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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개처럼 냄새로 마약이나 폭발물을 탐지하지 못하고 연어처럼 냄새로 수천 ㎞ 떨어진 모천으로 회귀하지도 못한다. 후각 능력이 별로인 것이 느껴진다. 그런데 향의 구별 능력은 생각보다 매우 뛰어나다.

‘당신은 몇 가지 향을 구분할 수 있나요’라고 말하면 사과 딸기 포도 오렌지 등 몇 개의 과일을 떠올리면서 수백 개나 수천 개 정도인 것 같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정도일 것이라고 동의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입으로 느끼는 맛의 종류는 다섯 가지뿐이고 나머지는 전적으로 향에 의한 것이다.

만약에 가능한 향의 종류가 수백 가지 정도라면 세상에서 요리의 맛은 수백 가지에 불과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매일 수십억 개 요리가 만들어지고, 각각의 맛은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똑같은 식당의 똑같은 제목의 요리도 조금씩은 다르다.

식품회사 제품이 갖춰야 할 첫 번째 조건은 일정한 품질이다. 맛이 같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동일 회사의 동일 브랜드 제품도 공장에 따라 맛이 약간 다른 경우가 있다. 식품회사는 똑같은 배합표, 똑같은 원료, 똑같은 공정으로 엄격하게 관리해 생산하는데도 그렇다.

물론 전문가도 두 가지를 동시에 먹으면서 비교해 봐야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수준이지 한 가지만 먹어서 알 수 있는 차이는 아니다.

우리는 이처럼 생각보다 절대적 품질보다는 상대적 차이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과학자가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을 좀 더 엄격하게 조사해 본 결과 인간은 1조개에서 10조개 정도 냄새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산 맥주가 맛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면 오히려 국산 맥주가 많이 선택되기도 한다. 오랜 경력의 바텐더마저 그런 경우가 많을 정도로 맛(향)에 둔감하면서 차이의 식별 능력은 예민하다고 하니 인간의 능력과 변덕은 종잡을 수 없다.

모든 강아지는 다르게 생겼다. 따라서 여러 강아지를 동시에 보여주면서 차이를 구분하라고 하면 쉽게 한다. 그런데 머릿속에 있는 강아지 형상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다. 나중에 차이를 말해 보라고 하면 말할 것이 별로 없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1조개 넘는 냄새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 몸에 1조개가 넘는 감각수용체가 있을 리는 없다. 우리 몸의 유전자는 2만2000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400종류 정도 후각수용체로 1조개의 냄새를 구분하는 것이다. 1991년 후각수용체를 발견한 리처드 액설 교수와 린다 벅 연구원은 그 공로로 노벨상을 받기도 했다.

 

 

 

아래는 2020년 11월 14일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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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전자혀’, 이제 식감도 느낀다

식품·의약품 맛 평가 대신하는 미각센서
단·신·쓴·짠·감칠맛에 와인 떫은맛까지
英 연구팀, 식감 측정 위한 원천기술 개발

전자혀(왼쪽)가 사람의 혀(오른쪽)를 흉내낸 것을 표현한 그림./사이언스다이렉트(ScienceDirect) 캡처

사람을 대신해 맛을 측정해주는 ‘전자혀’가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각뿐 아니라 식감까지 감지할 수 있는 기술이 해외에서 개발됐다.

국내에서 전자혀를 개발 중인 고현협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는 14일 “현재 전자혀는 맛을 내는 화학성분만 감지하는 화학 센서에 가깝다”며 “사람 혀의 일부분만 모방하고 있는 전자혀가 식감까지 느낄 수 있다면 식품·의약품 개발 과정에서의 활용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1일(현지시각)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의 논문 소개 사이트 ‘유레칼러트(EurekAlert)’는 영국 리즈대 연구팀이 실리콘으로 사람 혀의 복잡한 표면과 습윤성(표면에 수분이 배어드는 성질)을 모방하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연구성과는 미국화학회(ACS)가 발간하는 ‘ACS 응용물질 및 계면(Applied Materials & Interfaces)’에 지난달 26일 게재됐다.

