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서수영씨(42)는 과학책방 ‘갈다’에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읽기’ 모임을 꾸렸다. 천문학자인 이명현 ‘갈다’ 대표를 길잡이로 10여명이 모여 6주 동안 <코스모스>를 읽었다. ‘칼 세이건은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왜 이렇게 많이 썼을까’ ‘달 탐사를 왜 더 이상 안 할까’ ‘행성은 동그랗게 생겼는데 왜 우리는 별을 뾰족뾰족한 모양으로 그릴까’ 등 책을 읽으며 나눈 이야기들은 꼭 천문학적 지식만은 아니었다.

서씨는 <코스모스> 완독 후 모임 구성원들과 함께 소백산 천문대를 다녀왔다. 천문대 옥상에서 망원경으로 토성, 목성, 달, 안드로메다은하 등을 원 없이 봤다. 문과 출신으로 과학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서씨는 5년 전,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진행한 우주생물학 강연을 듣고부터 과학에 푹 빠지게 됐다. 과학을 접하면서 느끼는 경이로움이 삶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었다. “독서 모임에서 본 자료 화면인데 지금까지 밝혀진 행성 중 제일 큰 행성이 나오니까 태양이 점보다도 작게 사라지더라고요. 그 화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나는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 삶에 부딪히는 문제들이 미미하게 느껴졌죠. 일상의 스트레스도 덜 받게 되더라고요. 시야가 넓어지고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경험이었어요.”

과학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27일, 온라인서점 예스24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자연과학책 판매량이 증가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적게는 3.5%, 많게는 20.4%까지 상승했다. 특히 2018년 판매량은 42만7000여권으로 5년 전인 2014년 28만6000여권에 비해 50% 가까이 늘었다.

 

 

 

4차산업 대두되는 지금 ‘과학의 시대’…대중, 사회과학적 세계관의 막연함 깨는 과학적 태도와 명료함에 매료“인공지능·영성 같은 인문학적 질문의 답 찾기보다는…‘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는 과학 자체에 관심 가졌으면”

■ 대중과 소통하는 과학

과학 독자의 증가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과 함께 과학문화를 만들어 가려는 과학자도 많아졌다. 이명현 천문학자,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장대익 서울대 교수,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등 100여명의 과학 분야 관계자들은 지난해 6월 뜻을 합쳐 과학책방 ‘갈다’를 열었다. ‘갈다’는 일반 독자를 위한 과학도서 큐레이션을 콘셉트로 하는 책방이다. ‘칼 세이건’ ‘블록체인’ ‘공유경제’ 등을 주제로 특별전을 열기도 하고 과학자를 초청해 수시로 북토크도 진행한다. 이명현 대표는 “과학저술가 및 콘텐츠 생산자들이 일반 독자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고 싶었다”며 “많은 사람들이 과학의 문턱은 높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학에 대한 두려움을 해제하고 편하게 와서 같이 과학문화를 즐기는 공간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과학을 쉽게 설명해주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의 활동도 활발하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학생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방과후 교실, 박물관 등 오프라인 공간은 물론 유튜브 같은 온라인에서도 다양한 과학 콘텐츠를 소개하고 있다. 구독자 수 46만명으로 국내 과학 유튜브 채널 중 가장 인기가 많은 ‘1분과학’의 운영자는 “과학이라는 중요한 지식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길 바라는 취지에서 스토리텔링을 통해 과학을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알리려 한다”고 말했다.

쉽고 재미있게 전달한다고 해서 꼭 쉬운 소재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조회 수 200만회 이상을 기록한 ‘1분과학’의 인기콘텐츠 중 하나는 ‘우주의 시공간이 뒤틀릴 때 발생하는 중력파’다. “문과생인데도 지구과학에 빨려든다” “우주의 공허함에 공포와 감동을 느낀다” 등 43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인터넷 과학매체 ‘이웃집 과학자’의 정병진 편집장은 의외로 ‘중력파’ 같은 어려운 콘텐츠에 관심을 갖는 독자들이 많다고 했다.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과학적 발견이라도 자연세계를 관통하는 이치의 단면, 코끼리 다리가 조금씩 만져졌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지난 7일 과학책방 ‘갈다’에서 김홍표 아주대 교수가 ‘과학의 역사’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갈다’에서는 과학 관련 이슈를 주제로 특별전을 열기도 하고 과학자를 초대해 수시로 북토크도 진행한다.

 

■ 과학이 설명하는 시대

대중적으로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출간된 정재승 교수의 <과학콘서트>와 2005년 출간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번역한 <통섭>이 큰 인기를 끌면서 당시에도 과학에 대한 관심이 잠깐 높아졌다. 최근의 열기도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정재승 교수나 김상욱 교수의 인기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지금의 관심이 과거처럼 반짝하다 사라질 현상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 인공지능의 발전, 유전자 편집 기술의 성공 등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과학의 발전으로 과학이 담론의 중심이 됐다는 것이다. 20년간 과학책을 출간한 동아시아 출판사 한성봉 대표는 최근 과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에 대해 “21세기에 과학담론을 제외하고 ‘지금’ ‘여기’를 설명하고 이끌어가는 담론이 별로 눈에 안 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50~1960년대 ‘사상계’라는 잡지가 전체를 휩쓸었죠. 그때는 철학의 시대, 실존의 시대였습니다. 1970~1980년대에는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사’라는 문학지가 시대를 대표했죠. 1990년대에는 ‘말’ 같은 사회과학잡지가 두드러졌고요. 현재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과학의 발전 속도가 빠른 시대입니다. 다른 분야가 아니라 과학이 담론의 원동력이 될 수밖에 없죠.”

