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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성질’ 알면 성능이 보인다
영화‘해리포터’에서 주인공 해리는 투명망토를 이용해 몸을 숨긴 채 마법학교 호그와트 곳곳을 누비며 비밀 단서를 찾기도 하고, 수차례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영화처럼 우리도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누리고 향유하고 싶어 한다. 누구나 한번쯤 꿈꿔 봤을 마법의 투명망토,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투명망토의 첫걸음, 빛을 모두 투과시켜라!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는 건 빛이 있기에 가능하다. 어떤 물체를 보기 위해선 물체와 빛이 반응해야 한다. 빛과 물체가 반응하면 빛이 튀어나오거나, 통과하거나, 그 안에 잡힌다. 즉 ‘반사’ ‘투과’ ‘흡수’라는 세 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이 중 반사된 빛이 우리 눈으로 들어와 물체의 색깔이나 형태를 보게 된다.
이를테면 붉은 단풍이 빨간색을 띠는 이유는 빛의 가시광선(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의 무지개 색) 중 빨강만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빛이 100% 흡수되면 검게 보인다. 물체가 빛을 모두 투과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투명하게 보인다. 이것이 투명물체의 원리다. 그 물체가 망토면 투명망토, 인간이면 투명인간이 되는 셈. 투명망토와 투명인간을 만드는 첫걸음은 빛을 모두 투과시키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다. 투명한 망토가 만들어진다 해도 우리 눈을 완벽히 속일 수 없다는 것. 빛이 지나가는 도중 굴절해 망토를 우회하면 직진하는 원래 빛과 시간차로 인해 투명한 상이 일그러져 보인다는 것이다.
알기 쉽게 생활 속 예를 들어보자. 물이 담긴 컵에 빨대를 꽂으면 빨대가 꺾여 보인다. 빛의 굴절 때문. 빛은 일반적으로 직진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공기와 물의 굴절률이 달라 빛이 공기와 물의 경계면을 지나면서 휘어져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휘어지는 정도는 빛이 통과하는 물질이 가진 굴절률의 상대적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 물에 담긴 빨대의 경우 공기와 물의 굴절률 차이에 따라 휘는 정도가 결정된다.
완전한 투명망토의 핵심 기술은 메타물질
그렇다면 우리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완전한 투명체’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빛을 제어해 흡수와 굴절을 자유롭게 구사해야 한다. 빛을 제어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빛을 100% 흡수시켜 아예 반사될 수 없도록 하는 방법과 빛을 다른 방향으로 반사시키거나 굴절시켜 빛의 초점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는 방법이다.
완전한 투명체는 빛을 모두 투과시키되 굴절률이 주변 물질의 굴절률과 같아야 구현된다. 굴절률이 같으면 빛이 휘지 않고 자연스럽게 투과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3의 굴절률을 가진 물 뒤에 동일한 굴절률을 가진 물질(반사나 흡수는 되지 않는다)을 놓는다면 빛은 그대로 물을 지나 물질까지 투과한다. 물을 보여도 물 뒤에 있는 물질은 볼 수 없는 원리다. 즉, 투명망토 기술은 빛이 물체에 닿지 않고 지나가게 만들면 가능하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빛을 굴절시키는 물질이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아직 투명망토를 볼 수 없었던 이유다. 과학자들은 현실 가능한 투명망토를 만들고자 인위적으로 빛을 굴절시킬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해왔다. 바로 메타물질(Metamaterials)이다. ‘메타’는 희랍어로 ‘범위나 한계를 넘어서다’라는 뜻이다.
보통 자연계 물질은 빛과 ‘양(+)의 굴절률(입사각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굴절되는 현상)’을 갖고 반응한다. 반면 메타물질은 빛을 심하게 휘게 하는 음(-)의 굴절률을 만든다. 기존의 소재들과 달리 물질이 저장할 수 있는 전하량을 나타내는 ‘유전율’과 물질의 자기적 성질을 나타내는 물리적 단위인 ‘투자율’이 음성을 띠는 독특한 전자기 특성을 가진다.