◇정확한 미각센서, 5가지 기본 맛 넘어 다채롭게 느낀다

혀의 표면은 작은 돌기들로 이뤄져있다. 돌기 아래의 미뢰(味蕾)에는 미각을 감지하는 세포들이 모여있다. 미각세포는 액체 속 특정 성분을 감지해 그 정보를 뇌로 전달, 사람이 맛을 느끼도록 한다. 이렇게 느낄 수 있는 기본적인 맛은 5가지다. 당(糖)은 단맛, 산성 물질은 신맛, 염분은 짠맛, 무기물과 카페인 등은 쓴맛, 아미노산의 일종인 글루탐산은 감칠맛을 느끼게 한다. 사람이 느끼는 다양한 맛은 이 5가지 기본 맛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고현협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팀이 지난 6월 개발한 ‘전자 혀’(왼쪽)와 이것을 구강 모형에 부착한 모습(오른쪽)./UNIST 제공

음식, 음료 등 식품을 개발할 때 맛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이 필요하다. 피실험자를 모집하는 경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맛에 대한 평가가 주관적일 수 있다. 맛을 내는 성분들의 농도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전자혀가 필요한 이유다. 전자혀는 의약품 개발 과정에도 활용된다. 약의 쓴맛을 줄여주는 물질을 첨가할 경우 아직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약물을 전자혀가 대신 맛볼 수 있다.

전자혀는 키요시 토코(Kiyoshi Toko) 일본 규슈대 교수가 20년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고안하고 개발했다. 그는 지난 2000년 5가지 기본 맛을 감지할 수 있는 최초의 전자혀를 개발하고 그 성과를 국제학술지 ‘센서와 작용기 B: 화학(Sensors and Actuators B: Chemical)’에 ‘미각센서(Taste Sensor)’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했다. 2006년 상용화도 맨 처음으로 이뤄졌다. 2014년 학술지 ‘센서(Sensors)’에 게재한 논문에서 그는 “(개발한)미각센서는 인텔리전트 센서 테크놀로지(Intelligent Sensor Technology)를 통해 세계 최초로 상용화됐다”고 말했다.

인텔리전트 센서 테크놀로지의 제품 ‘TS-000Z’(왼쪽)와 제품의 미각 측정 원리를 설명한 그림(오른쪽)./인텔리전트 센서 테크놀로지 홈페이지 캡처

현재 제품들은 혀의 점막이 ‘탄닌’이라는 성분에 눌려서 느껴지는 떫은맛, ‘캡사이신’ 등에 의한 아픈 느낌인 매운맛처럼 미각 외 감각들도 일부 감지할 수 있다. 인텔리전트 센서 테크놀로지와 프랑스 업체 인스트루먼트 솔루션(Instrument Solution) 등 업체는 자사 제품이 현재 풍성함(richness), 날카로움(sharpness), 금속성(metallic)도 느낄 수 있다고 소개한다. 인텔리전트 센서 테크놀로지 제품 ‘TS-000Z’는 맛을 내는 성분이 혀에서 사라지고 난 후 생기는 ‘끝맛’까지 포함해 11가지 맛 정보를 알 수 있다. 끝맛은 센서에 들어온 성분에서 한차례 맛을 느낀 후 센서를 세척해 다시 한번 감지하는 방식으로 측정된다.

◇고현협 교수팀, 와인 떫은맛 감별하는 로봇 소믈리에 개발

특히 떫은맛 감지 기술은 와인의 품질 평가를 위해 중요해지고 있다. 올해 국내에서는 떫은맛을 더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전자혀가 개발됐다. 지난 6월 고 교수 연구팀은 다공성 구조 물질인 ‘뮤신’을 이용해 이같은 성과를 거뒀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했다.

뮤신은 탄닌과 만나면 전기전도도가 변한다. 이 변화를 측정해 떫은맛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이 원리를 이용해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떫은 맛보다 수십분의 1 수준으로 옅은 맛도 느끼는 전자혀를 만들었다. 연구팀은 “미각 전문가는 수십 마이크로몰 농도의 떫은 맛을 검출할 수 있는 데 반해 이번에 개발된 전자 혀는 2~3마이크로몰 농도 수준의 떫은 맛까지 검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험결과 전자혀는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등 종류별 와인의 떫은 맛을 정량적으로 감별해냈다. 감지 속도도 센서에 물질이 닿는 즉시 맛을 느낄 정도로 빨랐다.

