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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 ‘도라에몽’엔 4차원 주머니가 등장한다.
주인공은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크기와 모양에 관계없이 이 주머니에서 언제든 쉽게 꺼내 쓴다.
만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도 저런 주머니 하나 갖고 싶다’고 한 번쯤 생각해봤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영화 ‘미션 임파서블’ 주인공은 극중 다른 인물로 변장하기 위해 첨단 장비를 활용, 3차원 가면 제작에 나선다. 관객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아이디어다.
혹자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기술”이라 말하겠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가까운 미래에 일상에서 접하게 될 장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세상의 출현을 앞당길 기술이 3D프린팅”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연평균 성장률 30% 시장… 국내 점유율은 3.7% 불과
최근 국내 산업, 특히 제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한편에선 “한국 제조업을 부흥시키려면 4차 산업혁명을 통한 경쟁력 제고가 절실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닌 게 아니라 여기저기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얘기가 들려온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린 걸까? 이 글에서 지난(혹은 다가올) 산업혁명을 깊이 있게 얘기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본질만큼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1·2·3차 산업혁명은 인류 사회·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와 동시에 인간 삶의 방식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했다. 특히 기술적 측면에선 물류(나 제조) 수단 혁신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래서일까,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에선 (드론·로봇·자율주행·인공지능 등으로 대표되는) 물류·데이터 혁명과 (3D프린팅으로 대표되는) 제조 공법 혁신이 특히 부각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실 3D프린팅 기술과 관련 시장은 4차 산업혁명이 논의되기 훨씬 전부터 세계적으로 주목 받으며 폭발적 성장을 거듭해왔다. 아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 3D프린팅 시장 규모는 내년에 117억 달러(약 13조280억 원)를 넘어선 후 매해 3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제품 관련 시장과 동일한 규모의 서비스 시장이 창출되고 있단 사실에 주목하면 3D프린팅 기술 발전이 초래할 제조업과 (제품) 서비스 시장 변화는 상상을 초월할 전망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7년 현재 국내 3D프린팅 시장의 글로벌 점유율은 3.7%에 불과하다(2018 홀러스리포트). ‘IT 강국’이니 ‘제조업 강국’이니 하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최초 개념 30년 전 등장… ‘전시용 샘플’ 벗어나기까지
3D프린팅 기술은 한때 ‘쾌속조형(Rapid Prototyping)’이란 용어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엔 ‘적층제조(Additive Manufacturing)’란 표현이 더 널리 쓰인다. 이 같은 변화 이면엔 3D프린팅의 의미가 ‘단순 3차원 형상 제작’에서 ‘소재 특유의 물성과 신뢰성까지 감안한 기능성 제품 제조’로 확장돼온 사실이 숨어있다. 탄소복합소재가 쓰였거나 금속 성형이 가능한 고성능 장비가 속속 개발, 보급되고 있는 현실 역시 이 같은 흐름에 속도를 더한다. 더 이상 3D프린팅을 ‘높은 분들 보시는 전시용 샘플 제작 과정’으로 치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3D프린팅 개념이 처음 제안된 건 19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상용 3D프린터가 시장에 등장한 건 1980년대 말이었다. 1986년 미국 발명가 척 헐(Chuck Hull)이 최초로 특허 출원한 기술 SLA(StereoLithogrAphy)는 1988년 미국 3D시스템즈사(3D Systems社)에 의해 정식 제품으로 출시됐다. 이듬해인 1989년엔 역시 미국 발명가 스콧 크럼프(Scott Crump)의 특허 기술 FDM(Fused Deposition Method)을 활용한 3D프린터가 미국 스트라타시스사(Stratasys社)에서 출시됐다. (3D시스템즈와 스트라타시스는 오늘날 세계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3D프린팅 기업이기도 하다.)
오늘날 생산·제조 분야에서 3D프린팅 기술의 장점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굳이 4차 산업혁명을 논할 필요도 없다. 일단 아이디어 구상에서 제품 생산까지의 과정이 놀라울 만큼 단축된다. 디자인(혹은 설계) 관점이 180도 달라져 획기적 적용도 가능해진다. 그뿐 아니다. 이론상으로만 존재했던 최적 구조, 이를테면 초경량 생체 모사 구조 따위도 얼마든지 구현해낼 수 있다. 형태가 복잡한 제품을 까다로운 조립 과정 없이 한 번에 생산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서로 다른 소재를 동시에 적용, 제작하는 일도 문제없다.
