언어 정보를 해석한다.

뇌 영역별로 어떤 기능을 맡는지 파악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특정 생각으로 기계에 명령하기 위해 뇌 신호를 읽어야 할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 능력(전두엽)이 필요한 신호를 받아야 하는데, 촉감 자극을 담당하는 뇌 영역(두정엽)에 센서를 장착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뇌 신호를 획득했으면 신호에서 특정 정보를 추출해야 한다. 뇌 신호 처리 과정도 이 때 필요하다. 추출 및 처리 과정이 필요한 건 ‘잡음(노이즈)’ 때문이다. 시냅스 수준으로 뇌 전기·화학적 신호를 추출할 수 없다. 획득한 뇌 신호에는 원하는 정보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정보까지 섞여있다. 잡음을 없애거나 줄이지 않으면 BMI 성능이 저하한다.

가령, 팔을 움직인다라는 뇌 신호가 필요하다고 치자. 여기에는 인체 기본 생명 유지 활동도 섞여 있다. 호흡이나, 심장 박동, 눈 깜빡임이 있다. 잡음을 제거하는 게 특정 정보 추출과 뇌 신호 처리 과정이다. 보통 눈 주변 신호를 측정해 같은 신호를 제거한다. 심장 박동과 호흡은 일정한 주파수가 있다. 필터를 통해 제거한다.

뇌파에 노이즈가 섞이면 BMI 성능이 저하된다. (ⓒ게티이미지뱅크)

필요한 뇌 신호는 추출했다. 다음에는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입력 신호로 구분해야 한다. 최종 단계다. 사실 컴퓨터 언어로 전환한 다음부터는 쉽다. ‘움직여(MOVE)’라는 명령어를 컴퓨터에 입력해서 로봇 팔을 작동하는 건 컴퓨터 공학 영역이다. 3단계인 뇌 신호 구분과 학습은 컴퓨터 공학 영역 직전까지 단계다. 뇌 신호를 ‘움직여’라는 신호라고 명확하게 정의하고 구분한다. 로봇 팔을 작동할 수 있는 입력 신호로 확정하는 것이다.

뇌 신호가 어떤 입력 신호에 해당하는지 구분자가 필요하다.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과 인공 신경망 기술을 적용해 뇌 신호를 구분하는 기술이 점차 발전하고 있다.

머리뼈를 열어 칩을 심거나 두피에 부착하거나

BMI를 위한 뇌 신호 측정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침습형과 비침습형이다. 침습(侵襲), 신체에 상해가 있다는 말이다. 침습형은 머리뼈를 열어 뇌에 직접 뇌 신호 측정 장치(칩)를 심는다. 비침습형은 두피에 헬멧, 헤드셋, 센서 등을 부착해 뇌파를 측정한다. 사례를 들어 좀 더 깊이 살펴보자.

2018년 4월 손정우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의학과 교수 연구진은 붉은털 원숭이 뇌 수술을 했다. 원숭이 대뇌피질 안쪽에 미세 전극 칩 2개를 심었다. 가로·세로 4mm 크기다. 하나는 뇌 신경세포에서 전기 신호를 읽는 96개 탐침을 장착했다. 다른 하나는 인식 정보를 원숭이 뇌에 전달하려는 후속 연구를 위한 것이다.

카톡릭관동 의대 원숭이 BMI 실험(사진=매일경제)

뇌 신호를 읽는 칩의 탐침 하나당 2~3개 뇌 신호를 측정할 수 있다. 원숭이 뇌에 심은 칩에서 최대 288가지 뇌 신호를 읽을 수 있는 셈이다. 칩 신호를 처리하는 컴퓨터와 로봇 팔을 연결했다. 원숭이가 로봇팔을 움직인다는 생각을 하면 뇌 신호가 발생하고 이를 칩에서 읽고 컴퓨터로 전달한다. 그 다음 컴퓨터가 로봇팔을 제어해 움직인다.

로봇 팔 근처에 공을 배치해 원숭이가 잡을 수 있는가를 실험했다. 원숭이 팔은 잠시 못 움직이게 고정했다. 공을 본 원숭이는 눈으로 응시하고 로봇 팔이 공 쪽으로 따라가 잡는데 성공했다.

손 교수 연구진이 실험한 방식이 대표적 침습형 BMI다. 원숭이가 로봇팔로 정확하게 공을 잡을 확률은 평균 83.8% 수준이라고 한다. 처음 시도할 때는 성공률이 반반 정도였다. 며칠 훈련을 거치니 80% 이상 올라갔다. 물론 원숭이는 지금도 건강하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리처드 앤더슨’ 교수팀은 사지마비 환자의 뇌에 전극을 심어 환자가 원하는대로 움직이는 로봇팔 장치를 개발했다

손 교수 연구진에 앞서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 연구진이 사지 마비 환자 뇌에 칩을 심어 2차원 로봇팔을 제어하는데 성공했다. 2016년에는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와 파인스타인 의학연구소 연구진이 대뇌피질에 심은 칩으로 신호를 읽고 손목 전극 패치로 신호를 전달해 근육을 움직이는 ‘뉴럴 바이패스’를 개발한 바 있다.