고 교수는 “개발한 전자혀가 더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고, 여러 맛이 섞여있을 경우 구분해낼 수 있도록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잡한 혀 표면구조 따라해 식감까지 정복

전자혀가 여전히 느끼지 못하는 맛의 요소가 남아있다. 식감이다. 씹을 때 느끼는 감각, 즉 혀의 표면과 음식 사이의 기계적 마찰로 생기는 식감은 뇌가 인식하는 맛에 영향을 미친다. 아삭아삭하거나, 부드럽거나, 질기거나, 쫀득쫀득하거나 하는 느낌을 준다. 전자혀가 식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실제 혀 표면의 복잡한 돌기 구조와 습윤성을 모방해야 한다. 이 수준까지 발전한 전자혀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혀 표면(왼쪽)과 영국 연구팀이 실리콘으로 만든 표면(오른쪽). 색깔로 높이를 구분해 표현했다./ACS 응용물질 및 계면 캡처

최근 영국 리즈대 연구팀이 처음으로 새로운 전자혀 개발의 가능성을 열었다. 연구팀은 성인 15명의 혀 표면을 광학 스캐닝 기술로 분석했다. 돌기의 밀도, 지름, 높이를 측정해 그 전체 구조를 컴퓨터로 재구성했다. 재구성한 구조를 설계도로, 실리콘을 재료로 삼아 3차원(3D) 프린터로 출력했다. 실리콘 표면이 적절한 수분을 머금을 수 있도록 계면활성제를 첨가, 실제 혀의 습윤성을 구현했다.

실험결과 실리콘 표면은 사람 혀와 비슷한 마찰 특성을 보였다. 전자혀에 활용할 경우 사람과 비슷한 식감을 느낄 것이라는 의미다. ‘식감센서’에 닿는 음식물의 마찰 특성을 측정한 후 아삭함, 부드러움, 질김 등으로 분류해 식품 개발자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 연구팀은 “혀를 모방한 표면은 식품·의약품 개발을 가속화하고 소프트로봇 분야에 응용될 수 있다”고 했다.

 

 

 

 

2023년 3월 18일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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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가지 냄새 구분”…인간 후각의 비밀

미 캘리포니아대 연구팀, 네이처 논문 게재
특정 후각수용체 3D 구조 작성 첫 성공
냄새 물질 분자와 상호 작용 기전도 확인
가장 복잡한 후각 이해 한 걸음 나아가

인간은 콧속에 있는 후각 수용체(olfactory receptors) 덕분에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수용체들이 어떻게 분자를 감지해 ‘냄새’라고 느끼고 정확히 구분해 내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이 최근 인간 후각 수용체의 3D 구조를 정확히 그려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인간의 감각 중 가장 복잡한 후각을 이해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평가다.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는 지난 15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팀이 작성한 이런 내용의 논문을 게재했다. ‘OR51E2‘라는 후각 수용체의 3D 구조를 세밀히 묘사한 후 치즈 냄새를 맡는 과정에서 냄새 분자와 어떤 상호 작용을 거치는지를 보여주는 연구 결과다.

인간이 냄새를 어떻게 맡을 수 있는지 밝혀진 것은 고작 30여년 전이다. 1991년 리처드 악셀, 린다 벅이 생쥐의 코에서 후각 수용체를 찾아냈으며 이 공로로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인간의 게놈(genome)에는 400개의 후각 수용체가 코딩돼 있다. 이중 50개의 후각 수용체는 특정 냄새와 연결할 수 있지만 나머지 350개는 어떤 냄새와 대응하는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2014년에는 인간이 약 1조 가지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자료사진.