비행기 부품, 자율주행 버스… 우주기지 구축에도 활용
3D프린팅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 역시 △우주항공 △자동차 산업 △첨단 전자 산업 등 이미 그 폭이 상당하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미국 제너럴일렉트릭사(GE社)는 2016년 세계 최초로 항공기 연료분사노즐(leap fuel nozzle)의 3D프린팅 생산에 성공했다. 당초 22개 부속품으로 구성되던 이 장비는 3D프린팅 절차를 거치며 단일 부품으로 제작됐고, 항공기 엔진에 성공적으로 장착됐다. GE 측은 “2020년까지 3D프린팅 기술로 만드는 항공용 엔진 부품 수를 10만 개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2014년 국제생산기술박람회에선 미국 기업 로컬모터스(Local Motors)가 3D프린팅 기술로 만들어진 소형 전기차 ‘스트라티(Strati)’를 선보였다. 고속도로를 주행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차체 제조에 소요된 시간은 단 이틀. 디자인 작업을 거쳐 차량을 완성하기까지의 기간을 다 합쳐도 1주일이 채 안 걸렸다. 상용화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자동차를 직접 디자인하고 만드는 시대가 머지않은 것이다. 로컬모터스는 2016년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소형 버스 ‘올리(Olli)’를 3D프린팅 기술로 제작, 공개하기도 했다. 이런 추세를 감안할 때 3D프린팅은 가까운 미래에 자동차·비행기 등 운송 수단 제조 시 필수 기술로 떠오를 전망이다.
△ 로컬모터스가 공개한 전기차 ‘스트라티’(왼쪽 사진)와 자율주행 소형 버스 ‘올리’. 둘 다 3D프린팅 기술로 완성됐다(출처: 로컬모터스 공식 홈페이지)
3D프린팅 기술은 이 밖에도 건축·가구·의류·신발·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알게 모르게 널리 쓰이고 있다. 미래 활약상은 더 기대를 모은다. 이미 유럽우주국(ESA)은 3D프린터로 우주기지 건설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인공 장기를 만들기 위한 ‘줄기세포 3D프린팅’ 연구도 세계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우주기지 건설 프로젝트의 경우, 3D프린터만 우주선에 실어 행성으로 보내고 현지 토양에서 건설 재료를 구해 기지를 세울 예정이라니 ‘도라에몽 4차원 주머니’가 따로 없다. ‘3D프린팅으로 세워진 화성의 어느 병원에서 3D프린팅으로 제작된 인공심장을 이식하는 수술이 집도되는’ 날이 곧 올지도 모른다.
국내 현실은 열악… 원천기술 확보와 시장 발굴 등 시급
3D프린팅 기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당장 나만 해도 불과 이삼 년 전 국내외 기술 전시회나 학회에서 보고 들은 얘기와 작년 이후 확인한 사실 간 차이가 상당하다. 과거 3D프린팅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흐름이 주를 이뤘다면, 요즘은 자동차·항공·의료 등 실제 수요 업체나 업종을 중심으로 3D프린팅의 실제 공정 적용 사례와 제품 제작 성공담이 훨씬 더 자주 보고된다. 관련 기술이 발전하고 수요 시장이 성장하는 속도 둘 다 너무 빨라 3D프린팅의 미래를 감히 예측하기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3D프린팅 기술이 제조업 현장과 사람들의 일상 환경을 크게 바꾸리란 것, 따라서 우리도 하루 빨리 그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쳐야 한단 건 분명한 사실이다.
아쉽게도 3D프린팅 분야에서 국내 기술 수준은 미국∙독일∙일본 등 해외 선진국에 비해 다소 열악한 게 사실이다. 3D프린팅 기술이 적용되는 부문도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가장 큰 원인은 산업용 3D프린팅 관련 원천기술 부재, 그리고 한정적 수요 시장이다. 창의적 발상과 시도로 3D프린팅 기술을 한발 앞서 이해, 응용하려는 제조 현장에서의 노력도 아쉽다.
3D프린팅은 단순히 기존 제작 방식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다. 3D프린팅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시스템을 디자인(혹은 설계)하고 △재료를 선정하며 △실제로 제작한 후 △(제작에 쓰인) 시스템의 신뢰성을 검증하는 전 과정이 이전과는 달라져야 한다. 이와 관련, 최근엔 디자인(혹은 설계) 분야에서 3D프린팅 기술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법론의 하나로 일명 ‘DFAM(Design For Additive Manufacturing)’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기도 하다. (다음 번 칼럼에선 DFAM 방법론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살펴보고 DFAM이 적용된 국내외 사례도 소개하고자 한다.)