뇌에 직접 심는 침습형, 위험하지만 정확도 높아

비침습형은 머리를 열어 뇌를 드러내는 수술(개두술)이 필요 없다. 두피에서 뇌파를 읽는 패치를 부착하거나 헬멧을 쓰면 된다. 지난해 한국뇌연구원이 공개한 ‘뇌파 드론’이 대표 사례다. 뇌가 안정 상태에서 나오는 알파파, 집중할 때 발생하는 베타파 등을 측정해 기계 명령 신호로 전달한다. 드론을 공중에 띄우는 작업뿐만 아니라 장난감 자동차도 움직일 수 있다.

뇌 활동 시 변하는 뇌 혈류량을 측정하는 기술도 있다. 기능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를 활용한다. 이 또한 비침습형 방식이다.

비침습형 BMI 예시. ‘사이배슬론(Cybathlon)’ 대회에 참가한 한 장애인 선수가 뇌파만으로 게임을 하는 종목에 출전하고 있는 모습.

비침습형은 외과 수술이 필요하지 않아 침습형 보다 위험이 적다. 뇌가 워낙 민감하다 보니 칩이 직접 닿는 건 부담이 크다. 비침습형은 두피를 통해 뇌 신호를 읽어 보다 안전하다.

침습형은 감염과 면역반응 이상도 주의해야 한다. 미세전극을 뇌에다 직접 부착하기 때문이다. 장기간 전극을 뇌에 장착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에서 환자 대상으로 인체 실험을 진행하지만 세계적으로 원숭이 등 동물 실험을 더 많이 하는 것도 이런 부작용과 관련 있다.

침습형 BMI 개념도

비침습형은 잡음이 엄청 많이 섞인다. 뇌파 등이 서로 합쳐져 잘못된 신호를 읽을 수 있다. BMI 성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침습형은 기능별 뇌 영역에다 칩을 심어 정확도가 훨씬 높다. 노이즈도 쉽게 거른다. 로봇팔을 움직이는 미세한 작업에 침습형을 선호하는 이유다.

테슬라·페이스북 CEO도 기술 개발에 투자

뇌파를 활용한 비침습형은 게임과 가상현실, 드론 조작 등 교육과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주로 활용한다. 시장 자체는 크지 않지만 기술 발전에 맞춰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뇌파를 읽어낸 정보를 토대로 심리 치료에 활용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증강 인간은 침습형 BMI에 가깝다. 보다 정밀한 작업까지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이 불편한 환자에게 더 적합하다. 사고로 신체 일부가 손상됐을 경우 로봇 팔과 로봇 다리 등 발전된 형태의 의수·의족을 생각만으로 조작할 수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저커먼연구소는 뇌 신호를 측정해 음성으로 재현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사진=http://neuralnetworksanddeeplearning.com)

최근 뇌 신호를 음성으로 출력하는데도 성공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저커먼연구소 소속 니마 메스가라니 박사팀은 뇌전증 환자 뇌에 전극을 심는 BMI 실험을 수행했다. 환자에게 0부터 9까지 숫자를 지속적으로 들려준 뒤 발생한 뇌 신호에서 측정한 정보를 음성을 재현했다. 실험에 인공지능 음성인식 소프트웨어도 동원했다. 정확도는 75% 수준이다.

일론 머스크는 뉴럴 링크를 통해 BMI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무한한 BMI 가능성을 보고 많은 정보기술(IT)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뇌 칩 이식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뉴럴링크’ 설립했다. 뉴럴 레이스라는 신경 연결 기술로 사람 생각을 데이터화하고 업로드·다운로드하는 칩을 개발하려 한다. 대뇌피질에 전극을 삽입해 사람과 기계(컴퓨터) 간 양방향 데이터 전송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2017년 페이스북 ‘빌딩 8’의 레지나 두간 (Regina Dugan) 최고책임자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Bran-Computer Interface, BCI) 기술을 설명하는 장면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도 인간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 개발 계획을 세운 바 있다. 프로젝트 명은 ‘빌딩8’이다. 뇌파만 이용해 분당 100개 단어를 입력하는 시스템 개발이 목표다. 뇌파로 문자를 입력하고 전송하면 스마트폰 문자 입력 대비 5배 정도 빠르다. 다만 지난해 말 빌딩8 프로젝트팀은 해산, 기존 연구는 페이스북 각 부서에 인계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BMI를 이용한 증강 인간. 아바타 기술은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원문: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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