하나의 수용체가 하나의 냄새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물질에 수용체 몇 개가 동시에 반응해 이 조합에 따라 뇌가 인식하는 냄새가 달라진다. 예컨대 비슷한 꽃향기라도 백합 향이 수용체 A, B, C를 자극한다고 할 때 목련 향은 B, C, D를 자극해 미묘한 차이를 알아챌 수 있다. 연구팀은 “마치 피아노의 코드를 치는 것과 같다”면서 “여러 개의 음반을 두드려 하나의 음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인간이 특정 냄새를 맡았다고 인식하는 것은 냄새 분자가 후각 수용체들과 상호 작용한 결과의 조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떻게 후각 수용체들이 특정 냄새 분자를 인식하고 뇌에 신호를 보내는지에 대해선 기술적 어려움 때문에 밝혀진 바가 거의 없었다. 동물의 후각 수용체 단백질들을 떼어내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것은 무척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팀은 오직 ‘OR51E2‘라는 후각 수용체 하나에만 연구를 집중했다. 이 수용체는 식초 냄새의 원인 물질인 아세테이트, 치즈 냄새의 원인 물질인 프로피오네이트 등 2가지 분자와 상호 작용한다. 또 후각을 담당한 신경세포에서뿐만 아니라 장, 신장, 전립선 조직 등에서도 발견돼 다른 기능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팀은 OR51E2를 분리해 낸 후 원자 단위까지 촬영할 수 있는 극저온 전자 현미경을 사용해 프로피오네이트와 결합된 상태 및 비결합 상태의 구조를 분석했다. 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원자 규모에서 이 수용체가 어떻게 취기제(odorant·냄새 원인 물질)들과 상호 작용하는지 분석했다. 이 결과 프로피오네이트가 OR51E2 수용체의 ‘바인딩 포켓(binding pocket)’ 영역에서 카르복실산을 아미노산ㆍ아르기닌에 고정시키는 특정 이온ㆍ수소 결합을 통해 OR51E2 수용체에 결합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반면 돌연변이를 통해 OR51E2 수용체의 아르기닌을 변형시켰더니 프로피오네이트와 결합하지 못했다. 이같은 후각 수용체-취기제간 분자 상호 작용이 냄새라는 감각 작용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다만 OR51E2 수용체는 인간 후각 수용체 유전제 중 비교적 기능이 단순한 10%의 그룹에 속한다. 나머지 후각 수용체들은 좀 더 넓은 범위의 냄새를 맡는 데 관여한다. 바네사 루타 록펠러대 뇌과학 교수는 “후각수용체들은 매우 다양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면서 “추가로 다른 수용체들을 연구ㆍ분석해야 후각 인식의 다양한 과정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2023년 3월 22일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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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밝혀진 냄새수용체 구조

G 단백질 연결 수용체. 위키피디아 제공

1990년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단백질 지정 유전자 개수가 10만 개는 될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작업이 진행되면서 예상값이 점점 줄어들었고 해독 결과 불과 2만 개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중요한 건 유전자 개수가 아니라 유전자 사이의 네트워크의 복잡성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다른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전사인자를 지정하는 유전자가 2000여 개로 전체의 10%를 넘는다. 세포 안팎의 신호를 전달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도 그 정도 되는데, 호르몬 같은 신호분자(리간드라고 부른다)의 유전자와 이를 인식하는 수용체 유전자로 이뤄져 있다.

한편 수용체의 대다수가 G단백질연결수용체(GPCR)로 거의 1000가지나 된다. GPCR은 세포막에 박혀있는 단백질로 바깥쪽에서 온 리간드가 달라붙으면 구조가 바뀌면서 세포 안쪽의 G단백질에 영향을 줘 신호를 전달한다. 시각, 후각, 미각 같은 감각 신호(각각 광자(빛)와 냄새분자, 맛분자)도 GPCR을 통해 전달된다. 특히 냄새수용체 유전자는 거의 400가지나 돼 전체 유전자의 2%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 냄새분자 붙은 다른 수용체 구조는 밝혔지만

신호 전달에 문제가 있는 질병에서 GPCR은 약물의 주요 표적이라는 점에서 구조를 밝히는 연구가 치열했다. 2000년 빛을 감지하는 GPCR인 로돕신의 구조가 처음 밝혀졌고 2007년 스트레스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의 신호를 전달하는 베타-아드레날린성 수용체의 구조가 규명됐다. 그 뒤 80가지가 넘는 GPCR의 구조가 밝혀졌다. 그런데 뜻밖에도 GPCR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냄새수용체의 구조는 하나도 밝혀진 게 없다. 신약 개발 같은 동기부여가 약하다는 걸 감안해도 너무한 게 아닐까.

냉각수용체 TRPM8은 세포막에 박힌 통로단백질로 상온에서는 통로가 막힌 비활성 상태다(맨 왼쪽). 온도가 떨어지거나 냄새분자인 멘톨(menthol)이 결합하면 구조가 바뀌며 통로가 열려 세포 밖 칼슘이온이 안으로 들어와 신호를 일으켜 우리는 춥거나 시원하다고 느낀다(오른쪽).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제공

