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소장 내부를 덮고 있는 미세한 털(융모)의 주요 임무는 음식물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융모를 구성하는 세포들이 미생물의 침입에 대한 면역반응까지 조절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소장세포는 스스로 변신하며 ‘멀티 태스킹’을 해내는 능력자였다. (2018. 12.)
소장(小腸) 내부의 벽이 미세한 융모로 덮여 있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융모 하나하나에서 매일 수억 개의 세포들이 태어난다. 과학자들이 이들 세포가 작디 작은 융모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이동하며 주어진 여러 임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아냈다.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연구소는 샤레브 이츠코비츠 분자세포생물학과 교수 연구진이 “소장 내벽을 구성하는 세포 ‘엔테로사이트(Enterocyte)’가 수명을 유지하는 4일 동안 분화를 계속하며 여러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11월 22일 밝혔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세포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셀’ 최신호에 발표됐다.
소장 내벽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세포인 엔테로사이트는 융모 사이사이 틈의 아래쪽 미세한 ‘지하 공간’에 있는 줄기세포에서 만들어진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줄기세포가 성숙해서 엔테로사이트가 되면 더 이상 분화하지 않고 계속해서 정해진 기능을 수행한다고 생각해왔다. 연구진은 그러나 엔테로사이트가 융모를 따라 이동하며 각 위치마다 역할을 변경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먼저 융모의 제일 아래쪽에 있을 때 엔테로사이트는 ‘문지기’ 역할을 한다. 항균 물질을 분비해서 해로운 세균 등이 융모 사이 지하 공간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이츠코비츠 교수는 “장 내벽을 구성하는 세포들이 재생되는 핵심 공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 위치의 엔테로사이트는 또한 단백질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아미노산을 음식물로부터 흡수하는 역할도 맡는다.
이후 엔테로사이트가 융모의 중간쯤으로 올라가면 포도당을 흡수하는 데 특화한 형태로 바뀐다. 이어 융모의 꼭대기인 끝부분으로 이동한 엔테로사이트는 지방을 잘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다시 분화한다. 여기서는 장 내 세균 분포에 따라 분비되는 ATP라는 유기복합물질을 흡수하기도 한다. 만약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체내 면역체계가 위험신호라고 감지해 즉각 면역 공격에 나설 우려가 있다. 소장세포가 영양소를 흡수할 뿐 아니라, 미생물에 대해 균형 잡힌 면역반응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도 한다는 얘기다. 이츠코비츠 교수는 “어느 위치에 있건 모두 엔테로사이트라고 불리지만, 위치마다 특징이 분명히 다르다”고 말했다.
융모는 길이가 1mm의 절반밖에 안 된다. 여기서 위치별 엔테로사이트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연구진은 ‘레이저 포획’ 기술을 써서 각 위치마다 엔테로사이트를 채취했다. 그리고 이들 세포의 유전자(RNA)를 분석해 각 위치마다 특징적으로 발현되는 유전자를 알아냈다. 엔테로사이트 유전자의 약 85%가 위치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연구진은 엔테로사이트의 위치별 기능을 밝혀내고 고해상도 엔테로사이트 유전자 발현 지도를 만들었다.
지도 분석 결과 연구진은 융모 끝에서 발현되는 일부 유전자가 장에서 항염증 기능을 수행하는 분자들을 만들어낸다는 것도 발견했다. 이는 염증성 장 질환의 예방이나 치료에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연구진은 예상하고 있다. 아울러 엔테로사이트의 위치별 유전자 지도를 만든 기술은 다른 인체 조직이나 종양을 분석하는 데도 적용될 수 있을 거라고 연구진은 내다보고 있다.
원문 링크
https://wis-wander.weizmann.ac.il/life-sciences/crypt-tip-migrating-gut-cells-adapt-their-lo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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