메타물질의 음(-) 굴절률은 시냇물이 돌을 만났을 때, 휘돌아 흘러가는 것처럼 빛이 물체의 가장자리를 따라 지나가게 한다. 이렇게 되면, 반사되는 빛이 없어서 우리 눈에는 마치 대상 물체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 않게 된다. 보이는 것은 오직 뒷배경뿐이다.
지금까지 투명망토를 구현하기 위한 과학적 원리를 살펴봤다. 이제는 투명망토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살펴보자. 투명망토 설계의 핵심은 세 가지다. 원하는 형상을 숨기기 위한 메타물질의 조성과 구조를 결정하는 일, 그리고 넓은 주파수 대역에서 투명화를 이루는 일이다.
진화하는 투명망토의 역사
역사적으로 메타물질과 음(-) 굴절률에 관한 이론을 정립한 사람은 러시아의 물리학자 빅토르 베셀라고(Victor Veselago)다. 그는 1968년 음(-) 굴절률을 가지는 가상의 물질에서 전자기학적 현상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이후 30여년이 지난 1999년,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의 존 펜드리(John Pendry) 교수가 ‘물질의 내부 구조를 미세한 수준에서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빛에 대한 성질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빛을 휘게 하는 메타물질을 이용해 분명히 존재하는 물질을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협대역(narrow-band)에서 음(-) 투자율(물질의 자기적 성질을 나타내는 물리적 단위)을 실현할 수 있는 끊어진 고리 형태의 공진기(SRR) 인공 원자 구조를 제시했다.
처음으로 투명망토의 기술을 선보인 사람은 미국 듀크대학의 스미스(Smith) 교수다. 2006년 스미스 교수팀은 마이크로파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메타물질을 만들어 2차원 투명망토를 발표했다. 마이크로파 영역에서 음의 유전율(물질이 저장할 수 있는 전하량)을 가진 금속막대와 펜드리 교수가 제시한 음의 투자율을 가진 공진기 구조를 결합하여 음(-) 굴절률의 메타물질을 처음 구현한 것. 보통의 빛에서 투명한 건 아니었지만 스미스 교수의 연구결과 이후, 음 굴절률 메타물질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후 투명망토는 점차 진화했다. 2008년에는 좀 더 그럴 듯한 망토가 나왔다. 미국 버클리대학 연구팀이 가시광선에 근접한 근적외선 영역에서 작동하는 카펫 투명망토를 제작했다. 더 나아가 가시광선 영역까지 구현이 가능함을 실험적으로 입증하면서 ‘메타물질 투명망토’ 가능성을 앞당겼다. 다만 이 투명망토는 일본 닌자의 위장술에 가깝다. 한쪽 벽에 숨기고 싶은 물체를 놓고서 그 위를 카펫으로 덮는 것이다. 2010년에는 투명망토가 평면에서 입체로 발전했다. 시간이 갈수록 성능도 발전해 깨끗하게 숨겨지지 않았던 그림자도 사라졌다. 2013년 싱가포르의 난양기술대학 연구팀이 개발한 투명망토는 금붕어와 작은 고양이를 숨기기도 했다.
가장 진전된 최근 연구는 2015년 미국 에너지부(DOE) 산하 로렌스 버클리연구소에서 만든 투명망토다. 울퉁불퉁한 표면으로 빛을 산란하는 금 소재의 ‘나노 안테나’를 사용해 투명망토로 물체를 덮으면 물체의 모양은 그래도 유지하면서도 가시광선에서 보이지 않는다. 이 망토가 주목 받는 이유는 물체의 3차원적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3D 물체를 가시광선 영역에서 사라지게 한 첫 연구로 당시 학계에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평면을 곡면으로 보이게 할 수 있고, 곡면을 평면으로 만들 기술이 가까워진 것이다.
빛 속도 조절하는 그래핀 메타렌즈 등장
전 세계 과학자들은 메타물질을 활용한 투명체 연구에 뛰어들어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특정한 방향에서만 물체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 가운데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구조물리 연구단의 김튼튼 연구위원이 KAIST 기계공학과 민범기 교수와 함께 빛의 방향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는 메타 표면 기술을 구현했다. ‘그래핀 메타렌즈’ 개발이 그것이다. 연구 결과는 광학 분야 전문학술지 ‘어드밴스드 옵티컬 머티리얼스’ 지난해 11월 20일자에 발표되었다.