흥미롭게도 냄새수용체의 리간드, 냄새분자가 다른 수용체에 달라붙어 있는 상태의 구조는 밝혀졌다. 박하향을 내는 분자인 멘톨은 냄새수용체인 OR8K3에 달라붙어 달콤한 향기를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냉각수용체인 TRPM8에도 결합해 시원하다는 느낌을 준다. 원래 TRPM8은 온도가 낮아지면 구조가 바뀌면서 활성화돼 신호가 전달되는 것인데, 멘솔 분자가 달라붙으면 상온에서도 활성화돼 신호를 보내 뇌가 ‘온도가 낮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지난 2020년 TRPM8의 비활성 상태 구조와 멘톨이 달라붙어 활성화된 구조를 밝힌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럼에도 정작 멘톨의 진짜 파트너인 냄새수용체 OR8K3의 구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리간드가 알려진 다른 냄새수용체도 마찬가지인데, 냄새수용체 분자는 구조의 변동 폭이 커 구조 규명 연구에 어려움이 크다고 한다.

● 식초의 시큼한 냄새가 느껴질 때 일어나는 일

지난 15일 학술지 ‘네이처’는 처음으로 냄새수용체 구조를 밝힌 논문을 사이트에 미리 공개했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등 미국의 공동연구자들은 식초의 주성분인 아세트산의 시큼한 냄새를 매개하는 냄새수용체 OR51E2에 프로피온산이 달라붙어 활성화된 상태의 구조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 프로피온산은 아세트산보다 탄소원자 하나가 더 많은 분자로 치즈의 시큼한 냄새를 내는 주인공이다. 둘 다 같은 냄새수용체(OR51E2)에 작용한 결과다.

GPCR은 아미노산 사슬이 나선을 그리며 일곱 차례에 걸쳐 세포막을 관통하며 박혀있는 단백질이다. 바느질로 비유하면 천 바깥에서 바늘을 찔러 통과시키고 다시 안에서 밖으로 바늘을 찔러 통과시키는 식으로 일곱 번을 반복해 실이 천에 고정된 셈이다.

지금까지 구조가 밝혀진 GPCR로 알아낸 작동 메커니즘은 이렇다. 막을 관통해 박혀있는 일곱 개의 나선 사이에 생긴 공간에 리간드가 들어가 자리를 잡으면 나선들이 재배치되면서 구조가 살짝 바뀌어 세포막 안쪽에 있는 G단백질을 활성화해 신호가 전달된다.

400가지나 되는 냄새수용체 가운데 처음으로 OR51E2의 구조가 밝혀졌다. OR51E2는 아세트산(acetate)과 프로피온산(propionate)처럼 작은 카복시산 분자에만 활성화된다(위). 구조 분석 결과 리간드가 들어갈 공간이 이들 분자에 안성맞춤이었고 이보다 큰 카복시산 분자에게는 너무 좁았다(아래 왼쪽). 이 영역의 특정 아미노산을 바꿔 공간을 넓히자 거기에 맞는 덩치가 큰 카복시산이 적합한 리간드가 됐다(아래 가운데와 오른쪽).네이처 제공

연구자들은 극저온전자현미경분석법으로 OR51E2의 3차원(입체) 구조를 분석했다. 리간드인 프로피온산 없이 수용체 단백질만 있는 비활성 상태의 구조는 아쉽게도 얻지 못했다. 구조의 유동성이 워낙 커서 “이거다!”라고 하나를 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리간드와 G단백질이 결합해 활성화된 상태인 OP51E2의 구조는 변동 폭이 작아 밝혀낼 수 있었다. 분석 결과 프로피온산 분자는 OP51E2의 막관통 나선 3, 4, 5, 6번 사이의 공간에 쏙 들어가 있었다. 이 나선들에 있는 몇몇 아미노산이 프로피온산과 상호작용해 안정화시킨 결과다.

공간의 크기는 탄소원자 2개인 아세트산과 3개인 프로피온산은 들어갈 수 있지만 4개인 뷰티르산부터는 들어가지 못하고 따라서 이들 큰 분자는 OP51E2를 활성화하지 못한다. 흥미롭게도 아미노산을 바꿔치기해 공간을 넓혀주자 아세트산과 프로피온산 같은 작은 분자는 너무 헐거워 붙지 못하고 탄소원자 8개인 카프릴산 분자가 오히려 꼭 맞아 수용체를 활성화했다.