1만여명이 가입한 페이스북 페이지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의 이형열 대표는 사회과학에 치우쳐 있던 세계관을 넓히고자 과학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담론은 이른바 인문·사회과학에 의해 주도됐습니다. 대개 서구 지성인들 사이에 유행하던 것들이 흘러왔죠. 이런 이론들을 우리 사회에 우격다짐 식으로 적용하기 바빴는데 그런 과정에서 일부는 맞고 또 일부는 틀리면서 혼란스러운 경우도 많았습니다. 과학을 접하면서 그동안 막연하게 가졌던 사회과학적 세계관의 한계를 뛰어넘는 계기가 됐죠.”

과학이 주목받으면서 ‘과학적 태도’의 중요성도 강조된다. <21세기를 위한 21세기 제언>(유발 하라리 저·김영사)은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으로 “가짜뉴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허구와 실체를 구분하기 위해 더 열심히 분투해야만 한다”면서 과학의 역할과 과학적 태도의 중요성을 말했다. 독자 김지수씨(37·가명)는 <김상욱의 과학공부>를 읽고 명료한 언어와 과학적 태도에 끌려 과학 콘텐츠를 찾아보게 됐다.

“과학적 태도를 흔히 사실을 철저히 따지고 합리적 의심을 하는 거라고 하잖아요. 과학자들의 말에는 과학적 태도를 바탕으로 한 명료함이 있어서 찾아보게 됩니다.”

 

■ 시민들도 과학을 알아야

과학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일반 대중도 반드시 과학을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송기원 연세대 교수는 지난 10월 출간한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에서 ‘합성 생물학’ ‘유전자가위 기술’ 등 생명과학기술의 최전선을 다뤘다. 비전문가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이지만, 생명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일반 시민에게로 확산돼야 한다는 강조가 담겼다. 2015년 서울대 연구팀이 중국 옌볜대학교와 공동으로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해 ‘슈퍼돼지’를 만들었다. 송 교수는 한 기자가 이에 대해 가장 먼저 “먹어도 괜찮은가요?”라는 질문을 해 화를 냈다는 일화를 전했다. “생명과 관련된 과학과 기술은 우리 자신을 포함한 생명체를 대상으로 하므로 어떤 과학 기술보다 그 파급 효과나 윤리적, 사회적 중요성이 크다. 과학자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먹어서 안전한가?’ 이상의 질문을 던져야 할 필요가 있다.”

2017년에 창간한 과학비평지 ‘에피’도 과학과 과학 바깥을 연결하려는 시도다. ‘에피’에 참여하는 전치형 카이스트 교수는 “미세먼지처럼 과학은 기존의 이슈들과 분리된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과학이라는 논의가 풍부해질 수 있도록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 과학이 정치적·사회적으로 얽히는 방식을 들여다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 과학, 호기심

과학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이러한 관심은 과학적 호기심보다 인문학적 질문에서 출발했다는 한계가 지적되기도 한다. 김상욱 경희대 교수는 “인문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과학에서 찾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다.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이나 영성 같은 종교적 질문에 대한 답을 과학에서 찾는다. 그러나 과학은 인간 중심의 프레임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진화에 관한 책을 보면 새의 부리에 대해서만 한참을 다룬다. 오롯이 과학의 눈으로만 보면 거대한 우주에서 인간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며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는 게 과학이다.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만 과학을 보기보다 과학 자체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과학과 친해지는 Tip. 

 

“ ‘갈다’가 처음 문을 열 때 ‘과학의 문턱을 넘는 책’ 25권을 선정했어요. 각각의 독서 취향에 따라 책을 권합니다.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이강영 교수의 <불멸의 원자>를 권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들의 내면까지 다뤄 과학자의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명징한 내용을 접하고 싶다면 <김상욱의 과학공부>를, 여행을 좋아한다면 <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을 권합니다. 취향에 맞게 시작하면 문턱이 그렇게 높지 않을 겁니다.”

이명현, 천문학자·과학책방 ‘갈다’ 대표 

 

“과학책을 혼자 읽을 수도 있지만, 과학책 읽는 친구들을 주변에 둔다면 과학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과학을 크게 두 가지 성격으로 나눠 본다면 인간·생물·지구·생태 등에 관한 과학은 상대적으로 이해가 쉬운 연성 과학에 가깝고, 천체·물리·화학 등은 딱딱하고 수식도 많이 들어간 경성 과학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간과 생태, 생물의 진화 등에서 출발해 빅히스토리를 거쳐 경성 과학까지 두루 공부하면 무척 재미있을 겁니다.”

이형열, 페이스북 페이지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 대표 

 

“낯설지만 온라인 과학 커뮤니티나 블로그 등의 글을 찾아서 읽고 과학에 대한 대화를 나눠보는 게 도움이 많이 된다고 봐요. 그러다 보면 자신만의 접점이 찾아질 겁니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과학 개념 하나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면 그다음부터는 조금씩 이해하는 게 수월해질 겁니다.”

정병진, 과학 매체 ‘이웃집 과학자’ 편집장

 

(원문: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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