그래핀 메타렌즈는 기존 렌즈보다 1000분의 1 두께(25㎛)밖에 되지 않지만 빛의 위상을 제어해 배율을 조절하는 신개념 렌즈다. 그래핀은 탄소원자 1개의 두께로 이루어진 벌집 형태의 구조로, 전기가 잘 통하는 성질이 있다. 연구팀이 구현한 ‘메타 표면’은 빛과 상호작용하는 표면에서 투과 또는 반사되는 빛의 위상을 제어해 굴절 방향과 편광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인공 구조다. 김튼튼 연구위원은 메타 표면을 만들기 위해 이온 겔과 고분자 기판 등으로 구성된 얇은 막 사이에 금박으로 만든 U자 모양의 광학안테나를 촘촘히 배열했다. 거울에 작은 반짝이 돌기를 잔뜩 붙인 것마냥 빛이 이 위를 지나갈 때 휘어지도록 만들었다. 광학안테나는 빛의 투과도를 제어해 좌편광(우편광)된 빛을 우편광(좌편광)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김 연구위원은 고주파 전파인 테라파를 그래핀 메타렌즈에 발사해, 원하는 대로 빛의 휘어지는 정도를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 U자 모양의 광학안테나 배열을 바꾸면 빛을 원하는 방향으로 굴절시키거나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다. 만약 U자 모양의 광학안테나의 크기를 조절한다면 카메라에 쓰이는 가시광선도 조절할 수 있다는 게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그래핀 메타렌즈는 기존의 3차원 메타물질에 비해 전달 손실이 매우 낮다. 초박형 카메라, 현미경 등에 적용할 수 있다. 얇아진 메타렌즈 덕분에 어쩌면 거슬리게 튀어 나와 있던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보지 않게 될 수도 있다.
‘3D 음향 투명망토’ 탄생
투명체 기술을 특히 눈여겨 볼 이유는 또 있다. 투명망토는 빛이나 전파만이 아닌 음파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6월 1일자 국제학술지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스’에는 중국과학원(CAS) 음향학연구소 양쥔 교수팀이 개발한 어떤 음파도 반사시키지 않는 특수 피라미드 구조체가 소개되었다. 금속 메타물질로 사면체 8개를 이어붙인 팔각뿔 형태의 3차원 구조로 일명 ‘음향 투명망토(UACC)’다. 공명 현상을 활용한 이 음향 투명망토를 덮으면 음파가 마치 텅 빈 공간을 지나가는 것처럼 변형된다.
음향 투명망토 기술은 소너(sonar)에 잡히지 않는 깊은 바닷속 스텔스 잠수함 등에 활용될 수 있다. 스텔스 기술은 첨단 군사산업의 핵심체라 할 수 있다. 존재하는 실물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메타물질은 응용하는 분야에 따라 소음을 차단하거나 지진에 의한 진동을 줄일 수도 있다.
무궁무진 투명화 기술, 메타물질에 달려 있어
투명화 기술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가령 항공기의 조종실 바닥을 투명하게 만들면 착륙 시 조종사들이 활주로 바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고개를 내리면 착륙장치는 제대로 펴졌는지, 보조 날개는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등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자동차에 적용할 경우 후진할 때 뒤쪽을 확실하게 살펴볼 수 있어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의료현장에 적용해 보자. 의사들이 수술할 때, 수술 도구와 의료 기기를 투명화하면 환부를 환히 들여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해리포터의 투명망토를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이를테면 가시광선 영역에서 투명망토가 가능하려면 빛 파장의 4분의 1 수준으로 작은 너비의 나노 구조 메타물질을 만들어야 한다. 이 정도로 작은 나노 구조를 연결해 사람만큼 큰 망토를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진짜 투명망토는 어쩌면 백일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 세계 연구진들의 연구는 매순간 새롭게 발전하고 있다. 메타물질로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김튼튼 연구위원의 다짐도 그와 같다.
“진짜 과학의 혁신은 메타물질이 앞으로 어떤 가능성을 보여 줄지에 달려 있거든요.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