그렇다면 비활성 상태인 수용체에 리간드가 붙어 활성화될 때 구조가 어떻게 바뀌는 걸까. 아쉽게도 비활성 상태 구조를 분석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대신 베타-아드레날린성 수용체의 비활성 구조를 참고해 컴퓨터시뮬레이션으로 구조를 예측했다. 아울러 요즘 한창 인기인 단백질 구조 예측 AI 프로그램인 알파폴드2도 활용했다. 담난 알파폴도2 역시 냄새수용체 구조 연구에서는 정확도가 떨어져 보조적 역할에 머물렀다.

그 결과 얻은 비활성 상태 구조와 앞서 현미경으로 규명한 활성 상태 구조를 비교한 결과 리간드가 결합했을 때 변화를 제안하는 모델을 만들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세포막 바깥쪽에 놓인, 막관통 나선 6번과 7번 사이를 연결하는 부분이 수용체가 활성화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컴퓨터시뮬레이션과 알파폴드2로 예측한 OR51E2의 비활성 상태 구조(왼쪽)와 실험으로 알아낸 활성 상태 구조(오른쪽)를 비교한 결과 아세트산이나 프로피온산 같은 냄새분자(odorant, 노란색 육각형)가 붙으면 세포막 바깥쪽에서 막관통 나선 6번과 7번을 잇는 영역(ECL3)의 구조가 바뀌며 나선 6번이 틀어져 세포막 안쪽에 있는 G단백질(여기서는 표시되지 않음)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알파폴드2의 예측에 따르면 다른 냄새수용체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네이처 제공

● 냄새분자 사이 작용 복잡해

이번 연구로 냄새수용체 작동 미스터리가 풀리기 시작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우리가 냄새를 지각하는 방식이 꽤 복잡하기 때문이다. 리간드(냄새 분자)와 냄새수용체가 1:1로 대응하는 게 아니라(그렇다면 냄새 분자는 기껏해야 400개에 불과할 것이다) 한 리간드가 여러 수용체와 결합하고 한 수용체에도 여러 리간드가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한 냄새분자는 동시에 여러 냄새수용체를 활성화시키지만(위), 냄새분자를 많이 섞을수록 더 많은 냄새수용체가 활성화되는 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냄새분자를 섞을수록 조합이 달라도 냄새가 점점 비슷해지겠지만(아래 왼쪽) 실제는 조합에 따라 냄새가 다르다. 이는 냄새분자가 특정 냄새수용체의 활성을 방해한 결과다(예를 들어 A는 5번 수용체를 활성화하고 C는 방해해 둘을 섞으면 결국 5번 수용체가 활성화되지 않는다)(아래 오른쪽). 이 과정의 구체적인 구조 변화를 밝히는 게 앞으로 남은 과제다.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대부분의 냄새는 여러 냄새분자가 여러 수용체와 복잡하게 작용한 결과다. 얼핏 생각하면 이 과정은 합집합의 법칙을 따를 것 같다. 예를 들어 냄새분자 A가 냄새수용체 10가지를 활성화하고 분자 B가 수용체 15가지를 활성화하고 둘이 겹치는 수용체가 5개라면(교집합), A와 B 혼합물의 냄새는 수용체 20개가 활성화된 결과다(10+15-5=20).

이런 식이면 냄새분자를 더할수록 점점 더 많은 수용체가 활성화돼 결국은 모든 수용체가 활성화됐을 때 느끼는 냄새(그런 게 있다면)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냄새분자는 어떤 냄새수용체는 활성화시키지만 다른 냄새수용체는 오히려 활성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향수를 만들 때 여러 향료를 섞어도 오히려 향이 부드러워지는 현상도 이 때문이다.

척추동물의 냄새수용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수억 년 전 바다에만 살던 시절 진화한 1군과 육상으로 올라온 뒤 진화한 2군이다. 1군은 물(바다)에 녹아 있는 냄새 분자를, 2군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냄새 분자를 감지하게 진화했다는 말이다. 사람의 냄새수용체는 1군이 약 60가지로 15%에 불과하고 나머지 85%는 2군이다.

이번에 구조가 밝혀진 OR51E2는 물에 잘 녹는 아세트산과 프로피온산을 감지하는 1군 냄새수용체다. 꽃향기를 비롯해 냄새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담당하는 2군 냄새수용체는 구조의 불안정성이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가적인 구조 연구를 통해 냄새분자가 어떻게 특정 냄새수용체에서는 활성화를 촉진하고 다른 수용체에서는 억제하는가를 알아내야 후각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것이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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